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얼마 전 우리 지역의 많은 파룬궁수련생과 그 가족이 납치됐습니다. 불법 감금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구출이 상대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다방면의 노력 끝에 수련생들이 정보를 수집한 결과, 그날 수련자와 가족 20여 명이 주변 파출소로 납치됐는데 수련하지 않는 몇몇 가족과 노년 수련생 여러 명이 그날로 집으로 돌아왔고, 수련생 10여 명이 구치소에 감금됐습니다. 서로 논의한 후 다그쳐 수련생을 구출하고, 이번 기회에 진상을 알리고 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불법 감금된 수련자 중에는 젊은 부부 M과 N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남성 수련생 M의 직장과 집을 따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뇌졸중 후유증 상태가 있는 M의 아버지를 본 수련생은 M의 어머니에게 M이 불법 감금된 사실을 알리고,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청하기를 바랐습니다. M의 어머니는 대법을 이해하지 못해 거절하고 M이 허무맹랑한 일만 한다면서 아들 일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M의 어머니를 선의로 위로하고 돌아왔습니다.
동시에 다른 수련생들은 M의 직장을 두 번 방문해 직장 책임자에게 진상을 알리고 책임자가 도움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책임자는 M의 업무와 사람됨됨이를 긍정했습니다. 수련생은 M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책임자는 수련생이 말한 진상을 듣고 자기 능력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거의 보름이 지난 후, 수련생들은 다시 M의 어머니를 방문하자 그녀는 대법제자의 친절로 감동했습니다. M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합의했을 때 우리는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M이 다음날 집에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구출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큰 격려를 받았고, 사람의 마음이 바뀌니 환경도 바뀌었습니다.
다음은 M의 아내 수련생 N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N의 어머니도 이번에 납치됐는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N의 친정에 갔더니 수련하지 않는 N의 아버지는 우리가 그들의 딸을 구출하려는 것임을 알지만, 서민들은 사악한 박해에 속수무책이며 시비를 가릴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N의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리고 딸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며, 신앙은 합법적이며 박해가 범죄라고 말해주고 공안국에 함께 가서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기를 바랐습니다. 이 말을 들은 N의 아버지는 구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늙고 병든 N의 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는 “제 딸을 위해서 여러분이 먼 데서 연거푸 오가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대법 사부님께서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각지 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가끔 N의 아버지도 다른 친척들로부터 압박을 받았습니다. 진상을 모르는 일부 가족은 N의 아버지에게 “그들(우리를 가리킴)이 또 오면 신고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N의 아버지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수련생은 N의 연로한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곳의 구치소로 가서 변호사와 약속을 잡고 성공적으로 N을 만났습니다. 경찰은 N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것을 알고 겁에 질려 N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누가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물었습니다. N의 늙은 아버지는 사악에 동조하지 않고 양심과 정의를 굳게 지켰습니다. 나중에 N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수련자 W는 불법 감금 상태에서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습니다. 구치소에서 W에게 음식물을 주입하려 할 때 W는 가해자에게 엄하게 말해 가해자는 놀라서 물러섰습니다. 우리는 W의 남편을 찾아 파룬궁 서적 출판 금지를 폐지한 언론출판국 명령 50호에 대해 설명하고, 파룬궁 수련은 합법이며 경찰이 법을 어기고 사건을 처리한 것이고 불법적으로 법률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W의 남편은 매우 점잖고 과묵한 사람인데, 수련생들이 말한 많은 진상을 듣고도 무기력한 표정으로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우리는 먼저 변호사를 선임해서 면회해 W의 상황이 어떤지 보자고 했습니다. W의 남편은 동의했고 우리에게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낮에 변호사에게 연락하고 밤에 W의 남편에게 다음날 가서 계약하라고 했더니 W 남편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필요 없다고 해서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4일 뒤 W의 남편이 다시 우리를 찾아와 변호사 선임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약속을 어겼지만 우리는 심성을 지켜야 하고, 우리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라고 마음을 바로잡았습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W의 남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시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직접 공안국에 가서 W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난처해하며 경찰과 대면하기를 꺼렸습니다. 