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회귀(回歸)
[명혜망] 지난 2년간, 저는 여러 집착심을 버리는 험난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명예와 이익, 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고통받았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도 겪었으며, 법에 대한 인식도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법리의 요구를 깨달을 때마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동했고, 동시에 진상을 많이 알리고 사람을 많이 구했습니다. 아래에서는 제가 집착심을 없애고 사람을 구하면서 겪은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情)을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생각하다
한번은 집에 물이 안 나왔는데 단지에서도 통보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관리사무소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자고 했고 딸도 좋다고 했지만 저는 아무 말 없이 법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수련생 집에 가서 이 일을 꺼내자 수련생은 “아무도 당신 집이 어디 사는지 모를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면 주민센터와 파출소에서 당신 집 주소를 알게 될 거예요. 집에 가서 남편에게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에서는 해마다 경찰이 대법제자의 집을 찾아와 괴롭혔습니다.하지만 저는 딸 집에 살면서 호적을 옮기지 않아서 그들이 저를 찾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평온한 마음으로 수련생이 관리사무소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말을 전했습니다. 제가 다 말하기도 전에 남편은 화를 내며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했더니 큰 소리로 내일 아침 8시에 가입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또 계속 말했더니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도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역시 제게 두려움이 있었고,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모두 제 잘못이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몇 편의 교류문장을 읽고 나가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그는 싫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라고 하자 그제야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당신이 저한테 화를 내도 저는 화내지 않아요. 다만 당신 혈압이 오를까 봐 걱정되네요. 욕하는 건 좋지 않아요.” 그가 “당신은 머리가 정말 둔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내가 설마 가입하겠어?”라는 뜻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딸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하다
제 딸은 타지에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외손주가 어려서 제가 며칠 가서 돌봐주곤 했습니다. 사돈댁은 남쪽 사람인데, 한번은 딸 집에 오셔서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당시 백혈병에 걸리셨는데, 제가 대법을 전해드리자 법을 얻으셨습니다. 업을 없앨 때 딸과 사위가 모두 약을 먹으라고 했지만 사돈댁은 먹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약을 먹어야 하나요?”라고 물으시길래 “스스로 결정하세요. 사부님도 아프다고 해서 약을 먹지 말라고 하신 적도 없고, 법도 배웠잖아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사돈댁은 딸과 사위가 준 약을 모두 제게 주셨는데, 며칠 만에 병이 나았습니다. 사돈댁이 떠날 때 저는 제가 사드린 대법 내용이 담긴 작은 스피커로 사부님 설법을 자주 들으라고 당부드렸습니다.
새해가 지나고 제가 또 딸 집에 갔더니 사돈댁도 오셨습니다. 이번에도 병이 났는데, 딸과 사위가 모두 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작년 경험에 비춰 “작년에 병이 그렇게 심했는데도 약을 안 드셨잖아요. 이번에도 드시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알았겠습니까. 사돈댁은 저를 떠난 지 1년 동안 법을 배우지 않아 이미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딸과 사위에게 제가 약을 못 먹게 했다고 일러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로 딸과 사위는 제가 집에 와서 손주를 돌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지금 거의 10년이 되어갑니다. 딸과 사위도 저에게 전화하지 않고 남편하고만 연락하면서 남편에게만 옷을 사주고 돈을 줍니다.
몇 년 전에는 딸에 대한 원망이 컸는데, 나중에 저 자신을 돌아보니 모두가 제가 잘하지 못해서 딸과 사위가 대법에 대해 오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느 해에 딸과 사위가 저와 남편을 데리고 여행을 갔습니다. 식사할 때 제가 사위에게 사과하며 제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돌아갈 때쯤 마침 전염병이 시작되던 참이었는데, 저는 ‘이 전염병이 사람을 도태시키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그들도 집으로 가는 터라 사위에게 “꼭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해”라고 했더니 그는 “닥치세요”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찢어지는 듯 괴로웠습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서야 법공부를 통해 생각하지 않게 됐습니다.
2023년에 딸이 또 와서는 마치 제가 엄마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식탁에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도 딸은 밥 먹을 때 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이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밤에 딸이 남편과 재잘거릴 때 저는 옆에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그들이 뭘 하든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엄마는 어릴 때부터 언니한테는 잘해주고 나는 안 좋게 대했지. 새 옷도 다 언니만 사주고”라고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했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연공할 때 딸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너 4년제 대학 다닐 때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아니? 남의 집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500위안씩 벌어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학비로 보태줬어. 당시 아빠는 아파서 돈도 못 벌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날 원망하다니….’ 하루 종일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저녁에 수련생의 교류문장 하나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마 제가 전생에 딸에게 빚을 져서 이번 생에 갚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정에 움직이지 않고 대법을 굳게 믿다
또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제로 코로나’ 정책 때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파룬궁 탄압 담당 기구)에서 제 딸에게 전화해 “어머니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써달라고 하세요. 10일 안에 안 쓰면 당신은 직장을 잃을 겁니다”라고 협박했습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집에 없었는데 딸은 아빠에게 전화해 “정법위에서 나한테 전화해서 엄마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 쓰라고 하는데, 안 쓰면 내 직장을 없앨 거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쓰라고 했지만 저는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화를 내며 “안 쓰면 당신을 파출소로 데려가 가둘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제 몸에 병이 많았지만 연공해서 다 나았어요. 수련 안 했으면 진작 죽었을 거예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제가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면 그 병들이 다시 제 몸으로 돌아올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난 상관 안 해. 만약 딸이 직장을 잃게 되면 당신과 이혼이야!”라고 하자 저는 “저는 신으로 수련하는 거고 사부님을 배신할 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도 신이야? 월말에 다시 이야기하자”라고 했습니다.
