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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우리 온 가족은 파룬궁을 믿습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매련(梅蓮)

[명혜망]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학교는 몇 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병마에 시달렸습니다. 몸은 약하고 성격은 거칠었으며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곤 했는데, 저는 늘 이런 삶이 언제쯤 끝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1998년 봄, 저와 남편은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났습니다. 그때는 대법 책을 읽을 줄도 몰랐지만 파룬따파가 좋다는 건 믿었습니다.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행동하자 병이 싹 나았고 마음도 밝아졌습니다. 친척들은 제게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1998년 말에는 시부모님과 아주버니도 대법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수련 초기에 저는 법공부와 연공에 매진하며 정진했습니다. 어느 날 밭일하러 산에 갔는데 남편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씨앗을 뿌릴 두렁이 없을 때면 차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었습니다. 그러다 눈앞에 ‘생명겁(生命劫)’이란 큰 금빛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당시엔 한자를 잘 몰라서 ‘겁(劫)’자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물으니 “재난이라는 ‘겁’ 자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 생명에 재난이 있을 것임을 일깨워주셨다고 깨달았습니다.

재난의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장쩌민은 시기심에 온 세상에 거짓말을 퍼뜨려 사람들을 속이고 중독시켰습니다. 진정한 재난이 닥친 겁니다. 남편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누군가 고발해서 집을 떠나 숨어 다녔고, 결국 불법 노동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집안 형제자매들은 모두 대법이 좋으면 집에서만 연마하면 되지 왜 밖에 나가 말하느냐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엄청난 압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확고히 믿었고, 수련하는 건 잘못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행동으로 파룬궁이 가장 바른 것이고 선한 이를 박해하는 자들이 잘못됐음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재난 속 생명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시댁에는 아주버니 한 분과 시동생 두 명이 있으며, 형제 넷이 함께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해마다 시부모님께 쌀과 밀가루를 대고 각자 땔감 100묶음과 장작 한 수레를 마련했습니다. 남편이 불법 감금된 상황에서 저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며 논밭 농사까지 지어야 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제가 노부모를 돌보지 않고 봉양할 물품도 못 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년 제일 먼저 시부모님께 봉양품을 보냈습니다. 쌀과 밀가루는 물론 땔감 100묶음과 장작 한 수레까지 보냈습니다.

하지만 시댁에 땔감 쌓아둘 곳이 모자라 제가 보낸 것들로 가득 차서 다른 형제들의 물건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 2년에 한 번씩만 조금 보냈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고 마치 남편이 있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시부모님을 더 잘 섬겼습니다.

막내 시동생은 시어머니와 한 낡은 큰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했습니다. 공사하는 동안 시어머니가 계실 곳이 없자 다른 두 아들 집에 가려 하셨지만 며느리들이 반대했습니다. 남편이 박해로 집에 없어 그들도 제게 말을 꺼내기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의 난처함을 보고 먼저 나서서 우리집으로 모셨습니다. 쌀 두 포대를 빻아 시동생 집 짓는 동안 쓰게 했고 매일 식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두 달 뒤 집이 완공되자 시동생 내외는 대법을 수련하는 둘째 며느리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게 됐습니다. 시어머니도 감동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구나.” 저는 “어머니, 우린 다 수련인이잖아요. 사부님께선 어려움 앞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라 하셨어요. 함께 사부님께 감사드려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막내 시동생이 이사 가는 날, 저는 2년간의 부당한 강제노동에서 풀려난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그 2년간 저는 행동으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증명했고, 우리는 이토록 훌륭한 대법을 반드시 확고히 믿고 지켜나가야 함을 더욱 깨닫게 됐습니다.

설날이 되어 온 가족이 시댁에 모였습니다. 섣달그믐날 저녁 식사를 하며, 3대가 함께 모인 10여 명이 일제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크나큰 은혜에 젖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모두 대법이 좋다고 말하다

