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의 신경문 ‘험악을 멀리하라’,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를 배운 후 대법 수련의 엄숙성을 깊이 느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표면적으로 믿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생명의 본질에서 사부님께서 주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전심으로 굳게 믿고 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에서 사람의 마음[人心], 사람의 생각[人念], 사람의 정[人情]을 섞으면 안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다.
현지에서 최근 일부 수련생은 사람의 마음, 사람의 생각, 사람의 정으로 수련 중의 일을 대하고,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연설 난법, 기술 수련생에 대한 숭배, 수련생 사이에서 돈을 빌리는 문제 등이다. 이로 인해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조성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누구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속에 빠져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 수련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로잡으며 손해를 만회하기 바라며, 수련생들에게 일깨움을 주고 우리 수련의 길을 함께 바르게 가기 위함이다.
1. 사람의 정으로 조성된 시장
2023년 2월 1일, 명혜망에 현지에서 연설 난법을 한 A를 실명으로 폭로했다. 글이 발표된 후 일부 수련생은 똑똑히 이 일을 볼 수 있었고 이성적으로 선하게 당사자를 대하고 자신의 수련을 파악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은 A를 숭배하고 따랐다. 대다수 여자 수련생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에서 문제를 보고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A를 더욱 지지했다. 심지어 도처로 다니며 명혜망에 발표된 글이 날조됐고 A를 헐뜯는 거라고 했다. 심각한 사람은 여전히 수련생을 데리고 A의 집에 가서 설법을 듣는다. 이로 인해 연설 난법이 갈수록 심해졌다.
A는 10여 년 전 진상 항목을 하면서 많은 여성 수련생을 접촉했다. 그 과정에서 A는 색욕심을 없애지 못해 결국 남녀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B는 거듭 A를 위해 사정하고 수련생들에게 A를 나무라지 말라고 극구 말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시력이 갈수록 나빠졌고 결국 철저히 실명했다.
최근 몇 년간 A는 ‘연설 난법’으로 발전됐는데 B가 여기저기 다니며 A를 선전한 것과 관련이 있다. B 본인은 오랫동안 가정 고비를 넘지 못하고 법에 따라 수련하지 않으며, 안으로 찾지 않고 늘 밖으로 추구했다. A를 찾아 교류하고 매번 많은 이로움을 얻었다고 했다. 수련생을 데리고 가서 A의 ‘고층차의 이치’를 듣게 하고, 사람만 만나면 “A가 잘 깨달았어요. 한번 가서 들어보세요”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사람의 정’ 때문에 A의 연설을 들으러 갔다.
2. 연민으로 난법 초래
A는 ‘전법륜’과 사부님의 일부 경문을 외울 수 있다. 이 점은 듣는 자와 따르는 자를 가장 크게 현혹했다. 그는 자주 큰소리치고 법에서 어긋난 인식을 많이 말하며, 때로는 법 한 단락을 외운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법을 외울 수 있었는가? 특히 신경문을 어떻게 외울 수 있었는가? 주변 일부 수련생이 ‘전법륜’과 사부님의 일부 신경문을 제멋대로 TXT 형식으로 변경해 메모리 카드에 저장한 후 플레이어의 읽기 기능으로 듣게 한 것이다. 그는 이런 ‘난법’의 방식으로 법을 외운 것이다.
‘대법 경문은 오로지 원문 원목소리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절대로 기타 녹음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문장에서 사부님의 평어는 “대법제자는 사람 마음으로 일을 하지 말라. 법은 누구도 어지럽힐 수 없는바, 교란 작용을 일으키는 행위는 단지 자신의 수련 중 오점이 될 뿐이다. 수련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넘지 못한 관이든, 또는 수련 후에 한 나쁜 일이든 모두 최후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대난관(大難關)이 될 것인데, 장래 당신들은 어떻게 하려는가?”(정진요지3-평어)
A와 관련된 수련생에게 이렇게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면 안 된다고 지적해줘도 그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특수한 상황이니 그렇게 따지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이런 연민의 마음으로 ‘도움’을 줘서 본인 자신도 난법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슬프지 않은가? 이성적이어야 진정한 자비가 나올 수 있다.
