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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문장을 읽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논하다

글/ 일언(一言)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은 모든 생명이 함께 경축하고, 미래에는 전 인류가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할 명절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더 많은 사람이 대법을 주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매년 대법의 날이 되면 명혜망에 발표되는 수만 건에 달하는 축하 카드와 축사에는 보내는 사람들의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마음과 정념이 담겨 있다. 특히 매 편의 문장에는 더욱 많은 진심과 사색, 정성이 녹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수련인도 예외는 아니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한 젊은 수련자는 엄밀히 말하면 오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대법 수련에서 실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수련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현대적 관념과 중국의 박해 환경 속에서 자란 청년으로서, 거듭되는 고난 속에서도 수련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했고, 은혜에 보답하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의 눈과 심장을 아끼듯이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하라.” “나는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지닌 소중한 일면이다.

수련에 있어서, 이 수련자의 주변에는 아마 처음부터 병을 고치려는 아주머니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새 그 자신도 “대법은 병을 없앨 수 있다”는 집착이 생겼지만, 그것은 사실 심성을 제고한 이후의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며, 수련생들이 대법에 대해 바른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사부님께서 수련할 수 있도록 내려주신 자비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사실 ‘대법수련’과 ‘기공치료’를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현대 과학을 많이 배워 스스로를 매우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일부 해외 수련생들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것 자체는 법을 배우는 것도, 법을 얻는 것도 아니다. 동작만 하고 심성을 제고하지 않으면 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책을 읽고 동작을 했다고 해서 당연히 건강해지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병 때문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초기 인식에 머물러 있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들이 오랫동안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않거나, 잠시 연공한 후 좋아졌던 병이 다시 찾아오는 주된 원인이다. 대법은 원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병 치료는 속인의 일이다.

아마도 박해가 25년 동안 지속되면서 그의 주변에는 대법의 이로움을 얻고도 앞장서서 대법을 실증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그들이 나설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용기 내어 한 발 내딛는 것이야말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자신조차도 왜 수련을 하는지, 대법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대법 수련자의 인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지와 대법제자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속인에게 설명할 때는 상대방의 이해 수준을 고려해 얕은 데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이 몇 년간 온라인에서 본 많은 체험담은 병이 나았다거나, 아들을 얻었다거나, 가정이 화목해졌다거나, 복을 받았다는 사례들을 통해 파룬따파와 진선인(真·善·忍)이 좋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었다. 이런 글과 사례들은 속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수련하는 우리 자신은 대법을 오해해서는 안 되며, 속인의 복을 위해 수련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속세의 명예, 이익, 정[名·利·情]을 추구하려고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수련의 본질이 육안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것들이라고 오인해선 더더욱 안 된다.

여기까지 말하면서 오늘날 대법 수련의 기초가 된 인류 문화가 떠오른다. 그 가운데 누구나 아는 책이 있는데 바로 ‘성경’이다. 성경에 나오는 욥은 ‘정직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고, 그의 소유물은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소가 5백 마리, 암컷 당나귀가 5백 마리였고, 수많은 종들이 있었다. 하느님은 사탄에게 “땅 위에는 욥만큼 정직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멀리한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당신을 경외하겠습니까? 그는 복을 받아 소유물이 땅에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없애보십시오. 그럼 그는 당신을 욕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하느님은 사탄에게 “그럼 내가 그의 모든 소유물을 네 손에 맡기노라. 오직 그의 생명에만 손을 대지 말지니라”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탄은 욥의 재산과 자녀, 건강을 앗아갔다. 이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사탄이 욥을 때리는 과정에서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다. 욥이 잿더미 가운데 앉아서 기와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다. 욥의 아내는 “당신은 그 꼴이 됐는데 믿음을 계속 지키려 하시나요? 하느님을 욕하고 죽어 버려요!”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욥은 “그대는 미련한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라고 대답했다.

또한 욥은 위로하러 온 세 친구와 이 고난에 대해 길게 논쟁을 벌였다. 결국 욥은 모든 충고를 거절했고 친구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함부로 논의하지 말라고 했다.

거듭된 재앙을 겪으면서도 욥은 하느님께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 그는 말했다. “나는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으니 또한 알몸이 돌아갈 것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은 찬송을 받으시리라.”

하느님은 마침내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셨지만, 그에게 답을 주는 대신 대자연의 오묘함에 관해 물으셨다. 욥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자신이 당한 고난 역시 하느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멀리함이 총명이라 하셨느니라.”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후 욥은 이전보다 더 풍족한 삶을 누리며 14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만약 수련자가 믿기만 하면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면, 속인의 복을 얻지 못했을 때 수련을 포기할 수 있다. 그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것이며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인류 문화의 기초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많다. 예컨대 역시 성경에 나오듯,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어찌 인정에 맞는 일이겠는가? 사람이 바라는 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충성심을 확고히 하고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는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 아들 대신 숫양을 제물로 삼게 하셨다. 사람의 마음이 속인 중에 머물러 있을 때는 정념으로 신의 배치를 이해할 수 없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지극히 높은 신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신 앞에서 자신의 미천함을 모른다면 그것은 신을 믿지 않는 것이다. 대법 앞에서 얻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이요, 아직 대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세상에 온 목적은 가문을 빛내거나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명예와 이익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기 위함이다. 대법제자로서 세상에 온 것은 더욱 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우주의 진리다. 돌아가야 할 곳은 단지 자신의 생명이 시작된 그곳뿐만 아니라, 정법으로 씻겨진 진정한 고향이다. 매 대법제자의 수련성취 여부는 무수한 중생들의 장래를 좌우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는 참으로 광범위하다. 이상의 단상은 부족하지만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다 함께 정진합시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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