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73세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할 인연을 얻어 여러 가지 난치병에서 건강을 회복했고, 우리 가족 모두 이로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했기에 이렇게 행복하고 완전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이는 모두 대법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온 가족은 행복과 대법의 신기함을 느꼈고,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 가정의 상황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나와 남편이 건강을 되찾다
우리집은 여덟 식구입니다. 저와 남편은 고향에 살고 있고, 두 아들은 각자 시내의 새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퇴직한 직장인으로 매달 1만 위안(약 180만 원)이 넘는 연금이 있어 생활에 근심 걱정이 없고 자녀들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수련 전에는 제 몸에 여러 병이 있어 병원비만 해도 월급의 대부분을 차지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수련 후 몸이 건강해져 이 부분의 지출이 없어졌고, 26년간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번 맞지 않아 얼마나 많은 돈을 아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월급을 은행에 저금하지 않고 집에 보관하는데, 법을 실증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인 지출은 아끼고 대법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는데 몇만 위안이라도 문제없습니다. 제 돈은 대법의 자원이자 사람을 구하는 데 쓰는 것입니다.
남편은 수련 전 심장병으로 고생하며 수술비로 많은 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수련을 한동안 하자 건강이 회복되어 수술할 필요가 없어졌고 큰돈을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그는 대법이 병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대법은 너무나 신기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니 믿을 수밖에 없어. 다른 사람 말만 들었다면 믿기 어려웠을 거야. 책을 보고 연공하는 것만으로 병이 없어질 수 있다니 믿기 힘들지만, 사실 앞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이번에야말로 정말 믿게 됐어.” 그의 심성이 높아지고 매일 꾸준히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여하자 몸은 날로 변화했고 다른 병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싱글벙글하며 사람들을 만나면 대법이 좋다고 말합니다.
큰아들이 복을 받다
큰아들은 우리의 수련을 매우 지지해 주었고, 사부님의 설법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직접 수련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대법이 바른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4.25’ 당시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때 그는 우리 마을 수련생들을 오토바이로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이 선행으로 그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년이 되어 그는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마을 식량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꽤 좋은 자리였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그는 현명하고 예쁜 아내를 만났는데, 처가는 시내에 있었고 경제 형편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며느리 본인도 마을 위생부서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차에 물건을 잔뜩 싣고 기쁜 얼굴로 집에 돌아와 자신이 시내로 발령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고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돈 없이, 뇌물 없이 어떻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들에게 작은 소리로 “돈을 얼마나 썼어? 연줄을 썼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즉시 “한 푼도 안 썼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믿을 수 없었지만 아들이 사정을 설명하자 곧바로 이것이 사부님의 묘한 배치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들은 아파트도 샀습니다. 비록 새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제 눈에는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방 3개에 거실 2개, 130평방미터 넓이의 아파트를 겨우 20여만 위안(한화 약 3700만 원)에 구입했는데, 건축된 지 몇 년 안 된 데다 입지도 좋았습니다. 지금은 60만 위안을 준다 해도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어서 차도 사고 새 아파트도 한 채 더 구입했으며, 제3의 사업체도 생겼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좋은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큰 며느리는 우리집에 시집와서 왕복 15km나 되는 거리를 전동 스쿠터로 출퇴근해야 했습니다. 저는 며느리가 너무 고생스러워 보여서, 며느리 사촌오빠가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며느리에게 “사촌오빠에게 부탁해서 다른 데로 발령 좀 받아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즉시 “안 돼요,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아세요? 10만 위안(한화 약 1800만 원)으로도 모자랄걸요. 퇴직할 때까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5년 전 며느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시내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아들 말에 따르면 그가 처음 보는 사람과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방이 며느리가 시골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제수씨 좀 시내로 데려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우리 아들이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데요”라고 하자 그 사람은 “위에 보고하는 건 자네가 신경 쓸 바 아니고, 제수씨보고 그냥 시내로 오라고만 해”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며느리는 며칠 만에 시내로 발령받았습니다. 아들은 기뻐하며 “왜 이런 횡재가 나하고 아내에게만 생기는 걸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건 다 대법의 복이고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거란다”라고 했더니 그들도 인정했습니다.
