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대법을 수련한 지 20년이 넘는 대법제자입니다. 20년이 넘는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심성을 높이고 법리를 깨달은 기쁨이 있고, 죄책감이나 후회, 유감도 있습니다. 세세생생 진 업을 모두 갚을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사부님의 보호와 대법의 인도가 있기에 수련의 길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과 아름다움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년간 심성을 수련하면서 겪은 일들을 모두 적어서 수련생들과 공유하고 사부님께 보고드리려 합니다.
1. 수련 초기
대법 책을 읽자마자 저는 즉시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고 세계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기심, 자아, 원한, 명예, 이익, 정이 없어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돈, 권력, 물건이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대법만 있었고 정말로 심신이 가벼움을 느꼈습니다. 연공할 때 대부분 입정(入定)했고 몸에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약간의 사유만 남았습니다.
예전에 시어머니와 마주쳐도 서로 상대하지 않았는데, 대법 책을 읽고 모든 것이 업력윤보임을 이해하고 즉시 시어머니 집에 가서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님, 예전에 제가 잘못했어요. 옳지 않은 점은 용서해주세요. 저는 이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우고 있어요.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을 잘 대하라고 하셨어요. 과거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시어머니는 감동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대법은 저와 시어머니 사이의 원한을 해결해줬습니다.
법을 얻은 날부터 속인의 TV를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동료들과 함께 쇼핑하지 않았으며, 퇴근하고 집에 가면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매일 대법에서 승화하고 심성도 높아져 매일 매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2. 상황이 급변하다
1999년 7월 20일, 극악무도한 장쩌민은 파룬궁을 모함하고 거짓말과 속임수, 언론 통제로 사람들을 해쳤습니다. 저는 대법 사부님의 결백함을 밝히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습니다!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저는 불법적으로 3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노동수용소 환경은 매우 열악했지만 저는 우주 대법을 얻고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고통을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가장 괴로운 일은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남편과 자식들을 이용해 저에게 수련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가족 정, 명예와 이익 등은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저의 확고한 믿음을 흔들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저를 감시하던 샤오후(小胡)가 저에게 그들을 속이고 수련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집에 가서 남몰래 수련하라면서 “영리해야지요. 왜 굳이 이런 고통을 받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진상을 알릴 줄 몰라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고 합시다. 어느 날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는데 우리 아버지가 살해했다고 모함하면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할 텐데, 그것이 죄일까요? 자신이 고난을 겪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모함당하는 것을 무시할 수 있을까요?” 샤오후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사부님은 아주머니와 같은 제자를 두셔서 기뻐하실 거예요. 아주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에요.”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셨기에 제자는 힘들고 어려운 그런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3. 가정에서의 고비
수용소에서 나왔을 때 딸은 아직 대학생이었고 저는 다른 도시에 가서 살게 됐습니다. 딸이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함께 밥을 먹었는데, 저와 남편은 이 청년이 괜찮고 점잖으며 성숙된 것을 보고 그들이 사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딸이 전화해서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며 저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딸은 집에 돌아온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남자친구는 이미 아내가 있었고, 그가 아내를 좋아하지 않으니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할 거라는 등등을 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매우 고민됐습니다. 수련자로서 저는 그 아이도 생명이기에 낙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생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을 안정시키고 먼저 딸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딸은 의사가 태아가 너무 커서 낙태하면 산모도 위험할 수 있어서 낙태할 수 없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남자친구는 기어이 낙태를 하라고 했는데, 그 태아는 명줄이 길어서 딸이 병원에 가면 열이 났고, 집에 돌아오면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돼 결국 아이가 순조롭게 태어났습니다. 제가 딸의 남자친구에게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미 전 부인과 이혼했으나 아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제가 키우게 됐습니다.
