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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쥔 가족의 수련 여정 (1)

글/ 중국 대법제자 매(梅)

[명혜망] 저는 류청쥔(劉成軍)의 누나입니다. 남동생을 언급하면 많은 사람이 감동해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수년간 겪은 시련과 박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 가족이 법을 얻고 착실히 수련하는 가운데 겪은 참혹한 박해의 전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악을 폭로해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길 바랍니다.

1. 법을 얻다

1995년 가을, 남동생은 처가에서 대법을 얻은 후 기뻐했고 뒤이어 우리 가족도 잇따라 파룬궁수련자가 됐습니다. 우리집에는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가 찾아와 파룬따파의 비범함과 신기함이 우리 가족 몸에서 분명하게 펼쳐졌고 검증됐으며, 저마다 천지개벽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신 첫날, 수년간 앓고 계시던 심한 이명과 전립선비대증(배뇨곤란, 복부팽만, 복통, 밤에 10번 이상 일어나는 증상)이 그날 밤 모두 완치되셨고, 어머니는 수년간 앓고 계시던 중풍 후유증(몸의 절반이 잘 움직이지 않고 입과 눈이 비뚤어짐)과 고혈압이 법을 배운 후 10일도 안 돼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셨습니다. 게다가 60세가 넘으셔서 수년간 폐경기였던 어머니는 다시 생리를 시작하셨고, 얼굴과 손의 검버섯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한 지 4일째 되던 날, 산후병으로 고생하던 다리가 완치됐고, 여동생은 대법을 수련한 후 수년간의 심한 류머티즘이 사라졌으며, 당시 9살 된 제 딸은 원래 몸이 약해서 일 년 내내 약을 먹어야 했는데 대법을 배운 후 몸이 점점 더 건강해져서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동생의 네 살배기 아들과 류청쥔의 세 살배기 아들 역시 대법을 얻었습니다. 이 세 아이는 모두 천목(天目)이 열려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광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노인부터 아이까지 모두 병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모두 건강해 길을 걸으면 바람이 이는 것 같았고, 혈색이 좋았으며, 파룬이 돌아가는 것을 모두 보고 느꼈습니다. 대법이 가져온 기적은 우리 가족에게 끝없는 놀라움과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동생 류청쥔은 피부가 점점 더 맑아지는 것 외에는 특별한 좋은 느낌이 없었지만 우리 가족 중 가장 정진하고 가장 확고한 대법제자였습니다. 그는 줄곧 고생을 겪으며 계속해 위로 수련했고, 참을성이 다른 사람을 몇 배나 능가했습니다.

2. 착실히 수련하다

온 가족이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와 파룬따파 법광(法光)의 혜택을 입어 몸이 정화되고, 사상과 도덕성도 승화됐습니다. 우리는 착실한 수련 단계에 들어섰고, 모두가 대법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법공부하고 마음을 닦으면서 세계관이 모두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함께 모이면 누가 어느 고비를 잘 넘겼고, 누가 어느 부분에서 제고됐으며, 누가 어떤 집착을 제거했고, 누가 얼마나 업을 제거했는지 등 끝없는 수련 체득을 이야기했습니다. 모두가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며 함께 정진했고, 삶을 되찾은 기쁨과 생명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는 행복은 우리 가족을 격려해줬습니다. 파룬따파의 무한한 힘이 우리를 단련시키고, 우리는 법에서 조금씩 자신을 바로잡고, 향상시키면서 끊임없이 ‘진선인(真·善·忍)’ 우주 특성에 동화됐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법공부 팀을 구성해 매일 수십 명이 함께 법공부를 하셨습니다. 한 수련생이 다른 공간에 있는 우리집 문에 ‘류씨 가족 나루터’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 사람을 데리고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함께 수련 체득을 나누셨는데, 모두가 더욱 빨리 제고됐습니다. 아버지는 몸이 가볍고 건강하셔서 걸으면 젊은 사람도 따라가지 못했고, 몸이 항상 떠올랐는데 주무실 때는 이불도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자주 다른 보도원과 함께 시골에 가서 법을 널리 전하셨고 연공을 가르치며 외딴 농촌 마을에 파룬따파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1998년 7월 26일, 사부님께서는 창춘으로 돌아가 창춘 수련생들에게 설법하셨고, 아버지는 운 좋게 참석하셔서 직접 사부님을 뵙고 설법을 들으셨으며, 은혜에 감사드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후에도 사부님을 뵈었을 당시를 떠올리기만 하면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 성격이 좋지 않으셨는데, 수련 후 다른 사람이 되신 것 같았습니다.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실 수 있었는데, 그것이 업력이고, 심성을 높여야 하며, 소업을 해야 함을 아셨기에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집에 법공부 팀을 만든 후 수십 명이 법공부를 하러 왔고, 사람이 많아 할 일도 많았지만 어머니는 마음을 바로잡고 안으로 찾을 수 있어 심성이 갈수록 높아지셨습니다.

