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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호불호를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수련을 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몇 년 전 나는 컴퓨터 시스템 설치 방법을 배웠다. 그 후 기술 포럼과 속인 사이트에서 공부하며 컴퓨터 지식을 익혔는데, 이는 나에게 큰 편의를 가져다주었고 수련생들에게 컴퓨터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조건이 됐다.

나는 일부 수련생들의 컴퓨터에 명혜망 접속용 특수 시스템을 설치해주었고, 컴퓨터가 없는 이들을 위해 구매를 도왔으며, 너무 오래된 컴퓨터는 하드웨어 교체 및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다. 명혜주간을 타인에게 의지하는 수련생을 만나면, 조건과 능력만 된다면 직접 인터넷에 접속하도록 권유했다. 다른 수련생과 접촉이 적어 명혜자료를 보기 힘든 이들에게는 명혜망 접속을 도와 컴퓨터와 시스템을 준비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업력을 갚고 수련에서 제고할 기회도 마련해 주셨다.

1. 기술을 활용해 악연(惡緣)을 풀다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여겼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매우 이기적이고 거만했으며 간사하고 위선적이었다. 그녀는 날 배척하고 시기하며 경계하고 경멸했는데,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에 다시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집에 찾아와 컴퓨터 시스템 설치를 요구했다. 예상했던 일이라 정중히 거절했다. 사실 그날은 문조차 열어주기 싫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연히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이후 그녀는 시스템을 혼자 고치지 못해 다시 날 찾아왔고, 이번엔 컴퓨터를 우리집 앞에 내려놓고 몇 마디 하고 가버렸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하기도 어려워 마지못해 해주었다.

두 번째로 그녀는 집에 있던 낡은 컴퓨터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나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고 분노가 치밀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녀의 이기적인 모습을 떠올리니 매우 불쾌했다. 그녀는 남을 돕거나 협조하려 들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에는 남의 도움을 구했다. 그런 사람은 도움받을 자격이 없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도와주는 이가 적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덕을 잃기 싫어 화를 억누르고 마지못해 수리해주었다.

세 번째로 그녀는 심지어 친척 컴퓨터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정말 그녀를 쫓아내고 싶었다. ‘왜 하필 나에게 맡기는 거지? 당신이 뭔데?’ 나는 테이블을 치며 단호히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그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관용하라고 세 번이나 깨우쳐주신 것이었다. 한번은 내가 그녀에 대해 분개할 때, 꿈에서 “네가 그녀를 포용할 수 있다면 천상의 신마저 너를 우러러볼 것”이라 일깨워주셨다. 그러나 나는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계속 못마땅해했다.

그녀는 일마다 날 훼방 놓고 견제했다. 우리는 서로 탐탁지 않게 여기며 배척하고 시기했고, 마음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이는 전생의 원수요 채권자가 금생에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나는 빚을 갚아 인연을 매듭짓고 사부님의 노고를 헛되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빨리 컴퓨터를 고쳐 그녀가 아는 수련생 집에 전해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익힌 기술을 이용해 이 악연을 풀어주셨다. 사실 나는 이 업력의 극히 일부만 갚은 것이다. 어느 한 생에선 내가 사주한 이가 그녀의 눈꺼풀을 베어냈고 그녀는 내 탓에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 사부님의 일깨움을 받았다. 얼마 후 내 눈꺼풀이 며칠간 떨리더니 이 업보도 갚게 됐다. 대법을 수련했기에 많은 일을 사부님께서 해결해주신 것이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세월이 흘러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이켜보니 바로 그런 극단적인 사람을 만났기에 내 부정적인 것들이 단번에 드러날 수 있었고, 나는 많은 부족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평범한 이와 어울릴 때는 이런 기회가 없었다. 세상의 원한과 정은 모두 꿈과 물거품이며, 그녀의 행동은 날 위한 연출이었다. 마음을 평온히 하고 어찌 됐든 자신을 잘 닦고 심성을 지켜야 한다. 타인을 보는 건 수련이 아니다.

개인적 원한에 빠져 감정에 이끌리고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면 사부님의 배치에 따를 수 없다. 그건 사부님께 협조하거나 정법을 도운 게 아니다. 어찌 됐든 법을 크게 여기고 사부님의 배치를 크게 여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

2. 기술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어느 날 나는 한 수련생 집에 갔다. 그녀는 노트북이 있었지만 2~3개월간 다운로드와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대화상자가 자주 떴다.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 내게 업데이트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는 방법을 알려주고 스스로 하게 했다. 집에 돌아와 문득 그녀가 만료된 소프트웨어를 바꾸지 않았고 시스템도 몇 년 전 것이라 보안상 허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트북은 명혜망 접속용이고 그녀와 가족이 큰 고비를 겪고 있기에, 수련생 교류문장 등을 보며 제고와 돌파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빨리 처리해주려 했다.