딸은 저에게 전화해 울면서 “엄마가 안 쓰면 저는 직장을 잃고 구걸하게 될 거예요, 그럼 엄마랑 모녀 관계를 끊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쓸 수 없어. 네가 어찌하려든 마음대로 해라”라고 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찢어지는 듯 괴로웠습니다. 안 쓰면 가족들이 모두 저에게 달려들 테니까요. 생각해보니 이 정(情)을 내려놓지 못해서 매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설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이 대법은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있는 기회라 저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요. 저는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이제는 속인과 결별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절대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들과 연락했더니 법률 문서를 하나 보내주었습니다. 현지 수련생들과 토론하면서 정법위에 직접 전화해 이 일을 대면하고 싶다고 했더니 동의해주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수련생들에게 정념을 발해달라고 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한 뒤 정법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법위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아무개 씨 맞습니까?”라고 묻길래 “네”라고 했더니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면 앞으로 당신 이름을 명단에서 삭제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쓸 수 없습니다. 제가 쓰면 당신에게 좋지 않고, 당신 가족과 자녀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정말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당신은 업보를 받게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헌법에는 공민에게 신앙 자유와 언론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라는 법률 조항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공안부에서 발표한 14종 사이비교 명단에도 파룬궁은 없습니다. 장쩌민 일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불법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치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며, 건강 개선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또한 왜 파룬궁이 합법인지, 제가 예전에 온몸에 병이 있었는데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서 나았으며 가정이 화목해졌다고도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찌 연마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때 저는 울면서 “저는 정말 당신을 위해서예요! 당신이 업보를 받을까 봐 걱정돼요! 얼마나 많은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이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했다가 업보를 받았는지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런창샤(任長霞-덩펑시 공안국장, 파룬궁 박해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공안부 ‘영웅 모범’으로 선정됨)는 대법제자 박해의 선봉에 섰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당시 차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살았고 그녀만 죽었어요. 이게 바로 인과응보 아닌가요? 저는 정말 당신이 런창샤의 뒤를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의 배후 사악한 요소들이 해체됐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이 또 쓰라고 하길래 안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가 믿지 않아 전화한 일을 말해주었고, 다시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진상을 알리다
지난 몇 년간 저는 타지에서도 현지 수련생들과 접촉해 함께 진상을 알렸습니다. 매일 오전과 저녁에 나갔는데,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번은 고속철도역에서 열차에서 내린 7명의 스튜어디스가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이 몇 명의 중생을 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예쁜 아가씨들,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더니 그들은 “우리는 휴가라 여기에 놀러 왔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은 칠선녀 같아요. 다들 이렇게 아름답네요. 저는 동북 사람인데 먼 곳에서 이렇게 만나니 정말 인연이 있네요. 아주머니가 여러분에게 안전은 보장받는 좋은 일을 알려줄게요. 특히 여러분은 날마다 하늘을 나니 더욱 안전해야 해요”라고 했더니 모두들 좋다고 했습니다. “공청단에 가입한 적이 있나요? 붉은 스카프(공산당 소년선봉대원이 매는 것)를 맨 적 있나요?”라고 묻자 다들 가입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공청단 조직에 들어갈 때 다들 주먹을 들고 평생을 그것에 바치겠다고 맹세했으니 여러분은 그것의 일부분이에요. 장래에 하늘이 중공을 멸할 때 여러분도 함께 그것을 따라 소멸될 수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그 조직에서 탈퇴하면 맹세를 무효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들에게 가명을 지어주었더니 모두 동의했습니다. 또한 파룬따파가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으며 100여 개 국가에 파룬궁수련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면 복을 받을 거예요”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때 차가 와서 그들은 떠났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정말 기뻤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줄을 서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양성 판정을 받은 학생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데 어떤 아이는 부모가 데리러 왔습니다. 부모 없이 온 학생들을 보고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때는 많이 말할 수 없었는데 사람이 많아서였습니다. 저는 공산당 조직을 탈퇴해야 안전할 수 있고, 실명이든 가명이든 신께서는 사람의 마음만 본다고 했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조작이고, 대법은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으며, 많은 대학원생과 박사들도 연마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휴대폰으로 ‘장자석(藏字石)’을 검색해보라고 하면서, 그 돌에 새겨진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매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제 말을 듣고 대부분 탈퇴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줄을 선 곳 뒤에서 앞으로 가며 지혜롭게 말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해변에 갔는데 학생들이 쉬는 날에는 그곳을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공산당 조직을 탈퇴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워서 제 수첩에 적게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구원되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는데,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한번은 한 여고생을 만났는데 공청단에 가입했냐고 묻자 가입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탈퇴하면 안전할 거예요”라고 했는데, 제가 설명도 하기 전에 그 아이는 “탈퇴할게요”라고 했습니다. 왜 탈퇴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라고 했더니 잘 기억 못 하겠다며 다시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마디 하면 그 아이도 한마디씩 따라 했는데 집에 가서 매일 염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몇 가지 사례만 들었지만 말할 게 많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많은 사람의 마음이 있고 잘하는 수련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집착심을 더욱 많이 제거하고 잘 수련해서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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