저도 법공부 팀을 이끌며 아침마다 여동생과 함께 연공장에서 연공을 가르쳤습니다. 매일 법공부하고, 암기하고, 필사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급변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직장, 가정에서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우주 대법 진선인에 점차 동화하는 진정한 수련자가 됐습니다. 직장에서 저는 성실하고 열심히 일해서 상사와 동료들은 모두 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으며 우수직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같은 부서에 있던 두 동기도 따라서 대법을 배웠습니다.

집에서는 제 놀라운 변화와 대법의 바른 장이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시조부모께서도 자진해 대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80대에 심각한 뇌출혈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던 시할아버지는 일주일도 안 되어 지팡이를 버리고 걸으셨고, 얼굴에 혈색이 돌고 흰머리가 검게 변하셨으며, 시할머니도 천목이 열리셨습니다.

대법의 신기한 힘에 감동해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도 귀중한 책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습니다. 제 딸은 비록 어리지만 진정한 어린 대법제자로서, 학교에서 자신의 심성을 엄격히 지킵니다. 반 친구들이 괴롭히고 창피를 줄 때도 딸은 자신을 연공인의 표준에 따라 요구하며 웃어넘기고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사부님, 저 친구는 저의 제고를 돕고, 제 업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어서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딸은 돈을 보면 절대 줍지 않는데 “덕을 잃을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여동생은 집에서 제부가 자주 때리고 욕을 했습니다. 처음 대법을 수련했을 때 제부는 반대하며 여동생을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때렸고, 두 번째는 기절할 정도로 때렸습니다. 한번은 여동생이 한밤중에 일어나 가부좌하고 앉았는데, 제부가 일어나서 여동생의 뺨을 ‘짝, 짝’ 좌우로 때렸습니다. 여동생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는데 때리다 지친 제부는 자러 들어갔습니다.

여동생은 얼굴의 뜨거운 통증이 점점 더 차가워지며, 한 덩어리 한 덩어리 백색물질 ‘덕(德)’이 머리 꼭대기에 왔을 때 ‘공(功)’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을 제고시키기 위해 화를 내는 남편이 정말 불쌍했습니다. 동생은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동생을 때릴 때마다 제부는 한바탕 크게 앓았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매번 자비롭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남편을 대했습니다. 직장에서도 여동생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했습니다. 여동생의 선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동료 5명이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습니다.

남동생 류청쥔은 심성 향상 방면에서 더욱 잘 파악했습니다. 키 180cm의 건장한 젊은이를 장모가 때리고 욕하고 모욕했으며, 시장 관리인은 그를 때리고 질책하며 업신여겨 다른 사람들까지 그 모습을 보고 불만스러워했지만 남동생은 가장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라는 사부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심성이 날로 높아졌습니다.