그날 오전 그 집에 다녀왔지만 저녁 무렵 다시 찾아갔다. 내가 컴퓨터 점검을 제안하자 그녀는 바로 동의했다. 그러나 내가 부팅 비밀번호를 적으라 하자 그녀는 의심하며 내 도움이 필요 없고 다른 이에게 부탁하겠다고 했다. 만료된 소프트웨어의 보안 허점을 말했지만 그녀는 내가 컴퓨터를 봐주는 걸 거부했다. 나를 불신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날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필요 없다면야 어쩔 수 없지.’ 나는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복잡했다. 일을 대함에 조급하고 이기심이 강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원망심도 나왔다. ‘좋은 마음으로 갔건만 전혀 날 신뢰하지 않는구나. 먼 길을 달려 일부러 도우러 갔는데 어처구니없게 굴다니. 컴퓨터 비밀번호는 은행 비밀번호도 아닌데 내게 알려줘서 무슨 문제가 있겠어? 정말 이해할 수 없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녀는 컴퓨터에 서툴고 나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돼 의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경제 형편이 어려운 처지라 그 컴퓨터는 비싼 건 아니어도 그녀에겐 큰돈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니 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중에 나를 돌아보니, 몇 년 전 약간의 기술을 배운 뒤로 은연중 자만심과 우월감이 생겼음을 알았다. 마치 많은 것을 장악하고 큰 능력을 가진 듯이 말이다. 늘 그 기술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익힐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사부님의 배치와 도움 덕분이었고, 수련생의 도움 덕이었다.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건 사실이나 얻은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누군가 말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격이었다. 모두 다른 이의 도움이었는데 자랑할 게 무엇인가. 오히려 감사해야 마땅했다. 나는 일부 일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서히 집착이 생겨 집착을 갖고 일하게 됐다.

나는 기술을 좋아하고 성취감을 즐겼으며 기술로 자신을 증명하고 과시하길 좋아했다. 타인보다 우월함을 즐기고 남을 도울 때 그들의 숭배와 아첨, 좋은 태도를 바랐다. 기술에 빠져 직접 진상 알리기를 회피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기술을 배우고 컴퓨터를 수리하는 건 수련생들의 수요를 채우기 위함이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게 아니다. 둘을 뒤바꾼 것이다. 이는 타인을 위함이 아닌 사심을 위한 행동이었다. 마음이 순수하지 않고 바르지 않으면 유위(有爲)한 것이며, 의도치 않아도 집착심을 만족시키고 그것에 틈을 내준 것이다.

기술은 필요할 때 하고 불필요하면 접어야지, 기술을 위한 기술이 되어선 안 된다. 정법과 수련에 필요해 기술을 익히는 것인 만큼 그 수요가 없을 땐 기술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이 환해졌다! 우울과 불평은 깨끗이 사라지고 평온을 되찾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무위(無爲)’의 묘함을 느꼈다. ‘수련은 정말 좋구나!’

3. 선호하는 마음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수련에 임하다

우리 집안은 어른들이 불교를 믿고 불상에 공양을 드렸으며, 점을 치고 무당이나 빙의된 자를 접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나는 제공(濟公)과 서유기, 봉신연의 같은 신화 이야기책을 읽었다. 중학생 때는 가족과 함께 기공을 연마하고 기공서적을 보며 유명 기공사와 특이공능(초능력)도 접해봤다. 대법을 배운 후에도 많은 신기한 체험이 있었다. 나는 늘 신기한 현상에 흥미가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초능력을 갖길 바랐다. 대법을 배우게 된 것은 수련에 대한 갈망도 컸지만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이런 흥미를 만족시키려는 면도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부 수련생들은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사람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만족시키고 있다.”(정진요지3-각성하라)

여기에서 ‘좋아하는 마음(喜好心, 선호하는 마음)’이란 단어가 나온다. 되돌아보니 그동안 수련에 선호하는 마음이 섞여 있었다. 열정이 있을 땐 적극적이다가도 없으면 느슨해지고 느린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법 공부가 적고 연공도 간헐적으로 했으며 정념도 부족했다. 진상 알리기는 내키지 않으면 안 했고 어려우면 피했다. 항목도 취향에 맞아야 참여하는 식이었다. 수련생들을 대할 때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수련생은 멀리했다. 진정한 수련인처럼 엄숙한 태도로 바르게 대하지 않았다.

때론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을 다하지 않고 중사(中士) 수준에 있는 나를, 사부님께서 10점을 주고 싶어도 5점도 못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흥미’ 때문에 쉽게 대법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내려놓지 못한 ‘흥미’가 이 수련의 길에서 경건하고 이성적으로 정진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하지만 정말 그 ‘흥미’가 이렇게 오래 대법 안에 머물게 해준 걸까? 사실 그렇지 않다. 대법제자와 사부님, 대법의 인연은 먼 옛날 이미 정해진 것이다. 나는 두 번이나 꿈에서 위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보았는데 모두 대법을 위해서였다. 사부님께선 내가 환생하며 여러 차례 사부님과 맺은 인연과 역사를 일깨워주셨다. 이 인연이 날 단단히 묶어주고 사부님의 오랜 고심 어린 보살핌이 내가 오늘날까지 수련하도록 했다. 흥미는 대법에 입문하게 한 표면적 추동력일 뿐 근본 원인은 아니며 그것은 사람의 요소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위로 승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장애물이 되니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나는, 개인의 호불호를 초월하고 감정을 내려놓으며 정법의 입장에 서서 사부님의 뜻을 최대한 원융하는 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해야 할 바이며 사부님을 돕는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일을 대법제자가 잘하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심성 수련은 우리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더 많은 좋은 점은 이 공간에서 드러나지 않고 아직 볼 수 없다.

어느 날 아침, 내 머릿속에 명확한 개념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모든 것은 신께서 배치하신 것이니 우리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된다. 개인적 요소를 끼워 넣으면 신의 배치대로 가는 게 아니고 신의 배치를 깨뜨릴 수 있으며, 신께서 이루려던 목적과 우리에게 성취케 하시려던 모든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진정하게 끊임없이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자신을 잘 닦는 기초 위에서 더욱 이성적이고 맑은 정신으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길 희망한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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