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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항목에서 대법의 원융함을 느끼다

글/ 일본 대법제자

[명혜망] 눈 깜짝할 사이에 글쓰기 팀에 합류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연례 교류회를 맞이해 저의 수련과 진상을 알린 과정을 요약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생명의 번영함을 느끼다

글쓰기 팀 협조인 역할을 맡고 있는 저는 글쓰기 팀 외의 수련생들과 소통하는 동시에 직접 글도 써야 합니다. 협조인을 맡은 첫해에는 수련생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듭 안으로 찾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처음에는 서로 일을 미루던 데에서 이제는 서로의 부담을 나누고, 문제가 생기면 원망하던 데서 이제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협조 과정에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다양한 수련생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각자의 장점에서 저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주 속에는 바로 부동한 생명이 있고, 부동한 중생이 있으며, 부동한 신이 있으므로 모두 똑같이 변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안 되며 그러면 우주도 번영하지 않게 된다.”(각지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수련생들의 언행을 통해 저는 대법의 진선인(真·善·忍) 특성이 각기 다른 층차에서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롭게 드러나는지 깨달았습니다. 생명의 다양성에서 창세주의 자비로운 조화를 느꼈습니다.

2.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다

글쓰기 팀 외의 수련생들과의 협력이 점점 더 잘 돼 이제는 특별한 소통 없이도 항목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됐습니다. 협조 업무가 줄어든다는 것은 글쓰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한 가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저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전화 진상 알리기에 적합한 원고를 쓰는 게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아가며 글을 완성했는데도 협력하는 수련생들은 여전히 제 문장의 구석구석을 트집 잡곤 했습니다. 내용이 깊이가 없다느니, 표현이 지나치게 문학적이라느니, 문장이 너무 길어 전화로 읽기 힘들다느니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세간(世間)과 천상(天上)에서 천명(天命)을 부여받았으니, 두터운 德(더)를 갖추었을뿐더러 그 마음이 착하고,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정진요지-성자). 순간 마음속의 불평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 말씀은 저를 세속의 겉모습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매우 큰 천명(天命) 앞에서 눈앞의 갈등이 너무나 사소하게 느껴졌고, 다시 평온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 제 사람의 마음을 깊이 살펴보니, 지식인으로서 자신을 고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습관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원래는 이런 마음 덕분에 속인사회의 물결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제 안에는 강한 명예욕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 들고, 다른 이에게 얕잡아 보일까 두려워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명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저는 종종 화를 내고 원망하며 억울해했습니다.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 것 같아도 그 이면에는 자신의 집착과 나쁜 마음을 감추려는 속셈이 있었고,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악순환에 빠지곤 했습니다.

수련생들의 지적에 자꾸 자극받으면서, 수련의 길이 매우 좁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명예와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면 깊숙이 감춰둔 공포와 참지 못하는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점차 제 마음이 넓어졌고, 비판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고치고, 없다면 더욱 노력하리라 생각했지요. 이런 심성의 도약은 일상 업무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어느 날 동료가 사장님의 험한 성격과 꾸중에도 불구하고 차분함을 잃지 않는 저를 존경한다고 말했는데, 저는 그것이 사부님의 격려라 여겼습니다.

또한 수련생과의 다툼 이면에는 제 강한 질투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질투심 때문에 저는 수련생들의 장점을 보지 못했고, 수련생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들의 단점만 마음에 담아두곤 했습니다. 질투심을 발견한 후에도 그 마음은 반복해서 올라와 좀처럼 없애기 어려웠습니다. 갈등 속에서 질투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다음에 조심하면 된다며, 새로운 충돌을 피하려고 수련생들과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파고들자, 거기에는 다른 수련생들에 대한 불만과 트집잡힐까 두려워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갈등을 회피하고 안일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교류회에서 제가 다른 수련생에게 질투심이 너무 강해 감사의 인사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비록 짧은 한마디였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사부님께서 저에게서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을 제거해주심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질투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고, 마음은 밝고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련은 아는 것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하며, 선한 생각과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비로소 진정한 제고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글쓰기 팀 수련생들은 이렇게 갖가지 고난과 사람마음의 부딪침 속에서 2년여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탈당을 권유하는 일련의 절차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최전선에서 전화를 거는 수련생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그들이 각양각층의 중생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우려 했습니다. 계층과 중독 정도가 다른 사람들을 대면하며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정법의 큰 흐름 속에 더 많은 이를 구원하고자 힘썼습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힘이 있을지, 거의 한 글자 한 문장씩 곱씹어보며 중생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논의했습니다. 마음에 매듭이 있는 이들을 대할 때는 순서를 밟아 그들의 마음을 열고 관념을 바꾸며, 끝까지 귀 기울이도록 이끄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원고의 작은 부분이라도 오랫동안 의논하곤 했습니다.

