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길 좋아했고, 그게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련생이 법에서 벗어나는 걸 보면 큰소리로 명령조로 당당하게 지적했습니다.
한 노수련생이 말을 부드럽게 하면 수련이 잘 된 거라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20여 년간 법공부와 최근 몇 년간 법 암기와 필사를 하고, 박해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차 자신을 수련할 줄 알게 됐고 차츰 평온해졌습니다. 수련에 지름길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고 늘 안으로 찾으며 착실히 제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1. 법을 베끼며 조바심을 수련하다
언니, 동생이 모두 법 필사를 시작했는데 저는 아직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외우는 게 낫지, 필사는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의 영향으로 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니가 바인더 노트를 사줘서 신념을 더 굳히게 됐습니다.
공산당식 습관과 현대적 의식행위를 깨달은 후, 글귀가 짧아서 틀리기 쉽지 않은 ‘홍음5’부터 베껴 썼는데 예상 밖의 이런저런 실수로 온전히 베끼지 못했습니다. 종잇값도 만만찮고 행간도 고르지 않았습니다. ‘간단해 보였는데 왜 이리 어려울까? 아, 이게 바로 수련이구나!’ 우리는 필사 자체를 위해 필사하는 게 아닙니다. 과시심, 경쟁심, 성급함, 경건치 못한 마음 등 많은 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건 법에 대한 불경이 아닐까요? 이후 시간을 잘 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쓰니 실수가 줄었습니다.
전법륜 첫 번째 강의를 다 필사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연말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가 발표되어 사람 구하는 일이 법 필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중단했습니다. 며칠 뒤 한 수련생이 법 필사는 중도에 포기해선 안 되고, 완결은 짓고 끝내야 한다고 해서 다시 시작했는데, 속도만 추구하면서 진지하지 않았습니다.
왜 저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가는 걸까요! 어느 신이 이렇게 허둥지둥할까요? 정월 초하루에 아들과 함께 스좌장시 대불사에 가서 긴 비문을 봤는데, 돌에 글자를 새기는 건 빨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인내심이 필요했을까요! 선조들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고 우주대법을 필사하는데 이 얼마나 큰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인가요! 그런데 저는 너무나 경건하지 않았습니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왼쪽 길로 가려 했더니, 아들이 큰길로 가야지 샛길로 가면 안 된다고 일깨워줬습니다. 문득 크게 깨달으며 즉시 큰길 한가운데로 향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더 법을 필사하면서 신의 장엄하고 신성한 세계에 들어간 듯했습니다. 자비로운 표정과 평온한 마음으로 신의 형상을 천천히, 신중히 묘사했습니다. 시간 개념은 사라지고 빠르고 느리다는 생각, 성급함도 많이 줄었습니다.
법 필사도 공부(功夫)의 체현입니다. 우리가 연공하듯 세월이 누적되면 자연히 완성되게 됩니다. 사악한 공산당식 습성도 많이 제거했습니다.
2. 사사로운 정을 제거하고 이지적으로 소통하다
어떤 일도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정이 별로 없다고 느꼈는데, 둘째가 휴대폰으로 10만 위안(한화 1,800여만 원)을 잃었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쥐어짜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대법의 지혜로 간파했습니다. 저의 이 약점은 사사로운 정이었습니다.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니야, 어서 벗어나자. 난 그걸 원치 않아!’ 잠시 후 힘들지 않았습니다. 수련 중엔 우연이 없습니다.
며칠 뒤 딸이 집을 사겠다며 돈을 보태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큰아들도 똑같은 이유로 돈을 보태 달라고 했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오나 싶었습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마음이 바르지 않아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요즘 정세가 어수선한데 위안화가 평가절하되면 어쩌나 하는 속인식의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번엔 구세력이 이런 이유로 저를 무너뜨리려는 했습니다. 대법제자는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고 우리의 자원은 대법에 속하니 구세력이 경제적으로 파괴하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습니다. 마음을 바로잡고 자녀들에게 현재의 혼란상에 대해 말하고 다음에 천천히 보자고 말했습니다. 딸은 집을 보고 바로 계약금을 낼 참이었는데, 제가 기점을 바로잡은 다음 날 전화를 해서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계약을 안 했지만 했다면 끝도 없을 뻔했습니다.
둘째 아들에겐 정이 있어서 그가 남에게 속아서 인생이 어려워질까 봐 걱정됐습니다. 속으로 둘째가 돈을 잃은 걸 꾸짖고 원망도 했는데, 또 그가 제 말을 거부하고 돈을 다른 데서 빌리려 할까 봐 겁도 났습니다. 이건 수련인의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대해야 했습니다. 사심과 정을 내려놓고 대법에서 닦은 지혜로 편지를 썼습니다. 거기에는 사부님 말씀과 선량함 지키기, 복덕을 쌓는 법을 인용했습니다.
3. 관용과 너그러움을 닦아내다
한 달 전 폭우 후 마을 농지와 길에 물이 차서 한동안 빠질 데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 밭 물을 길로 퍼냈는데 물이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땅은 인근 오목한 곳에 있어서 자연히 그 물이 다 모였습니다. 이웃이 찾아와 “아직도 집에 있어요? 누가 퍼낸 물이 다 당신 땅으로 다 흘러갔어요. 어서 가봐요!”라고 다급히 말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평온히 삽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미끄러져 머리를 시멘트 길에 부딪혔습니다. 저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며 ‘요새 사람들 자기밖에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세 사람이 또 제게 알렸지만 저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전이라면 손해를 볼까 봐, 체면을 구기고 남에게 약해보일까 봐 걱정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모든 걸 버리실 수 있는데, 이런 일은 너무 보잘것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니 포용심이 있어야 합니다. 일상의 암투 속에서도 평온한 자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게 아닐까요? 대법의 위덕이 아니었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저도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맺음말
지난 20여 년간의 비바람 속에서 법 얻은 기쁨, 뼈에 사무치는 집착 베어버리기, 승화 후의 여유로움, 사람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의 무력함, 박해의 두려움과 고통, 후천적인 관념을 깨고 본성 드러내는 진아(眞我) 등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 좋은 일이었습니다. 정법 수련도 막바지고 우리도 점점 이지적이고 평온해지고 있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며, 대법의 지도로 반본귀진(返本歸眞)할 수 있어서 행운입니다! 정말 행운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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