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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대법 수련으로 승화하고 해탈하다

글/ 내몽골 대법제자 아롄(阿蓮)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7년에 대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한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원래 성격이 나약하고 자존감이 낮아 말수도 적고 의존심이 강했는데, 불행한 결혼생활까지 겹치면서 더욱 자존감이 낮아져 다른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대법을 수련한 후 성격이 밝아졌고,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게 되었으며, 인생관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대법을 얻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길을 걸을 때면 뛰고 싶고, 하늘을 향해 “나한테는 사부님이 계신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저는 충실하고 행복해졌습니다.

다음은 제가 대법을 수련하면서 가족에게 연이어 일어난 불행한 일들을 어떻게 대했고, 어떻게 그것들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한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남동생의 죽음

일찍 법을 얻은 어머니는 저에게 수련을 권했지만, 저는 고통스러운 가부좌가 두려워 계속 문밖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족에게 큰일이 발생했습니다. 가족의 대들보였던 남동생이 간암과 골수암 진단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의사는 그가 2개월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남동생에게 대법 수련을 권했지만 남동생은 거절했습니다. 이후에 큰이모(수련생)가 우리집에 오셔서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을 가져다주며 남동생에게 “정말로 수련만 하면 사부님께서 네 몸을 정화해주실 거야. 이 책을 보면 알게 될 거야”라며 대법 수련을 권했습니다.

남동생은 큰이모의 말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늘 남동생에게 “열심히 공부해. 꼭 열심히 공부해야 해”라고 격려했습니다. 저는 남동생 몸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 시기에 다른 수련생들도 자주 우리집에 와서 남동생과 어머니를 격려해주었는데, 어떤 수련생은 저에게 “당신도 수련하세요. 이 법은 매우 좋습니다. 가족이 함께 배우면 더욱 좋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올 때마다 저를 격려했고, 마침내 어느 날 저는 《전법륜》을 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비디오’를 볼 때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부끄러워 어머니 뒤에 숨어서 보았습니다. 그때는 법공부와 연공만 알았지 심성 수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어떤 수련생이 법을 배우면 수련이 빨라진다고 해서 저도 배워보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글자를 더하거나 빠뜨리곤 했고, 겨우 한 단락을 배워도 다음 날이 되면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견지했고, 사부님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전법륜》을 6번이나 배웠습니다. 법리도 많이 깨달았고 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친척들은 제게 “동년배보다 최소 10살은 젊어 보여”고 말했고, 어머니도 “네 얼굴빛이 정말 좋아졌구나. 네 딸보다 더 예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동생은 연공을 했지만 병을 고치려는 욕망이 컸습니다. 입으로는 병을 고치려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몸의 고통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대법은 수련이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로지 수련에만 전념해야만 병도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동생은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병세는 계속 발전했고 암세포는 온몸으로 전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수명을 연장해주시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의사는 “길어야 2개월”이라고 했지만, 그는 1년 넘게 살다가 유감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가족은 대들보를 잃었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80세였기에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제 어깨에 떨어졌습니다. 남동생이 살아생전 집안일을 도맡아 했기에 저는 동생을 의지하며 무슨 일이든 상의했고 그를 오빠처럼 여겼습니다. 동생은 너그럽고 정말 오빠처럼 언제나 저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동생이 떠나자 의지할 곳이 없어져 마음이 허전하고 무거웠습니다.

동생이 떠난 후에도 그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동생은 순박하고 의로웠으며 누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도왔기에 인망이 좋았습니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수준 높은 시를 써서 위챗에 올렸는데 평가가 매우 좋았습니다. 어떤 이는 “도가적 느낌이 강하다. 아마 전생에 도를 닦았던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동생이 떠난 후 제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情)임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내려놓아야만 경지를 제고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외우면서 남동생에 대한 정을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오랫동안 어머니는 늘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네 남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왜 날 두고 먼저 갔을까…” 어머니의 눈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감정을 억누르며 ‘나는 이제 예전과 다른 사람이야.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남동생은 중도에 떠났고 가족과 선연(善緣)을 맺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가 가족과 맺은 연분이 그만큼밖에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후회할 게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더 이상 동생을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빨리 제고해요. 온 하늘의 신불(神佛)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세요”라고 위로했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때로는 감정의 파도가 이성의 제방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청명절에 무덤에 갔을 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흙무덤을 보며 ‘이곳은 그가 머물 곳이 아니야. 그는 분명 아름다운 곳으로 갔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정을 다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정을 내려놓으며 슬픔에서 벗어나 점차 승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저를 이끌어주셨음을 깊이 느꼈고, 대법이 저의 인생관을 새롭게 만들어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때는 남동생의 친구(역시 수련생)가 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꿈에 남동생이 묘비 위에 떠 있는데 몸에 흰 천을 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수련생의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정에 사로잡혀 묘비만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남동생은 아름다운 곳으로 갔고 대법 수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누구나 자신이 감당한 만큼 얻게 됨을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생사윤회는 빚을 갚기 위한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세상과의 연이 끊어집니다. 집착은 단지 자신을 괴롭힐 뿐입니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면 운명을 개변할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할 수 있습니다.

