글/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90년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널리 전해지던 시기에 내가 다니던 대학 연공장이 생각났다. 이에 그 당시 사소한 일들을 회상하며 파룬궁의 신기함을 증언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아래에 언급된 성씨는 모두 가명이다.
1. 인연 있는 사람들이 잇따라 법을 얻다
먼저 황(黃) 선생님에 대해 말하겠다. 우리는 그녀를 황이모라고 불렀다. 당시 그녀는 60세 가까이 됐고 이 대학에서 가장 먼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분이었다. 황 선생님은 이 대학의 강사였는데 심각한 심장병으로 인해 일찍이 일할 수 없게 되어 병상에 누워 있었고 집에는 산소통이 놓여 있었으며, 자주 병원으로 실려 가 응급치료를 받곤 하셨다. 그녀의 집 생활구역 안에는 채소시장이 있어서 걸어서 불과 2분이면 갈 수 있었지만, 그녀는 채소 2근을 사 오는 길에도 몇 번씩 쉬어야 할 정도로 몸이 허약했다.
1994년 어느 날, 황 선생님의 병우(病友)인 다른 대학의 교수가 황 선생님 집을 방문했는데, 자신이 파룬궁 수련을 하게 되어 몸이 매우 좋아졌고, 더 이상 자주 입원하여 응급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 교수는 황 선생님에게 《파룬궁》이라는 책을 가져다주고, 간단히 연공 동작을 가르쳐준 뒤 돌아갔다. 황 선생님은 이 책을 들고 읽으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머리가 아파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이후에 대법 사부님의 음성임을 알게 됐음). 책에는 공법을 가르치는 그림과 설명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림을 보며 연공을 했다. 황 선생님은 몸이 허약해서 1, 3, 4장 공법은 길지 않았지만 한 번에 다 할 수 없어서 나누어서 했다. 한 가지 공법을 하고 잠시 쉬는 식으로 이렇게 하루에 다섯 가지 공법을 다 할 수 있었다. 황 선생님은 약도 계속 먹었다. 몇 달이 지나자 그녀의 몸은 점차 회복됐다.
이듬해 봄이 되자, 황 선생님은 밖에 나가 활동할 만한 기력이 생겼다고 느꼈고, 교정에 있는 잔디밭에서 아침 연공을 하기 시작하셨다. 당시는 기공 붐이 일던 시기라, 교정에는 다른 기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할머니 몇 명이 황 선생님 옆을 자주 지나가면서 그녀 주위의 장(場)이 매우 좋다는 것을 느꼈고, 그녀가 어떤 기공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황 선생님은 할머니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해주었다. 서서히 이 몇 분의 할머니도 그녀를 따라 연공하게 됐고 다른 기공은 배우지 않게 됐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황 선생님은 약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됐고 몸은 완전히 회복됐으며, 머리카락은 새까맣게 변했고 정신도 좋아졌으며, 얼굴색도 좋아져서 흰 피부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집안일도 다시 맡게 됐다. 남편과 아들도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이렇게 해서 황 선생님은 교정에 첫 번째 연공장을 세우셨다. 그녀는 매일 자신이 구입한 녹음기를 들고 연공장에 가서 모두에게 연공음악을 틀어주셨다.
학교 병원에는 장(張) 의사가 있었는데, 황 선생님은 과거에 그녀의 환자였다. 어느 날 장 의사는 교정에서 황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녀의 정신 상태를 보고 매우 놀랐다. 그래서 “왜 진찰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나요?”라고 물었다. 황 선생님은 파룬궁 수련을 한 후 건강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장 의사는 믿기 어려워했다. ‘기공이 어떻게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살아있는 사실이 눈앞에 있었다. 이 환자가 예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건강하고 정신이 좋아 보이는 것이었다! 장 의사는 어릴 때부터 받아들였던 무신론 관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침 장 의사의 딸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감탄하지 않았지만, 파룬궁은 절 매우 감탄하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부모에게 파룬궁을 추천했다. 장 의사의 남편은 대학 생물학과 교수였는데, 황 선생님의 변화와 딸의 편지로 인해 그도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는 “과학계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줄곧 논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중간 고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 의사 부부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교정 연공장에 와서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체득하고 대법의 이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진정한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황 선생님의 엄청난 변화를 보고 학교의 많은 사람이 파룬궁의 질병 제거와 건강 증진의 기적을 목격하게 됐고, 또한 연공장으로 모여들었다.
학교 후방근무 과장은 당시 40대였고 당뇨병을 앓고 있었지만 연공한 후 병이 나았다. 또 한 분의 중앙 직속 기관 퇴직 간부가 있었는데, 당시 60대였고 원래 당뇨병이 있었다. 그도 교정 연공장에 와서 연공하자 당뇨병이 나았다. 연공장에서 그 두 사람은 함께 예전에 당뇨병으로 인해 겪었던 여러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를 들어 과일을 먹지 못하고, 죽을 마시지 못하며, 단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매끼 밥을 조금 먹지 못해서 배가 꼬르륵 울렸으며 늘 굶주린 상태였다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연공하고 나서는 지금은 무엇이든 과감히 먹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들은 추억을 나누면서 즐겁게 하하 웃었다. 그것은 건강을 되찾은 행복한 웃음소리였다.
