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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인간세상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음은 어리석음이 아니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내가 살고 있는 고향은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푸른 산과 맑은 물, 새소리와 꽃향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많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생들이 빛나는 삶을 개창해 왔다. 파룬궁이 이 작은 마을에 널리 전해지면서,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법을 얻게 됐다. 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여러 법공부 팀을 만들어 꾸준히 함께 법공부를 해 왔으며, 심성을 제고하고 정념정행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중공 조직에서 탈퇴했다. 복을 얻은 사람들은 대법제자를 만나면 큰길이든 작은 골목이든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고, 길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전체적으로 서로 협력해 만들어낸 환경으로, 자신이 바르게 하면 주위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고, 속인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나쁜 사람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당신들은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멀리하고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리지 못하니 바보 같다”고 말하겠지만, 우리가 인간세상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음은 어리석음이 아니다. 우주는 거대한 변화 속에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선념(善念)이 없으며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사자(使者)로서, 중생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위험한 상황을 보고도 무시할 수 없으며, 우리는 인간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모두 버리고 중생들을 구해 천국으로 돌아가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요, 당신을 변화시키다니”

나는 올해 66세이고 1997년에 법을 얻었다. 20여 년간 수련하는 길에서 비바람을 겪고 난관을 만났다. 이 홍진(紅塵) 속에서 타락하고 있는 사회, 금전의 유혹 속에서, 중공 붉은 마귀의 박해에 맞서야 했던 상황에서, 오직 대법제자만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먼저 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말해보겠다. 나는 어릴 적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아버지는 비판과 구타를 당하고 가산이 몰수됐으며, 아버지가 죄가 있다느니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사람들)’라느니 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나를 “주자파 개XX”라고 욕하며 멸시했고, 아버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내 몸에 붙이기까지 했다. 그때 나는 아직 어려서 분노는 있었지만 감히 말은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차라리 서서 죽을지언정 절대 무릎 꿇고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고, 삶과 죽음을 가볍게 여기며 복종하지 않으려고 싸웠다. 사람을 병원에 보내는 일, 담배 피우기, 술 마시기, 싸우고 다투는 일이 다반사였고, 직장에서 복지품을 나눌 때는 하역도 안 끝났는데 내가 먼저 뛰어올라 좋은 것부터 고르곤 했으며, 일도 하기 싫으면 안 했다.

파룬따파의 법리가 내 마음에 스며들면서 수련을 통해 내 본성이 크게 변화됐다.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은 하지 않게 됐으며, 환골탈태하여 마음을 씻고 새 사람이 됐다. 직장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고, 복지품도 다른 사람들이 먼저 가져가게 한 후 내가 마지막으로 가졌다. 한번은 예전에 내가 억압했던 동료가 이제는 반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망신주었다. 나는 매우 체면이 구겨졌고 막 화를 내려던 찰나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나는 참아냈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날 세게 짓밟으며 도발하듯 말했다. “못 참겠지?” 나는 단순히 참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며 말했다. “예전에는 모두 제 잘못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화를 풀고 웃으며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파룬궁은 정말 대단하네요, 당신을 변화시켰어요. 제가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겁니다.”

갈등 앞에서 나는 자비로이 대할 수 있게 됐다. 언행이 선해졌고 치욕을 감내할 수 있게 됐으며, 허리 굽혀 사과할 수도 있게 됐다.

2. 얼음 덮인 세상을 걸어가고 만리 길을 달리며 감로수 뿌리네

어느 해 겨울, 눈비가 내린 뒤 도로가 얼어붙어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나는 두 명의 수련생과 함께 50km 밖에서 집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고 있었다. 얼음 덮인 도로 위를 달리던 중 반쯤 왔을 때, 오토바이 엔진이 폭발해 거의 길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대충 수리하고 계속 달려서 우리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나중에 수리점에 가보니 수리공이 엔진을 분해하고는 말했다. “엔진이 폭발했는데 멀리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 그랬으면 위험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저는 50km 밖에서 두 사람을 태우고 돌아왔어요.” 그가 말했다. “신기하네, 신기해.”

법을 실증하는 데 편리하도록 나는 오토바이를 삼륜차로 바꾸었다. 수련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일이 있으면 모두 나에게 도움을 청했고, 나도 주저하지 않고 언제든 달려갔다.