남편과 아주버니가 납치돼 감금될 때, 제 딸과 아주버니와 막내 시동생의 두 조카딸은 불과 14~16세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대법이 좋고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훌륭한 분들이라 믿었습니다. 관공서에 찾아가 “큰아버지들은 잘못이 없어요. 대법이 좋아 믿는 거예요. 큰아버지는 몸이 안 좋아서 대법 배운 거라구요. 구속하면 안 돼요!”라며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공무원들이 “너희 그러다 대학 못 간다”고 겁줘도 딸은 “대학 갈 수 있는 건 여러분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거예요”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대학 진학에 지장 없었습니다. 다른 집 자녀들은 대학 갈 때 파룬궁 연마하는지 심사받곤 했는데, 우리 가족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현지에 다 알려졌으나 대학 입학 당시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주버니는 대법 수련을 하지만 형님은 안 하셨습니다. 아주버니와 남편이 납치돼 감금되자 형님은 온종일 울며 난리를 피웠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돌보고, 농사일에 빨래에 식사준비에 시부모님을 봉양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습니다. 그런데도 형님께 맛있는 음식을 해다 드렸습니다. 형님은 자기 살림은 안 돌보고 시동생들이랑 제 딸에게 이것저것 시키기만 하셨습니다.

이에 시동생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둘째 형수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다 해내는데, 큰형수는 살림은 안 하고 울기만 하시네”라고 말했습니다. 시부모님도 제가 수련해서 변화가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수련 전엔 저도 시부모님께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딸만 둘 낳았다고 시어머니가 싫은 내색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산후조리 때도 옆방에서 시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들이 없다고 술 마시고 화를 내시며, 물건 던지고 난리를 피우셨습니다. 차별받는 게 서러워서 화병까지 얻어 일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님은 저를 더 무시하셨습니다.

그러다 대법을 만나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고 몸이 병 없이 가벼워져 일할 힘도 나고, 시부모님께 품었던 원망도 내려놓게 됐습니다. 활력이 넘치고 인내심이 생겨 시부모님을 공손히 모시고, 시댁 식구들을 잘 대하며 그분들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시부모님께 대접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여드렸습니다.

저는 늘 대법이 좋다는 걸 믿으면 무한한 복을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부모님도 기쁘게 함께 대법 공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시아버님은 7, 8살 때부터 피우신 담배를 단번에 끊으셨습니다. 제가 딸만 둘 낳았다고 싫어하시던 마음도 내려놓으셨습니다.

대법을 믿어 복을 받다

시부모님, 아주버니, 시동생, 동서들, 아이들까지 누구에게 일만 생기면 모두들 제 일처럼 온 힘을 다해 도왔습니다. 가족들이 대법이 좋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일이 없어도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고 일손도 거들어주었습니다.

저의 시댁 형제들은 모두 딸만 낳았고 작은 시동생 내외만 아들을 얻어 조카는 온 가족의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이 조카는 유독 우리집에 오는 걸 좋아했습니다. 조카가 졸업하고 도시에서 가정을 이루어 자립한 후에도 고향에 올 때마다 부모님 집에 잠깐 들렀다가 우리집에 왔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대법 수련을 하게 된 후로는 조카는 우리집 오기를 더더욱 좋아했습니다. 조카는 우리가 대법 수련을 통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조카는 “숙모는 정말 너무 착하세요”라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시동생 가족, 아주버니 가족,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우리집에 오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무리 먼 곳을 다녀오더라도 우리집에 먼저 들렀습니다. 어느 집에 친척이나 친구가 오면 그들도 모두 우리집에 들렀고 무슨 일이든 우리집에 와서 의논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대법 진선인의 법리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옳은 일을 하도록 알려줬고, 그들은 모두 귀담아듣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늘 좋은 결과가 있었고, 일이 잘 풀리면 우리집에 와서 자랑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도와주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우리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많은 이들이 제가 말하는 “우리집”이 구체적으로 어느 집인지 잘 몰랐습니다. 사실 전 제 친정 식구들과 시댁 식구들을 모두 한 가족처럼 여겼고, 심지어는 마을 사람들까지도 한 식구처럼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장작을 패거나 쌓는 일, 울타리 고치는 일, 밭일, 수확 등 우리집의 크고 작은 일들을 다 다른 가족들이 해주어서 남편과 제가 직접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몰래 해보려고 해도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집 담장이 좀 기울어졌는데 줄곧 손댈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기회가 왔습니다. 넷째 시동생 내외와 시어머니가 집을 비웠고, 친정 남동생도 보름 정도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모두들 없는 김에 오늘 담장을 허물고 우리 둘이 슬쩍 다시 쌓읍시다”라고 하기에 저도 좋다고 했습니다.

