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심우(心雨)
[명혜망]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30세도 안 됐지만 고혈압으로 약을 먹고 있었고 유방 비대증까지 있었다. 하지만 파룬따파를 만난 후 모든 병이 나아 약을 다 버릴 수 있었다.
유일한 선출직 교무부장
한 번은 동료 교사가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선출로 뽑힌 교무부장이에요”라며 존경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1999년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렇게 좋은 수련을 왜 못 하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7월 22일,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가 돌아와서는 교장에게 전체 교사회의에서 비난을 받았다. 이후 몇 년간 정치적으로 민감한 날이 되면 학교에 감금되어 집에도 못 가고 급여와 상여금도 못 받았다. 2002년 7~8월에는 노동수용소 세뇌반에 두 달간 갇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파룬궁수련자라는 걸 잊지 않고 직장에서 늘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했다. 매년 연말 우수사원을 뽑는 민주 투표에서 표를 많이 받았지만, 상부의 압박 때문에 교장이 교육국에 보고하지 못했다.
성실한 능력을 인정받아 2002년 9월 학년 부장으로 승진했고, 젊은 교사들의 학급 운영과 수업 지도를 도왔으며, 교사들과 원활히 소통하며 학년 업무를 총괄했다. 우리 학년은 여러 번 칭찬을 받았다.
2008년 우리 지역 학교 간부진이 크게 개편되어 새로운 교장이 부임했다. 교무 주임들은 모두 승진 발령을 받아 학교를 떠났고, 2~3개월 된 젊은 주임만 둘 남았다. 교장은 의견을 구하며 교무 전반을 총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교사를 교무부장으로 임명하려 했고, 경력 많은 교사가 날 추천했다. 각 교과 조장들은 해당 교사들을 대표해 투표했고 내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교장은 조만간 교육국에 보고하고 날 교감으로 승진시키겠다고도 했다.
보통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임명할 때는 적합한 교사를 교장이 직접 교사회의에서 발표한다. 하지만 1997년 학교 설립부터 내가 2021년 퇴직할 때까지, 나는 유일하게 교사들의 투표로 선출된 교무부장이었다.
“교장 선생님, 그 수료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무부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교장이 날 불러 누군가 교육국에 전화해 우리 학교가 파룬궁수련자를 교무부장으로 임명했다고 고발했다고 전했다. 나는 교장에게 부담 주기 싫어 교무부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장은 “저도 두렵지 않은데 선생님이 왜 두려워하나요?”라며 내가 계속 교무부에서 일하도록 했다. 다만 교감 승진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나는 퇴직할 때까지 13년간 교무부장으로 일했다.
대법 수련 덕분에 나는 언제나 근면성실하게 일했고 사부님께서 지혜를 많이 주셔서 교육 관리와 연구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교장은 나의 인품과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내가 이끌어준 여러 젊은 주임들은 교감으로 승진해 내 상사가 되었다. 교장은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함을 품고 있어서 내 직급 평가에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업무 보고를 하러 가니 교장이 내 앞에서 시 교육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교감으로는 승진시킬 수 없어 미안하다며, 내 고위 직급 평가에 도움 주고자 시 단위 공개수업 증서를 떼주길 부탁했다. 시 이상 단위 공개수업 경력이 있어야 고위 직급 평가 자격이 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교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데다 승진하면 월급도 수백 위안씩 오른다. 하지만 나는 파룬궁수련자로서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써서 교장의 호의를 거절한 이유를 밝히고, 이 기회에 대법에 관한 진상도 알렸다.
편지에서 먼저 교장의 도움에 감사를 표한 뒤 다음 두 가지 이유로 거절한다고 썼다. 첫째, 파룬궁은 문제에 부딪히면 타인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교장과 연구원이 날 위해 허위증서를 만들면 그건 거짓이 되므로 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고 양심상 편치 않다. 둘째, 그 증서는 내게 중요하지만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므로 진선인 중 ‘진(眞)’에 어긋난다.
