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5년 제가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같은 기숙사에 있던 친구가 짐을 정리하면서 매우 특별한 책을 꺼냈습니다. 표지에 ‘파룬궁(法輪功)’이라 적혀있는 것을 보고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책을 내려놓을 수 없어 하룻밤 사이에 다 읽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저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이 기공보다 더 높고 좋은 기공은 없을 거야. 이 책은 이미 근본까지 말했어. 나는 이 공을 연마하기로 결정했는데 너도 할 거야?” 그는 “그럼 나도 연마할게”라고 말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우리 둘은 자전거를 타고 강변에서 연공장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공원에 연공장이 있다고 누가 알려줘서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우리는 공원에서 연공장을 찾았습니다. 30대로 보이는 보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우리 상황을 묻더니 웃으며 “두 분과 가까운 곳에 연공장이 있습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직장에서 100m 남짓, 기숙사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연공장을 찾았고, 정식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밀대를 돌려주다
3~4개월 연공한 후, 저는 수련에는 표준이 있다는 것과 수련자는 항상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심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습니다. 문득 얼마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화학공장 주택가의 난방시설을 개조하러 가서 공장 직원이 이사한 빈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다가 저는 밀대 하나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버리고 간 거니 내가 가져다 써야겠다.’ 저는 가방에 밀대를 넣어 가져갔습니다.
저는 지금 수련을 하는데 허락 없이 타인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그 집주인이 나중에 밀대를 다시 찾으러 온다면 찾지 못할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화학공장은 우리 회사에서 10km도 넘게 떨어져 있고, 평소 퇴근하면 어두워지기에 주말에 밀대를 돌려주러 가기로 했습니다.
주말이 되자 뜻밖에도 아침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이건 어쩌면 내가 한 말을 지키는지 시험하는 게 아닐까?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으니 보완하고 만회하려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 집에 도착하니 마당 문이 잠겨져 있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원래는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조용히 돌려놓을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옆집 이웃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웃집 문을 한참 두드렸더니 이웃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온 목적을 알려주고 밀대를 이웃에게 건네주며 “도와주세요. 꼭 그 집 사람에게 주거나 그 집안에 놓아주세요”라고 했더니 이웃은 웃으며 승낙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대법제자의 신분을 명심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연속 5일간의 소업(消業)
수련이 깊어지면서 여러 일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면 ‘소업’과 질병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이전에 ‘감기’ 증상이 몇 번 있었는데, 기침, 콧물, 발열 등 현상은 일반적으로 상관하지 않아도 하루 이틀이면 나았습니다. 가장 심했던 것은 어느 겨울이었는데 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겨울에는 회사에 일이 없어서 그냥 사무실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더는 버틸 수 없어 책상에 엎드려 팔을 베고 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른 약을 먹어요”라고 말해서 저는 “괜찮아요.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략 20~30분 정도 지난 후 괴로운 느낌이 사라지자 동료도 의아해했습니다.
그 후 더 심각하고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퇴근해서 기숙사에 오면 열이 나고 기력이 없어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는데 연속 5일간 그랬습니다. 하늘땅이 도는 것 같았고, 침대가 기울어져 몸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침대는 정상이고 기울어지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침대 양쪽을 손으로 단단히 잡았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려 할 때, 갑자기 모든 좋지 않은 느낌이 사라지고 힘이 나서 출근했습니다.
그날 하루만이었다면 마음에 두지 않았을 텐데, 연속 5일간 퇴근하고 기숙사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온몸이 무기력해 얼른 몇 걸음 걸어서 침대에 쓰러져 밤새 움직일 수 없었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할 때가 되면 정상으로 회복해 출근했습니다.