한번은 농촌에 사는 A 수련생이 15일간 불법 구금을 당했는데, 그의 남편은 화가 나서 그를 데리러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두 명의 수련생과 함께 눈보라를 맞으며 수십 km 밖 농촌에 있는 A의 남편을 찾아갔다. A가 중공의 박해를 여러 번 받아 그의 남편은 정신적 압박과 경제적 손실이 컸기에 성질이 괴팍해져 있었다. 우리가 그에게 물품을 주려 해도 거절하면서 가져가지 않으면 버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인내심 있게 타일렀다. “선생님 부인은 좋은 분인데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녀를 데려오지 않으면 파출소 경찰에 의해 다시 끌려가 박해를 당할 텐데, 그것은 그녀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차량과 사람, 비용을 들여 왔으니 선생님만 가시면 우리가 협조하겠습니다.” 우리의 선한 마음이 그를 감동시켰고 그는 가기로 동의했다.

우리는 배고픔을 참으며 큰 눈을 뚫고 돌아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에 있던 많은 대형 차량들이 감히 달리지 못하고 길가에 멈춰 섰다. 이때 한 수련생이 말했다. “네 바퀴 달린 큰 차들도 길가에 서 있는데 당신 삼륜차가 갈 수 있겠어요?” 나는 확고한 일념으로 “갈 수 있어요!”라고 했다. 한 구간의 철길을 지날 때 지세가 낮아 쌓인 눈이 1미터나 됐고, 내가 삼륜차를 몰고 지나갈 때는 바퀴가 땅에서 떠서 마치 배처럼 미끄러지는 느낌이었지만 무사히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호해주셨기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다고 느꼈다. 다음 날 우리는 박해받은 수련생 남편과 함께 수련생을 안전히 집으로 데려왔다. 이후에 그의 남편도 수련생을 보는 견해가 바뀌었다.

정법이 추진됨에 따라, 우리 지역 대다수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일에 나섰고, 갈수록 많이, 갈수록 멀리 진상을 알렸다. 삼륜차로는 형세를 따라잡기 어려워 나는 일반 승용차로 바꿨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파룬따파 자료를 높은 빌딩과 농가에 널리 전했고 중공에 속은 사람들을 깨우쳐 기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게 했다. 혹한이든 혹서든, 배고프고 목마르든, 욕을 먹든 고발을 당하든, 경찰에게 납치될 위험이 있든, 우리는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진상 자료를 평소처럼 배포했다. 밤에만 배포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낮에도 배포했으며, 때로는 직접 건네주기도 하고, 직접 말해주기도 했다. 현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나 성(省)으로도 갔고 큰길과 작은 골목,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녔다.

우리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음이 즐거웠다. 우리는 신의 사자(使者)로서 사명을 완수하고 기쁘게 돌아갈 것이다. 자료를 다 배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명혜망에 있던 한 노래를 불렀다.

가을 겨울 봄 여름을 걸어왔네
새벽 햇살 맞으며 저녁노을 보내네
시골길에 발자국 남기고
도시 높은 빌딩에 땀방울 뿌렸네
여러 해 고생 묻지도 않고
어려움 속에서 사람 구하는 일이 가장 크네
얼굴 가득 묻은 먼지 아깝지 않아
진실한 복이 모든 가정에 깃들길 바라네

3. 남을 돕는 것은 사실 자신을 수련하는 것

우리 지역은 서로 협력할 때 정체(整體)를 이룰 수 있으며, 수련생들끼리 크고 작은 일에서 모두 자발적으로 도왔다. 어떤 이는 심성 고비를 넘고 어떤 이는 병업 고비를 넘는데, 모두 제때 함께 모여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해 수련생이 어려움을 넘도록 도왔다. 한번은 여성 수련생 C의 코에서 대량의 피가 흘렀는데 나와 몇몇 수련생이 그녀 집에 가서 정념을 발했다. 그의 남편은 문을 막고 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 C에게는 사부님과 대법의 보호가 있어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C의 정념이 매우 강해 병원에 가지 않았고 그의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우리는 함께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하니 C는 3일 만에 완쾌됐고 얼굴에 붉은 기운도 돌았다. 그의 남편은 아내가 그렇게 많은 피를 토하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나은 것을 보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이 대법은 정말 좋군요!”

