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나는 1995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파룬궁수련자)로서 20년 넘게 수련의 길을 걸어왔다. 심한 기복과 비바람 속에서, 줄곧 가족들의 원망 속에서 몸부림쳤다. 다행히 사존께서 날 도와주셔서 줄곧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주저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1. 부부간의 원한
남편은 처음부터 내 수련을 극구 반대했는데, 그때는 사악한 박해가 없을 때인데도 그는 히스테리 한 반응을 보였다. 자주 남편에게 맞아서 몸이 퍼렇고 뻘겋게 멍이 들었고, 법공부 팀에 갔다가 가져온 가부좌용 방석도 남편에 의해 훼손됐다. 남편은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집을 팔고 아이를 때렸으며, 이혼을 요구하며 대법 책(파룬궁 수련서)를 찢었다.
나는 대법 책을 들고 조용히 울면서 생각했다. ‘사부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펼치니 마침 사부님의 이 구절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는다. “스승님, 스승님께선 왜 이것을 청리(淸理)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수련, 이 길에서 당신에게 장애를 전부 다 청리해 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바로 마의 교란이 있는 정황에서만 비로소 당신이 수련해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진정하게 도를 깨달을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교란을 받는지 받지 않는지, 이 한 법문에 견정(堅定)할 수 있는지 없는지 체현해 낼 수 있다. 거센 파도가 모래를 일듯이 수련이란, 곧 이런 일로서, 남은 것이야말로 진짜 금이다.”(전법륜) 그때 나는 ‘이것이 진정한 수련환경인지도 모른다’고 깨달았다. 눈물을 닦고 나니 마음도 안정됐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나는 이 법을 끝까지 수련할 것이다!’
28년간 내 수련은 남편의 욕설 속에서 이루어졌다. 냄비를 깨끗이 닦지 않았다고 욕하고, 바닥에 머리카락이 있다고 욕하고, 친정 식구들을 보러 가거나 생각하면 욕하고, 자신의 몸이 아프면 날 욕하고, 내가 잠시 자리를 떠도 욕하고, 전화를 늦게 받는다고 욕했다. 그리고 장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우리 조상 3대를 전부 욕했다.
한번은 남편이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다쳐 20여 일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 혼자 병원에서 그를 돌봤는데 교대할 사람이 없어 10여 일간 목욕하지 못했다. 매일 병원 복도에서 자느라 온전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한번은 내가 늦게 돌아왔다고 남편이 큰 소리로 욕하기 시작했는데 간호사도 못 봐주겠는지 와서 야단쳤다. “당신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며칠간 돌봐줬는데 욕을 하다니, 말도 안 돼!”
2017년 어머니의 손목이 탈골되어 우리집에서 요양하시다가 마침 설이 되어 남동생 가족도 부대에서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했다. 섣달그믐날, 남편은 화가 나서 핑계를 대고 아들과 싸웠는데 둘 다 다쳤다. 때리고 욕하는 중에 어머니, 남동생, 올케, 조카딸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초하루 아침 일찍부터 큰 눈을 맞으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 조카딸 아이의 팔이 부러져 지금까지도 조카딸은 우리에게 불만이 있다.
남편의 욕설에 처음에는 울분을 참았고 이후에는 마이동풍으로 여겼다. 겉으로는 참은 것 같고 그와 식견을 같이하지 않고 그보다 교양 있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 많은 원한이 쌓였다. 피할 수 있으면 피했고, 때로는 작은 거짓말도 했다. 나중에는 또 두려운 마음이 나타났다. 그의 분노한 표정과 악랄한 언어가 두려웠다. 서서히 습관이 되어 그가 일하고 돌아오면(그는 대부분 외지에서 일함) 나는 진상을 알리러 나가지 않고 그가 떠나면 나는 다시 나갔다. 서서히 내 수련환경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정당당하지 않아, 난 대법제자야. 내가 하는 건 우주에서 가장 올바른 일이야.’ 법을 배우면서 나는 마침내 이 바르지 못한 수련 상태를 바로잡고 이 환경을 바로잡기로 결심했다.
다시 진상을 알리러 갈 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갔다 올게요. 볼일 보고 몇 시 전까지 올게요.”(이전에 나는 장을 보러 간다든가, 아무개한테 가서 바짓단을 고친다든가 했음) 그러자 그는 “응”하고 욕설을 퍼붓지 않았는데, 이렇게 해서 이 고비를 넘은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수련인은 정말이지 생각이 바르기만 하면 길이 열린다!