더욱 신기한 일은 손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손녀는 어릴 때부터 제 곁에서 대법의 은혜를 입어 몸이 건강했고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손녀가 몸이 불편할 때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곤 했는데 잠시 후면 괜찮아졌습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손녀는 사부님의 경문을 아주 빨리 외웠고, 어린 나이에 여러 편의 경문을 줄줄 외울 정도였습니다. 손녀는 학교에 가서 분필로 벽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쓰기도 했고, 길거리에 버려진 파룬궁 진상 자료를 보면 주워서 저에게 갖다줬습니다. 손녀는 대학을 졸업하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금 중공 악당의 정책상 가족 중에 파룬궁수련자가 있으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집에 와서 저에게 “만약에 조사하러 오면 수련을 그만뒀다고 하시고, 몰래 수련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10년 전 그렇게 심하게 박해할 때도 나는 수련을 그만두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어 “내가 정중하게 말해주마. 그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거란다. 넌 안심해도 돼. 내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나는 그 애한테 복만 가져다줄 뿐 문제가 생기게 하지는 않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딸의 앞날을 걱정한 아들은 좀 불쾌해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난처한 표정의 아들이 혼자 찾아와 “어머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동의해주세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간청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매우 강직한 성품을 지녔기에 저는 그가 정말 곤란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화한 어조로 “우리 모자 관계를 끊는 척하는 건 어떨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가 ‘손녀에게 오직 복만 가져다줄 뿐 화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 일념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기에 손녀는 공개채용에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전 현(縣)에서 단 한 명만 뽑는 자리였는데 손녀가 선발된 것입니다. 손녀는 이제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대우가 훌륭해 공무원 못지않습니다. 그 이후로는 공개채용 자체가 없어졌다고 하니 당시가 마지막 기회였던 셈입니다.
그 후 제가 아들 집에 가서 얼마 동안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그 기간에 손녀의 취업 소식을 계기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의 이 모든 행복이 대법이 가져다준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아들 집에 머무는 동안 마침 전염병이 극심했는데, 그들 세 식구는 모두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저와 남편은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대법이 좋고 사부님이 위대하시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대법에 감사했습니다. 아들은 저와 함께 차를 몰고 다니며 대법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의 가정 정황
둘째 아들은 한동안 실직 상태였습니다. 그는 울면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아들이 아직도 일자리가 없어요!”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데, 그 당시 집안 사정도 넉넉지 않아 돈도 인맥도 없었던 터라 저는 그저 ‘순리에 맡기자, 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으니 오로지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주변 환경을 개변할 수 있고 사부님의 배치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둘째 아들은 자영업을 시작했는데 사부님의 보호 아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습니다. 몇 년 사이에 새 아파트를 장만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아파트는 전액 현금으로 매입했는데 한 달도 안 돼 가격이 크게 뛰어 차액만 해도 최소 20만 위안(한화 약 3천7백만 원)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도 두 대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쁨에 넘쳐 “좋은 일이 줄을 잇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며느리도 정규직이 되었고 두 개의 프로젝트도 승인받았다고 했습니다.
둘째 며느리가 출근하면 손자는 제가 돌보는데, 이 아이는 전혀 짜증을 부리지 않습니다. 사돈댁은 제가 아이를 잘 돌본다고 칭찬하지만, 그게 어찌 제 공일까요? 이 아이가 대법과 인연이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저는 매일 손자에게 대법 음악과 사부님 설법을 들려주는데, 아이는 듣고 무척 기뻐하며 울지도 않고 말썽도 부리지 않습니다. 가끔 아이가 졸려서 음악을 끄면 바로 깨어납니다. 저는 손자가 몇 개월 된 때부터 안고 나가 진상 전단지를 배포했습니다. 조금 더 크면 손자와 손녀를 함께 데리고 배포할 생각입니다. 손자는 전단지 한 장을 나눠줄 때마다 환하게 웃습니다. 어느 해 섣달그믐날 밤, 저는 손자와 함께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나갔습니다. 제가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데 갑자기 손자가 큰 소리로 “할머니, 하늘에 소원 풍등이 많아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더니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믿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몇 살 난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손자는 초등학교 때 기초가 부실해서 아버지가 돈을 들여 좋은 중학교에 보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아들은 손자가 고등학교에 합격하지 못할까 봐 다른 학교를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날아들었습니다. 마침 그 학교에서 입학 기준 점수를 낮춰 손자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신기한 일은 손자의 고등학교 성적이 크게 향상된 것이었습니다. 손자는 무려 6개의 상장을 받아 왔는데, 그중에는 ‘모범생 진보상’도 있었고 여러 과목에서 반 3등 안에 드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제가 손자에게 “어떻게 이렇게 빨리 향상할 수 있었니?”라고 묻자 손자는 빙그레 웃으며 “저는 대법이 좋다는 걸 믿었거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법은 저에게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선사해주셨습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언어로는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직 더욱 정진해 역사가 부여한 무거운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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