담장을 다 허물고 기초를 깨끗이 치운 후 조금 쌓기 시작했는데, 그때 넷째 시동생이 돌아와 큰 삽을 들고는 담 쌓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조카도 돌아와 아내를 집에 두고 와서는 흙 이기는 걸 도왔습니다. 남동생도 보름 일정이 일주일이나 앞당겨져 마침 우리가 담장 쌓는 날에 돌아왔습니다. 하루 만에 끝내지 못하자 이튿날 아침, 우리가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그들은 또 와서 담쌓기를 계속했습니다. 남편이 “다들 힘 빼지 마. 이 정도는 내가 문제없이 할 수 있으니 돌아가 쉬어”라고 했지만 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담을 다 쌓아 주고 돌아갔습니다.

우리 집 뒷문을 달 때도 그랬습니다. 제 남동생이 날마다 와서는 “언제 달 거야, 뒷문은 언제 달 거야?”라고 물었죠. 남편은 “급한 건 아니니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고 했는데 남동생은 꼭 달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우리집 일은 내가 혼자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내가 몰래 하려 해도 다들 달려와서 어찌나 도와주는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일손을 거드는 사람이 많으니 마을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 “당신네 집안은 어쩌면 그리 좋아요? 일이 있으면 모두들 달려와 도와주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대법을 믿어 복을 받은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두 딸의 가족들이 대법을 믿다

결혼할 나이가 된 큰딸에게 저는 “우리는 모두 수련하는 사람들이니 대법이 좋다고 믿는 사람만 우리집 식구가 될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큰딸이 큰사위와 사귈 때도 “우리집은 모두 수련해서 담배도 술도 안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사위도 담배를 끊고 술도 안 마시게 됐습니다. 큰사위는 우리집에 와서 온통 대법 이야기만 듣다 보니 진상을 알게 됐고, 우리 가족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큰딸의 시부모님도 우리집에 자주 오셔서 진상을 듣고는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둘째 딸 결혼 상대를 구할 때도 “언니가 이미 모범을 보였지? 대법을 믿는 사람만 우리집 식구가 될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둘째 딸이 둘째 사위를 사귈 때도 가장 먼저 “우리 온 집안은 파룬따파를 수련해요”라고 말했고, 둘째 사위 집에서도 이를 인정해줬습니다.

인정은 했지만 둘째 사위는 처음엔 의심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우리를 접하다 보니 우리의 행동을 통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넓은 아량과 자비, 이타심을 몸소 느끼게 됐습니다. 저희가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로 아이를 교육하는 모습, 온 가족의 선한 힘을 보고 둘째 사위도 결국 인정하게 됐습니다. 둘째 사위는 제 남편에게 “아버님, 우리 부모님은 이런 말씀을 안 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처갓집은 모두 대법을 수련해서 그런지 선하고 이해심이 많으며 남을 먼저 생각하면서 보답을 바라지 않으시더라고요. 정말 좋은 집안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사위 역시 아주 훌륭한 사람이며 우리의 수련을 지지해줍니다. 둘째 사위의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고 입까지 비뚤어져 말을 못 하게 되시자 둘째 사위는 어머니께 “며느리가 마음속으로 진심을 다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하네요. 오직 대법 사부님만이 어머니를 구하실 수 있대요”라고 전했습니다. 말은 못 하셨지만 둘째 사위의 어머니는 아들 말을 잘 듣는 편이라 곧바로 마음속으로 9자 진언을 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병원에선 주사에 약을 쓰며 치료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고, 입원 9일 만에 코로나 검사까지 양성으로 나와 퇴원 조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시자마자 말씀도 하실 수 있게 되고, 입도 바르게 돌아왔으며, 반신불수였던 몸도 정상으로 회복되셨습니다. 코로나 증상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둘째 외손자 역시 정말 착합니다. 할머니 집에 갈 때면 “할머니, 어서 저희 집이나 외할머니 집으로 오세요. 우리집에 오시면 연공도 배우시고 법공부도 하실 수 있어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밥 먹을 땐 외손자는 늘 시계를 보는데, 발정념 시간이 되면 엄마 젓가락을 뺏은 뒤 손가락으로 시계를 가리킵니다. 외할아버지가 가족들과 한창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면 “할아버지, 책임을 잊지 마세요!”라고 일깨워주곤 한답니다.