이렇게 대법의 법리에 따라 나는 교장의 호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대법이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었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대법의 생명으로 살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정념으로 문제를 보고 중생을 자비로 대하다
2009년에는 교육국의 엄격한 심사로 배정이 어려웠던 전학생 6명이 잠시 우리 학교 분교(도심 속 농촌 학교)로 왔다. 학부모들은 학교 최고의 교사를 배정해달라 요구했고, 교장은 또 날 선택했다. 주민센터와 학교 입구에는 “핵심교사 ○○가 ○○분교 1학년을 가르치러 갑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그 반에는 이 도시 아이들 외에도 장사하는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 20여 명 더 있었다. 과일장사, 군고구마장사, 냉면장사, 야채장사, 부침개장사 등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부모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아 아이 교육법을 모르고 생계 때문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은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견문이 좁으며 취학 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고가 활발하지 못했다. 여름엔 까만 발을 드러내고 겨울엔 콧물을 질질 흘려 내가 예전에 가르친 아이들과는 너무 달랐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옷 입는 법, 연필 깎는 법, 책가방 정리하는 법, 숙제하는 법 등을 가르치며 좋은 생활 습관, 학습 습관, 독서 습관을 기르게 했다. 이들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순박하고 말을 잘 들으며 선생님 말씀대로 하려고 애썼다.
부모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는 건 불가능했기에 내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인내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책도 같이 읽고 숙제도 같이하며 부모님이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 주었다. 아이들도 열심히 해서 기말고사에서 본교의 상위 9개 반에 들었다.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성탄절 전날, 16명의 아이가 자기 집 과일 좌판에서 ‘평안의 과일’ 사과를 선물로 가져왔다. 나는 예쁜 포장지를 뜯고 열여섯 개의 사과를 씻어 반으로 잘라 서른두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사과 한 조각씩 건넸다. 교실은 그 내내 조용했다. 아이들은 평안의 과일을 먹으며 선생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느꼈다. 이 선생님의 사랑은 내가 대법 수련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대법 수련으로 타인에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학습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의 변화
2010년, 6학년 담임이 출산휴가를 내자 교장은 내게 그 반을 맡겼다. 국어 수업과 담임을 맡게 된 그 반은 당시 4개 반 중 꼴찌였다. 아이들과 수업 중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의 국어 지식이 빈약하고 국어 실력이 부족함을 느꼈다.
반 아이들 상황에 맞춰 나는 예습하는 법과 문자, 어휘부터 가르쳤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법을 가르쳤다. 학습 방법과 능력을 길러주고 이해력, 소통 능력, 표현력을 높여주고자 아침 읽기 시간과 오후 쓰기 시간을 잘 활용했다. 우수 학생은 더욱 실력을 높여주고 부진한 학생은 보충 수업을 해주었으며, 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격려하고 곁에서 도와주어 자신감과 의욕을 북돋워 주었다.
첫 번째 학부모 상담회에서 나는 2시간 동안 양육법과 교사의 지도에 협조하는 법을 전했다. 아이들은 크게 달라졌고, 중간고사에서 60명 중 42명이 90점 이상을 받았다. 자녀들의 성적이 급속히 오른 것을 본 학부모들은 진심으로 교사의 노고에 감사했다. 한 학기도 안 돼 국어 성적은 꼴찌에서 1등으로 올라섰다.
반에 모든 과목 기초가 매우 부족한 아이가 있었다. 국어 점수는 20점대였다. 받아쓰기를 하면 글자를 모르니 종이에 동그라미만 그렸다. 아이는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부모도 아이에게 희망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고, 그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인데 희망이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나는 여러 차례 부모와 소통하고 자녀교육 서적을 추천하며 다시 가정교육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차별이나 질책 없이 끈기 있게 지도했고,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으면 칭찬해주었다. 서서히 아이는 자신감과 학습 의욕을 얻었고, 수업 시간에 눈빛이 반짝였으며 학습 열정이 높아졌다. 점수도 조금씩 올라 마침내 국어 시험에서 70점 이상을 받게 됐다.
몇 년 후 어느 날, 그 아이가 교무실로 날 찾아와 자신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했다. 기숙사 사감을 맡고 있고 전공에 큰 만족을 느끼며 미래 직업에 대해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밝고 환한 얼굴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이를 보며 교사가 된 것에 보람을 느꼈다!
보통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은 졸업 후 자존감이 낮아 학교에 찾아오지 않는다. 이 아이가 교문을 들어서고 교무실로 와서 날 마주한 것은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밝은 마음으로 삶과 미래를 대할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아름다울 것이다.
대법의 진선인 법리가 나에게 사람 되는 법, 타인을 위해 사는 법,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번 생에 가장 행복한 일은 대법을 얻어 날마다 대법 속에 잠겨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제자를 위해 마음 써주시는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사부님과 함께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4/3/29/4741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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