그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우리가 함께 가겠다고 했더니 그는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그럼 이렇게 정하고 내일 아침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공안에 가서 석방을 요구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누가 W의 남편과 함께 공안국에 갈 수 있는지 논의했습니다. 사악에 이름이 밝혀진 수련생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번 대규모 납치 사건으로 일부 수련생들은 두려움에 떨며 구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운전기사 수련생이 문득 한 젊은 수련생을 떠올리며 협력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젊은 수련생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가야지요!” 우리는 너무 기뻤습니다.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다. 사부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날, 젊은 수련생은 W의 남편과 함께 경찰을 찾아갔습니다. 사건 담당 경찰은 갖은 방법과 수단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었고 W 남편에게 누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젊은 수련생이 대화를 이어받아 도움을 줬습니다. 다음 날 밤, W의 남편은 아내에게 ‘처분보류’ 절차를 밟으러 오라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W 수련생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박해에 한 가족 수련생 세 명이 불법적으로 감금됐습니다. 부모는 형사구류가 됐고 아들 Y는 행정구류가 됐습니다. 우리는 전전하며 그들의 딸과 며느리를 찾고 그들과 함께 현지 변호사 사무실을 한번 다 돌았으나 도와줄 변호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현지 변호사들은 ‘파룬궁 사건’은 매우 번거롭고 법무국의 승인을 받고 등록해야 하기에 일반적으로 ‘파룬궁 사건’을 맡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련하지 않는 며느리는 가족의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이끌리지 않고 계속해 구출할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열흘 뒤 아들 Y가 돌아왔습니다.
짧은 조정 끝에 우리는 Y에게 사건 담당 경찰을 찾아가 그의 부모를 석방하도록 요청하게 했습니다. Y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경찰은 처음에 매우 친절했지만 부모를 석방하지는 않았습니다. Y가 두 번째로 그곳에 가자 경찰은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러 Y는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수련생들은 Y와 논의한 끝에 사건을 불법적으로 처리한 경찰을 Y가 직접 고소해 경찰이 계속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로 했습니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 Y는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그의 상황을 알고 있어 부담감이 컸고, 경찰을 고소하면 부모에 대한 박해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법공부, 발정념, 수련생들과의 교류와 토론을 통해 서로를 격려한 후, Y는 마침내 고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Y는 검찰원에 가서 직접 고소장을 제출하고 검찰의 감독 기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검사는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Y는 온라인으로 실명 고소장을 제출하고 EMS를 통해 고소장을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Y는 ‘처분보류 신청서’, ‘불기소 신청서’ 등 법률문서도 작성해 공안국과 검찰원에 직접 제출했습니다. 검찰원의 한 주임은 Y를 정중하게 접대하며 “선생님의 고소 내용을 봤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Y는 준비한 법률 서류를 갖고 정부와 법원에 제출하러 갔는데, 법원 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 다음날 부모의 처분보류를 밟으러 오라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Y는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법률 서류를 손에 들고 집에 가려고 하다가 생각했습니다. ‘아니, 내가 오늘 여기에 뭘 하러 온 거지? 나는 단지 부모님을 구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인가? 내 사명은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Y는 과감하게 돌아서서 정부 사무실 건물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다음날 그의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수련생들도 차례로 집에 돌아갔는데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수련생들은 동시에 납치됐기에 구출 작업도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우리는 오전에 두 집에 갈 때가 있고, 하루에 세 집에 갈 때도 있었습니다. 필요할 때 우리는 떠나려 하면 바로 출발했습니다. 바빠서 법공부할 시간이 없을 때 우리는 차를 타고 가는 길에서 법을 외웠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우리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모든 단계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과 일깨움, 도움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뛰어다닌 것 같지만 실제로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겁니다! 제자는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조사정법(助師正法), 우리는 사부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2/25/47353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2/25/4735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