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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으로 만난 수련의 고비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청혜(淸慧)

[명혜망] 저는 1999년 7.20 이전에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한 여성 대법제자로 올해 60세입니다. 수련 과정에서 저는 매번의 심성 제고와 난관 돌파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와 대법 법력의 보호를 떠날 수 없음을, 동시에 우리 수련인들이 법리상 이성적으로 승화해야 하고 관념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최근 수련의 길에서 얻은 일부 심득을 써서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근심으로 가득한 마음

제 딸은 2022년 6월에 결혼했습니다. 딸이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하기까지 4년이 넘는 시간은, 저에게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수련 과정이었고, 관념을 바꾸고 사람에서 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딸이 만난 남자친구는 가정 환경이나 개인 조건 모두 제 마음속 기준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당시 저는 극력 반대했고 어떻게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전제 하에 저는 이 수련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이들 둘의 상황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제 딸은 어릴 때부터 착하고 영리했으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업 성적이 줄곧 우수했고, 순조롭게 외국 명문대학에 합격했으며 이후 매우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3년간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는데 딸의 지도교수는 줄곧 그녀를 매우 중시하고 학업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지도교수의 지도 아래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딸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선생님이 딸을 특별히 아껴주어 결국 유명대학 특기생 1등급 우수 성적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에 최고의 성적이었습니다. 제 딸은 학업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선하고 정직하며 겸손하고 성실한 좋은 아이였습니다. 딸은 자신을 가르쳤던 모든 선생님 마음속의 좋은 학생이자, 학부모 마음속의 품행과 학업을 겸비한 좋은 아이였으며, 아름답고 단아하며 기품 있는 용모를 갖추고 있어 우리 부모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딸의 남자친구는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농촌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현(縣)의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성(省)의 비중점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졸업 후 외국 대학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2년간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외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제가 알고 있던 상황입니다.

저는 그들 두 사람의 외적 조건이 전혀 같은 수준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수련인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온통 사람의 관념뿐이었으며, 항상 사람의 득실로 그들 두 사람의 조건을 비교했습니다. 비록 남자도 박사학위가 있고 박사후 연구원도 했지만 그의 무게감이 제 딸만 못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공부한 전공이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라 큰 전망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의 집이 농촌에 있다는 것이었는데, 농촌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위생 습관,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은 도시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었고, 외모도 제 딸만 못했습니다. 키를 제외하고는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몹시 괴로웠습니다! 저는 그런 조건의 사람이 우리집 사위가 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딸을 계속 설득하며 그들의 연애를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제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계속 자기 뜻대로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찾기

이렇게 저와 딸은 한동안 대치하다가 딸이 포기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저도 차분해지기 시작했고, 이제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진선인(真·善·忍)과 어긋나는 마음이 무엇인지, 제 표현 뒤에 숨겨진 사람마음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우수한 제 딸이 그런 조건의 사람을 사위로 맞는 것은 매우 창피한 일이라고 여겼고, 제 체면과 허영심이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동창생, 동료, 친구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과시할 밑천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또 과시심을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불공평, 불만, 딸을 위해 분개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남자가 여러모로 제 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질투심 아닌가요? 하지만 이 질투심은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고 진선인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 질투심은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마음입니다.

다음으로 이익에 대한 마음도 발견했습니다. 딸이 농촌 출신 남자를 만나면 그의 부모님이 앞으로 퇴직금이 없어 딸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자가 하는 일이 그다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행복한 결혼 생활에 영향 줄까 걱정했는데, 사실 정(情)에서 파생된 사심(私心)이었습니다.

이렇게 찾아보니 명예, 이익, 정 중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고, 그것들에 매우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착심을 제거해야만 진정한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라고 강요했고, 마음속으로 사부님 법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전법륜) 맞습니다. 저도 딸의 삶을 간섭할 수 없고 그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으니 순리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법에서 남녀의 결혼이 모두 인연에 의해 정해지고 신이 잘 배치해주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정말 그런 인연이 있는데 제가 이렇게 반대한다면 신의 배치를 망가뜨리는 게 아닌가요? 제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나쁜 일을 하면 업을 쌓게 되므로 저는 더 이상 이 일에 지나치게 간섭해선 안 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는 가운데, 이 일을 가볍게 보게 됐고 내려놓게 됐습니다.

관념 전환하기

하지만 누군가 이 일에 대해 물어볼 때, 특히 농촌 사람과 결혼하면 어떻게 좋지 않다고 말하면 여전히 제 사람마음이 건드려졌습니다. 물론 반응의 정도는 약해졌지만 가슴이 뭔가에 막힌 듯 답답했습니다. 저는 계속 사람마음을 찾고 계속 사람마음을 내려놓았으며, 이렇게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마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려놓은 것이지, 진정으로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도 소용없다고 느껴 차라리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고, 사실 수동적으로 내려놓은 것이었으며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은 엄숙한 것이므로 조금의 모호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관문을 통과할 수 없기에 기회만 있으면 사람의 관념이 다시 우위를 점했습니다. 때로는 집착하며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로서 나는 딸을 위해 생각해야 하고 딸에 대해 책임져야 해!’ 그래서 사람마음의 작용 하에 저는 또 깨어나지 못했고, 쓸데없는 마음을 다시 들먹였으며, 딸에게 끊임없이 주입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이고 그녀의 아름다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그녀에게 쏟아부으며, 여전히 그녀가 즉시 이 연애를 끝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딸은 유독 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 매우 ‘도리에 맞는다’고 여긴 말을 가볍게 부정해 버렸으며, 오히려 저에게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이 남자는 책임감이 강하고 믿을 만하며 인품이 좋고 매우 훌륭해요. 그와 결혼하면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을 느낄 것 같아요.”

