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고,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저를 이끌어 28년의 수련의 길을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파룬따파는 제 몸과 마음을 정화했고 제 운명을 바꿨습니다. 제자는 감사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오직 한결같이 사부님을 따라 신의 길을 걸으며, 사부님 말씀을 듣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할 때, 수많은 중국인이 선량함을 선택했습니다. 이 수련의 세월 속에서 저는 가슴 뭉클한 사람들과 일들을 만났습니다.
굳게 물러서지 않은 서기
저는 수련한 후 몸과 마음이 크게 변했습니다. 저는 먼저 학교 서기를 찾아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고, 평생 처음으로 우주 대법을 모르고 무지와 방황 속에서 업을 쌓은 잘못을 반성했습니다. 서기는 감동해서 전교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이 공법을 연마하시더니 아주 좋아지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선생님을 배워야 합니다.”
뜻밖에 정세가 급변해 중공 악당의 박해가 시작됐고, 많은 연공인들이 잡혀가 불법적으로 가택수색당하고 구금됐습니다. 우리 학교 상사들은 상부에서의 압력 아래 어쩔 수 없이 저를 찾아와 대화했지만 파룬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정세가 이렇게 긴장하니 그 물건들은 잘 숨겨두세요. 혹시 숨기기 곤란하면 우리가 보관을 도와드릴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압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 수련인은 남들을 선하게 대해야 하고, 일을 할 때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게 만일 무슨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여러분이 연루되어 관직을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전교 직원들의 상여금도 물거품이 되어 많은 사람의 이익을 해칠 것입니다.” 그들도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어서 별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서기는 또 전교 회의에서 “바로 그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그녀에게 얘기하러 갔더니 하는 말이…”라고 제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모두들 웃으면서 “이게 파룬궁을 비판하는 건지 선전하는 건지 모르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서기에게 경비원이 저에게 책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고 하자 서기는 그를 불러 경고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모릅니까? 이건 정치 운동입니다. 이전의 그 운동들 때문에 조작된 억울한 사건들이 아직도 명예회복되지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사람을 해치고 박해하는 자들에게 좋은 결말이 있겠어요?” 그 경비원은 원래 상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사람이었는데, 제게 이렇게 말하러 왔습니다. “선생님, 이건 정치 운동입니다. 사람을 해치고 박해하는 자들에게는 좋은 결말이 없습니다!”
파룬궁 탄압기구 ‘610’이 강제로 저에게 6천 위안을, 학교에 1만 위안의 보증금을 요구하며 제가 베이징에 가지 않겠다고 보증하라고 할 때, 서기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그런 식으론 못합니다. 우리가 TV에서 본 건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 TV에선 ‘감화’시킨다고 했어요. 지금 그 선생님은 이렇게 어려워도 우리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돈을 내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결연히 내지 않았습니다. 서기는 화가 나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돈을 뜯어내려는 거예요. 베이징에 안 가면 돈을 돌려준다고 하던데 정말 돌려줄 것 같아요? 그들이 이미 먹어버린 걸 토해낼 수 있겠어요?! 내지 마세요! 절대 내지 마세요!”
서기는 또 파출소 사람들에게 “예전에 그 사람은 예전에 아파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 공법을 연마하더니 좋아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610’ 경찰이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수시로 저를 국내안전보위대(국보)에 불러가기도 하고, 위협하거나 지장 찍기를 강요하거나, 소환하거나, 한밤중에 전화로 제가 집에 있나 확인하곤 했는데, 우리집 아기를 깨워 울음을 그치지 않게 해서 온 가족이 편히 살 수 없게 했습니다. 심지어 몇몇 경찰은 몰래 우리집에 와서 금전을 갈취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와 친구들에게 파룬궁 활동에 참여하라고 한 뒤, 수련자들의 활동을 고발해 공을 세우고 승진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이런 상황을 서기에게 알렸고, 서기는 매우 분개하며 “또 당신을 괴롭히면 우리한테 오라고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지역사회 사람이 저를 찾아왔지만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 사는지도 몰라 경비원이 그를 서기실로 데려갔습니다. 서기가 “그녀를 왜 찾죠?”라고 물으니 그는 “감시하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서기가 “무슨 감시를 하나요? 그는 우리 학교 사람인데 우리가 어떻게 관리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와서 관리할 일인가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돌아가세요!”라고 하자 그는 풀이 죽어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도 우리집 아래층에서 매복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비만 흠뻑 맞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9평)’을 전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할 때, 그녀는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려주는 것을 듣고 시원하게 탈퇴했고, 적지 않은 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저와 서기는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이 정사(正邪)의 대전(大戰)에서 그녀는 정의와 선량함을 선택했고, 저는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기쁩니다.
