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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치에서 벗어나 법에서 문제를 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8년 초, 나는 수련의 길을 걷게 됐고 역사적인 서약을 이행하는 간고한 길이 시작됐다. 이것은 내 이번 생의 가장 정확한 선택이다. 사존의 제자가 되는 것은 제자에 대한 사존의 가장 큰 은혜다.

26년간 개인 수련과 개인 수련에서 정법 수련으로 넘어가는 경험도 했다. 공산당 문화에 물들어 성장한 사람으로서 무엇이 수련인지 몰랐고 무엇이 정법 수련인지 몰랐으며,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모든 일을 잘하는 보장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의 변화 과정은 뼈를 깎는 듯 힘들었고, 수없이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했다.

줄곧 2018년 두 번째로 ‘검은 소굴’(감옥 등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곳)에서 나온 후, 명혜라디오의 수련생 교류문장과 수련생의 격려를 듣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울 때 가장 큰 고비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이었다. 외울 때 밖에 나가 돌아다녔다. 두 번째 관은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예전의 사소한 일도 떠오르며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교란인지 알고 힘껏 배척했지만 하나를 배척하면 다른 것이 또 뒤집혀 나왔다. 간고한 마음 수련을 통해 사부님께서 이런 것을 제거해주셨다. 지금은 법을 외울 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고 마음도 고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안으로 찾는 기제(機制)가 형성된 것이다. 첫 번째 일념으로 안으로 찾지 못해도, 지난 후 관념을 바꿔서 안으로 찾았다. 동시에 악당 문화, 변이된 관념을 똑똑히 보았고, 각종 업력으로 형성된 ‘나’는 이제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 쟁투심을 없애고 정체(整體)를 원융하다

여러 사람의 집착심은 모두 구세력이 일부러 배치한 것이다. 성장 과정을 뒤돌아보면 이 점이 증명된다. 이 과정은 속인 상태에 부합하기에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고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나는 쟁투심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자연히 나쁜 결과를 초래했지만 스스로는 잘 몰랐다.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해 정체(整體)에 간격을 생기게 했다. 한 수련생이 모두들 다 날 지적한다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안으로 찾으라고 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 ‘아닐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내가 여러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안으로 뭘 찾으란 말인지? 속인에게도 ‘남의 허물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나에 대해 뒷담화하는 사람은 수련인의 상태인가? 그런 사람은 속인이라도 교양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 마음을 내려놓으면 되고, 당신들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불평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좀 지나서 다른 수련생이 또 내게 말했다. “모두들 당신에게 의견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 마음속에 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나는 내 언행이 그들의 어떤 관념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들이 마음이 움직였다면 우리 쌍방 모두 수련해야 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일어난 두 가지 일을 통해 나는 내 집착심을 찾은 동시에, 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고 내 업력이며, 심성을 높이고 사람마음을 없애기 위해 나타난 시련이었다.

한 가지 일에서 나와 수련생 A는 의견이 엇갈렸다. A는 날 심하게 비난했고 언사도 격렬했다. 우리는 각자 이치를 말하고 모두 자신이 옳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나는 늘 자신을 실증하지 말자고 일깨웠고,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집안 도처에 하얀 벌레가 생겼다. 사부님께 올리는 향이 들어있는 상자에도 벌레가 있었다.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이것이 사부님의 암시임을 알고 놀랐고 무서웠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무조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안으로 찾았지만 잘 찾지 못했고, 단지 그 당시 교류에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인식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사부님께서 내가 틀렸다고 암시해주셨다면 더는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뜻밖에 이렇게 하자 그녀의 태도가 변했고 어투도 누그러졌으며, 집안의 벌레도 사라졌다. 내가 맞게 깨달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맞음’은 표면적 현상으로 인식한 것이고, 법리상으로는 명백히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음에 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수련생이 이메일함에 ‘통지’를 보냈는데 그 속에 공산당식 사고방식이 있는 것 같아 내 생각을 보냈다. 상대방은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또 이에 대한 ‘교류’를 보냈고 ‘통지’도 삭제되지 않았다. 사람마다 자신이 깨달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 인식을 견지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내가 쓴 내용을 삭제했다. 그러자 이튿날 ‘교류’와 ‘통지’가 모두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그가 내게 생각이 있는 이유는 쟁투심 때문이었다. 매번 그와 교류할 때마다 의견이 엇갈리면 논쟁이 발생했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고 사부님의 법을 인용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자신의 인식이 옳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면 자아를 실증하는 것이다. 남을 설득해 남을 바꾸려는 것은 공산당 문화의 ‘사상통일’이고 구세력의 방법이다. 이 모든 것은 쟁투심에 의해 발생했다. 논쟁할수록 쟁투심이 더 강해진다. 이런 검은 물질이 다른 수련생 공간장에 떨어지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정확한 방법은 사부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밝히려 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홍음3-논쟁하지 말라).

나는 왜 그것이 쟁투심인지 의식하지 못했을까? 왜 반대로 정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내 사상 속에 왜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했을까? “이치는 변론할수록 명백해진다”는 공산당 문화의 사상이 영향을 준 것이다. 수련생들이 나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사실 내 쟁투심을 없애기 위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이치로 이해하고 거듭 밀어버리고 제고할 기회를 놓쳤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않고 수련도 할 줄 모르는 것을 보시고 이 두 가지 일을 또 배치하신 것이다. 첫 번째 일은 내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해 구세력이 빈틈을 타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기 위한 토대를 잘 닦을 수 있게 하신 것이고, 두 번째 일은 내가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게 하신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린다. 이 일들을 통해 무조건 안으로 찾는 것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생겼다.