못에 박힌 발이 정상으로 회복되다
한번은 공사 현장을 순시 검사하던 중 우연히 나무판의 못을 밟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개의치 않고 못을 뽑고 검사를 계속했습니다. 예전에 남부의 한 10대 소년이 못에 찔려 발이 많이 부어올라 약을 바르고, 거즈로 감싼 후 목발을 짚고 열흘이 넘어서야 나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업부 관리자가 제 일을 듣고 걱정스러워하며 말했습니다. “빨리 신발을 벗고 신발 밑창으로 발바닥을 세게 두들겨 피가 나오게 해서 짜낸 뒤 약을 발라요. 약을 바르지 않으면 감염되어 곪게 되고, 심할 경우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는 또 몇 가지 사례를 저에게 들려줬습니다.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은 아무 일 없었고 일하는 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발이 많이 붓고 아팠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발을 신발에 애써 넣고 출근했습니다. 공사 현장에 도착해서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고 여전히 몇 개 라인을 위아래층 오르내리며 검사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부어오른 발이 언제 부었냐 싶게 정상으로 회복되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돈에 대한 시험
수련한 후 첫해, 특히 상반기에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저는 판매자가 몇 위안에서 10위안(약 2천 원) 이상, 많게는 50위안(50위안은 당시에 적지 않은 돈이었음)에 이르는 돈을 더 거슬러 준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물론 저는 항상 돌려줬습니다.
50위안을 돌려준 것은 대형 쇼핑몰에서 146위안(약 3만 원)짜리 시계를 샀을 때였습니다. 150위안을 냈는데 판매원이 잔돈으로 54위안을 거슬러 줬습니다. 제가 “거스름돈을 많이 주셨어요. 저는 150위안을 드렸어요”라고 말하자 그 판매원은 몇 초간 멍해 있더니 알아차리고는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딴생각을 하다가 잘못 봤네요. 감사합니다. 하루 매출을 날릴 뻔했네요.”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으면 우연이지만, 열 번 정도의 쇼핑에서 일곱 번을 더 거슬러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저는 속으로 왜 내가 이렇게 여러 번 돈을 더 거슬러 받는지 생각해보니, 제가 여전히 금전 방면에서 담담히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반복적으로 이런 시험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도 위조지폐를 받은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위조지폐를 준 사람을 찾아갔다가 못 찾거나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으면 불태워버리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위조지폐를 받으면 바로 태워버렸습니다.
돈 봉투, 쇼핑 카드를 받지 않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저는 공사감리회사에 근무하면서 10여 개의 크고 작은 신축 공사, 재건축 공사, 인테리어 공사, 정원 계획 개조 공사, 실외 상하수도 공사의 감리를 담당했습니다. 당시 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시공사에서 감리자에게 식사 초대를 하는 것입니다. 매번 공사가 시작되면 감리자에게 돈 봉투나 쇼핑 카드를 주고 명절에는 술, 해산물 등 선물을 주었습니다.
저는 잘 파악하고 돈 봉투나 쇼핑 카드를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바로 거절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나중에 시공 측 사장에게 돌려줬습니다. 선물을 포함해 식사 초대도 거절했습니다. 시공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저는 그들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어떤 공사는 이윤이 많고 어떤 공사는 이윤이 적은데, 시공사도 여러 면에서 지출도 많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진선인(真·善·忍)’을 믿기에 ‘진선인에 따라 처사해야 합니다. 귀사에서 돈을 버는 것은 일을 했기 때문이고, 저도 귀사를 위해 기쁘니 저에게 사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에 문제가 발견되면 저는 여전히 지적할 것입니다. 표준에만 도달하면 절대 누구도 난처하게 하지 않고 모두 통과시킬 겁니다.”
저는 모든 시공사와 매우 잘 지냅니다. 줄곧 대법제자 신분을 항상 명심하고, 대법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면서 본연의 업무를 잘 수행하며,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보고 색정을 멀리했습니다.
바닥에 넘어진 사람을 부축하다
요즘 중국은 사회도덕이 타락해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부축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니 저는 땅에 쓰러진 노인, 환자, 술 취한 사람을 부축한 일이 3~4번 있었습니다. 사람을 부축할 때마다 갈취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당연히 부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물론 부축하기 전에 먼저 쓰러진 사람과 대화해 어떤 상황인지 확인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2017년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밤 눈이 많이 내렸는데, 저는 급한 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길에 한 남자가 눈밭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려 했지만 미끄러워서 서지 못하고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가끔 차량과 사람이 그의 옆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습니다.
급히 차를 세우고 달려가 보니 6, 70대 할아버지였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워드리며 말했습니다.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가급적 나가지 마세요. 다치지 않으셨어요?” 할아버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보세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아무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미끄럽지 않은 곳으로 부축해드리며 할아버지께 집이 머신지, 혼자 가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앞 건물을 가리키시며 “그럼요, 갈 수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큰 소리로 “파룬궁은 좋습니다! 파룬궁은 좋습니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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