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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바꾸고 사심 없이 타인을 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60년대에 태어난 사람으로, 제 인생이 방황할 때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나 인생의 고해에서 해탈할 수 있었습니다. 제 진실한 이야기를 써서 파룬따파의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의 거짓 선전에서 벗어나 사부님의 넓고 큰 불은(佛恩)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키워졌고 여러 면에서 우월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마치 심연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술과 도박에 빠져 있었고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저는 20대에 이미 병마에 시달리며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했습니다.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망가진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남들의 비웃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때는 정말 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31세 때 저는 다행히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접하게 됐는데, 이는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고덕대법(高德大法)으로서 진선인(真·善·忍)의 이치에 따라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은 새로운 장을 열었고, 과거의 고통과 방황으로부터 완전히 작별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고 몸의 각종 질병도 어느새 날아가 버렸습니다. 파룬따파가 제게 행복한 인생을 되찾아 준 것입니다.

1. 남편에 대한 원망을 제거하다

저는 모두 인과응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생에 제가 남편에게 빚진 것이 있어 이번 생에 갚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가 저를 어떻게 대하든 화내지 않았지만 가끔은 억울함을 느꼈고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 억울한 마음을 수련했고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대했으며 점차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됐습니다.

이전에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저는 늘 남편이 잘못했다고 여겼는데 표면적으로는 확실히 그가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을 한 후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는데 우리는 왜 갈등이 생겼을까요? 세상에서는 한쪽 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제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갈등이 생겼겠습니까. 나중에 저는 제게 그를 얕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해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며 사랑이 깊으면 증오도 깊습니다. 그의 직장 성격상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모두 존칭을 쓰는데, 집에 와서는 제가 그를 거칠게 대하니 그는 집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고 표정도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감각이 있어서 제가 그를 얕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에서부터 바꾸어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전통예의이기도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서로 존경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공산당 문화의 선전 속에서 여성도 굴복을 모르고 강해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마땅히 지녀야 할 선량함과 부드러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전통문화에서는 여성은 겸손하고 온순한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공산당 문화는 바로 투쟁 철학입니다. 저는 이전에 매우 착했는데 제가 막 결혼했을 때 언니는 제가 기가 죽을까 봐 걱정되어 절대 남편에게 억눌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지로 남편과 싸웠고 결과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저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자신을 수련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통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신을 바로잡고 공산당 문화를 제거하며 진심으로 그를 위했습니다. 모든 집안일은 제가 다 했고, 그는 손을 내밀어 옷을 입고 밥상 앞에 앉기만 하면 되게 했습니다. 마침내 남편과 시어머니는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고 하며 제게 열심히 수련하라고 했습니다.

2. 이익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다

중국공산당 장쩌민 일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후 저는 박해를 받아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슈퍼마켓에서 판촉원으로 일하며 소형 가전제품을 팔았는데, 세 개의 상가가 동시에 판촉을 진행했습니다. 속담에 ‘상업 시장은 전장(戰場)과 같다’고 하듯이 이익 앞에서 사람들은 정말 태도가 돌변하는데, 다른 두 상가의 판촉원들은 서로 말도 하지 않았고 오직 저만 그들과 정상적으로 교류했습니다.

한번은 고객이 제 매대에 와서 상품을 보는데 제가 상품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판촉원이 제 앞을 가로막고 저를 한쪽으로 밀어내더니 고객에게 자기 상품을 소개하고는 고객을 자기 매대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싸움이 붙었을 텐데 그들 두 회사는 결국 크게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났지만 저는 결코 그들과 따지지 않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했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또 한번은 한 할머니가 꼭 견본품을 사겠다고 했는데, 할인된 견본품은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그 자리에서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할머니가 와서는 집의 전기 회로와 맞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제게 떨어지는 약간의 수수료 때문에 할머니를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바로 환불해주었습니다. 사실 그 누구라도 환불해주지 않았을 텐데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제가 환불해 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매우 기뻐하며 계속 감사를 표했습니다.

일하면서 저는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이익을 가볍게 보며 판촉원들과 이익 다툼을 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 제 실적은 그들보다 훨씬 좋았고, 저와 경쟁했던 그 판촉원은 실적이 좋지 않아 매대가 철거당했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 20여 개의 판매장 중 판매량 2위를 기록했고, 사장은 제게 경험을 소개하고 판촉원들을 교육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무슨 판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단지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을 뿐, 좋은 사람은 자연히 좋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에 아버지가 병이 위중해지셔서 간병하기 위해 저는 사직했는데 사장은 몹시 아쉬워하며 월급도 조금 더 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브랜드의 욕실 용품을 팔았습니다. 시작했을 때부터 실적이 괜찮았습니다. 10여 일쯤 지났을 때 변기를 사려는 한 손님이 왔는데 그는 여러 곳을 다 둘러보더니 결국 우리 제품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이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판매원들은 모두 남의 물건을 헐뜯고 심지어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는데, 저는 그저 당당하게 우리 제품만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배송 설치도 하기 전에 그가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믿을 만한 분인 것 같아요. 당신을 믿기에 당신에게 돈을 좀 벌게 해주려고요. 우리 회사 두 동 건물에 쓰일 물건을 전부 주문하겠습니다. 세면대와 수도꼭지까지 포함해서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어느 유명 기업의 사장이었습니다. 이건 정말 큰 주문 건이었습니다. 한 세트 가격만 해도 2천 위안(한화 약 38만 원) 정도였는데 하물며 건물 두 동에 사용할 양이었으니까요. 이전의 판매원은 판매량도 좋지 않았을뿐더러 이런 큰 계약을 따낸 적도 없었습니다.

