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일 수련생
[명혜망] 최근 저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수련하는 것에 관한 두 편의 명혜망 교류문장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저자는 자아, 자만, 타인 무시, 오만과 건방 등을 언급했는데, 저에게도 같은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고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수련생, 가족과의 갈등을 되짚어 보니, 본래 선을 권하려는 교류였지만 결국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제가 이치를 명백히 말했다고 여겼지만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오만하고 거들먹거리며 악으로 악을 제압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가짜 자아를 보았는데, 이는 수련 중에 없애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편이 저희 집 주차장을 임대하는 인도인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인도인에게는 처음부터 임대료를 시세보다 훨씬 낮게 책정해줬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독일은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해 물가가 크게 올랐고, 관리비와 주차비도 인상되었습니다. 남편이 인도인에게 현재 시세대로 올려서 계속 임대해주겠다고 하자, 인도인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계약 해지를 원했지만 인도인은 승낙하지 않았을뿐더러 심지어 6개월 동안 주차비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그 인도인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애초에 그 가격에 임대해주기로 한 것도 일종 인연일 수 있고, 전생에 우리가 그에게 빚을 졌을 수도 있다면 이번 생에 갚아야 해요. 우리는 일반인들과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하고, 제가 만났던 인도인들은 모두 선량했어요. 시세로 올리는 것을 그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만두고, 게다가 그가 이렇게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분명 인연 관계가 있을 거예요. 제 생각엔 순리에 따르고 손해를 좀 봐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당시 저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지만 남편은 갑자기 화를 내며 자신을 교육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의아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제게 여전히 잠재된 오만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제가 남편보다 깨달음이 높다고 여겼으며, 말투가 거만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한 연로한 수련생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법에 맞지 않는 그녀의 일부 행위에 대해 교류하자 그녀는 화를 냈는데 그것 역시 제 오만한 자아가 작용한 것이었습니다. 교만한 태도로는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洪吟)》(4, 5, 6)의 가사에서 전통으로 돌아가고 전통을 회복하는 문제를 여러 차례 강조하셨습니다. 저도 진정한 전통 회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 전통문화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니 옛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너그러움과 겸손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 특히 중국에서 자란 이들은 중국공산당이 주입한 ‘사람이 하늘을 이긴다(人定勝天)’는 망령된 사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마침 중국의 경제 호황기 및 총명하기만 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시기를 만났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재주가 좀 있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선전(深圳)에서 외국계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으며, 대기업 간 이직에도 성공했습니다. 인생에서 이런 작은 성취들을 이루면서 자만과 거만함이 점점 쌓여만 갔습니다.
최근 명혜망에서 통보한 몇몇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연배로, 그들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스로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법을 배우고 표면적으론 우주의 일부 진상을 알게 되자, 도리어 자만하고 거만해져 결국엔 자멸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제 16년간의 수련의 길을 되짚어보면, 저 또한 깨달음이 높고 잘하고 있다고 여겨 흐뭇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제때 깨달을 수 있었고, 심장과 뼈를 도려내는 고통 속에서 안으로 철저히 찾아보며,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마음이 유치하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수련인에게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피상적이고, 불법(佛法) 앞에선 저는 그저 아는 것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제가 깨달은 바는 모두 일정 층차에서의 한정된 인식이며, 더욱 높고 높은 법리가 있고 불법은 무한합니다.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도 사부님께선 제 문제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 진상을 다 말한 후 그가 공산당 조직을 탈퇴하기로 동의했지만, 마지막에 “가르쳐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 순간 제가 독선적이고 훈계하는 어조로 말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몇 번 신앙심 깊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굉장히 고집하며 남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저 역시 자만심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의 오만에 관한 교류문에서는 ‘9평 편집부’가 발표한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의 일부를 인용했는데, 저도 이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수련하려면 마음과 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오만함은 마귀의 본성으로서 수련의 요구와 정반대된다. 공산악령의 안중에는 신이 없으며 수련문화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특히 마성과 극도의 교만함을 불어넣어 사람들을 겸손하지 못하게 만들고 대신 자만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며, 무법천지로 신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못하게 만든다.”
“옛사람들은 마음과 뜻을 바로잡아야만 수련할 수 있었으며 마음속 신성(神性)이 작동해야만 우주의 특성과 신이 이야기한 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산악령은 수련문화를 파괴해 인간의 교만함을 키움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신과 완전히 대립되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라디오 채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공산주의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신의 지혜와 가르침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
저는 사탄과 신공표, 그리고 석가모니의 한 제자가 결국 지옥에 떨어진 것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모두 교만하고 자만해 마도(魔道)로 나아가 반면으로 갔다는 심각한 교훈이 있습니다. 오만한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대법에 전적으로 동화될 수 없고, 법을 읽어도 법을 얻지 못해 일정한 인식에 머물러 정진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진정 깨닫지 못하고 남을 바르게 대하거나 장점을 발견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교만하고 자만한 자는 편견과 편협함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지내는데, 수련에 정진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대단히 위험해져서 마(魔)가 와서 추켜세우고 현혹할 것입니다. 저는 사오(邪悟, 삿되게 깨달음)로 치닫는 이들이 다 그런 양상임을 보았고, 제게도 이런 면의 좋지 않은 물질이 있음을 발견했기에 일거수일투족을 엄숙히 대하고 적시에 나쁜 것들을 제거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는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비방하는데, 물론 그들 중 일부는 교만으로 가득합니다. 한편 대법을 지지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몇몇 대법제자의 언행과 게시글을 두고 불만을 표하는 것을 들었는데, 바로 독선적이고 우월한 자세로 남을 훈계하는 태도와 심리를 꼬집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심성 표현은 상대로 하여금 대법 수련에서 우러나온 자비와 선념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한 말은 상대를 감화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악한 것을 자극하기 쉬워 난신(亂神)들과 나쁜 생명이 틈타 상대를 조종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는 상대를 구하지 못할뿐더러 중생들에게 우리를 부정적으로 보게 해 대법을 매도하고 중생 구원에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각지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습니다.
“제자: 제자는 중생에게 慈悲(츠뻬이)한 것과 대법의 존엄을 수호함에 평형을 이루기가 몹시 어려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당신이 대법의 존엄을 수호하려는 것은 맞지만,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당신이 그의 입을 막을 것인가? 당신이 그와 논쟁할 것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慈悲(츠뻬이)하게 중생을 대하고 당신이 慈悲(츠뻬이)하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당신은 곧 대법의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며, 당신은 능히 대법의 존엄을 수호할 수 있다. (열렬한 박수) 대법의 존엄은 속인의 수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제 현재의 인식으로는,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어조와 선심(善心)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과 타인에 대한 공경,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최소한의 요구라고 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다(佛光普照, 禮義圓明)”(전법륜).
우리 자신이 잘하면 주변 환경을 선하게 고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주 제가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하는지 되물어 봅니다.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면, 우리 대법제자는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봐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사람마음을 찾아내 제거해야만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제 개인의 현 단계에서의 인식이며 부족한 점은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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