2. 고부간의 원한
내 며느리는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사악한 공산당의 선전에 깊이 중독돼, 약간 요즘 사회의 ‘샤오펀훙(小粉紅-맹목적으로 공산당을 추종하는 젊은이)’과 비슷하다. 그녀와 그의 부모님은 모두 대법을 반대하고 내 수련을 반대했다. 아들과 막 결혼했을 때, 그녀 가족은 겉으로는 예의범절을 유지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더 이성적이지 않게 됐다.
한번은 손자가 그녀 앞에서 내가 가르쳐준 ‘홍음(洪吟)’ 중의 시구를 외웠다. “아침노을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멀리 보이는 잔월(殘月) 구름 속에 잠기네”(홍음3-법이 천지를 열다). 처음 두 마디를 며느리는 알아듣지 못하고 손자의 총명함을 칭찬했다. 이어서 손자가 또 외웠다. “백년 붉은 재앙 대법이 풀어내리니 믿지 않던 것이 모두 오고 진상(真相)이 크게 드러나리니 천지는 다시 열려 또 다른 기원이 시작되리라”(홍음3-법이 천지를 열다). 이때 며느리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손자가 또 며느리 앞으로 달려가 정중하게 말했다. “엄마, 명심하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거예요.” 며느리는 벼락같이 화를 내며 노발대발했다. “내 아이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마세요! 나는 공산당원이고 길에서 외칠 수 있는데 어머님은 감히 길에서 자신을 파룬궁이라고 소리칠 수 있어요? 각서를 쓰고 앞으로 절대 이런 것을 가르치지 말거나 아니면 그냥 가세요. 아이는 어머님이 키우지 않아도 돼요.” 결국 며느리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나는 아들에게 며느리를 다시 데려오라고 설득했는데 결국 이 풍파는 그렇게 지나간 것 같았다.
아들은 어릴 때 나와 함께 수련했었고, 2020년에는 운 좋게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다. 그를 위해 기뻐하는 동시에 시련도 왔다. 아들도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발견한 며느리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하고 한바탕 크게 싸운 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아들이 두려워하지도 않자 그녀는 정말 신고했다. 아들은 얼른 나에게 전화해 대법 자료를 옮기고 집에서 하는 단체 법공부를 잠시 멈추라고 했다.
나중에 경찰이 며느리에게 남편이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하는데 그에게 책이 있냐고 물었다. 며느리는 그에게 책은 없지만 전자책이 있고 시어머니에게 책이 있다고 했다. 경찰은 책이 없으면 입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사부님께서 험악해 보이던 시련을 해결해주셨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렸다!
며느리는 또 내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다. 날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또 아이를 데리고 강에 뛰어들겠다고 협박했다. 이러한 집안싸움에서 처음으로 이성적인 면모를 드러낸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손자는 데려오고 며느리는 내버려 둬. 정말 안팎을 안 가리네.”
이후에 며느리는 날 쫓아내고 친정어머니를 모셔 와 집에 한 달간 머물게 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들과 며느리도 싸움이 뜸해졌다. 며느리도 아들이 수련한 후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의 술과 게임을 좋아하고 화를 잘 내는 남편을 그녀도 싫어했던 것이다.
매번 풍파 후에도 나는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 출근하는 그녀의 수고를 이해해주고, 아들이 집에 없을 때 두 모자를 위해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줬으며, 손자를 더 데리고 있으면서 그녀를 좀 더 쉬게 했다. 그녀가 진상을 듣지 않으면 내 행동으로 대법의 진상을 보여주려 했다.
아들이 출장을 많이 다녀서 나는 자주 며느리 집에 묵으면서 아이를 데려다줬다. 아들 집에 가면 쌀과 밀가루를 챙겨가고 장도 내가 봤다. 내가 있을 때 며느리는 집에서 밥을 먹지 않고 장도 안 본다. 가끔 내가 한 음식이 맛있어 보이면 같이 먹고 아니면 직장에서 먹는다. 친정어머니가 올 때만 대접을 위해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는 데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한번은 파릇파릇한 쪽파를 사서 며느리 집에 두고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어 잎이 노랗게 된 쪽파를 다듬어서 집에 가져갔다. 저녁 8시가 다 돼가는데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와 파를 가져갔느냐고 물었다. 며느리가 집에 없어서 아들에게 말하고 가져왔다고 했더니 아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했다. 내가 새로 산 파를 남겨두고 누렇게 뜬 건 버리기 아까워서 요리하려고 가져왔다고 했다. 며느리는 “저도 요리할 때 쓰려고 남겨둔 거예요. 어머니가 열쇠를 갖고 계신다고 들어와서 보이는 대로 가져가지 마세요. 거리를 좀 두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알았어, 다시 갖다줄게.” 8시가 넘어서 나는 버스를 타고 며느리에게 파를 돌려줬다. 나중에 며느리는 그 파를 냉장고에서 썩을 때까지 내버려 뒀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 잘난 체하는 마음과 아들 집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는 관념을 찾아냈다. 앞으로 반드시 잘 수련해 사소한 일에 주의해야겠다.