3. 숭배심으로 기술 수련생을 대하다
한 60여 세 기술 수련생 C는 지식인이라 기술을 잘 알며 성품이 비교적 온화하고 우아해 사람들에게 ‘중후한’ 느낌을 준다. 때로 그럴듯한 말을 하기에 어떤 수련생은 C가 높게 수련했다고 생각한다. 탄복이 숭배로 변했고 어떤 여자 수련생은 발전해 그를 애모하게 됐다. 한 사람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C는 수련을 잘했어요! 한동안 그와 교류하지 않으면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등의 말을 한다. 이런 C에 대한 존경 때문에 결국 C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C는 교류할 때 ‘고층차의 이치’를 말하기 좋아한다. 예를 들면 수련생 D가 수련생이 기술 개발로 쓰라고 준 대법 자금을 유용하자 수련생들이 그를 저지하며 교류하려 했다. 그러자 C는 가로막고 말했다. “교류하지 마세요. 부동한 층에는 부동한 법이 있어요. 혹시 D가 한 방법이 고층차에서는 맞을 수도 있어요.”
C는 기술 수련생이라 배우자가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자 수련생들 사이를 자주 다니는데, 여자 수련생과 단독으로 집안에서 접촉하고 접촉한 시간도 좀 길다. 여기에서 엄숙히 지적해야겠다. “남녀는 물건을 직접 주고 받아선 안 된다[男女授受不親]”, “예에 어긋난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廳, 非禮勿言, 非禮勿動].”[역주: 공자와 맹자의 예(禮)에 대한 가르침]
우리는 오늘날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한다. 비록 완전히 옛 표준으로 하지는 못해도 수련인으로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남녀 수련생은 단독으로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데 남녀유별이다. 대법 실증과 기술 일을 한다는 핑계로 자신을 느슨히 하면 안 되고, 자신의 행위에 구실을 주면 안 된다.
수련인은 마땅히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고 “모두 수련생인데 무슨 일이 있겠어”라는 이유로 자주 남녀끼리 단독적으로 접촉하면 안 된다. 혹은 ‘교류’를 이유로, 사람의 마음, 사람의 정에게 구실을 주어 자신의 공간장에 나쁜 요소와 물질을 키우면 안 된다. 이것은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 아니고, 정체(整體)를 위해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4. 수련생에게 돈을 빌려주는 문제를 사람마음으로 대하다
1) 수련생에게 돈을 빌려주면 상대의 이익심을 방종하는 것
현지의 한 노년 수련생은 아들이 대출을 받아 빚을 졌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몇 년간 연속 알고 지내는 수련생들에게 돈을 빌렸다. 금액은 20여만 위안(약 3,700만 원)이고 수련생 20여 명이 연루됐다. 노년 수련생은 퇴직금도 있었지만 돈을 갚을 때가 되어도 갚지 않았다.
우리 성(省)의 한 부부 수련생은 자녀가 유학하는데 자금이 부족하자 7년간 수련생들에게서 돈을 계속 빌렸다. 빌린 돈의 금액은 수백 위안에서 10여만 위안 등 다양했다. 부부는 사부님의 학습반을 따라다녔던 노수련생이라 많은 수련생을 알고 있었다. 돈을 빌린 범위가 넓고 언급된 금액이 크다. 작은 범위에서 돈을 빌려준 수련생들만 통계해도 이미 백만 위안(약 1억 8천만 원)을 넘었다. 최종적으로 얼마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예부터 “급한 일은 도와줘도 가난은 도와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사부님께서 ‘미국동부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사례를 들겠다. 어느 한 수련생의 가정이 갑자기 곤란하게 되었다. 이 곤란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아마 그가 예전에 진 이런 빚일 것인데, 없애버리는 과정 중에서 그로 하여금 반드시 이러한 감당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럴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럼 어떤 수련생은 그가 이처럼 곤란하다고 느껴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돕는가?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그에게 돈을 주어 그 일가가 생활하도록 한다. 자, 그럼 이후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법 공부를 하는 외에 집에서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돈을 쓴다. 그럼 더 이어 내려간다면 법도 배우지 않으며 당신이 돈을 가져와라, 나는 이처럼 생활하겠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들은 慈悲(츠뻬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이처럼 대할 수 없다. 개개인은 모두 그의 난이 있는 것으로 여러분은 慈悲(츠뻬이)에서 우러나와 그를 도울 수 있으며 직장을 해결해 주거나 혹은 임시로 응급조치를 취해 문제를 좀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장기적으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에게 배치한 그 한 갈래 길을 당신들이 다 파괴한 것으로서, 그도 수련할 방법이 없게 되고 마지막에 그는 수련하지도 않는다. 그는 직장도 찾지 않으며 곤란도 해결하지 않는다. 아무튼, 돈 쓸 일이 있으면, 당신이 매달 나에게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건대 수련생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사부님께서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절대로 빚을 져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빚을 져서는 안 된다.”