주변 농촌 여성 수련생 D는 당뇨병 가상 증상을 표현했는데, 그의 남편과 딸은 그녀가 과일이나 고기 등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고, 매끼 밥에 옥수수 떡 두 조각만 먹게 했으며 매일 만보를 걷게 했다. D는 정말 견디기 힘들어 몰래 우리 지역으로 달아났다. 그의 가족은 사방팔방 그녀를 찾았고 이후에 그녀의 딸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우리 엄마가 당신들 거기 있죠? 어서 우리 엄마를 돌려보내세요. 우리 엄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경찰에 신고해 당신들한테 따질 거예요.” 나는 딸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당신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니 나는 여전히 조금 걱정됐다. 나도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기에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으로 가늠해 보면 이는 사람마음이 드러난 게 아닌가? 자신을 바로잡아야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우리는 D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하며 당뇨병의 가상을 부정하고, 과일과 고기를 먹어야 할 땐 먹고, 마셔야 할 땐 마셨다. D는 법에서 제고됐고 당뇨병 증상은 모두 사라졌다. 3일 후 우리는 얼굴에 붉은 빛이 도는 D를 집으로 데려다주며 그녀의 딸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좋아지셔서 우리가 모셔다드립니다.”

우리는 가족이 보면 틀림없이 기뻐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의 딸은 감사하기는커녕 얼굴이 무표정했고 우리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이게 무슨 마음인가? 이는 보답을 바라는 마음 아닌가? 게다가 D의 호전은 사부님의 가호가 아니었던가?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늘의 공을 가로채는 것 아닌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원하는 것도 없나니”(홍음3-마음 조용히 바라보면)를 암송했음에도 관건적인 순간에 어찌 대조해 보지 않았을까? 반드시 해내야만 진정한 수련이다.

이후에 D의 남편이 성 소재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와 수련생이 그를 보러 갔더니, 그는 감동해하며 우리가 멀리서 그를 보러 왔지만 친척이나 친구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보는 견해를 바꾸었다.

우리는 이웃 현의 E 수련생 몸에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몸이 점점 약해진다고 해서 가 보았더니 E의 얼굴이 새카맣고 흰자위는 어두운 노란색이어서 간염에 걸린 것 같았다. 그의 가족 수련생들도 다들 막막해했다. 우리는 그의 가족과 토론해서 E를 우리 지역에 데려와 환경을 바꾸자고 제의했다.

그의 가족도 우리 환경이 괜찮다는 말을 들었기에 동의했다. 나는 E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먹고 자게 했다. 밥 먹을 때 그는 자기 그릇을 갖고 와 혼자 식사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그가 말했다. “이건 전염병이라 당신한테 옮을까 봐 그래요.”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수련인이라 공능(功能)으로 모든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습니다. 당신 상태는 저와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와 한 그릇에서 먹고, 함께 살며, 함께 법을 암송하고, 함께 연공했으며, 또 함께 법공부 장소에 가서 교류하고 토론했다. 어느 집에 가든 그를 병자로 대하지 않았다. 수련의 환경 속에서 E의 심성이 제고됐고 피부는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으며, 눈은 노란색에서 흰색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계단을 몇 걸음 오르면 숨이 차고 쉬어야 했는데, 지금은 4, 5층을 올라도 헐떡이거나 지치지 않았다. 10여 일 후, E는 스스로 운전해 귀가했고 그의 가족은 그가 이렇게 큰 변화를 보이자 해이해졌던 수련에서 다시 정진하게 됐다.

