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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쉼 없이 정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진진(眞珍)

[명혜망] 저는 올해 84세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한 번도 제 사명을 잊은 적 없이 늘 대법의 표준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며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1. 중생을 마음에 두고 정진하며 사람을 구하다

그동안 저는 꾸준히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를 권유해 왔으며, 때로는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휴대폰을 두 개 갖고 있어서 밖에 나가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대면으로 삼퇴를 권유할 때도 늘 음성 통화로 동시에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상 통화를 길게 들은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가 직접 전화를 걸어 삼퇴를 권유하곤 합니다. 직접 삼퇴를 권유할 때는 밖에서 전화를 걸기도 하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면 집에서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좋을 때는 한 번에 10여 명을 삼퇴시키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전화를 걸면 상대방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직접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 딸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중, 설날 전날 온 가족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저 혼자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화로 진상을 알렸더니 그날 밤 9명이 삼퇴했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쓰촨성 출신의 아주머니였는데, 삼퇴를 한 뒤 정말 고마워하며 집 주소까지 자세히 알려주면서 꼭 한번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저도 무척 감동했고 그분과 깊은 인연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휴대폰으로 인연 있는 많은 사람을 삼퇴시켰는데 안타깝게도 나중에는 전화카드를 살 수 없게 되어 그냥 직접 대면해 삼퇴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대면으로 진상을 알릴 때는 늘 A수련생과 함께 해왔습니다. A는 올해 86세인데 대법제자들의 단체 아침 연공이 시작된 이래로 저희 둘은 거의 매일 빠짐없이 연공을 해오고 있습니다.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치고 아침을 먹은 뒤 저희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진상을 알리러 나갑니다. 일요일에 다른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의 매일 나가고 있습니다. 보통 진상 소책자나 진상 내용이 담긴 호신부(護身符)를 갖고 나가 삼퇴를 권유하고 진상 자료를 주어 읽어보게 하면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 발생 1년 전 A가 좀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매주 두 번씩 함께 나가기로 약속했고, 그 외의 날에는 제가 혼자 나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전염병 봉쇄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삼복더위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무척 더웠고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저는 A와 함께 큰 시장에 갔습니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70대로 보이는 키 큰 남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키가 180cm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제가 다가가 “안녕하세요, 날이 이렇게 더운데 밖에 나오셨네요. 건강 조심하세요”라고 말하자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저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전염병에서 목숨을 구하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선대에만 가입했다며 흔쾌히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휴대폰을 꺼내 해외에서 공부하는 박사과정 학생들의 졸업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기계 분야의 고급 엔지니어였습니다. 또 딸의 해외 박사과정 졸업사진도 보여주었고, 저희 둘은 모두 그에게 훌륭한 딸이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더니 저희에게 공손하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며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일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와 A도 서둘러 합장하며 답례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도 나눴고, 마지막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일러주며 그의 온 가족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한 뒤 즐겁게 작별했습니다.

저와 A는 호흡이 잘 맞아 언제 어디서든 진상을 알립니다. 사람이 적으면 함께 말하고, 사람이 많으면 따로 진상을 알리며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A는 진상을 알릴 때 아주 지혜롭습니다. 한번은 경비원 복장을 한 사람을 만나 미소 지으며 “경비원이세요?”라고 물었고, 그가 “네”라고 대답하자 “경비원이라면 우선 자신부터 지켜야겠네요!”라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삼퇴에 동의하며 “좋아요, 우선 저 자신부터 지켜야겠어요. 이건 참 좋은 일이네요”라고 말했고 둘 다 즐겁게 웃었습니다. 또 한번은 버스에서 A가 한 사람에게 진상을 다 알려주자 그는 두 손을 모아 감사 인사를 하며 “오늘 살아있는 부처님을 만났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공원에서는 노부부에게 삼퇴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여성분은 일어서서 저희 둘을 향해 공손하게 합장했고, 저와 A도 얼른 답례를 한 뒤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희 둘은 모두 기쁨에 웃음이 났습니다.

한번은 저와 A가 한 대학교 근처를 지나다 30대쯤으로 보이는 청년을 만났는데 옷차림이 단정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좋은 일, 중요한 일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하자 그가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죄악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로 약탈과 파괴, 거짓말 날조 외에도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체계적으로 자행해 왔습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사람을 괴롭혔는데, 문화대혁명 때는 사찰과 불상을 부수고 전통문화를 파괴했으며, 학생들을 이용한 뒤에는 모두 농촌으로 추방했죠.” 저는 또 6·4 학살(천안문사태)과 파룬궁 박해, 관리들의 부패, 그리고 현재의 전염병 등에 대해서도 약 30분간 말한 뒤 마지막으로 그에게 삼퇴를 권유하며 중국공산당과 운명을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원이라고 하면서 삼퇴에 동의하고 저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그와 헤어진 뒤 A가 “그 사람이 계속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걸 보니 혹시 특무(스파이)가 아닐까 좀 걱정돼서 계속 정념을 발했어요”라고 하자 저희 둘은 웃었습니다.