2. 남편이 떠나다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이 저를 떠났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결혼은 했지만 사실 원래부터 잘 맞는 부부는 아니었고 결국 이혼했습니다. 그는 이혼한 후 집도 차도 없는 빈털터리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처가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저와는 생각과 사상이 달랐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었습니다. 번 돈은 자기 혼자 쓰고 놀고 도박하며 탕진했으며 집에는 거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돈 얘기를 꺼내면 늘 “사장이 안 줬어”라는 등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가끔 몇백 위안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생활비와 딸의 학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남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살던 집을 팔고 정리하면서 저에게도 돈이 조금 생겼습니다. 집은 원래 아버지 명의였는데, 그 집을 팔고 그 절반의 금액으로 새집을 샀고 100만 위안(약 1억 9천만 원)이 남았습니다. 남편은 새집의 명의를 자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남동생이 막 세상을 떠났고 부모님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텐데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요. 어차피 조만간 우리 것이 될 텐데 뭘요”라며 그를 달랬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듣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려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으니 노후와 외손녀의 결혼 비용으로 써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20만 위안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완전히 헤어진 건 아니고 그가 돈이 필요해서 그러는 거겠지’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법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남편의 소인배 같은 태도가 몹시 싫었습니다. 게다가 남동생이 막 세상을 떠난 터라 화가 나서 “당신은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신은 그간 가족에게 돈을 얼마나 줬나요? 재산은 전부 내 가족 것인데 왜 당신이 나눠 가져야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고집을 부렸고, 분을 삭이지 못해 구토까지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파 그에게 10만 위안을 주고 정식으로 이혼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가 완전히 떠난 후에도 저는 한동안 그를 원망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남동생이 떠난 후 그가 가정을 이끌어주길 바랐는데, 그는 자신을 외부인이라 여기며 도리어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10만 위안을 준 셈이니 제가 그동안 그를 부양한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남자가 없는 가정을 이제 제가 책임지고 이끌어야 했습니다. 저는 마을 회의, 물품 분배, 선거 관리, 권익 보호 등 모든 일에 앞장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마음이었다면 아마 그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그가 원망해도 저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20만 위안을 달라고 해도 주었을 것이며, 그가 이기적이어도 저는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덕을 잃고 나빴어도 포용하고 잘 대해주었을 것입니다. 대법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제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도 매우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세상 어디를 가도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아버지의 죽음

남동생이 떠난 후 아버지는 매일 슬퍼하며 울먹이셨습니다. 2020년 말, 갑자기 피가 섞인 설사를 하시더니 점점 심해졌습니다. 병원에 모시려 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히 거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자인 제가 아버지의 대소변을 수발드리는 게 껄끄러우셨던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 아버지도 대법을 배우겠다고 하시자 저와 어머니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는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몸이 좋아지자 약을 끊으셨습니다. 비염, 고혈압, 협심증도 말끔히 나았습니다. 수련 전 병원에서 요도에 결석이 있다며 레이저로는 안 되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술이 두려워 그냥 두셨던 결석이 수련 후 저절로 배출되자 “대법은 정말 신기하구나!”라고 탄복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대법을 수련한 지 2년쯤 되셨는데, 늘 법공부할 때 글자를 더하거나 빠뜨리셨고 속도도 느리셨습니다. 잘못 읽은 부분을 지적해드리면 매우 싫어하시다가 나중에는 “너도 그렇게 읽지 않았어”라고 우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바로잡아 드리면 짜증을 내며 불평하셨습니다. 어느 날은 연공 동작이 틀려서 고쳐드렸더니 화를 내시며 “네가 연공을 잘하는 줄 아느냐? 까마귀가 돼지보고 검다고 하는 격이야. 남은 검다고 하면서 자신은 안 검다고 여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동작은 부차적이고 심성 수련이 우선이야!”라고 호통치셨습니다. 그때 저는 사부님께서 아버지를 통해 저를 깨워주시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또 한번은 법공부 중에 글자를 빠뜨리신 걸 지적해드렸더니 화를 내시며 “정말 뺨을 때리고 싶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하루빨리 좋아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제 마음이 부족하고 말도 부족해서 오히려 상처만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피로가 누적되고 숨 가쁨, 식욕부진 등으로 건강이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대법 수련은 수명을 연장해줄 수 있지만, 수련에 정진해야만 수명연장이 가능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설을 쇠고 나서 닷새 만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 남동생의 죽음은 저에게 수련의 엄숙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4. 어머니의 병업관

