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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처음 사부님의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배우면서 수련인의 가장 큰 험악은 고비를 넘기지 못할 때 대법을 원망하고 사부님을 원망하는 것이며, 원망은 가장 큰 악이자 위험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신경문을 배운 후 구세력이 수련자의 업력을 약점으로 잡는다는 걸 알았다.

빚을 지면 갚아야 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그러므로 생생세세 빚은 업은 수련의 길에서 위험을 초래한다. 바로 이런 위험을 제거해야 하는데, 빚을 갚지 못하거나 다 갚지 못하면 구세력에게 약점을 잡혀 박해당한다. 병업(病業), 납치,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불법적인 사법 박해, 심지어 육신을 빼앗기는 등 박해를 당한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수련인은 고생을 겪어 죄를 갚고 업을 갚아야 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하고 죄업을 없애면 다음 생에는 잘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법 수련에서 고생하고 소업(消業)하는 것은 단순히 다음 생에 잘 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생하고 소업하는 과정에서 심성을 높여 공(功)을 자라게 하고, 층차가 높아지면 최후에 정과(正果)를 얻어 공성원만(功成圓滿)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업을 모두 갚아야 한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사악의 박해를 부정할 수 있다. 업이 없으면 사악은 박해할 약점을 잡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구세력은 왜 대법제자를 박해할 수 있는가? 구세력은 업을 지면 갚아야 한다는 이치를 붙잡고 있고, 다른 한편으론 박해 중에 우리가 잘하지 못하면 시련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법공부를 통해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대법을 수련할 수 있도록 우리 개인적인 업을 이미 대부분 감당하셨는데, 최대한 우리의 업을 상쇄시켜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갚는 것은 단지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심성을 높이기만 하면 넘을 수 있는데, 관건은 우리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각종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시련을 불러오는 것이다.

고생하면 업을 없앨 수 있다. 그러므로 수련인은 고생하면 좋은 것이고, 안일함은 좋지 않은 것이다. 안일함은 소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추구하면 업이 쌓인다. 그러나 개인 수련에서는 대다수가 안일함에 빠져 그것을 누리려 하므로 쉽게 깨닫지 못한다. 안일함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똑똑히 알고 그것을 제거해야만 고생해 소업할 수 있고, 업을 갚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안일함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일함에 집착하는 데는 여러 형식이 있다. 식탐과 수면 등 편안함에 빠지고, 색욕 등 속인 세상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각종 집착에 빠진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지금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없으며 인간 세상의 안일(安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사오(邪悟)할 것이다. 사부는 떨어져 내려간 그러한 사람들을 줄곧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수가 이런 마음에 이끌려 망가진 것이다.”(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이전에는 안일함이 왜 수련인을 망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안일과 사오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안일함을 제거하지 못하면 왜 그것에 이끌려 사오하게 되는가? 분명한 것은 안일함을 추구하면 업력을 없앨 수 없는데, 수련인의 업력은 박해를 가하려는 구세력의 구실이 된다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법에서 수련하지 않으면 법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법의 힘이 없으면 구세력이 조성한 시련과 박해를 감당하지 못한다. 난관을 넘기지 못하면 쉽게 원망하게 되는데, 심지어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한다. 이것은 엄중한 죄를 짓는 게 아닌가?

수련인은 기본적으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한다. 고생하지 않고는 업력의 빚을 갚을 수 없다. 구세력에게 약점을 잡혀 강제로 박해당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법에서 고생하며 수련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구세력의 박해를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더욱이 그들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법에서 수련하면서 구세력에게 어떤 틈이나 구실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인위적으로 고생을 찾아서 하는 게 아니고, 사악이 만든 고난 속에서 수련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법에서 수련하며 심성을 높인다. 사람의 마음과 집착을 없애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걸 감당하며 고생해 업을 없애야 한다. 빚진 업을 갚으면 구세력의 박해를 근본적으로 타파할 수 있다.

무엇이 마땅히 해야 할 고생인가? 가부좌할 때 다리의 고통, 참장할 때 팔의 고통 등은 가장 기초적인 몸 고생이다. 또 사람 사이의 갈등에서 뼈를 깎는듯 마음을 닦는 고생도 있다. 사실 법공부를 잘하면 이런 건 고생이라고 할 수 없다. 최소한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는 자주 아침 연공 때 제때 일어나지 못했다.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할 때가 있고, 때론 듣고도 알람을 끄고 좀 더 누워있으려고 하거나 누운 자세를 바꾸기만 한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일어나 앉아 가부좌를 한다. 안일한 마음은 각종 형식으로 정진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완전히 그것에 이끌리면 다시 잠들어 아침 연공을 잊는다. 이것이 바로 안일한 마음의 교란이다.

지금 나는 알람이 울리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난다. 안일에 틈을 주지 않고 안일을 탐하는 마음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물론 일어나기 전에 괴로움도 있다. 더 자고픈 마음, 추위에 대한 두려움 등등이다. 만약 안일한 마음을 돌파하기만 하면 졸리고 괴롭고 불편한 것이 전혀 없다. 아침 연공 후 정신이 맑고 상쾌한데, 이것이야말로 수련인의 상태가 아닌가?

안일한 마음과 그 외에 가장 뚜렷한 또 한 가지 마음은 색욕과 물건을 모으는 집착이다. 이는 탐욕으로서 남의 공을 가로채려는 마음과 같다. 색욕의 구체적인 표현은 옷 쇼핑을 즐기는 것인데, 색욕과 안일함은 일맥상통하는 관계다. 아름답게 차려입고 남에게 칭찬과 부러움을 사려는 것이다. 색욕을 만족시키면 안일함도 만족시키게 된다. 수련에서는 안일함과 색욕을 함께 없애야 한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똑바로 인식하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업이 구세력이 수련인을 박해할 수 있는 약점임을 알아야 하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면 박해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관념도 타파해야 한다. 두려운 마음은 진정한 수련인의 공간장에서는 생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수련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한다.

이상은 현 수련단계에서 얻은 약간의 체득으로, 자신에게 인상을 깊게 남기고, 수련생 여러분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표한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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