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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악신군과 영봉의 진념이 갇힌 ‘그 공간’과 정진에 대해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오늘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再次成爲神]’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사실 저는 해악신군(海岳神君, 인간계의 조해봉)과 영봉(靈鳳, 인간계의 백소봉)의 진념이 갇힌 그 공간을 이미 발견한 바 있습니다. 1년 전 제가 잠들었을 때 저의 주원신(主元神)이 그곳을 한 번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가운데 있는 좁은 길을 걸었는데, 양쪽은 모두 영화에 나오는 해악신군과 영봉의 진념이 갇힌 그 공간과 같은 장면이었고, 많은 수련생들이 눈을 감고 가부좌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차이점은 제가 간 그 공간은 사방이 비교적 어두웠고 많은 수련생들 앞에는 추악한 악마가 이빨을 드러내며 춤을 추며 수련생들의 진념(眞念)을 현혹하는 말을 하고 있었고, 현혹된 수련생들의 얼굴에는 어리석은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당시 제가 아는 많은 수련생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수련생은 속인의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 앞에는 작은 귀신이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녀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으며 머리를 흔들며 넘어질 듯했습니다. 저는 달려가서 힘껏 그녀를 흔들며 소리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공간에서 무력함을 느꼈고, 비록 그 공간이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슬픔을 느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저는 그것이 대법제자들의 진념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가 아는 수련생들에게 말했고, 그중 몇 명은 들은 후 스스로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더는 명리정에 빠져들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비록 그들이 정진하는 과정은 비교적 힘들었지만, 이 반년 동안 그들은 법 학습을 강화했고 이전과 비교하면 환골탈태한 것 같이 신속히 진보했습니다. 물론 들은 후에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들도 있지만, 저는 그들에게 다시 정진하라고 권고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저는 해악신군이 결국 마도(魔道)에 들어가 소멸되는 것을 보고 매우 가슴 아파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분명 더 슬퍼하실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는 어떤 중생도 잃고 싶어 하지 않으신데 하물며 수련인은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그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사부님께서 제가 그들을 깨우치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오직 속인의 이 공간에서만 그들을 깨울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수련생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말로 정진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이미 많이 남지 않았으니 더는 허비할 수 없습니다. 수련 중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많은 작은 일들이 사실 다른 공간에서는 큰일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어릴 때부터 과자 먹기를 좋아했는데 작년에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저를 일깨우셔서 식탐을 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많이 버렸다고 느꼈고 예전에는 매일 먹던 과자를 지금은 한 달에 한두 번 먹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집에서 과자 세 봉지를 사서 정말 참을 수 없으면 한 번 먹어볼까 생각했는데, 그날 밤 다른 공간에서 우리집에 매미가 세 마리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깨어난 후 매미와 ‘식탐’이 같은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고[역주: 중국어로 매미(蟬)과 식탐(饞)은 발음이 ‘찬(chán)’으로 같음], 사부님께서는 제가 입과 혀의 욕망을 철저히 버리고 조금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자주 어떤 수련생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당신은 집착심을 너무 극단적으로 버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요? 어떤 집착심은 그렇게 철저히 버릴 필요가 없어요. 어쨌든 우리는 속인 속에서 살고 있으니 여전히 속인 생활에 부합하기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해요.”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은, 제가 크고 작은 집착심에 대해 그렇게 엄숙하게 대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를 일깨우시고 수련 중의 어떤 작은 일도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며, 어떤 방임하는 생각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수련생들이 한 이 말이 자신이 집착심을 버리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속인 속에서 살기 위해 집착심을 능동적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되는데, 그럼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닙니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이라, 무엇을 누락이 없다(無漏)고 하는가? 하찮은 일은 없다.”(각지 설법13-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하지만 많은 수련생이 평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집착심’에 대해서는 중시하지 않고 버리고 싶으면 버릴 수 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결국 이런 집착심들은 따뜻한 물에 개구리를 삶는 것처럼 수련생들을 빠져들게 하고 정진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수련생은 고물을 줍거나 할인된 채소를 사는 등 작은 이익에 빠져 있고, 어떤 이는 온라인 쇼핑에 빠져 많은 시간과 정력을 휴대폰으로 상품을 고르는 데 쓰며, 어떤 이는 건강식품을 사는 데 빠져 건강식품은 약이 아니니 사부님의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련생들은 이런 가지각색의 이른바 ‘작은 일’들을 중시하지 않고 거기에 깊이 빠져 하루 종일 혼미한 상태로 세 가지 일을 마치 임무 완수하듯 하면서, 집착심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수련을 잘하고 있고 꽤 정진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천리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요? 수련은 더욱 그러하니 엄숙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여전히 많은 수련생이 계속 웨이신(위챗)을 사용하고 있는데 핑계는 제각각입니다. 가족의 책망이 두려운 사람,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 고객과 연락이 안 돼 돈을 벌 수 없을까 두려운 사람 등등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박사과정생이 쥐를 죽이지 않기 위해 학업을 포기한 이야기를 하신 걸 기억합니다. 만약 우리가 매사에 대법을 제일 앞에 놓고 자신의 절실한 이익을 제일 앞에 놓지 않으며 사부님 말씀대로 한다면, 저는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법에 융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정진요지3-청성)

중국의 현재 각지에서 천재지변이 그렇게 빈번한 것을 보면 시간이 이미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련 중의 매 한 가지 일은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엄숙하게 대해야 하며, 최후의 순간일수록 더욱 늘 경계해야 하고 끝까지 해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늦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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