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고치는 과정에서 심성 제고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얼마 전 법공부를 하러 법공부 팀에 갔을 때 수련생 리(李) 언니가 ‘전법륜’ 두 권을 나에게 주면서 다른 수련생이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한 사람은 눈이 침침해져 대법 책을 볼 수 없고, 한 사람은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 책을 보내왔다고 했다.
나는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 대법 책의 ‘논어’는 손으로 계속 문질러서 글자가 없어졌고, 책 중간 부분이 눈에 띄게 손상되어 일부 페이지가 거의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다른 대법 책은 매우 낡아서 뒷부분 몇 페이지가 매우 더러웠고, 책장이 거의 떨어질 뻔해 테이프로 붙여 놓았으며, 책장을 넘기는 부분 전체가 거의 손자국으로 가득했다. 어떤 페이지는 크게 얼룩져 있었고 고친 글자도 떨어져 나갔으며, 어떤 글자는 앞 페이지에서 글자를 고칠 때 사용한 접착제가 스며들어 약간 흐릿해졌다.
우리는 모두 대법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법 책은 우리의 법보(法寶)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책은 이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전법륜) 우리가 매일 공부하는 대법 책을 우리는 그만큼 소중히 여겼는가?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고치는 것을 진지하게 대했는가?
어떤 연로한 수련생은 글자를 고칠 때 힘이 들고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가정사에 얽매여 시간이 없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서로 도와줄 수 있다. 대법 책의 글자를 고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대법제자의 영광이니 우리는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하고 엄숙히 대해야 한다. 이전에 중시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마땅히 개선해야 한다!
나는 수련생을 도와 대법 책 몇 권을 고친 적이 있다. 나는 어떤 수련생은 책 표지를 씌우지 않아 원래의 투명 필름층이 벗겨지고 뒤표지가 파손된 것을 보았고, 어떤 책 표지는 광고지로 싼 것도 있었다. 어떤 수련생은 집안은 매우 깨끗이 정리했지만, 대법 책은 오히려 상자 안에 넣어두고 그 안에는 안경, 연필 등 잡동사니가 함께 들어있었다. 대법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주었고, 천상의 신들도 모두 경건히 무릎 꿇고 법을 배우는데, 우리 대법제자들의 대법에 대한 경건함과 존경심은 어디에서 체현되는가?
어떤 수련생은 고친 글자가 모두 틀렸는데도 바로잡지 않는다. 예를 들면 101쪽 11행의 “전혀 몰랐으며(不懂得)”, 109쪽 8행의 “모른다(不懂得)”, 241쪽 9행의 “꼭 그렇지는 않다(不見得)”, 259쪽의 “그런 것도 아니라(不見得)”, 291쪽 15행의 “꼭 그런 것은 아니라(不見得)”에서 ‘득(得)’자는 고칠 필요가 없는데, 어떤 수련생은 자세히 보지 않고 모두 ‘적(的)’자로 고쳤다. 우리는 다시 한번 찾아보고 주변에 이런 실수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전에 글자를 고칠 때 사용하던 접착제가 세월이 지나 약간만 건드려도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이미 떨어진 것도 있는데, 다시 새로 붙여야 한다. 접착제가 스며들어 흐려진 글자는 페이지와 행을 기록해 두고, 교체해야 할 글자를 모두 적어서 자료점 수련생에게 부탁해 레이저프린터로 인쇄해 교체할 수 있다(글꼴은 송체 4호). 나는 어떤 수련생이 컬러프린터로 인쇄한 글자가 쉽게 마모되고, 글꼴과 크기가 원본과 다른 것을 보았는데, 우리는 이것도 통일된 글꼴과 크기로 변경해야 한다.
처음 글자를 고칠 때 나 자신도 아주 어렵고 번거롭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부분(部份)’의 ‘분(分)’자 앞에 ‘인(人)’ 변을 써넣어 ‘분(份)’으로 바꾸고, ‘나(那)’도 앞에 ‘구(口)’ 변을 써넣어 ‘나(哪)’로 고쳤다. 이는 편의를 위해 그리고 수고를 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사부님께서 자신이 글자를 써넣어도 된다고 하셨다는 등의 변명을 했다.
신성한 대법 책 속에 자신이 쓴 미숙하고 삐뚤삐뚤하며 크기가 제각각인 글자가 어울리지 않게 끼어들어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울컥하고 아팠다. 나는 내가 잘못했음을 깨닫고 사부님께 매우 죄송스러운 마음에 즉시 고쳤다. 사부님께서는 고쳐야 할 글자는 인쇄해서 붙여도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게으르고 번거로워했을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慈悲(츠뻬이)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의 마성은 곧 악(惡)으로서, 살생하고, 훔치고 빼앗고, 이기적이고, 사념(邪念)적이며, 시비를 걸고, 선동하며 요언을 날조하고, 질투하고, 악독하며, 발광하고, 게으르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등등으로 표현된다.”(정진요지-불성과 마성)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게으름은 바로 마성(魔性)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제자: 어떤 제자는 책 속의 개자(改字) 문제를 중시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후 사람에게 이런 책을 남겨 줄 수 있겠습니까?
사부: 이후 사람의 일은 사부가 한다. 하지만 대법제자가 해야 할 것은 그것을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제자: 제자는 현재 한 가지 현상에 직면했는데, 바로 어떤 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일부 대법 책을 법 공부 장소에 보내오는 것입니다. 이런 대법 책은 어떤 것은 글자를 고치지 않은 낡은 판본이고, 또 새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의 종이가 더럽혀졌거나 혹은 종이가 아주 딱딱해졌거나 아주 낡아서, 제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부: 박해가 그렇게 엄중하여, 사람들은 책을 감췄는데, 보관한 것이 그다지 좋지 않을 수 있다. 책이 없는 사람으로 말하면 그것도 아주 진귀한 것이다. 글자를 고치지 않은 것은 글자를 고칠 수 있다. 더럽혀진 것은 문제 될 것 없고, 여전히 배울 수 있으며, 사용할 수 있다. 정말 파손되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이 소각할 수 있는데, 당신은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일을 신은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제자: 새로운 『전법륜(轉法輪)』이 나왔는데 글자를 고치지 않은 이전의 『전법륜(轉法輪)』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용해도 됩니까,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까?
사부: 책이고, 법(法)이 아닌가. 글자 몇 개 때문인데, 당신이 그것을 고치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대법제자이니 반드시 최선을 다해 잘하고 대법 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전에 중시하지 않고 잘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바꾸기 시작하자! 모두 함께 노력하고 정진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말자!
원문발표: 2024년 3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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