당시(1996년) 남동생은 스스로 법을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옛사람들은 지식을 배울 때 대들보에 머리를 매달고 송곳으로 허벅지 뼈를 찔렀어요.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 대법으로, 사부님께서 우리 문 앞까지 가져다주신 것인데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속인보다 못합니다!” 그의 굳센 의지는 놀라웠습니다. ‘졸음’의 제약을 돌파하기 위해 먼저 찬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으며, 정말 너무 졸릴 때는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마침내 ‘졸음’의 포위망을 돌파했습니다.

남동생은 ‘전법륜’을 여러 번 연속해 읽은 후,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모두 읽었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하자 매일매일 대법의 빛이 삶의 모든 그림자를 몰아냈습니다. 항상 싱글벙글하고 침착하고 확고하며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대법은 남동생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새로운 삶을 주었습니다.

가부좌하는 중에 남동생의 인내력도 놀라웠습니다. 다리를 틀고 정공을 시작했을 때 그는 고통으로 땀을 흘리며 옷이 가슴과 등까지 흠뻑 젖었지만 연공음악이 끝날 때까지 견지했습니다. 여름에 밖에서 연공할 때 가끔 비가 많이 내리더라도 동생은 연공을 마칠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착실하고 온건하게 수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법에서 비롯된 것이며, 법을 배운 탄탄한 기초가 그의 완강한 정신과 굳센 의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모두들 대법에서 용련(熔煉)하며 반본귀진의 길에서 정진했습니다. 수련하면서 비록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고통 속에 단맛이 있었고, 단맛 속에 기쁨이 있었으며, 그 기쁨이 화목하고 화기애애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3. 박해

​1999년 7월 20일, 먹구름이 뒤덮이고 거친 파도가 하늘을 삼킬 듯 사악한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거대한 박해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7월 20일’ 그날, 우리 가족 수련생들과 많은 대법제자가 성(省) 정부 앞에서 경찰에 납치돼 경찰 학교로 끌려갔습니다. 경찰은 대법제자들을 겹겹이 포위하고 오후에 소위 ‘중요한 소식’을 듣도록 강요했는데, 이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모독과 거짓말이었습니다. 우리 남매들은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어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포위망을 뚫고 밤새 베이징으로 가서 당국에 상황을 반영하고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심각해 저는 딸을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으나 딸은 “엄마, 저도 대법제자고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저도 할 수 있으니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감동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딸을 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대법제자의 가장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딸과 남동생, 여동생, 다른 수련생 한 명까지 다섯 명이서 밤새 베이징으로 가서 중앙 지도부에 ‘대법은 정법(正法)이고,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라는 진상을 알렸습니다.

​베이징에서 우리는 두 번이나 납치됐습니다. 우리는 경찰에게 “대법은 좋은 것이고,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대법은 사람들에게 선(善)을 향하고 마음을 수련하는 법을 가르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베이징 주재 사무실에서 탈출했고, 두 번째는 톈안먼(天安門)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전법륜’ 책을 손에 든 경찰이 몰래 우리를 풀어줬습니다.

​당시 베이징은 40도 고온이 계속돼 우리는 내리쬐는 햇볕에 피부가 검게 그을리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밤에는 길거리에서 자고, 낮에는 마른 찐빵을 갉아먹었으며, 잔디밭에 주는 물을 마셨습니다. 딸은 온몸이 모기에 물려 몸과 얼굴 곳곳에 혹이 생기고, 발에는 피 물집이 생겼지만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보름 후, 저와 남동생은 잇따라 납치됐고, 둘 다 15일간 부당하게 감금됐습니다.

​1999년 10월, 남동생과 여동생과 함께 법을 수호하기 위해 두 번째로 베이징에 갔습니다. 우리는 민원실에 청원하러 갔지만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됐고, 세 사람 모두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남동생은 부당하게 창춘 펀진(奮進) 강제 노동수용소에 1년 10개월간 기한을 넘겨 감금됐습니다. 이 기간 올케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해 이혼했습니다.