아버지의 사망은 어머니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가족을 두 번이나 잃으니 어머니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 곁에는 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들이 나더러 어서 오라는 걸까?”라고 중얼거리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저는 깜짝 놀라 “엄마, 그건 큰 집착이에요. 엄마는 정념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책임져주실 테니 어떤 마(魔)도 엄마를 데려갈 수 없어요. 정념을 내보내 제거하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몸은 날로 쇠약해지셨습니다. 식욕이 없어지고 기침이 잦아졌으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셨습니다. 저는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이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어머니께 “동생과 아버지에 대한 정을 어서 버리지 않으시면 위험해질 수 있어요”라고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정념을 많이 내보내고 수련을 견지하실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왔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려드리고 병업 가상을 이겨낸 다른 수련생들의 교류 글도 읽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차츰 정념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해 나가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많이 불안했고 나쁜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마저 가시면 이 가정은 어찌 되는 걸까? 나는 어떡하지?’ 갈수록 두려웠지만 그런 생각들을 강력히 배척했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바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어머니는 다리가 부어오르고 고통스러워하며 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느 날 큰이모가 우리집에 와서 어머니의 상태를 보더니 “이런 상황인데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속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러면 대법에도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어. 극단으로 가서도 안 돼”라고 하셨습니다. 고민 끝에 결국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입원 후 의사는 상황이 위중하니 빨리 수혈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수혈할지 말지 고민하다 삼촌들께 전화를 걸었지만, 그들은 책임 소재를 두려워한 듯 저에게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인에게 의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직접 동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의사는 어머니 혈액에 적혈구를 파괴하는 인자가 있어서 수혈한 피가 파괴될 수 있으니 먼저 피 두 봉지를 넣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결과 두 봉지 모두 파괴되었고, 검사 결과 어머니 몸에 이미 암세포가 많이 퍼져 있어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어머니를 박해하는 사악과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하고, 어머니는 사부님과 대법이 관할하시므로 의사의 말은 중요치 않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 어머니를 구원해주실 것을 간청하며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고 제거하는 강한 정념을 발했습니다. 매일 어머니를 돌보는 한편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하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3일을 보내시며 안정을 찾아가셨고, 나흘째 되는 날 일반 병실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어머니는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제게 오른편을 보라는 눈짓을 하셨습니다. 오른편에는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계속 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눈짓하셨습니다. 아마 다른 공간의 나쁜 것을 보신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종이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적어 어머니께 보여드리며 사부님께 구원을 청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이 차츰 평온해지셨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사나운 얼굴의 검은 옷 입은 남자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어”라고 하셨습니다. 입원 5일째,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빨리 집에 가자. 며칠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못 했으니 보충해야 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며칠 더 지켜봐야 한다며 만류했지만 입원 10일째 되는 날에 어머니는 퇴원하셨습니다.

퇴원 전 암세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정상이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어머니를 구해주신 것입니다.

후기

사실 저는 원래 이 글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두 번이나 ‘수련 체험’을 쓰라고 일깨워주셔서 쓰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을 받은 이상 반드시 글을 써서 명혜망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 체험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쓰는 과정에 여러 번 중단하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끝까지 용기를 북돋워준 어떤 수련생 덕분에 간신히 완성해 투고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깊고 큰 체험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시지 않으셨다면 이런 큰일이 연이어 일어났을 때 나약한 여자인 나는 어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풍파를 겪으며 대법의 진귀함과 사부님의 자비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부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법제자들은 하나의 정토(淨土)입니다. 제가 만난 수련생들은 모두 그렇게 선량하고 순박하며 이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제가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무상으로 주셨는데 친척보다 나은 분이었습니다. 반면 제 삼촌과 그 아들들은 항상 우리 가족의 재산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몇 번이고 3만, 2만 위안씩 빌려가고는 갚지 않았습니다.

오직 대법 수련만이 사람을 승화시켜 고해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합니다. 매일 아침 사부님 법상 앞에 향을 사르며 저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경건과 감사를 느낍니다. 대법제자가 될 수 있음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행복하며 자랑스럽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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