저도 딸이 한 말이 그녀의 진실된 느낌이라는 것을 믿었고, 이 도덕이 타락한 혼란한 세상에서 딸에게 책임지고 가정에 책임지며 딸이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사람을 동반자로 찾는 것도 매우 운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걸까요? 왜 이렇게 미혹되어 있는 걸까요? 표면적으로는 저도 법을 배우고 있고, 수련도 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있는데 왜 넘어가지 못하는 걸까요?

어느 날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보는 그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볼 수 있는 명예와 이익, 정을 중시하고 사람이 보지 못하는 덕(德)을 가볍게 여긴 것이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는 관념에 가로막힌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련인들은 법에서 모두 알고 있습니다. 덕이 있어야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의 근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이렇게 미혹되어 있는데, 이는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게 아닌가요?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이는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큰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는 관념은 바로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무신론입니다. 저는 갑자기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관념을 전환해야 하고, 사람이 집착하는 득실을 가볍게 보며, ‘어머니’의 역할을 가볍게 보고 대법제자의 사명을 중시해야 합니다. 저는 정법수련의 기점에 서서,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 서서 이 일을 대해야 합니다. 개인수련의 기점에서 빙빙 돌면 항상 반복될 뿐입니다. 저는 반드시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모녀간의 정을 내려놓고, 사(私)를 내려놓고, 대법제자의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제일 위에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확 트였고 마음이 밝아졌으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 일 속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고 그들 가족을 구하기 위한 기초를 잘 다져야 했습니다.

관계 바로잡기

전통 풍속에 따르면 남자쪽 부모가 먼저 여자 집을 방문해야 합니다. 2022년 정월, 남자쪽 부모님이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매 순간 자신이 수련인임을 상기시켰고, 저와 그들과의 관계는 구원하는 자와 구원받는 자의 관계임을 분명히 했으며, 그들을 구원하는 것을 제일 앞에 두었습니다. 그들과 지낼 때 대법제자의 아름답고 선량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그들을 맞이했으며, 특히 사람을 얕보는 마음이 없도록 주의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민망해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사님 집 조건이 너무 좋아요. 우리 두 집안의 격차가 너무 크네요. 우리집의 조건은 좋지 않아요.” 저는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제 딸이 아드님의 인품을 중시하는데 이게 더 중요해요.” 그녀는 기쁘게 웃었습니다. 제가 말할 때는 그들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고, 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했으며 가볍고 평등한 분위기 속에서 소통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매일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었고 매우 화목하고 조화롭게 지냈습니다. 그들도 우리의 진실함과 열정, 선량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떠나기 전날, 저는 그들에게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려주었고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의 중요성과 의미를 알려주었으며, 지금 천재지변과 사건사고가 빈번하고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만연한 원인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말한 것에 매우 공감했고 대법 진상도 알게 됐으며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사님은 정말 아름다움과 선량함을 겸비하셨어요.” 그녀는 제가 준 진상자료를 받아들였고 저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당부했습니다. “많은 친척과 가족이 여사님이 구원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꼭 진상을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알려주세요. 그들 모두 대법 진상을 알고 대법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세요. 그들이 재난에서 멀어지고 인류의 큰 재난을 무사히 넘겨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하세요.” 그녀는 입이 닳도록 “좋아요,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웃자 저도 웃었습니다!

4년 넘게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사람의 관념과 사람이 추구하고 집착하는 것이 바로 사람에게 고통과 번뇌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간곡한 가르침은 우리와 세인들을 애타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저는 관념을 전환하고 허명을 위해 다투지 않으며 자신의 수련에 책임지고 중생 제도에 책임져야만 사람의 속박에서 벗어나 법 중에서 진정으로 제고할 수 있고 사람에서 신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또 딸의 표현이 모두 제 수련에 조건을 제공하고 제 수련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딸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신의 광명을 향해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짊어진 대법제자로서 생활 중에서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건, ‘3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건 항상 사람의 관념을 돌파하고 ‘진정한 나’가 자신의 사상을 주재하게 해야 하며, 진정으로 대법 중에서 수련해야만 자신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착실한 수련 과정에서 저는 정말로 체득했습니다. 신념(神念)이 인념(人念)을 대신하고 법에서 승화되며 매우 강한 정념으로 일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요.

원고를 쓰는 이 며칠 동안 저는 다시 진지하게 안으로 깊이 살펴보았고 제게 여전히 많은 사람의 관념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제가 정진하는 상태를 잘 유지하지 못하게 했고, 대법과 진정하게 동화하는 것을 가로막아, 갈등에 부딪히거나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첫 번째 생각이 자신이 수련생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지 못했고, 법에서 수련하지 못해 제고해야 할 많은 기회를 잃었으며, 구원 받아야 할 많은 세인도 잃었습니다. 정말 사부님께 죄송합니다. 이 정법수련 최후의 최후의 순간,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주신 이 시간 속에서 저는 서둘러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대법이 부여한 정념으로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가 신의 광명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1/4589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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