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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신경문을 읽은 후의 깨달음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의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와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가 발표된 후 나는 한 번만 보고 말았는데, 내가 수련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절대 신경문에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처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막 법을 얻고 법을 배울 때 골라가며 읽었고, 특히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볼 때도 많은 문제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한동안 수련한 후 자신의 많은 문제를 발견했고, 결국 그런 문제들과 부딪혔다. 이전에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법공부를 적게 해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다시 배우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상을 알렸고 대법활동에 참여했고 대법항목에 참여했다고 해서 대법을 위해, 사부를 위해 무얼 했다고 여기지 말라.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법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험악(險惡)을 멀리하라]

나는 문득 수련생들이 자주 이런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 사람은 대법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 사람은 본래 속인 중에 고액 연봉의 직장이 있어서 풍요로운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포기하고 대법 항목을 하러 왔습니다. 대법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나도 이전에는 대법 항목을 하며 마찬가지로 대법을 위해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배우고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생각됐다. 잠시 예전 인식과 상반되기에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일하면 한편으로는 자신을 수련하고, 동시에 자기 세계의 중생을 구하기에 확실히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단번에 관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좀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어 8월 말, 9월 초 2주간 고객서비스팀과 회사에서 각각 여행을 조직해 나도 신청했다. 당시 연달아 2주간이나 놀러 가면 너무 많이 노는 게 아닐지 생각했지만 모처럼의 기회이기에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여행 때 아주 즐거웠고, 두 번째 래프팅할 때도 즐거웠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에서 왼쪽 팔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2주간 너무 많아 놀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 왼쪽 팔을 단련하지 않아 아프다고만 생각했다.

이튿날 팔이 아플 뿐만 아니라 온몸이 불편해 병업관을 넘기는 것 같았다. 이제야 그렇게 놀면 안 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휴가를 가면 1~2주간 가는데, 나는 휴가도 없고 단지 회사에서 여행을 간 건데 이렇게 해도 안 될까? 순간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이때 머릿속에 한 폭의 화면이 나타났다. 고대 복장을 한 여성을 보았는데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말하는 것은 들렸다. “안 할 거야! 난 놀 거야, 난 놀 거야!” 이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직접 서약한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이 말을 듣고 난 크게 놀랐다. 분명히 이 말은 내게 들려준 것이었다.

예전에 사람마다 업력이 다르고 복도 다르므로 비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남의 어떤 것이 좋아도 내가 그 복이 없으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깨달았는데 사람마다 서약이 다르므로 하는 일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쉽게 일하고, 어떤 사람은 힘들게 일한다. 어떤 사람은 휴가를 많이 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주 야근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을 보지 말고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깨달았다.

하지만 며칠간 그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신이 직접 서약한 것이다”, “당신이 직접 서약한 것이다.” 나중에 이 말은 다른 함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대법 항목에 참여하고 대법 일에 참가하는 것은 겉으로 보면 남이 우리에게 하라고 했고, 보기에 내가 대법을 위해 일하고 항목을 위해 일한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수련 중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 이것은 결국 사부님께서 배치한 기연이고 우리에게 이런 일을 통해 우리가 구해야 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게 하시며, 자신의 서약을 완성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법 항목이 내게 사명을 완성할 기회와 장을 마련해준 것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도운 것이다.

예전의 표현을 떠올리니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였다. “이 사람은 대법을 위해 많이 일하고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말하더라도, 자신의 서약을 지키기 위해 한 것이고 대법을 위해 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대법 항목을 하면, 사실 그 사람이 자신의 서약을 더욱 잘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지 대법을 위해 대가를 치른 건 아니다. 물론 그의 세계와 그가 구하려는 중생에 대해 말하면 그는 확실히 많은 대가를 치렀고 확실히 대단하다. 하지만 이것은 대법을 위해 대가를 치른 건 아니다.

사부님께서 곧 익사해 죽게 되는 우리를 구해주신 후, 우리를 지도해 배 한 척을 만들어 이 배를 저어 자신의 가족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배를 저으면 힘들겠지만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이니 이런 대가는 모두 치를만한 것이다. 그때면 누구도 사부님을 위해, 이 배를 위해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사부님께 감사해야 하고 이런 배가 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일부 고비를 넘길 때 잠시 넘지 못하면 원망이 생기는데,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사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는 확실히 사부님의 항목을 빌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다. 내 개인적인 힘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진상을 알리면 몇 사람이나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매체를 통해 매일 수백만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우리의 작용을 수천수만 배 확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부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항목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며, 분명히 사부님과 대법 항목이 날 돕는 것이다!

나중에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몇 년 전에 한 항목 팀에 늘 지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일에 영향을 줬다. 협조인이 그에게 제시간에 출근하라고 하자 그는 말했다. “저는 원래 이래요, 어쨌든 사람이 부족하니 저를 자를 순 없겠죠?” 당시 나는 듣고 분노했다. “이런 사람도 있게 해야 해요? 그에게 당장 나가라고 하세요!” 협조인은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아요. 그를 그만두게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정말 사람이 부족해요.” 나는 듣고 대법제자는 일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국공산당도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세력의 교란이 있고, 우리들끼리 협력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그때 협조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 일을 잊었지만 지금 갑자기 생각났다. 대법제자답지 않은 그의 모습과 나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항목을 남의 일로 생각하고 했다. 단지 나는 그보다 진지하게 했지만 본질에서는 모두 같았다.

우리가 남의 일을 돕는데, 좋은 상태일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나쁜 상태일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책임하며, 이것저것 따지고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당신을 돕고 있는 거야, 내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좋지 않아? 그런데 내게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다니, 내가 없었다면 이 월급으로 일할 사람이나 있겠어?’ 그런데 실질적으로 누가 누굴 돕고 있는 것인가? 만약 이것이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서약이고, 자신을 위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더 책임질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하려 할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나태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따지지 않고, 불평하는 일이 적어지며, 일을 미루지 않고, 일하기 싫어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자신이 끝내지 못한 일은 다른 사람이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완성해야 할 수량은 다른 공간에 그대로 있기에 아무도 도울 수 없으며 점점 더 쌓일 뿐이다. 결국 앞으로 일을 늘려 서둘러 보충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잘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일까지 그르치면, 그것은 스스로 보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빚까지 지게 된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는 게 아닌가? 차라리 평소에 최대한 잘하는 게 낫다. 하지만 말은 쉽지만 평소에 이런 생각이 꼭 떠오르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자주 일깨워주는 것이 좋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에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여러분은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법을 잘 배우겠는가, 어떻게 대법을 위하여 일을 하겠는지, 어떻게 해야 제고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욱 잘 할 수 있는지 하며, 늘 대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할 뿐, 자신을 대법 중의 일원(一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일 년을 거친 후, 나는 여러분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았다. 당신들은 원래의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대법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당신들은 모두 자신을 대법 중에 놓았고, 내가 대법을 위해 무엇을 좀 할 것인지,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 하는 원래의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자신이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거나, 대법을 위해 마땅히 어떻게 해야겠다, 또는 어떻게 해야만 이 법을 위해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모두 자신을 대법 중에 놓았는데, 당신은 마치 대법 중의 한 입자(粒子)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비록 당신은 이런 명확한 의식이 없거나 혹은 명백한 언어 표현이 없지만, 사실 당신들의 행동은 이미 이러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본, 일 년을 거친 후 생긴 여러분의 가장 큰 변화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이미 완전히 법 중에 있다.”(도항-북미대호수지구법회 설법)

예전에 이 단락 법을 배울 때 좀 혼란스럽고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과 자신을 대법 속에 놓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마음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상은 최근 약간의 체득이고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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