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속인 사회에는 ‘아랫사람 눈에는 위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위인을 오랜 시간 접하다 보면, 예전에 신성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매일 함께 먹고, 일하고, 잠자는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위인을 더 이상 위인으로 여기지 않게 되어 소홀히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법이 전해된 지 어느덧 32년이 흘렀다. 수련생들은 아직도 초심으로 수련하고 있는가? 전임으로 항목에 매진하는 수련생들의 노고는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장기간 고강도로 일하면서도 그 조사정법(助師正法)의 마음을 여전히 확고히 지키고 있는가?
법공부와 연공의 목적은 중생을 더 잘 구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자신이 뒤처질까 봐 두려워 그럭저럭 버티며 ‘좋은 점’만을 취하려 드는 것인가?
연공 시간은 보장되고 있는가?
대법 일에서 업무 효율이 오락가락하고 실수가 잦다면 매일 자신에게 혹시 일을 대충 넘기는 마음은 없었는지 물어보라. 만약 속인 회사라면 자신이 속인이 봐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수련생이 실수를 지적하면 당당하게 “실수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는 자신에게 물어보라. 자신이 과연 속인이 봐도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를.
수련생들 간의 협력과 항목 간 협력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심성을 높이고 있는가? 아니면 공산당 문화에서 양성된 오만과 독선, ‘나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그런 태도에 젖어 있지는 않은가?
속인 사회에는 ‘하루 세 번 자신을 반성한다(吾日三省吾身)’는 말이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수양을 기른다는 것이다. 수련인인 우리는 어떠한가? 법공부를 할 때 진정 심성 제고를 위한 것이라면, 이것저것 추구하거나 얼버무리는 일 없이 자신이 고수하는 사람마음을 얼마나 제거했는지 반성할 것이다. 현대 중국인들은 난폭하고 심지어 계산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습성이 있는데, 전통문화가 강조하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애로움과는 큰 격차가 있다.
그런 난폭함과 패권 추구는 방방면면에서 나타날 수 있고, 그 표현 양상 또한 다양하지만 근원과 본질은 같다. 그 근원은 공산악령[共産邪靈]이며, 본질은 이기심과 자아다. 이는 수련인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 수련을 통해 제거해야 할 것이다.
수련의 목적을 상기할 때, 우리는 최초의 서약을 기억할 수 있는가? 사부님을 떠올릴 때 그 신성했던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가? 이는 마치 션윈 무대의 첫 장면과 같다. “나를 따라 세상에 내려가 중생을 구하자!”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배운다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대법은 사람을 단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랫동안 적당히 지내며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하는 이들이 가장 위험할 뿐이다. 중국에서 심한 박해를 겪은 이들이여, 구세력은 악으로써 악을 대하며 당신을 학대했는데, 당신 내면의 악은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찾아냈는가? 그것을 제거했는가? 특히 중국에서 자신을 속인과 구분하지 못한 채 세 가지 일을 하지 않는 당신은 자신의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는가? 사람마음을 찾아냈는가? 장애물을 제거했는가?
공산당 문화가 충만한 중국을 벗어나 해외로 나오면 자유롭고 여유로운 환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시간만 때우며 그 어떤 사람과 일에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옳은 것일까? 오히려 심성 제고에 더욱 매진하고 부족한 점을 배로 만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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