생명의 선택
박해가 시작됐을 때, 직장의 적지 않은 동료들이 저를 위해 걱정했고, 어떤 이는 남몰래 저에게 “조심해요, 누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어요”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저에게 국보에 가라고 통지하러 온 사람은 자신이 먼저 놀라서 얼굴에서 목덜미까지 빨개졌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격려하며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시면 혼자 연마하세요. 공산당은 늘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입니다. 옛날에 대만인들이 고통 속에 산다고 선전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우리보다 수십 배는 낫더라고요”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자기 집으로 불러 공법 시범을 보여달라고도 했습니다.
박해가 가장 심각할 때, 예전에 제 선생님이셨던 분이 저를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가 날 믿는다면 어서 네 그 물건(파룬궁 자료)을 우리집에 가져와. 내가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보증하마.” 제가 “지금 이렇게 엄중한데 두렵지 않으세요?”라고 하자 그분은 “어쨌거나 나는 어차피 나이가 많은데 죽은 돼지가 끓는 물 무서워할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과거 악당에게 20~30년 박해를 당하다가 1980년대 중반에야 명예회복되어 퇴직 간부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중공의 박해가 얼마나 잔혹한지 잘 알고 계셨기에 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진심 어린 말씀과 초인적인 담력은 저를 지금까지도 감동케 합니다. 이후에 제가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 그분은 “다행히 네가 잡혔다는 걸 내가 알았을 때 넌 이미 집에 돌아와 있더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잠 못 들었을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동료는 감독 책임 서류에 학교와 수련인이 얼마의 보증금을 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하며 “이 증거를 잘 보관해둬. 나중에 이게 그들이 사람을 박해한 확실한 증거가 될 거야!”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난 한 모르는 사람은 자기 딸이 우리 학교에 있다며 딸이 자기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TV에서는 파룬궁이 나쁘다고 하던데, 우리 학교의 ○○(저를 가리키며)가 바로 파룬궁 연마하는 분인데 어찌나 좋은지, 게다가 전혀 병도 안 걸리던데 TV에서 하는 말이랑 전혀 달라요!” 학교의 많은 사람이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의료 사무실에서 매년 발급하는 비용 결산표를 보고 모두 감탄하며 “어떻게 당신은 이렇게 많은 돈이 남아있어요? 우리 의료비는 항상 부족한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한 교장은 줄곧 중앙과 보조를 맞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89년 ‘6.4(천안문 사건)’를 거듭 강조하며 “전교 사생은 중앙과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라고 했고, 절대 정치적 풍랑 속에서 실수하거나 잘못된 진영에 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파룬궁 문제에 있어서는 도리어 중앙과 보조를 맞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제가 납치된 적이 있다는 걸 아셨나요?”라고 물으니 그는 “알았죠”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아무개한테 들었는데, 제가 그랬어요. ‘누굴 건드리든 상관 안 하겠는데, 하필 ○○(저를 가리키며)를 건드리다니 정말 말도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6.4 때처럼 사람들이 정치적 실수를 범할까 두려워 절대 잘못된 진영에 서지 말라고 하셨죠. 이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냉정히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부패 관료들을 반대하는 정의로운 행위를 동란이나 심지어 반혁명 폭동으로 정의한 게 과연 맞았을까요?” 