그동안 저희 둘은 진상을 알리는 기제(機制)를 형성해서 사람을 보면 누구에게나 진상을 알리려 합니다. 매번 나갈 때마다 적어도 몇 명은 삼퇴시키는데, 많을 때는 30~40명 정도 됩니다. 사람이 많든 적든 저희는 최선을 다합니다. 때로는 진상을 알리러 나가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중생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종종 슬픔을 느낍니다. 그들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인데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저희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사람을 해치는 홍보판 철거하기

최근 몇 년간 중공 악당은 홍보판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데, 저희는 그런 걸 볼 때마다 반드시 철거하려 했습니다.

한번은 한 주민센터 게시판에서 대법을 모독하는 내용이 붙어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게시판은 사무실 옆 좁은 길가에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기숙사 건물이 늘어서 있어 사람들이 항상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두 수련생과 저녁 7시경에 움직이기로 약속했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는 시간이라 사람들도 많고 주의를 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셋이서 약속한 시간에 게시판 근처에 갔는데, 길에는 삼삼오오 걷는 사람들이 있었고 건너편에는 포장마차에서 양꼬치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두 수련생에게 곁에 서서 정념을 발해달라고 부탁하고 저 또한 ‘사부님,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하며 정념을 발했습니다. 천천히 게시판으로 다가가 유리문을 열고 큰 종이 위쪽을 잡은 뒤 위에서 아래로 힘껏 잡아당기자 ‘쫙’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종이가 온전히 떨어져 나왔습니다. 소리가 좀 컸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재빨리 몇 번 접었고, 다른 두 수련생이 다가와 큰 봉투에 넣은 뒤 우리는 안전하게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태울 장소를 찾아 불태웠습니다.

또 한번은 한 마을 담벼락에 사람들에게 해로운 내용이 담긴 홍보판이 붙어있는 것을 봤는데, 원래는 A와 저녁에 함께 치우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밤에 둘이 움직이면 눈에 띌까 봐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밤 12시에 정념을 발한 뒤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섰습니다. 홍보판 앞에 가서 마찬가지로 위에서 아래로 힘껏 잡아당기자 ‘쫙’ 소리와 함께 통째로 떨어져 나왔습니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소리가 꽤 컸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몇 번 접어보려 했지만,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두껍고 단단해서 제 힘으로는 도저히 접을 수 없었습니다. 길이가 1m가 넘고 폭도 50cm는 넘는데 어떻게 접어도 모양이 그대로여서 난감했습니다. 이렇게 큰 걸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그것을 땅에 놓고 발로 힘껏 밟아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밤이라서 괜찮았지 낮이었다면 곤란했을 겁니다. 결국 겨우 작게 만든 뒤 큰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다음 날 A와 함께 불태울 곳을 찾아서 그것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3. 수련생의 일이 곧 나의 일

저는 다른 수련생의 일을 제 일처럼 여깁니다. 어떤 수련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돕습니다.

수련생 B와 C는 ‘7.20’ 박해 이후 10년 넘게 수련을 하지 않은 노년 수련생들입니다. 저는 B를 만날 때마다 수련으로 돌아오라고, 천고의 기연을 놓치지 말라고 권유했고, 결국 B는 저희 법공부 모임에 참가해 법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단체 수련 환경에서 B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B가 돌아온 뒤 C도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진상을 알리는 데서 뒤처지지 않도록 저는 그들에게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법을 가르쳐주고, 함께 진상 전단을 배포하고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유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수련의 길을 확고히 걷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비록 정식으로 수련을 하지는 않지만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이라 줄곧 묵묵히 제 수련을 지지해주었습니다. 박해 초기에 저는 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베이징에 간다고 말하자 남편이 돈을 더 가져가라고 했고, 두 번째에는 걱정할까 봐 몰래 갔다 왔습니다. 나중에 경찰에게 잡혀 파출소로 끌려갔을 때 남편은 저를 데리러 왔지만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이런 박해 분위기 속에서도 수련생들이 자주 저희 집에 와서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하며 진상 자료를 전달하고 기술을 배우는 등의 일을 했는데, 남편은 늘 묵묵히 지지해주었고 때로는 맛있는 음식까지 정성스레 대접해주곤 했습니다. 가끔 제가 집에 없을 때 수련생이 오면 진상 자료나 진상 알리기용 지폐 등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몇 번은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 경찰에게 쫓기는 일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걸 알고도 먼저 나서서 사부님 법상과 대법 책을 감춰주고 저와 함께 이곳저곳 피신하느라 고생했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년간 악당은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쳤고 경찰과 지역사회에서 수시로 저희 집에 와 소란을 피웠습니다. 분위기가 좀 긴장해져서 저희 집도 편치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수련생이 어려움에 처해 프린터 두 대를 저희 집에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의 입장을 생각해 남편과 상의한 뒤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양면 인쇄가 가능한 큰 기계 두 대였는데 상자 모양이었습니다. 매일 집안을 돌아다니며 그 두 대의 큰 프린터를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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