타지 수련생 F는 박해를 당해 뇌졸중 상태가 나타나 우리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와 몇몇 수련생은 많은 음식을 사서 F의 집으로 갔다. 현지 수련생이 우리에게 F의 상황을 말해주었는데, 그의 집은 농가로 부모님이 80대이고 형과 동생이 있으며 그는 둘째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고 당시 가족에게 자랑거리였다. 그가 중공에 의해 박해를 당해 일상생활도 스스로 하기 힘들어지자 형제들은 가정을 꾸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집에서 아버지의 적은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부모는 매우 고생스러웠고 점차 대법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그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지 수련생이 방문하면 들여보내지 않고 수련생을 밀어내며, 심지어 철 냄비를 치면서 문밖에서 크게 “파룬궁 사람 왔다!”라고 외쳤다. 수련생들은 안전을 고려해 아무도 감히 그의 집에 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관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는 먼저 다른 수련생과 토론해서 F를 데리고 나와 체계적으로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게 하자고 제의했다. 나는 빠르게 한 번 생각을 정리해봤다. ‘이 또한 나에 대한 시험이다. F의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고 신고하면 어쩌지? F의 병업이 이렇게 심각한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F 남자라 여성 수련생 집에 가면 안 되고 오직 올 수 있는 곳은 우리집뿐이고, 나 스스로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내 생각은 그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사람과 신은 일념(一念) 차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려니 정말 어렵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慈悲(츠뻬이)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도다.”(홍음2-법정건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세상 사람을 구하라는 것인데, 동문제자를 더욱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 구하기가 시급하니 주저할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우리 먼저 그 집에 가봅시다.” 우리가 그 집에 가서 몇 번 두드린 끝에 문이 열렸다. F의 몸은 앙상하게 말랐고, 두 눈빛은 멍했으며, 입을 다물 수 없어 침을 흘리고, 반신불수 상태였으며, 밥을 먹을 때도 어머니가 떠먹여야 했다. 그는 나를 알아보더니 매우 격앙됐고, 그 기대에 찬 눈빛과 도움을 구하는 마음이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는 소리를 낼 수 없어 손짓으로 어머니에게 우리가 서로 잘 아는 사이고 관계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렸고, 그의 어머니는 우리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두 분 노인이 그를 돌보시느라 너무 힘드시니 제가 그를 데려가 며칠 간호해드리고 두 분은 쉬시면 어떨까요?” 처음에 그의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았고 너무 번거롭다고 했다. 마지막에 몇몇 수련생이 오랫동안 인내심 있게 권유한 끝에 우리가 그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떠날 때 그의 어머니는 그가 생선과 고기, 채소를 먹지 않으며, 빵을 물에 불려 먹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집에 와서 몇몇 수련생이 F를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생선과 고기를 으깨어 먹였더니, 그의 집에서 한 그릇 먹던 것이 우리집에서는 두 그릇을 먹었다. 단체로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통해 3일 후 F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동공과 정공도 연마할 수 있게 됐다.(한쪽 손은 끈으로 매달아 놓았음)

이때 그의 큰형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꾸짖었다. “우리 동생을 어디로 데려갔어? 뭘 하려는 거야?” 나는 화내지 않고 선의로 말했다. “당신 동생은 중환자인데 우리집에 와서 한 푼도 쓰지 않고 그저 환경을 바꿔 기분 전환을 하게 하는 거예요. 부모님이 동생을 돌보시느라 너무 고생하시니 부모님도 좀 쉬시라는 거죠. 우리가 뭘 도모하겠어요?”

그의 큰형은 또 물었다. “당신이 우리 동생한테 잘해준다는 걸 뭘로 증명하지?” F는 말을 할 수 없어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상통화로 동생의 상황을 보고 싶어 했다. 내가 영상을 켜자 동생이 스스로 밥을 먹고 있었고 동생은 기쁘게 형에게 손을 흔들었다. 동생이 스스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그의 큰형은 놀라며 태도가 금세 바뀌었고, 기쁜 마음에 몇 마디 공손한 말을 내게 건넸으며 100위안을 송금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7일째 되던 날, F의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아들을 보고 싶어 한다며 F를 데려다 달라고 했다. 8일째 되는 날, 나는 차를 몰고 수련생들과 함께 F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수련생들은 새 옷과 각종 식품 등을 많이 사서 차 트렁크를 가득 채웠다. F의 집에 도착하자 그는 스스로 3층까지 걸어 올라갔는데 다만 조금 느릴 뿐이었다. 두 노인은 아들이 걸을 수 있고 얼굴도 살이 올라 있으며,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기쁨에 겨워 수련생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친형제도 돌보기 싫어했는데, 여러분은 너무 좋은 분들입니다!” 수련생들은 이 기회에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고 두 노인도 받아들였으며, 플레이어도 두고 갔고 아들이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것도 허락했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새 생명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나를 온몸에 업력이 가득한 사람에서 불변의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몸으로 정화시켜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나는 이 제한된 시간 동안, 아직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과 관념을 철저히 제거할 것이다. 정념을 갖고 사람마음은 갖지 않겠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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