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농촌에서 태어났고 올해 48세입니다. 1999년 7월,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제 인생 전반부를 돌이켜보면 기구한 인생길을 걸었고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던 바로 그때, 사부님께서 저를 고해(苦海) 속에서 건져 올려주셨습니다.
1. “넌 주워 온 자식일 거야”
저희 집에는 남매가 4명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건강이 모두 좋지 않아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한 달 중 며칠은 배불리 먹지 못하고 굶기도 했으며, 설 명절에나 좀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제가 여자아이였기에 어머니는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저도 어머니를 많이 미워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유일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1991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아버지는 사람을 구하러 가다 익사하셨습니다. 비보를 접한 저는 모든 것을 잃은 것 같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모두가 저에게 “네가 계속 이러면 돌아가신 아버지도 마음이 편치 않으실 거야!”라고 타일렀습니다. 저는 살 의지를 잃고 ‘그냥 하루하루 되는 대로 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 언니마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세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사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대형 트레일러에 받혔을 때였습니다. 자전거가 뒤집혔고 저는 자전거와 함께 트레일러 밑에 끌려 들어가 10여 미터를 끌려갔습니다. 자전거는 부서졌고 제가 입고 있던 가죽잠바도 찢어졌습니다. 팔과 등의 피부는 다 까졌고 피범벅이 된 상처에는 모래 알갱이가 잔뜩 묻었습니다. 사고 후 왼쪽 갈비뼈 신경이 손상되었지만 통증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목욕탕에 갔는데 때밀이하는 사람이 제 갈비뼈에 종양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수술을 권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좋은 날을 없었다고 생각해 ‘죽으면 죽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겼습니다. 당시 20대였던 저는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했고 더는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은언니와 친구가 저를 안타깝게 여겨 돈을 주면서 꼭 수술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수술하다가 제가 죽게 되면 친구가 연루될까 봐 걱정돼 같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제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혹시 죽게 되면 제 친구에게 피해주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저를 걱정하기는커녕 “성격이 드센 사람은 독한 병에 걸리는 법이지”라며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작은언니와 친구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며 저더러 “너는 분명 엄마의 친자식이 아니라 주워 온 자식일 거야”라고 했습니다.
수술 후에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영양 섭취도 부족해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흉터가 증식하더니 결국 단단한 혹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통사고에 수술까지 겹치면서 제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기침과 발열이 반복되더니 결국 개방성 폐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감염병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 있다가 의사가 더는 치료할 의미가 없다며, 돈도 없으니 집에 가서 요양이나 하라고 했습니다.
2. “동생에게 “파룬궁 수련을 시켜보세요”
한 친척 언니가 저를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좋았던 언니는 이곳저곳 병원에 저를 데리고 다니며 치료를 받게 했는데, 이번에는 패혈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더는 치료할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죽어가는 저에게 “너에게 무슨 소원이라도 있으면 내가 들어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침실에서 화장실까지는 서너 걸음밖에 안 되는데도 스스로 갈 수 없어서 언니가 저를 안고 화장실에 데려다줘야 했습니다. 밤낮으로 온몸이 너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졸릴 때나 잠깐 잘 수 있었지만 금세 통증 때문에 다시 깼습니다. 하루가 일 년 같았고 매 순간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겨우 미약한 소리를 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언니 직장의 한 아주머니가 언니에게 “저렇게 아파서는 낫기 어려울 텐데 파룬궁을 좀 배워보게 하는 게 어떨까요? 파룬궁 수련을 하면 나아질 거예요. 돈도 들지 않고요”라고 권했습니다. 언니가 저에게 사부님 설법을 틀어주었지만 온몸이 아프고 짜증 나서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겨우 작은 소리라도 낼 수 있었던 제가 갑자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자 언니는 무서워졌는지 더는 설법을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법을 듣기 전에는 제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었는데, 사부님 설법을 듣고 난 뒤로는 더는 악화되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여 지나 그 아주머니가 와서는 언니에게 “이건 이 아이가 법을 얻지 못하게 교란하는 거예요. 이 법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계속 들려주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아주머니 말을 믿고 저에게 계속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 지루했기에 그냥 귀담아들었습니다.
점차 언니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제 건강도 서서히 호전되어 거실로 옮겨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매일 약을 먹었는데 작은 그릇에 반 이상이 약이었습니다.
어느 날 언니가 연공을 하는데 저는 소파에서 힘겹게 일어나 언니 뒤에 서서 언니 자세를 따라 해보았습니다. 너무 아프고 지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으면 앉아서 쉬다가 조금 기운이 나면 다시 일어서서 언니의 동작을 흉내냈습니다. 한 시간가량 하는 동공 중 10여 분 정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북방의 겨울이라 면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극심한 통증 때문에 온몸에서 끊임없이 땀이 흘러 잠옷이 물에 빤 듯 흠뻑 젖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너무 아파 더는 일어설 수조차 없어 소파에 쓰러졌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 누가 보든지 모두 그를 도와주려 하며, 조건 없이 그를 도와준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파룬궁 수련을 하려는 저의 마음을 보시고 저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2시간쯤 지나자 갑자기 기운이 나서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언니는 깜짝 놀라며 “네 목소리가 그렇게 큰데 아직도 아프니?”라고 물었습니다. 언니가 그렇게 묻자 문득 제 몸에 통증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몸에 통증이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잊고 살았고, 매일 진통제를 먹어가며 버텼습니다. 몇 년을 병마에 시달리며 죽기보다 못한 나날을 보냈고,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저를 비추더니 살아갈 희망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이런 날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꿈만 같아 믿기지 않았고 깨어나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 후로 연공을 할 때마다 견디기 힘든 통증을 참아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공이 끝나면 온몸의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정공(靜功)을 할 때는 다리를 완전히 틀지 못해 끈으로 묶고 결가부좌를 했습니다.
3. 변화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몸에 혹처럼 딱딱했던 수술 자국이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심성이 높아져서 어머니를 원망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게 일어난 기적을 본 어머니도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제25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아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고자 이 체험을 써봅니다. 이 글을 읽게 되실 분들은 파룬따파의 진상을 많이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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