특히 생체 장기적출과 중공의 살인 역사 같은 핵심 주제로 글을 쓸 때면, 갈등이 격화되어 항목이 중단 직전까지 가기 일쑤였습니다. 우리가 매번 심성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강력한 글은 나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고비를 통과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돌파한 뒤의 환희와, 사부님과 서로를 떠받친 수련생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3. 아버지가 드디어 삼퇴하다

저는 마음의 매듭이 있는 중생 앞에서 진상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적이 있습니다. 탈당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각도의 진상 자료를 모았고, 시간이 흐르며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릴 때도 많은 지혜를 얻었습니다.

때가 무르익자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수년간 진상을 외면하고 중공 탈퇴를 거부하던 아버지를 제가 사는 나라로 오시게 하셨습니다. 전에 저는 아버지를 서둘러 탈당시키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쳤습니다. 초조한 기색과 거친 어조로 설득하다 아버지의 마음에 상처를 드려, 그 뒤로 아버지는 악당과 관련된 화제를 꺼내기만 하면 피하셨습니다.

이번에 아버지가 일본에 오신 뒤, 저는 그간 익힌 진상 알리기의 노하우와 플랫폼에서 수련생들이 나눈 성공 사례를 활용했습니다. 아버지와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설적으로 진상을 꺼내기보다, 처음 며칠은 아버지와 가벼운 일상사를 나누고 이곳저곳 구경시켜 드리며 가족애와 제 진심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든가, 중국의 대기오염이 심각하다든가, 해외 공기가 맑다는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할 만한 민감하지 않은 사실을 은연중에 내비쳤습니다.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든 항상 진상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법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고, 우리가 정리한 진상 자료 역시 인생의 다방면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중국으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저는 사부님께 진상을 알릴 기회를 주시고 제 정념을 강화해 주십사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때 거울을 보는데 머릿속에 광활하고 찬란한 은하계가 펼쳐졌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생명에 해당하는 천체였습니다. 저는 눈앞의 한 사람뿐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천체의 중생들을 위해서라도 지난날 불손했던 제 말에 대해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먼저 진상 화제를 꺼내셨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지만 그래도 가족이잖아.” 이어서 아버지는 애국심이 있다며 저에게 자신을 바꾸려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순간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 저는 재빨리 받아 말했습니다. “전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가 우리가 더 잘 살기를 바라며 공산당에 입당하신 걸 아니까요. 당원 신분은 그저 아버지의 직업일 뿐, 선한 마음에는 영향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말하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아버지도 울먹이셨습니다. 그 마음이 열린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저는 우리는 정치에 관여하려는 게 아니며 애국심도 좋은 거지만 나쁜 것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조곤조곤 설명해드렸습니다. 이어 아버지께 가명을 지어 드리며 “그저 아버지가 무사하시길 바랄 뿐이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에 동의해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람 구하는 일은 간단한 몇 마디로 보이지만, 실은 그것은 생사가 오가는 찰나의 순간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탈당시킨 이 과정은 RTC 플랫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구하는 환경 덕분에 제 주변 가족과 친구들도 변화를 겪었고, 그 속에서 대법의 원융함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득이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24년 RTC 플랫폼 연례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3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3/23/474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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