2. 이익심을 내려놓고 자비롭게 사람을 구하다

구(舊)우주의 생명은 이기적인 것이다. 중공의 통치로 이 이기적인 것이 더욱 확대됐다. 그것은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인류 도덕을 망쳐 중국인에게 인과응보라는 천리를 믿지 않게 했고,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게 했다. 수련인도 구우주의 생명이고 본성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초에 있다.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이 이기심을 닦아버려야 한다.

이익심은 이기심의 일종 표현이다. 나는 줄곧 이익심을 닦는 것을 중시했고 이 마음이 닦아져 담담해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의 이 ‘담담한 마음’은 일정한 범위에서, 일정한 층차에서의 담담함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셨고, 이 범위, 층차에서 벗어나면 이익심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남동생의 아들이 가게를 열려 하는 데 큰 자금이 필요했다. 비록 세 사람이 투자했지만 여전히 부족해 남동생은 날 찾아왔다. 나는 이미 회사 공직에서 제명됐고 퇴직금도 아직 해결되지 않아 아무런 경제력도 없었고 집을 팔아 남은 돈만 있었다. 이것은 내 유일한 생활비이며 쓸수록 줄어들었다. ‘어떻게 하지? 중생이 어려움이 있어 날 찾아왔으니 전적으로 도와줘야 해. 더욱 중요한 것은 그는 아직 진상을 알지 못하고 있어.’ 남동생은 자신의 제자를 통해 삼퇴했지만 나는 그것이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진상자료를 담은 메모리 카드를 주어도 그는 보지 않고 잃어버렸다고 했다. 명혜라디오 ‘절처봉생(絶處逢生)’을 들려주니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에게 ‘5.13’ 응모 문장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선생님이 유치원 어린이에게 선하게 대한 사례를 들려주었더니 악하다고 했다. 그에게 공산당이 준 월급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자 그는 답하지 못하고 날 사악하다고 했다. 그에게 중공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다고 말하자 우리가 질투한다고 했다. 또 중공이 대법제자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한다고 하자 그는 개별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둥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번 남동생에게 진상을 알리면 그는 크게 화를 냈다. 어쨌든 공산악령에 통제돼 그는 자아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가족으로 태어난 것도 큰 인연이니 그를 구하는 것도 마땅하다. 하지만 어려웠다! 자주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이런 사람을 제가 구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그렇게 큰 위덕이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한 선(善)이 있어야 그 배후의 사악을 해체할 수 있다.

이번에 그가 돈을 빌리러 온 것은 사부님께서 그를 구원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내가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눈앞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약간의 돈만 남기고 거의 그에게 다 털어주었다. 2년이 지났어도 남동생은 돈을 갚겠다고 하지 않았고, 나도 갚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2023년 연말에 그는 여동생에게 날 만나기 싫고,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핑계임을 알았다. 매번 그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침착했는데, 그를 구하려 하는데 그와 싸우면 어떻게 그를 구할 수 있겠는가?(나중에 그를 만나 물어보니 그도 이 점을 인정했음) 여동생의 말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에 마음이 평온했다. 이어서 여동생은 투자한 사람들이 연말에 배당금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단번에 화가 났고 더는 진정할 수 없어서 남동생에게 말했다. “네가 배당금을 나누지 않았다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거야. 한발 물러서서, 네가 배당금을 받고 내 돈을 갚지 않아도 돼. 어쨌든 이렇게 오랫동안 경영했으니 투자자들에게도 이익을 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최소한 넌 나에게 알렸어야 해.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예의야. 넌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나와 싸웠다고 거짓말하면서 날 피했어.” 말하면서 나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연공인이다. 남이 배당금을 받은 것에 마음이 불편한 것은 질투심 아닌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원망심 아닌가? 남의 존중을 받으려는 마음이 아닌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라는 건 사람의 이치가 아닌가? 흥분, 분노는 쟁투심 아닌가?’ 이 모든 것은 이익심에 비롯된 것이고 자신의 이익이 상처받지 않게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자비심이 생기지 않고 충분한 선이 없으면 사악을 해체할 수 없다. 이것이 남동생이 진상을 듣지 않은 주요 원인이었다. 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그를 영원히 밀어버리게 된다. 나는 여동생이 돈을 대신 받아주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이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 한순간 마음이 홀가분하고 생명이 승화된 가벼움을 느꼈다.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가 있는가? 아마 어느 생에 그에게 빚진 것이고 그는 나에게 빚을 받으러 온 것이다. 그러면 갚자. 혹은 내 업력을 전환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모두 좋은 일이니 마땅히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대법제자로서 조사정법, 중생제도의 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에 마땅히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경지를 가져야 한다. 조금의 이익으로 고통스럽고 아쉬워하는데, 사부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자 남동생도 변했고 대법 진상을 알려도 그는 듣게 됐다. 내가 말한 것을 모두 믿는다고 했다. 중공 생체 장기적출을 언급하자 자신 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만 알면 된다고 했다. 그는 그건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사부님의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를 보여줬다. 그에게 세 편의 진상 편지를 썼고, 불법(佛法)을 비방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엄숙하게 알려줬다.

사부님의 묘한 배치로 그는 제도됐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비심을 닦아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맺음말

사람의 이치를 뛰어넘고, 사람의 표면 껍질을 벗어버리며, 법에 입각해 문제를 보고, 법에 용해되는 것을 전반 수련 과정에서 거쳐왔다. 이 과정은 힘들고도 길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강렬한 집착심이 있다. 예를 들면 색욕심인데, 닦으려 노력해도 더욱 강해져 고통스럽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더욱 강해진다. 원망심, 보복심, 명예욕, 허영심, 과시심, 환희심,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남을 바꾸려는 마음 등,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많다. 정법 수련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진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진정으로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해, 이런 사람마음을 되도록 빨리 닦아버리겠다.

이상은 현 층차에서의 약간의 인식이고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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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3/17/4713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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