수련생은 왜 그에게 돈을 빌려줬는가? 왜냐하면 그들 부부는 사부님의 학습반을 따라다녔던 노수련생이고 모두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생각이고 사람의 정이다. 법과 수련에서 입각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이 어려우면 도와줘야 한다고 하면서, 그 노년 수련생이 아들에게 돈 때문에 핍박받으면 수련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은 수련생이 돈 문제를 꺼내면 체면 때문에 빌려준다. 한 수련생은 임금도 없고 수입도 없지만 가족의 돈을 몰래 8만 위안이나 빌려줬다. 어떤 수련생은 가족이 입원해 돈이 없어 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돈을 빌린 수련생과 빌려준 수련생은 모두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돈을 빌린 수련생에게 난이 커졌지만 법에서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임금도 있고 집도 팔 수 있었지만 각종 이유로 집을 팔지 않고 빚도 갚지 않았다. 그는 또 어떤 수련생이 돈을 빌려주는 것을 저지하거나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선하지 않다고 말한다. 돈을 빌려준 수련생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기고 일부 난이 나타났다.
2) 대법 항목의 자금을 사용하는 문제
현지 인근 현(縣)에 두 수련생이 있는데, 남자 수련생 수중에는 수련생들이 준 10여만 위안의 자금이 있었다. 그는 사악에게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됐고, 감옥에서 박해당해 암 말기 판정을 받아 사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가족이 그 10여만 위안을 쓰고 있었다. 수련생이 그의 가족에게 지적해줬지만 그들은 반납을 거부했다.
다른 여자 수련생은 그 남자 수련생의 장모다. 손에 수련생들의 자금 20여만 위안이 있었는데 갑자기 병업으로 사망했다. 20여만 위안은 아들이 가져가 사용하고 있었다.
이 두 수련생이 박해받아 사망한 것은 대법 자금 사용에서 법에서 엄중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돈을 준 수련생들도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 봐야 한다. 돈만 주고 그 돈이 사람을 구하는 데 쓰이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법을 위해,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는 것인가? 자신에게 책임지는 것인가?
5. ‘사람마음으로 폭로된 사람을 동정하고 연민하지 말라’를 다시 한번 수련생들에 일깨워준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A가 법에서 빗나간 말을 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이 발표되고 혹시 어떤 수련생은 말할 것이다. “저는 C가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당신이 몰라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관건은 우리 수련생마다 이런 일을 본 수련생은 이성적으로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자신의 수련을 대하고, 갈등에서 법으로 대조해 자신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심성을 제고시켜야 똑똑히 문제를 인식할 수 있고, 남을 인식할 수 있으며 주변 사람을 선하게 대할 수 있다.
마지막에 우리는 명혜편집부 글 ‘정념과 사람의 정’의 한 단락을 다시 배워 보자. “장기간 어떤 이는 사람의 정으로 일하고, 사람의 정으로 사물을 가늠하고 있다. 모든 일체의 난잡함과 좋지 않음은 모두 이러한 사람의 정과 사람의 정에서 비롯된 속인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도태가 곧 이루어질 관건적 시각에, 사람의 정과 속인의 관념을 고집하지 말아야 하며, 대법제자는 구세력이 찾아내 도태시키려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정념은 대법에서 온다. 사람의 정과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만 순정한 정념이 생길 수 있고, 비로소 법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 대법 중에서 착실히 수련하여 사람을 구하는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2/20/4733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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