​박해의 큰 압력과 충격 속에서 부모님은 두려움과 중공 언론의 사악한 거짓말을 곧이들어 감히 수련하지 못하셨고 법공부 팀도 결국 해체됐습니다. 이 가혹한 박해 속에서 부모님은 건강이 악화되셨습니다. 건강하고 낙관적이며 웃고 활기차시던 부모님은 사라지고 걱정, 두려움, 공포, 슬픔, 그리움이 동반되어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4. 진상을 알리며 중생을 구하다

여동생과 저는 불법 강제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함께 세탁소를 열었습니다. 세탁소의 편리함을 이용해 진상을 전하고 중생을 구하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이 세 번째로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가 불법 강제노동 3년 형을 선고받았고, 제부는 박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동생과 이혼했습니다.

저와 딸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한 시간에 한 번씩 발정념을 했습니다. 한번은 발정념을 할 때 다른 공간에서는 정사대전(正邪大戰)이 일어나 무수히 많은 사악한 마귀와 귀신, 사악한 생명이 소멸될 뿐만 아니라, 항상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加持)를 받는 것을 딸은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더욱 커졌고 정념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현수막을 걸고,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사악과 교란을 제거하기 위해 발정념을 한 다음,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진상자료 하나하나에 가장 자비로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진상 전단지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때면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거나 분필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직장과 가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립니다. 만남을 인연이라고 보고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구해야 할 사람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진상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 CD와 진상 소책자 등을 줬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련생들이 두려움 때문에 법을 실증하러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을 모아 사부님의 ‘미국서부법회 설법’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법을 파괴한다면, 물론 누구도 이 법을 파괴할 수 없지만, 우주의 법이 어찌 사람에게 파괴당하겠는가?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누가 이 법을 박해하려고 한다면, 한 제자로서, 대법의 한 입자로서, 당신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마땅히 진상을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는 당신 자신의 각도에 입각하여 말한 것으로서 당신은 대법의 한 입자라, 당신은 마땅히 이 역할을 해야 한다.”[도항(導航)-미국서부법회 설법]

법을 공부하면서 모두들 인식이 높아졌고, 더 이상 집에 숨어서 몰래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후 대법제자들은 하나둘씩 나와서 정법 노정을 따라 신성한 사명을 이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1년 12월, 저는 딸과 함께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다시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톈안먼 광장에 서서 현수막을 펼쳐 들고 우주를 뒤흔드는 함성을 질렀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세 번 연속으로 외쳤는데, 자신이 정말 거대한 신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베이징 경찰서로 보내졌고 저는 협조를 거부하며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고 사진 찍는 것도, 서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평온하고 온화했고 미소를 지으며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협조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서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찰이 베이징에 온 목적과 사실 경위를 물어서 저는 설명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세상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왔습니다. 현수막에 ‘파룬따파하오’라고 적혀 있고, 제가 외친 것도 ‘파룬따파하오’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좋은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안다면 여러분 생명에 큰 복이 될 겁니다.” 계속해서 저는 대법이 어떻게 사람에게 마음을 닦게 하고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치는지, 어떻게 사람의 심성을 높이도록 가르치는지, 어떻게 도덕성을 되찾게 하는지, 어떻게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지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또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진상을 분명히 알고 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대법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여러분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경찰은 눈에서 눈물이 솟아오르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정말 대단합니다. 감탄했습니다. 말씀을 잘하시네요. 어디에서 일하세요? 선생님이신가요? 어떤 지식이 있나요? 말솜씨가 좋으시네요.” “우리 대법제자들 중 배우지 못한 노인분이라도 당신이 말하게 한다면 대법이 좋다는 것을 끝없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겪고 느낀 것입니다!” 저는 이 생명이 구원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딸도 추궁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아 저는 놀랐습니다. 한 경찰이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며 유혹했지만 딸은 말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 괴롭혔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경찰로 바꾸었는데 그 경찰은 사납게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치며 눈을 부라렸지만 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아무리 강온 양면책을 함께 써도 딸은 절대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경찰은 차로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고는 표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도중에 저는 진상을 알려 또 몇 명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

 

원문발표: 2023년 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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