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춘란(春蘭)
[명혜망] 올해 84세인 저는 1997년에 기쁘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대법 수련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당시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이 책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최종 목적인 반본귀진(返本歸眞)에 이르려 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할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 매우 행운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수십 년간 방황하다 오늘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으니, 저는 수련을 잘하겠다고 결심했고 사부님께서 하시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래에서 제가 25년 동안 겪은 일부 수련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대법에 입문한 후 신기한 일이 나타나다
저는 농촌에 사는 할머니로 초등학교를 몇 년밖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40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네 아이를 두고 갔습니다. 밭일과 집안일로 늘 바빠서 식사를 거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수십 년을 보냈고, 배웠던 글자도 거의 잊었습니다. 수련을 막 시작했을 때 《전법륜》을 읽지 못해 단체 법공부에서 책을 진지하게 보면서 수련생들이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법을 읽지 못하니 매우 조급했습니다. 모르는 글자는 법공부 장소에서 수련생들에게 물어보거나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물어봤는데, 신기하게도 며칠 지나지 않아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대법을 얻기 전에는 450도 돋보기를 썼는데, 며칠 후에는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글자가 매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이전에 제게는 위장병이 있어서 음식을 매우 조심해서 먹었고, 차갑거나 딱딱한 것은 감히 먹지 못했으며 밥을 천천히 씹어 삼켰습니다. 1년 중 반년은 구강 궤양으로 밥 먹고 물 마시는 게 매우 고통스러웠고, 여기저기서 치료를 받고 양약과 한약을 많이 먹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1개월도 안 돼 이런 병이 다 나았고 건강을 되찾아 몸이 가벼워졌으며, 25년 넘게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법공부를 열심히 하고 저녁에는 빠짐없이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습니다. 날씨가 아무리 안 좋아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비 오는 날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려고 가는 도중에 비가 점점 더 심하게 내리고 번개가 치며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천둥이 제 가까이에서 ‘쾅’ 하고 치자 저는 “사부님 보호해주세요!”라고 외쳤는데, 몸에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저를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다 다른 사람에게 세 번 치여 넘어졌지만 무사했습니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뒤에서 저를 들이받아 제가 날아가 땅바닥에 심하게 부딪혔지만 일어난 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청년도 오토바이가 넘어졌고 얼굴에 피가 가득했습니다. 그가 괜찮냐고 묻자 저는 아무 이상 없다며 파룬궁수련생이라 사부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돈 몇십 위안을 주며 병원에 가보라고 하자 그는 돈을 받지 않고 “할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한 남자가 저를 들이받아 넘어뜨렸고 저는 코피를 흘렸습니다. 그 사람이 기어코 돈을 주려고 했지만 저는 거절하며 파룬궁수련생이라 이상 없으니 그냥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과 옆에 있던 사람들은 파룬궁수련생은 정말 좋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전동스쿠터를 탄 한 아가씨가 자전거를 탄 저를 들이받아 길 건너편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때 저는 잠시 의식을 잃었는데, 함께 있던 수련생이 자전거를 세울 겨를도 없이 달려와 저를 부축했고 진상 자료가 길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제 얼굴에서 피가 흘렀지만 금방 정신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였고 어떤 사람은 그 아가씨더러 어서 저를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 처녀가 100위안을 꺼내 저에게 주려고 하자 저는 파룬궁수련생이라 괜찮다며 받지 않았습니다. 구경하던 한 사람이 “나이가 저렇게 많고, 저렇게 다쳤는데 100위안으로 되겠어요?”라고 하자 그 아가씨는 100위안을 더 꺼내 200위안을 땅에 내던지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녀가 어디 사람인지 물었지만 다들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돈을 돌려줄 수 없으니 사람을 구하는 진상 자료를 만드는 데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착한 사람이 물을 떠다 주어 저는 세수를 했고,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 부씩 자료를 나눠줬습니다. 그들은 집에 가서 잘 보겠다며 파룬궁수련생은 남다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제 얼굴은 크게 부었고 군데군데 딱지가 앉았습니다.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서 “사부님, 제 얼굴이 이렇게 되어 어떻게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사흘째 되는 날 제 얼굴은 정상으로 회복됐고 피부가 매끄러웠으며 상처 자국도 없어졌습니다.