연공장에는 50대 남성 공우(功友: 파룬궁수련자)가 있었는데, 그는 5살 때부터 천식을 앓아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의 누나가 파룬궁을 배운 후 매우 좋다고 느껴 그에게 추천해주었다. 그도 연공을 시작했는데 처음 두 달간 천식 증상이 매우 심각해 보였다. 그의 아내는 그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그의 누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업을 없애주시는 것임을 알고 그에게 견디라고 격려하면서 곁에서 돌봐주었다. 힘든 두 달을 지나자 그의 40여 년 된 천식은 뿌리째 없어졌고, 그 후로는 다시는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완전히 나았다. 그는 모종장에서 일했는데 매일 자전거로 2시간 걸려 모종장에 가고, 퇴근할 때도 2시간 걸려 집에 왔지만 몸이 가볍고 마음이 즐거웠다.
연공장에는 또 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당시 70대였다. 그들도 황 선생님의 변화를 보고 기공을 배우러 왔다. 아내는 퇴직하기 전에 이 대학 도서관에서 일했고 남편은 퇴직 간부였다. 부부는 모두 중공의 역대 정치운동을 겪었기에 조용히 와서 다른 사람과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번은 연공을 하고 난 후 아내가 이런 일을 말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나갈 일이 있어서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똥 한 무더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한 짓인지 몰랐다. 그들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큰 소리로 누가 했는지 찾으려 하자 아내가 손짓을 하며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은 연공을 하니까 일이 생기면 참아야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청소만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처리했다. 노부인은 흰머리에 둥근 얼굴이었는데 이 일을 말할 때 어투가 너무나 평화로웠고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평온하게 참은 것이었다.
연공장에는 한 모녀가 있었는데 엄마는 대학 교육기업의 기술자로 매우 유능했고 회사에 큰 공헌을 했다. 딸은 당시 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반에서 반장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공부를 잘했고 필기도 깔끔했으며, 시험 전에 동기들이 모두 그녀의 필기를 빌려 봤다. 그녀는 선량하고 순수했으며 일이 생기면 동기들을 먼저 생각했고 선생님과 동기들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파룬따파가 박해당한 후 학과에서는 그녀가 굳건히 수련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받아야 할 장학금을 취소했지만, 그녀의 동기들은 그녀를 위해 부당함을 호소했고 이듬해에는 그녀가 순조롭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대법 사부님께서 하신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전법륜)는 법리를 증명한 것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녀의 웃는 듯한 선량한 눈빛과 치마를 입은 사랑스러운 모습이 내 눈앞에 선명히 떠오른다.
한 젊은 여성 수련생은 당시 20대였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대퇴골두 괴사증으로 걸을 수 없었지만 연공한 후 회복했다. 한번은 연공한 뒤 그녀가 연공할 때 보았던 한 장면을 묘사했다. 한 남자가 그녀를 유혹하는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혐오감을 느꼈고 강하게 배척했다. 그러자 그 장면이 사라졌다. 바로 이어 그녀는 사부님의 대법신(大法身)이 위에 나타나신 것을 보았는데 매우 장엄하고 신성했으며, 하늘에는 천녀(天女)들이 꽃을 뿌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자신을 격려하신 것이며 방금 한 고비를 잘 넘겼음을 깨달았다.
2. 연공장은 한 조각 정토(淨土)였다
1995년 가을, 이 대학은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했다. 그들 중 일부는 고향에서 이미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입학 후에도 학교 연공장에 합류했다. 그때는 수련생 수가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듬해인 1996년 봄에는 50여 명으로 늘었고 그해 가을에는 100여 명으로 늘었다. 모두가 편리하게 연공할 수 있도록 아침 연공 외에도 저녁 연공 시간을 추가했는데, 이는 낮에 일하느라 아침 연공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황 선생님은 곁에 한 명 한 명 공우가 늘어나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고 모두를 보살폈으며, 우리 학생들을 자주 아침 연공 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국수를 대접하고 함께 법을 배우고 교류했다.