그는 말문이 막혔고 아마도 그제야 중공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 후로 박해에 참여하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동창회 모임을 주관한 두 명의 동창은 일찍이 진상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 부부는 우리집에 와서 당에서 탈퇴하겠다고 요구했고, 우담바라 꽃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전 동창들과 우리 함께 모임을 조직해서 제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듣고 제가 진상을 전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제가 동창회에 가니 여러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제 반이 아니라 저를 모르는 동창들도 꽤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 앞으로 가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진상 소책자를 한 권씩 나눠주자, 모두들 카드놀이를 멈추고 책자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몇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손발을 떨렸는데, 모임 주관 동창이 가서 “겁내지 마, 우리 이 동창(저를 가리키며)은 병이 나았기에 너희들도 모두 건강하고 병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여주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동창은 제가 준 ‘9평’을 보고 무서워하며 모임 주관 동창에게 전화로 따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부른 거야? 파룬궁 책을 나에게 줬어.” 주관 동창은 아주 침착하게 “뭐 어때, 보고 싶으면 보는 거지. 책 한 권 본다고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건 동창은 그 말을 듣고 걱정을 접고 ‘9평’을 다 보고 삼퇴까지 했을 뿐 아니라, 그 후로는 더 이상 진상을 거부하지 않고 저와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 제가 어디 가냐고 물으니 그는 오늘 당 지부 활동이 있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그는 “아, 나는 당에서 탈퇴했는데 무슨 활동을 가지?”라고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주관 동창의 70세 생일 때 제가 축하 카드를 써서 보냈는데, “마음속에 대법 진선인 품으니, 복록이 풍성하고 복이 문에 가득하다”라고 축복했습니다.
잠시 주저하다 조용히 통과시켜준 검사원
아들은 제가 공법 연마하기 시작한 후로 계속 저를 지지하고 보호해주었습니다. 여기서 아들과 관련된 감동적인 일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해 전, 제 아들이 북방의 한 유명 대학에 석사 과정으로 진학할 때 대법 전집을 가져갔습니다. 제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고 몸과 마음이 크게 변한 것을 보고, 이 법에 도대체 무엇이 쓰여 있길래 이렇게 신기하고 좋은지 연구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졸업할 무렵은 마침 박해가 가장 혹독하고 참혹했던 시기였습니다. 아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그 책들 가져갈까요, 버릴까요?” 저는 “가져가자! 역대로 금서는 다 값진 보물이었어”라고 했습니다. 그는 더 말 않고 모두 집으로 가져갈 책 상자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우편으로 부칠 때 우체국에서 현장 검사를 해야 했는데, 당시 뒤적거리다 발견한 두 번째 책이 바로 책 표지도 씌우지 않은 ‘전법륜(파룬궁 수련서)’이었습니다. 그 검사원은 책을 손에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책 상자에 도로 넣어주고는 더 이상 검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상자에 가득한 대법 책이 무사히 집으로 부쳐졌습니다. 그 검사원의 선한 마음과 행동은 정말 감동스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는 대법을 선하게 대했는데, 반드시 대법의 보호 및 평안과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책을 손에 들고 뒤적거릴 때 너는 어떤 생각이 들었니?” “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어요.” “만약 그 사람이 날 힘들게 했다면 졸업도 못 했을 텐데?” “졸업 못 하면 어쩔 수 없죠.” 아들의 생각은 매우 바른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정성껏 배치해주신 것임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한번은 아들이 외성(外省)에 출장을 갔는데, 공항 검사에서 몸에 지니고 있던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가 발견됐습니다. 우리집 사람들은 외출할 때 모두 호신부를 지니고 다니는데, 친구들까지도 제가 주면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 검사원이 상관에게 보고했는데 상관은 괜찮다며 아들을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해주었습니다. 아들은 비록 약간 놀라긴 했지만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저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과응보는 진실하다