어느 해 정월대보름에 큰 외손자가 차에 타고 있었는데, 큰사위가 아이 손이 문에 끼인 걸 모르고 차 문을 닫아버려 손톱이 빠졌습니다. 아이가 엉엉 울며 소리쳤습니다. “큰일 났어요, 제 손톱이 빠졌어요!” 저는 즉시 아이를 안고 사부님 법상 앞으로 가서 “얼른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빌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쳐 보렴”이라고 말했습니다. 큰 외손자는 “사부님! 절 빨리 구해주세요. 손톱이 빠졌어요!”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향의 재를 한 줌 떠서 상처에 뿌렸더니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 순간 마침 우리집에 있던 남동생이 “빨리 병원에 가서 소독약을 바르자”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괜찮아졌어. 사부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시니 더는 울지도 않잖아. 약 바를 필요 없어”라고 했지만, 동생은 꼭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병원에 가는 내내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바오, 아파?”라고 물으니 “안 아파요”라고 답했습니다. 동생은 “거참 용감한 아이로구나. 손톱이 다 빠졌는데 안 아프다니”라고 했고, 병원에 가서는 소독약을 발라주고 손톱과 붕대로 손가락을 감싸주었습니다. 이후로 아이는 손가락 때문에 울거나 아프다고 하지 않고 동생과 여전히 무탈하게 잘 놀았습니다.

남동생이 다시 우리집에 올 때마다 “손 안 아파?”라고 물으면 큰 외손자는 “안 아파요”라고 했습니다. 누가 물어도 안 아프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큰 외손자가 동생과 장난을 치다가 동생이 아픈 손가락을 잡아당겨 붕대와 빠진 손톱까지 모두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달 만에 새 손톱이 빼곡히 다시 자라났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큰사위도 우리집에만 오면 우리가 법공부하면 함께 공부하고, 연공하면 같이 따라 했습니다. 사위는 지금 사회의 이런저런 현상이나 정부에서 선전하는 것들 역시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수리부에서 일하다 손이 골절되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다쳤을 때 그의 상사는 깜짝 놀라 그를 병원으로 급히 후송했습니다. 입원해서 같은 병실 환자들이 “여기 입원한 사람들은 모두 외상 환자들이라 너무 아파서 오늘 밤엔 잠도 못 잘 거예요”라고 했는데, 사위는 “저는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더니 밤에 푹 잤습니다. 같은 병실 환자들은 믿을 수 없었지만 그가 너무나 달게 자는 모습에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큰사위 문병을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도 사부님께서 자네를 보살펴주셔서 아프지도 않게 해주셨으니, 우리는 진상을 널리 알려야 하네.” 사위도 좋다며 퇴원 후엔 고모와 이모, 외숙모에게 가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리고, 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에도 아프지 않은 건 모두 대법 사부님의 보호 덕분이라고 전했습니다.

사람을 많이 구하다

저는 사부님께 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사부님, 저와 저희 가족을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감당해주셨는데 감사의 말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밖에 나가 대법 진상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함으로써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우리는 옥수수 탈곡기를 하나 샀습니다. 겨울에 다른 집의 옥수수를 털어주러 다니는데, 어디를 가든 저도 따라가서 그 집에 진상을 알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옥수수를 두 차 분량이나 털고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 기사가 길에서 우리를 만났습니다. 처음 보는 기사였는데 다음 날 자기 집에 와서 옥수수 털어달라고 했습니다. 낯선 사람인 걸 보고 저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그가 내일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차에서 내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려주고 삼퇴(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그 기사는 기쁘게 삼퇴했습니다.

