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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주간’을 읽고 깨달은 사심

글/ 중국 수련생 우모(羽毛)

[명혜망] 보도원의 도움으로 다시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번에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면서 더 큰 물질을 돌파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 후 교류 시간에 최근 제게 나타난 병업 가상과 바르지 못한 사상의 염두에 대해 말했습니다. 보도원은 제 병업 가상은 근본적인 집착과 서로 대응한다고 하면서, 제 근본 집착은 사심(私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제가 수련한 지 오래되었지만 계속 사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서 보도원이 보기에 저는 줄곧 대법 수련생일 뿐 대법제자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보도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제 사심이 어떻게 체현되는지, 어떻게 사심에서 벗어나 착실히 수련하는 제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어떻게 사심을 제거하고 사람마음에서 걸어 나올 수 있을지 몰라서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구(舊)우주의 모든 것은 사심을 위한 것이고 신우주의 모든 것은 남을 위한 것인데, 사심을 버리지 못하면 신우주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해 돌아갈 수 없고 사람 표면에는 죽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생겨나 소극적인 염두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는 이런 구세력의 염두와 싸워 이겨내고 수련을 잘해야겠다는 생각, 하루라도 더 살면 법을 실증할 수 있고 대법에 먹칠을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마음이 평온하지 않아 도저히 법공부를 할 수 없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무기력하고 멍한 상태였으며 마음속의 그런 물질들이 저를 계속 한숨짓고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도 일찍 일어나지 못했고 연공도 하지 못해 마음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무거웠습니다.

그때 옆에 놓인 ‘명혜주간’ 1174호를 보고 손에 들어 한 편 한 편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사상이 수련생 원고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에 이끌려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문제 표현을 인식하게 됐고, 처음에 보도원이 ‘전법륜’에 나오는 장과로가 당나귀를 돌아앉아 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제가 비로소 대법 책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서야 그것이 호기심이었음을 알게 됐고 이제야 그 뒤에 강한 사심이 숨어 있었으며 사욕을 채우기 위해 대법 책을 본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초기에 보도원이 제게 “흥미로 수련을 시작하셨네요”라고 지적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몸이 불편하면 법공부 팀에 가서 공부하고 나아지면 모습을 감추고, 마음이 번뇌스러우면 가서 법공부를 하다가 해탈감을 얻으면 사라지고, 갈등에 부딪히면 가서 수련하다가 넘어서면 가지 않는 등 속인의 목적으로 수련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정(情)으로 보이지만 근본은 여전히 사심이었습니다. 가족, 친구 등 다른 사람들과 지낼 때도 그들만 고치려 했지 자신은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수련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산당 문화의 교활한 마음으로 법리를 내세워 요구했고, 남편에게는 더 사납게 굴었으며, 심지어 외모, 일 처리 능력, 가정 형편, 수입 등 모든 면에서 줄곧 그가 제게 못 미친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저보다 아래 계층으로 시집왔다고 생각했는데 수련 후에도 이런 관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마디 하면 저는 백 마디로 받아치고, 인정에 맞지 않으면 전통문화 이치로 누르고, 그래도 안 되면 음란하고 색정적인 것으로 해치려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제 말을 들어야 하고 저를 잘 대해야 한다는 생각뿐,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고 수련인으로서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지내거나 일할 때도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이었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해도 유위(有爲)적인 기점에서 출발했으니 모두 사(私)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부모를 모실 때도 업보가 두려워 공덕을 쌓으려는 마음, 남에게 칭찬받고 싶은 명예욕 등 보답과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명혜망 기사를 볼 때도 안으로 찾는 내용, 자신의 제고에 도움 되는 내용만 좋아했는데, 안으로 찾는 것조차 편안해지고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으니 역시 사심이었습니다. 수련 중 병업, 갈등, 교란, 고난 등이 나타나도 그것들에 감사한 적이 없고, 더욱이 사부님께 감사드린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늘 안일심, 원망과 불평, 투쟁심, 시기심 등으로 사심에 입각해 모든 것을 대했을 뿐, 그것들이 좋은 일, 업을 갚는 일, 관을 넘는 일, 시험과 제고,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수련을 위해 온 것이라는 걸 몰랐는데, 안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혜주간’에 실린 수련생들의 원고를 읽으면서 그 내용들이 제 사심을 조명해주고, 또 사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착실히 수련하는 방법까지 일깨워주고 있음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완전히 깨달았을 때, 그동안 저를 두렵게 하고 마음속에서 한숨짓고 무겁게 했던 물질이 저를 떠나고 있음을 느꼈고, 어떤 힘에 받들려 ‘계속 수련해야겠다’는 정념이 솟구치는 것 같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바로 앉아서 이 작은 깨달음을 글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는 과정에 사부님께서 저를 제도하고 계심을 더욱 깊이 느꼈고, 감사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 조그만 체득을 쓰는 것은 원고를 쓴 수련생과 원고를 정리해 명혜망에 발표해 준 명혜망 수련생들에 감사를 표하고, 다른 수련생들과 깨달음을 나누며, 수련생들이 온라인에 발표한 수련 원고를 소중히 여기도록 일깨우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신변의 수련생들이 나타내는 여러 모습을 사람마음과 생각, 감정으로 대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었습니다.

기억하건대 초기에 보도원은 “신변 수련생들의 갖가지 표현은 모두 자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므로 매우 감사해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그가 영리하고 말을 잘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고, 법에서 볼 수 있게 되어 그의 말이 맞다고 여기게 됐고 자신과 그와의 격차를 보게 됐습니다.

이상은 제가 최근 수련 중에 체득한 것인데, 층차가 제한적이라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보충해주시고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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