일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며느리가 또 오래된 참외를 찾아 아들에게 내가 먹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손자에게 먹인 기억이 났지만 4, 5일 전의 일이라 손자는 이미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다음 날 가장 비싼 참외를 사주고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건 내 고향 참외인데 엄청 달아, 먹어봐.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며느리는 날 보더니 담담히 고맙다고 말했다.
3. 사돈간의 원한
사실 며느리의 이러한 행위는 사돈댁의 부추김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부부가 평소에 말다툼하다가 친정어머니에게 말만 하면 격화됐다. 한번은 사돈댁이 아들을 때린 적도 있었는데 일반인이 보기에도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아들을 신고한 일만 말하더라도, 사돈댁은 즉시 딸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아들 회사로 달려가 상사를 찾아가 크게 소란을 피웠다. 다행히 아들의 평소 행실이 상사들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아들은 해고되지 않고 강등으로 끝났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들의 수련 중의 시련이며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손자가 태어난 후 사돈과 내가 번갈아 아이를 돌보기로 약속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돈은 이런저런 핑계로 오지 않았다. 이후 진짜 이유는 딸에게 말했었다.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주지 말고 묶어두면 자꾸 나가서 쓸데없는 일을 못하시겠지(며느리가 아들과 싸울 때 말했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날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예전처럼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법공부도 보장이 되지 않고 연공할 시간도 없었으며 사람 구하는 일은 더욱 적었다. 입술에 큰 물집이 잡혔고 병업(病業)이 있어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4개월간 결가부좌를 못 했다. 수련 상태가 좀 혼란스러웠다.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았다. ‘왜 이렇게 갈등이 많을까? 역시 원한을 품으면 안 돼.’ 나는 자신을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사돈이 여행을 떠나면 마음이 편치 않던 데서 그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랐고, 속인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제거해버렸다. ‘수련을 어찌 속인의 도움에 의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새로운 수련환경이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수련해내야 한다.’
손자가 어릴 때는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돌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과 일상사를 이야기하고 진상을 알렸다. 조금 더 크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에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거주하는 동네가 컸는데 대략 몇십 채의 건물이 있다. 나는 신기하게도 마스터카드를 하나 얻어 각 건물에 쉽게 출입할 수 있게 됐다. 손자가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앞쪽에 있으면 나는 뒤에서 진상을 알리며 호흡이 잘 맞았다. 때로는 손자도 진상 알리기를 도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세요.”
맺음말
가정환경에서 거친 파도와도 같은 시련을 겪은 후, 나는 마침내 생생세세 형성된 원망의 그물에서 벗어나 원한을 닦아버리고 자비를 수련해냈다. 내 마음도 점점 평온해졌다.
여기에 신기한 일이 또 하나 있는데, 우리 집은 꼭대기 층으로 10년을 살았는데 비가 새서 10년을 수리하면서 마음도 10년을 시달렸다. 최근의 큰 비가 내렸지만 드디어 비가 한 방울도 새지 않았다. 그간 나는 줄곧 새는 곳을 찾았지만 내 심성의 누락은 찾지 못했다. 오늘 드디어 깨달았다. 이 얽히고설킨 원망의 그물 속에서 집도 내가 원망하는 생명이 된 것이다. 이 집이 꼭대기 층이라 샌다고 원망했던 것이다. 아들도 이런 집을 샀다고 날 원망했다. 나는 집이라는 이 생명도 원망의 그물에 밀어 넣어 10년간 고통스럽게 했다. 내가 심성의 큰 누락을 찾자 그것도 다시 태어났다.
어느 날 손자가 나에게 말했다. “할머니,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에요. 저는 할머니와 아빠에게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말할 수 있는데 할아버지께는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내가 해보라고 하자 아이는 할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남편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자는 기뻐하며 말했다. “할머니, 이제 엄마만 남았어요. 언제 엄마에게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며느리가 인터넷에서 황금 복숭아 한 상자를 사줬는데 크고 달콤해서 매우 행복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나는 복숭아를 깨끗이 씻어 공손히 사부님 법상 앞에 모셨다. 나는 속으로 며느리가 나에게 어떻게 효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빨리 진상을 깨닫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아름답고 평안한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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