딸은 점점 성격이 사나워졌고 자신의 불행과 고통, 원망이 모두 제 탓으로 돌렸습니다.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 노동수용소에 있었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 남자와 사귀지 않았을 거라면서 저를 증오했습니다. 그 이후로 딸과의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고 딸이 불행한 것은 저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때 저도 너무 슬펐습니다. 딸이 그런 시련을 겪었으나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없었고 수련생들에게 말하는 것도 쑥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딸은 내키지 않으면 저에게 화를 냈고 가끔 자기 옆에 물건이 있으면 저에게 던지기도 했는데, 미처 피하지 못해 위험할 때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외손자가 숙제하다가 이해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딸이 아이 뒤에 앉아서 아이를 때리면서 문제를 설명해줬습니다. 이때 아이는 엄마가 때릴까 봐 겁이 나서 더욱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한 시간 넘게 아이를 계속 때렸습니다. 제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다가가 보니 딸은 얼굴색이 변했고, 마치 통제를 잃은 것 같아서 딸에게 화내지 말라 하고 손자에게는 “빨리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해. 엄마를 너무 화나게 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는데 딸이 주먹으로 제 콧등을 때려서 제 윗니가 뿌리째 뽑혔고, 그날 외손자는 맞아서 약간의 뇌진탕을 입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뿌리에서 계속 피가 났고 몇 년간 너무 아팠으며 입에서 계속 피가 나서 밤에도 여러 번 일어나 피를 뱉었고, 피가 이불에 묻을까 봐 반듯하게 누워 자야 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일에 직면하자 저는 너무 괴로워서 온종일 우울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이 점점 커졌고 슬픔, 자책, 이기심 등 각종 부정적 감정이 반영됐습니다. 딸은 저와의 대화를 거부했기에 저는 딸과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딸은 소리를 지르고 노발대발했습니다.
4. 설상가상
딸의 마성(魔性)을 대할 때 저는 주로 사람의 방법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딸이 말이나 행동이 너무 과분할 때 저는 울화가 치밀어 딸에게 싫은 내색을 냈습니다. 저는 딸이 저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전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좋은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성실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 동네 할머니는 제가 살림꾼인 좋은 남편을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돈을 헤프게 써본 적이 없고, 괜찮은 옷을 산 적도 없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씀씀이가 인색한 편이라 저는 남편을 신뢰하고 안심했습니다. ‘명혜주간’을 읽을 때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하려 한다는 수련생들의 글을 봐도, 저에게 이 방면의 시련이나 고난이 없을 것이고, 저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읽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많이 변했습니다. 저를 별로 상대하지 않고 딸하고만 대화했으며, 제가 이 방에 가면 그는 즉시 저 방으로 갔는데 이런 일이 매일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돈 한 푼도 없었습니다. 설날에 손자에게 세뱃돈을 좀 주자고 했더니 남편은 줄 돈이 없다면서 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핸드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자주 핸드폰을 들고 나가서는 반나절 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남편이 저에게 “당신이 예전에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어? 우리 지금 이혼하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별다른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평생 같이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그는 외지에서 일했음), 당신이 퇴직하고 집에 왔으니 우리 법공부와 연공을 함께 잘해봐요. 무슨 이혼을 해요.”
그런데 남편이 진심을 말한 것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중에 보니 남편의 핸드폰이 계속 울렸습니다. 어느 날 핸드폰이 또 울려서 집어 들고 보고 나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이 바람을 피웠던 것입니다. 남편에게는 그 여자의 가족사진과 전화번호, 그리고 남편이 그 여자에게 제가 이혼하지 않겠다고 쓴 메시지와 관심 어린 말들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고 마음이 어지러웠으며, 휴대폰을 들고 남편에게 이 여자는 누구며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낸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고, 약간 찔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며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과 어떤 관계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남편의 동료인데 이제 퇴직하게 되어 퇴직에 관한 문제를 물어본 거라고 했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일을 알고 있으니 우리 가정을 파괴하지 마세요. 내 손자는 할아버지만큼 키가 큽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누가 당신 가정을 파괴했다고 그래요? 미쳤네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그녀에게 몇 번 전화했는데 더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르바이트하는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딸에게 남편 이야기를 했더니 딸은 별 반응이 없었고 저를 노려보기까지 하며 전혀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썼으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돈을 보낸 것을 알고는 화가 나서 아무것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딸은 듣고 나서 고함을 지르며 노발대발하면서 아버지에게 저와 이혼하고 저를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고 “자, 오늘은 내가 너를 상대해줄게”라고 말하고 그때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찢어버렸습니다. 딸은 제가 진짜 화가 난 것을 알고 저를 피했습니다. 남편은 재빨리 딸에게 아버지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아버지가 옳든 그르든 상관하지 않고 여전히 아버지 편에서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은 수련자이기에 함부로 하지는 않겠다고 애써 귀띔하면서 딸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 고통은 여전히 걷잡을 수 없었고 남편의 행동에 오랫동안 진정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부모님을 잘 대하고 고생스럽게 딸을 키우고 또 고생스럽게 손자를 키웠어요. 평생을 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남편이 귀를 막고 듣지 않고 혼자 자러 가면 저는 남편을 깨우기도 하고 때로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가 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동의했습니다.