당시 연공장은 교정 작은 길가에 있는 한 조각 잔디밭을 택했는데, 나중에 사람이 많아지자 설 자리가 없어, 작은 길 건너편 수림 속의 더 큰 공터로 옮겼다. 그곳은 가을에는 낙엽, 겨울에는 눈이 쌓였는데 일찍 온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바닥을 쓸어서 모두에게 깨끗한 연공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연공장에는 왕이모라는 50대 여성이 있었는데, 매우 열정적이고 남을 돕기를 좋아했다. 원래는 황 선생님이 녹음기를 들고 연공장에 왔는데, 나중에 왕이모가 자원해서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모두의 연공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녹음기를 가져오는 사람은 반드시 일찍 와야 했다. 왕이모는 매일 아주 일찍 왔고 다른 일찍 온 수련생들과 함께 장소를 치웠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연공장에 도착할 때면 그들은 이미 일을 다 끝냈다. 불의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당시에는 이 왕이모 외에도 다른 공우들도 예비 녹음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룬궁은 심성수련을 중시하기에 책을 보고 법리를 명백히 아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기공을 배우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연공장에서는 때로는 9일 학습반을 열기도 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해외에 가서 법을 전하고 계셨기에 학습반은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방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장소를 구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연공장에는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40대로 키도 크고 건장했으며, 어느 회사 부서 책임자였다. 그는 인맥이 매우 좋아서 회사의 큰 강당을 빌릴 수 있었고 게다가 비용도 모두 자신이 자원해서 냈다. 그는 모두가 편리하게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많은 좋은 일을 했다.
파룬궁 공법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황 선생님은 스스로 시간을 내어 연공을 하고, 연공할 때 관심을 보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하는 데 전념하셨다. 기공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학생 수련생들이 자원해서 공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는 대법 책 《전법륜(轉法輪)》과 대법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 녹화테이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는데, 연공장의 오래된 수련생들은 자주 스스로 돈을 내서 여러 벌을 더 구입했다. 공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빌려주었고, 배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돌려주었다. 보고 난 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갖고 가게 했다. 만약 상대방이 꼭 돈을 주겠다고 하면 구입할 때의 원가만 받았다. 연공장에서 수련생들의 고상한 행위는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모두 배우고 닦는 것을 서로 비교했다.
대법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이 환경에서 형성된 대법제자의 높은 경지의 행위는, 일언일행(一言一行)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차이를 찾을 수 있게 하며,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고 사람들의 행위를 용련(熔煉)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을 더욱 빨리 제고하게 할 수 있다.”(정진요지-환경)
연공음악이 울리기만 하면 무엇을 하고 있었든지, 수다를 떨든 거닐든 즉시 조용해지고 가만히 서서 연공할 준비를 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처럼 자각적이었다.
교류할 때 모두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이야기했고, 갈등이 생기면 자신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찾았다. 모든 사람이 선량하고 평화로웠으며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런 순수함은 정말로 한 조각 정토였다. 대법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또한,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우리 이 환경이 대단히 좋다는 것을 다 알게 되는데, 연공장에서 여러분이 흉금을 털어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이것은, 인류사회 어디에서도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련생마다 대법 연공장에 가기만 하면 정토에 들어왔고, 가장 신성한 곳에 들어온 감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당신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는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이는 어떤 인류 환경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바로 대법제자 매 한 사람이 모두 자신을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고 모순이 나타나면 여러분은 모두 자신이 잘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 아닌지 하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미국서부법회 설법)
이 대학에는 자주 견학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번은 우리가 연공하고 있을 때 작은 길로 몇 사람이 걸어왔는데, 그중 한 젊은이가 이것이 무슨 공법이냐고 물었다. 그는 또 흥분해 우리에게 연공장이 붉은빛이 덮여 있고 장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파룬궁이 널리 전해짐에 따라 연공장에 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고 수림 속 연공장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다 서지 못했다. 황 선생님은 교외에서 새로 온 수련생들에게 자기 집 근처에서 비교적 좋은 장소를 찾아 연공하라고 권했는데, 이렇게 해야 대법 전파에도 편리하고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대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장면을 하나하나 회상해보면 연공장 공우들의 목소리와 웃는 모습, 함께 연공하던 화목한 장면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갑자기 허리가 아파 차에 오르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지만 대법을 확고히 믿는 정념으로 허리 통증이 치료 없이 나은 삼촌, 키가 크고 체구가 곧으며 말할 때 정기가 충만하고 온 가족이 수련하며 모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법을 배우고 교류하던 노동자 아저씨, 남편과 오래 화목하지 않았지만 연공한 후 일이 생기면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주머니, 평소 놀기 좋아하고 며느리에게 아이를 돌봐주길 싫어했지만 연공을 한 후 스스로 시어머니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주머니, 원래 밀종(密宗)을 배웠지만 나중에 파룬궁이 진정한 불법(佛法)임을 확신하고 굳건히 수련하게 된 대학 직원, 묵묵히 연공하고 묵묵히 좋은 사람이 되던 수많은 공우들, 남을 도우려 하고 열심히 대법을 널리 전하며 학습도 우수하고 서로 도왔던 청년 학도들…
여러분 지금 모두 잘 지내시나요? 대법이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은 20여 년 동안 우리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교정에 있었던 그 공우들이여, 여러분은 아직도 굳건히 수련하고 계신가요? 아직도 대법을 널리 전하고 계신가요? 우리 모두 변함없이 잘 수련하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대법 진상을 알고, 더 많은 사람이 이롭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공동 소망입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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