사장은 이미 제가 잘 팔아서 수수료도 적지 않은 것을 보고는 큰 계약 건의 수수료를 주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사장이 다시 와서 저에게 “우리는 이미 계약을 체결했어요. 사장님이 당신에게 말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의미는 당신에게 수수료를 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판매원들은 몇 퍼센트의 수수료를 받는데 그 금액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장이 우리 사장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아 “아직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떠났고 저는 계약 가격조차 묻지 않았습니다.

사장에게 은근슬쩍 그 사장을 만났다고 말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아직 발송을 안 했다는 등 이유를 대며 수수료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장이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제가 그만둘 때까지 사장은 이 건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사장 역시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 해 추석에 제가 200위안짜리 옷을 사자 사장은 꼭 경비로 처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저는 명예와 이익을 가볍게 보게 됐고, 옛사람들의 “물건(외물)으로 인해 기뻐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로 인해 슬퍼하지 않는다(不以物喜, 不以己悲)”는 정신 경지를 체득하게 됐습니다.

3.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저는 자식이 딸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가 박해받을 때 딸아이는 겨우 10살이었고,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에 제가 곁에 있지 못했지만 아이는 늘 순조롭게 자랐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베이징에서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고, 대학 동기와 7년을 사귀다가 결혼해서 8년간 두 사람은 매우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지금도 딸이 머리를 감으면 사위가 머리를 말려줍니다.

아이들이 집에 올 때마다 저는 늘 몇 가지 요리를 만드는데, 식사를 마치면 사위가 먼저 나서서 설거지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위가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딸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딸은 사위가 기꺼이 한다면서 자기네 집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저는 “네 집에서는 내가 보지 못하니 상관할 수 없지만 우리집에서는 안 된다. 사위는 손님이니 네가 하기 싫어도 사위에게 시킬 순 없어. 그건 적절치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는 아이들이 올 때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들에게 시키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딸이 출산했는데 산후조리 기간에 저는 가끔 가서 도왔습니다. 밤에는 아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낮에는 밥도 해야 하고 아기도 돌봐야 해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녁밥을 하고 나서 부엌을 치우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사위가 퇴근 후 밥을 먹고 설거지하면서 부엌까지 함께 치웠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딸에게서 사위가 제가 밥 하나 하는데 부엌을 너무 어질러 놓는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랬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부엌을 치우지 못했고 사위를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사위도 온종일 일하고 돌아와 지쳤을 텐데 그에게 부엌까지 치우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는 밥을 다 하고 그들에게 먼저 먹으라고 한 뒤 부엌을 치운 다음에야 와서 밥을 먹었습니다. 남은 반찬이 있으면 조금 먹고, 없으면 다른 걸 먹었으며, 겸사겸사 그릇도 함께 씻었습니다.

그 후 딸도 출근하게 됐는데, 딸이 점심때 집에 와서 밥을 먹을 때는 반찬 두 가지를 하고, 사위가 올 때는 네 가지를 했습니다. 사위에 대한 대접이 딸보다 더 좋았습니다. 딸이 “엄마가 자꾸 이러시니 그이가 집에 오는 걸 꺼려하잖아요. 엄마한테 폐 끼치는 게 미안하다구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건 당연한 거라며 사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위가 딸보다 조건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딸을 이렇게 잘 돌봐주니 딸이 매우 행복하고 저도 아무 걱정이 없으니 이게 무엇보다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정도 부담을 지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남의 자식도 다 자식이니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파룬따파를 배우면서 저는 사심을 내려놓고 자비심이 생겨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잘 대해줄 수 있었습니다.

아이 교육 면에서는 가끔 딸과 생각이 다를 때가 있지만 저는 딸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때로는 딸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제가 잘못했다고 인정합니다. 집안일이 바빠서 시간제 도우미를 고용해 밥을 하게 했는데, 가끔 도우미가 아이 이유식을 너무 적게 만들어서 아이가 배가 고파하면 딸은 저에게 “많이 만들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적게 만드셨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도우미에게 일을 시키면서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되니 제가 욕을 먹더라도 참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우미는 나중에 제가 잘못을 떠안아 준 걸 알고 제게 감사해했습니다.

딸과 사위도 절 매우 공경해서 맛있는 것이 있으면 모두 저에게 주려 합니다. 사위는 제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오곤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은혜입니다.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이런 도량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고, 갈등이 작은 데서 점점 커져 결국 모두가 행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잘 대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잘 대하는 것입니다.

파룬따파를 배우면서 저는 속인의 관념을 바꾸고 사심 없이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 됐습니다. 갈등을 만나면 자신의 문제를 찾아 자신을 수련하니 갈등이 곧바로 해소됐습니다. 생명은 오직 파룬따파 수련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 아닐까요?

 

원문발표: 2024년 4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28/4738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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