시골에는 가로등이 없어서 날이 어두워지면 깜깜해져 발걸음을 떼기도 힘듭니다. 근데 그날 밤엔 달랐습니다. 진상을 알린 후 저 혼자 집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파룬이 제 앞에 나타나더니 무지개색으로 변하며 제 앞을 밝혀 주었습니다. 순간 사부님께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라고 격려해주시는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골에선 농번기가 돼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주 아르바이트할 기회가 있어서 그때마다 나가 새로운 사람들 만나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먼저 묵묵히 일해서 성실함을 보이고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했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일감이 없을 때도 사부님 법상 앞에서 이렇게 빌었습니다. “사부님, 절 위해 그토록 많은 걸 감당해주셨죠. 제 생명을 연장해주신 건 속인의 삶 살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 구하라는 거잖아요. 이맘때 밖에 나가야 더 많은 사람을 만나 구할 수 있는데 집에만 있을 순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누가 전화해서 일 좀 해달라고 합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잘 배치해주신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한 사장의 일을 해주기로 했는데, 하루 130위안을 준다고 해서 몇 명이 갔습니다. 근데 다른 곳에서 150위안을 준다는 소리에 다들 그리로 가버렸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사장은 화를 내며 “돈 많이 준다니까 다들 가버리네. 당신도 가지 그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갑니다. 사장님이 정해주신 값으로 왔으니까요. 전 대법제자라 말에 신용이 있어야 해요. 가지 않을뿐더러 일도 끝까지 잘할 겁니다”라고 했죠. 사장이 “그 사람들은 왜 그 모양이죠?”라고 하기에 “사장님, 그들을 보지 마시고 절 보세요. 전 사장님께 대법제자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돈을 벌려고 온 게 아니라 사람을 구하러 왔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뒤 사장은 제가 자기 일하듯 성심껏 일하고, 일찍 오고 늦게 가며,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물건을 가지러 뛰어다니는 걸 보았습니다. 사장은 원래 일꾼들이 일은 대충하면서 늘 돈은 더 달라고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장은 만족해하며 “일 끝나면 돈을 더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전 “말씀하신 대로만 주세요. 사장님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믿기만 하세요. 그럼 큰 재난이 와도 목숨을 보전하실 수 있어요. 그게 돈보다 더 중요하죠”라고 했습니다. 이 사장은 이전에 다른 수련생들이 진상 알려도 믿지 않았지만, 제게 감동해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확고히 믿게 됐습니다. 사장 가족 네 명도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디서든 진상 알리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게 제 일상입니다. 한번은 도시에 가는 길에 한 가게를 지나는데 제 친척의 아들이 그곳 딸과 사귄다는 걸 들었습니다. 얼굴도 모르지만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그 딸이 “누구세요?”라고 물으니 “아무개랑 사귀는 분 만나러 왔어요”라고 했더니 맞다고 하더군요. “난 아무개 고모인데, 잠깐 말씀 좀 나눠도 될까요?”라고 하니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도 시켰습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옷 수선집에 가는 길에 고물 줍는 할머니 만났습니다. “어머님, 정정하시네요”라고 하니까 할머니가 “내가 몇 살로 보여?”라고 물으셨어요. “80세요?”라고 하니 “80도 넘었어, 85살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아시죠? 안 그럼 체력이 이렇게 좋을 수 없어요”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그거 좋아, 정말 좋아”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진상을 들으셨던 겁니다. “자주 염하세요. 건강에 좋아요”라고 했더니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수선집 사장도 삼퇴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너그러움과 자비심을 주셔서 제 마음속에는 악인도 나쁜 사람도 없고 오직 구해야 할 사람만 있습니다.

남편이 박해당해 집에 없던 그 시기에 마을 간부와 파출소, 610(파룬궁 탄압기구) 직원들이 수시로 우리집에 와서 괴롭혔습니다. 저 역시 납치돼 불법 구금 9일 만에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출소장이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음에 만나면 꼭 진상을 잘 알려줘서 그가 중공 악당 때문에 인생을 망치지 않게 돕고 싶었습니다.

얼마 후 파출소장이 우리집에 저를 보러 왔습니다. 집안 온돌방에 앉히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장님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제가 소장님께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 같아요. 오늘 우리 마음 터놓고 이야기 좀 해요.” 이어서 말했습니다. “파룬따파는 우주 대법이고 진선인은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잣대예요. 대법제자들은 진실한 말을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요. 일이 있으면 모두 남을 위해 배려하고, 이 얼마나 좋아요? 앞으로 절대 장쩌민 일당을 따라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마세요.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으니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해요.”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 소장은 다른 부서로 전근을 갔다고 합니다.

박해가 시작된 초기, 촌장은 악당 정부와 경찰의 명령에 적극 협조하면서 마을 대법제자들에게 좋지 않은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대법 수련을 하려던 마을 사람들 수십 명도 감히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이 촌장은 일하다 시내로 이사를 갔는데, 어느 날 가스통 폭발 사고로 부부가 크게 다쳐 주민들의 성금으로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제가 그들 부부를 만나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까지 도와줬습니다.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평안하실 거예요”라고 하니 그들은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들이 진상을 깨닫고 구원받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성격이 거칠고 늘 하늘만 원망하고 남 탓만 하던 저를, 남을 위해 생각하는 대법제자가 되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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