5. 수련을 처음처럼 하는 상태를 되찾다
제 집에 돌아온 후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법을 외우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명혜 교류의 글을 많이 들음으로써 저는 점차 정신이 맑아지고 더는 소침하지 않고, 이러한 갈등을 좋은 일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수련하고 단련하는 좋은 기회로 삼고 드러난 온갖 사람 마음을 닦아내고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저는 더는 엎드려 있을 수 없고 심성을 높이고 자아를 되찾아야 했습니다.
딸과 함께 있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며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착실한 수련이 부족해 사람의 마음에 막혀 고난 속에서 참고 논쟁하지 않았으며 참고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화가 났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수년간 계속 가족 정이라는 고비를 넘느라 수련이 매우 고달프고 힘들었으며, 명예와 이익의 유혹으로 이미 방향을 잃었습니다. 그 당시 기점은 다 자신이었고, 법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지 않고 타락된 속인의 이치에 따라 가늠했기에 교훈은 비참하고 침통했습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모든 고난은 우연이 아닙니다. 남편과 딸은 제가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이기심, 자아, 조바심, 강한 성격, 쟁투, 원한, 부부의 정, 질투, 보답을 바라는 마음, 이익에 대한 마음이 전부 드러나게 했습니다. 더러운 사람마음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복잡한 환경에서 자신을 제고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고 자신을 완전히 바꾸리라 다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문제와 마주치는가? 모두 당신 자신이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미 당신에게서 무수하고도 무수한 몫을 없애주었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약간의 것을 각개 층차 중에 나누어 놓았는데,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해 사람의 마음을 연마(魔煉)하고, 각종 집착심을 버리도록 설치한 일부 마난(魔難)이다. 이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난(難)으로서 우리는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데, 당신이 모두 넘을 수 있게 한다.”(전법륜)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스스로 대법에 동화되고 자아를 내려놓도록 노력했습니다. 가정 문제도 제가 생생세세에 빚진 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항상 제 일사일념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활상에서 딸에게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딸이 일하느라 바쁘면 가끔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도시락에 담아 딸에게 가져다줬고, 딸이 설날에 일하느라 바쁘면 우리가 청소를 해줬습니다. 남편에게도 그 몇 년간 돈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도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면에서 남편에게 더 신경을 써 주었습니다. 평소 발정념을 많이 하고 제 공간장 내의 모든 바르지 않는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저는 명예, 이익, 정, 자아에 대한 집착을 담담히 보고 가볍게 보며,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변하자 딸과 남편도 변했습니다. 그 뒤로 저를 대하는 딸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고 가끔 저를 관심하는 말을 하며 존경심도 표했습니다. 남편과 더는 다투지 않았고 부부 감정도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남편도 대법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이 우여곡절의 세월 속에서 저는 온갖 집착을 내려놓는 가슴 아픈 고통을 겪으며 법리를 깨닫는 성숙과 기쁨이 있었고, 사부님과 법을 더 믿게 됐으며 수련의 길을 더 확고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는 오로지 정진해야만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저의 약간의 인식이므로 부적절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길 바랍니다.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께 엎드려 인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4/4709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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