2. 진상을 꾸준히 알리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범죄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고 사악한 거짓말로 천지를 뒤덮어 파룬궁을 모독했습니다. 대법의 결백함을 실증하고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저는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저는 대법 진상자료 두 꾸러미를 갖고 갔는데, 한 꾸러미는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고 다른 한 꾸러미는 자전거 뒷좌석에 실었습니다. 큰 꾸러미는 먼저 은밀한 곳에 놓고 표시를 해두고, 한 꾸러미를 다 나눠준 후 다시 돌아가 가져왔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다 나눠줄 때까지 했습니다. 때로는 혼자 가기도 하고 때로는 수련생과 함께 가기도 했으며,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며 나눠주었습니다. 점점 더 멀리 다녔는데 가장 먼 곳은 집에서 15km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사람들을 대면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마을에 사람이 없으면 자료를 나눠주고 사람이 있으면 “자료를 한 부 줄 테니 잘 보세요. 위에 선량한 사람이 되고 도덕을 회복하라고 써 있어요. 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대면해 진상을 알립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말합니다. 처음 진상을 알릴 때는 좀 난처했고 고개를 숙이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으며, 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보기 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극복했습니다. 이제는 진상을 알릴 때면 늘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 얼굴을 보고 말합니다. 때로는 점심때 집에 돌아가지 못해 만두 두 개를 사서 길에서 먹기도 합니다. 딸이 농담 삼아 “어머니, 낯이 두꺼워지셨네요”라고 하자 저는 “엄마는 사부님 말씀대로 하는 거야. 사부님께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으니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장터, 시장, 학교 정문, 수리점, 이발소, 방앗간, 분식점, 큰길과 골목, 길가, 밭 등 어디든 가서 말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수련생의 전동삼륜차를 타고 함께 갔습니다. 저희는 주로 장을 따라다니며 진상을 알렸는데, 장에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에는 3일마다 큰 장이 서고 이틀마다 작은 장이 섭니다. 어떤 장은 수십 km나 떨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무사히 구원받게 하려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때로 연극을 하면 저도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동안 저는 아래에서 구경꾼들에게 한 명 한 명 자료를 나누어 주며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보물을 가져왔으니 잘 보세요. 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는데, 중공 악당이 파룬불법(法輪佛法)을 반대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면서 큰 죄를 저질렀으니 어서 악당 조직에서 탈퇴하세요. 삼퇴해야 평안할 수 있어요.” 공연이 끝나면 저는 무대 뒤로 가서 화장을 지우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힘드시죠? 제가 진상을 여러분 앞에 가져왔으니 잘 보세요. ‘톈안먼 분신 사건’의 진상과 파룬따파 수련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 악당이 어떻게 잔혹하게 좋은 사람을 박해했는지 보세요.“
때로는 제가 다른 곳에서 진상을 알리고 무대 뒤에 가 보면 그들이 이미 화장을 지우고 식사하러 간 뒤라 주방까지 쫓아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대담하다고 했는데 저는 “좋은 일 하는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게다가 사부님 법신이 제 곁에 계시는데 무서울 게 없죠”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한 차례 공연에서 저는 20여 명을 탈당시킬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이 종종 어떻게 해냈느냐고 물으면 저는 “마음속에 법이 없으면 안 되고, 하나하나 모두 사부님께서 지도해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는 수련생들이 저와 함께 가면 효과가 더 좋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10여 명 혹은 20여 명을 탈당시킬 수 있어서 한 차례 공연에 50~60명이 탈당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매우 비이성적인 사람도 만났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험악하게 “나이가 많으신데 집에서 편히 계시지 왜 밖에 나와 죽으려고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죽으려고 나온 게 아니라 진상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을 구하러 나왔어요. ‘진선인(真·善·忍)’이 뭐가 나쁜가요? ‘진선인’을 반대하는 사람이 위험하지 않나요?”라고 하자 그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멈췄습니다. 또 “난 안 믿어, 뭐가 그리 대단한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사람이 신과 내기를 해서는 안 돼요. 계속 그러다간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또 “100위안을 주면 자료를 볼게요”라고 하는 사람에겐 “100위안이 값진가요, 당신 목숨이 값진가요? 우리 사부님께서 당신 목숨을 구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특별히 사악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속에 순탄하게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3. 자식들이 준 돈으로 사람을 구하다
대법을 얻기 전에 저는 중국 전통 관념으로 아이들을 교육했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남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축의금은 줘도 되지만 결혼식에는 가지 마라. 거기서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면 적절치 못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을 얻은 후에는 ‘진선인’의 이치로 자식들을 교육하며 “동료들과 잘 지내고 관용을 베풀어라”라고 알려줬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어머니는 온종일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신다고 하는데, 그렇게 큰 책임을 질 수 있으세요?”라고 하자 저는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고 계시고 우리는 사부님을 돕고 있단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큰일을 하라고 하셨으니 엄마도 해낼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자식들은 늘 저에게 돈을 주었고 집에 올 때마다 돈을 주었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어머니, 얼마를 드릴까요?”라고 하자 며느리가 “묻지 말고 그냥 드리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검소하게 살면서 기본 생활비 외의 돈은 모두 대법 항목에 썼습니다. 돈을 모으지 않고 돈이 생기면 바로 대법 항목에 투입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아들이 저에게 작은 전동삼륜차를 사줬습니다. 올해 저는 대부분 77세 된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렸는데, 그 수련생도 몇 년 전부터 자전거 대신 전동 이륜차를 탔고 가끔 제 삼륜차에 탔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장을 따라다녔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배운 후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 대법제자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 더욱 느꼈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따를 것이며 사부님께서 저보고 많은 사람을 구하라고 하시면 많은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나이가 많다고 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합니다. 또 늙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늙지 않았다고 합니다. 80대가 아니라 60대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저는 젊음을 되찾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고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원만해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3/47108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23/471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