중공 악당이 반X교 서명 운동을 벌일 때 중국의 모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서명을 시켜야 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초등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서명을 모아 현수막을 거둬들일 때, 거기에 “파룬궁, 힘내라!”라고 쓰인 걸 발견하고는 크게 놀라 안색이 변했습니다. 전교생 공책을 거둬들여 필체를 대조해 꼬마 반혁명분자를 잡아내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교감이 즉시 제지하며 “어린애들이 뭘 알겠어. 그냥 장난친 거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이후에 박해를 제지한 이 교감은 복을 받아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반면 작은 반혁명분자를 잡아내려 한 그 교감은 보응을 받았습니다. 그의 외아들이 막 대학을 졸업하자 갑자기 백혈병에 걸렸고, 이어서 괴사병까지 걸려 양 다리뼈가 썩어 똑바로 설 수 없게 됐습니다. 교감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대법제자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자 그는 더는 파룬궁을 미워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의 병세도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자식을 해치려 했다가 결국 자기 자식에게 응보가 왔고, 그것도 이렇게 신속히 왔으니 사람들은 정말 거울로 삼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애석한 생명들
우리 학교의 한 젊은 교장은 저를 강제로 세뇌반에 보내려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지금 절 위해 말씀해주셔야지 어떻게 절 괴롭힐 수 있어요?”라고 하자 그는 문득 정신이 든 듯 “가서 상황을 보고 다시 말하죠”라고 했습니다. 그는 반나절 있다 절 보내는 것을 그만두었고 저는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저에게 “공산당의 가장 나쁜 점은 이 사람뿐 아니라 이 사람의 사상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겁니다. 뭘 생각하든 그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 정말 나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에게 탈당하라고 했을 때는 여전히 두려워했고 “아이고, 이 교장 자리에 앉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에 그는 불행하게 요절했고 막 퇴직하자마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안타깝고 자책도 했지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를 세뇌반에 보낸 두 번째 사람은 제 친구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탈당하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탈당하지 않았고, 서기를 맡지 말라고 해도 그는 오히려 “사람들이 날 뽑으려고 해”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제가 ‘보선(保先, 공산당원들의 선진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활동)’에 가지 말라고 해도 그는 오히려 열심히 전체 당원을 조직해 프로그램을 연습시켰습니다. 그는 당 조직의 말만 듣고 친구의 권유는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그는 갑자기 암에 걸려 생명을 잃었습니다.
또 한 명의 후임자는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했는데, 이는 ‘보선’의 마무리 작업이었습니다. 취임한 지 3개월도 안 돼 그도 갑자기 사망했는데, 점심 식사를 준비하다가 배가 아프더니 원인 모를 병으로 즉사했습니다. 세 번째로 저를 세뇌반에 보낸 사람은 죽지는 않았지만, 퇴직한 지 얼마 안 돼 중풍에 걸려 누워서 생활하지 못하게 되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미혹 중의 생명들을 위해 깊이 안타까워하며, 이는 제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가서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며 사람을 구하게 하는 더 큰 추동력이 됐습니다.
맺음말
제 많은 동창과 제자들도 지금은 점차 미혹에서 깨어나 삼퇴를 했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아홉 글자 진언을 늘 외우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9평’과 대법 진상 자료를 대면해 전했지만, 믿건 안 믿건 저를 팔아넘긴 사람은 없었는데, 이는 사람의 본성이 여전히 선하며, 장쩌민 불량배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이 천리를 거스르고 민심을 얻지 못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아직도 우리가 가서 깨우쳐 구해야 할 훌륭하며 중국인들이 많이 있으며, 앞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더욱 정진해서, 사부님의 고생스러운 제도와 두터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맹세를 이행하겠습니다. 사부님과 함께 천국으로 돌아가려면 이 최후의 시간을 잡고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사람, 우리의 그 친절하고 훌륭하며 선량한 중국인들을 더 구해야 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3/31/4735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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