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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법회] 고난 속에서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다

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5년 법을 얻어 수련한 후 오랜 생리통, 왼쪽 목뼈 불편함 등이 한꺼번에 사라졌고, 고질적인 천식도 사라져 대법(파룬궁)의 신기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중의사인 저는 그런 난치병들이 얼마나 고치기가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몇 년간은 개인 수련을 하면서 심신이 편안했습니다.

수련 중에 가끔 병업(病業) 고비가 나타났지만 구세력이 병의 가상을 이용해 정법 수련을 교란한다고 생각하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거리나 관광지에서 중국공산당 조직 탈퇴를 권하는 등 진상 알리기 활동을 하면 병업은 하루 이틀이면 사라졌습니다. 한번은 왼쪽 어깨에 ‘오십견’ 증세가 나타나 팔을 올리기 힘들었습니다. 혼자 옷을 입거나 벗기 어려웠고, 어쩌다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팔 전체가 감전된 듯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카트에 전시판과 자료를 싣고 거리에 나가 설치하고 진상을 알리자 금세 좋아졌습니다.

어떤 때는 사부님의 법리가 떠올라 원인을 깨달은 후 무난히 관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왼쪽 무릎이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주인이 방바닥을 두 번 닦으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불만스러웠지만 ‘이는 소업(消業)을 위해 주어진 일’이라고 법리로 생각하며 즉시 쪼그려 앉아 바닥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 무릎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20여 년간 구세력이 배치한 병업 가상의 관을 넘으며 빠르고 순조롭게 대법을 실증해왔습니다. 매일 싱가포르 뉴처수이(牛車水) 중국 거리나 관광지에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공산당 조직을 탈퇴시켰습니다.

우한폐렴이 창궐한 3년간 우리 지역도 폐쇄됐는데 그때는 길에서 중국인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작년 어느 달 중순, 뉴처수이에 다시 가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발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가서 진상을 알리면 아프지 않다가 돌아올 때 지하철을 내려서 걸으면 다시 아파서 절뚝거리게 됐고, 그렇게 얼마 동안 걸으면 통증이 또 사라졌는데 그런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남편(수련생)은 “나이가 들어 뼈에 칼슘이 부족해서 그런 거니 우유를 많이 마셔요”라고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아무리 주의했어도 통증은 여전했으며 심지어 발바닥에 마비 증상이 오고, 허리가 불편해지며 전신에 저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원인을 알 수 없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신체가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하다”와 같이 마음이 정말 불편했고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습니다. 온갖 사람 마음이 올라오고 원망이 올라왔습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낫지 않을까?’라고 병을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고, 어느 중국인이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 같은 중국인은 옳고 그름을 몰라. 내가 이렇게 발이 아픈 몸으로 당신에게 평안을 보장받으라고 공산당 탈퇴를 권하고 있는데도 듣지 않고 나에게 비키라고 하다니?’ 등 타인을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으며, 또 ‘만약 내가 정말 심각한 병으로 침대에 눕게 되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될 텐데 어떻게 하지? 가족은 어떻게 하지?’라고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도 올라왔습니다.

때론 다른 사람의 말도 떠올랐습니다. “기력이 없을 때는 밖에 나가 진상을 알려서는 안 돼요”, “병업으로 침대에 누워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수련생, 병원에서 수술받은 수련생, 병업으로 세상을 떠난 수련생” 등등의 말과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길을 가다가 앞에서 한 행인이 절뚝거리며 걷는 걸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확고하게 법을 믿고 법을 외우는 등 법공부를 착실히 하면서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난(難)이 올 때마다, 강한 의식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선 안 된다’라는 생각을 견지했습니다.

저는 더 제고할 부분이 있는지 찾아봤고 걱정, 원망, 증오, 의심, 환희심, 쟁투 등 좋지 못한 집착심이 반복해서 나타날 때마다 조금씩 제거했습니다.

지난 3월, 중국공산당이 소위 ‘제로화’ 정책을 끝내자 싱가포르에 중국인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시 머라이언 관광지로 돌아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매일 아침 자료를 준비해 8시가 되면 발꿈치가 아픈 것도 개의치 않고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진상 장소에 가기만 하면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자유롭게 중국인 관광객 사이를 누비며 진상을 알리고 공산당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시 아파서 걷기가 불편해 절뚝거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렇지만 천천히 걷게 되면 습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통증을 참으며 정상적으로 걸었습니다.

관광지에 전문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촬영해주는 중년의 사진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게 다가와 “밤이면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요, 그때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듣고 사부님께서 사진사의 입을 빌려 알려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날 밤 다시 관광지에 가자 정말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날부터 발꿈치 통증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관광지에 가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며칠 후 가부좌할 때 척추가 똑바로 펴졌고 복부도 아래로 처지지 않았습니다. 수련자는 자세가 단정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발꿈치가 아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됐고, 다리를 꼬는 습관도 고치게 됐으며, 길을 걸을 때 가끔 자신이 거대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을 쓸 때, ‘나는 이미 60세라 나이가 많다. 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는 우주 법칙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관리하시므로 하층 생명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그런 사고와 관념은 구세력의 마에게 빈틈을 타게 할 수 있어서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즉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발정념으로 제거했습니다.

난관을 겪으면서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서서히 은혜에 감사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고난 속에서 성장, 승화시켜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마음의 평온함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일할 때 감성에서 이성으로 대할 수 있도록 성숙해졌습니다. 원한을 내려놓자 마음속에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수련자들의 어려움도 더 잘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아량이 넓어지고 마음도 평화로워졌습니다. 관광지에서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저의 서약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관광지에 사람이 많든 적든, 그곳을 굳게 지키면서 저의 서약을 완수할 것입니다. 지난 1년간 2천 명이 넘는 중국인이 저를 통해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오늘 아침 발정념을 마치고 사부님의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보고, 제가 넘은 병업관과 구세력의 교란은 생생세세 살면서 쌓은 업력임을 알게 됐습니다. 20여 년 넘게 뉴처수이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심지어 여섯 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제자는 그 우여곡절과 시련 속에서도 사부님의 도움과 보호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여러 번 제자의 사전 서약을 실현하게 일깨워주셨으며, 생명이 대법 중에서 빛나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3년 싱가포르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4년 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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