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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 병업(病業) 고비를 돌파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올해 74살이고 운 좋게도 1997년 말에 대법을 얻었다. 사부님께서는 온몸에 업력으로 가득 차고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정화해주셨다. 사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구해주신 은혜는 영원히 보답할 길이 없다.

나는 세 번의 병업 고비를 넘겼고, 매번 사부님의 보호 아래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정념으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첫 번째 병업관을 넘다

2006년,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은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9평)’을 인쇄하는 자료점을 만들었는데, 다른 지역 수련생들도 와서 자료를 받아 갔기에 업무량이 많았다. 겨울 어느 토요일, 날씨는 매우 춥고 눈이 많이 내렸는데 나와 수련생은 각각 ‘9평’을 한 가방씩 지고 외지 수련생에게 전해주기 위해 버스를 탔다. 수련생이 먼저 탔고 나는 뒤에서 실수로 넘어지면서 마침 눈을 치우는 군인이 들고 있던 삽에 머리를 부딪혀 심하게 다쳤다. 등에서부터 발까지 저리고 무거웠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심한 고통이 몰려와서 나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할 정도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수련하지 않는 남편은 날 보고 병원에 가라고 했으나 나는 연공인이고 사부님께서 돌보고 계시기에 안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침대에 엎드렸는데 허리 뒤쪽에서 뼈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골절된 느낌이었다. ‘어떡하지?’ 나는 이러고 있으면 안 되고 연공을 해야 하며 연공을 해야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아파서 꼼짝할 수 없었다.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정념정행).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힘겹게 가부좌를 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옷을 흠뻑 적셨지만 아무리 아파도 내려놓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고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계속 견지했다. 셋째 날, 나와 함께 자료를 만드는 두 수련생이 우리집에 와서 외지 수련생이 ‘9평’을 달라고 하는데 우리가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멀리서 온 수련생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고 그들 두 사람은 만들 수 없었기에 나는 더 급해졌다. 나는 바로 좋아질 것이고 사람을 구하는 데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넷째 날 아침, 집에 채소가 하나도 없어서 나는 몸을 질질 끌며 30분을 들여(평소에는 5분)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에 갔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가 다 나았다는 걸 알았다!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나는 ‘9평’을 만들러 자료점에 갔다.

두 번째 병업관을 넘다

2022년 섣달 어느 날 저녁, 내가 집 계단 마지막 층에서 헛디뎌 발을 삐어 일어날 수 없었는데 매우 아팠다. 이웃이 날 부축해 방으로 들어왔는데 왼쪽 발이 너무 많이 부었고 흑자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며칠간 어느 면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았는지 안으로 찾아봤다. 며칠 전에 시장에서 마늘 광주리를 위에서 밑까지 뒤져 크고 좋은 것으로 골라 세 개를 샀고, 고구마도 좋은 것으로 골라 두 근을 샀는데 법에 너무나 맞지 않았다. 밤새 아파서 한숨도 못 잤다. 아침에 가까스로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한 후 발의 부기가 아주 빨리 가라앉았고, 오전에는 의자를 짚고 걸을 수 있었으며, 오후에는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세 번째 병업관을 넘다

2023년 7월 중순, 나는 포장했던 종이 상자를 겹쳐 쌓고 올라가서 단단히 밟으면서 ‘이것도 돈이 좀 되겠네’라고 생각하다가(이익에 대한 집착)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왼팔을 움직이지 못했고 왼손은 늘어졌다. 손바닥이 흑자색으로 변했고 손도 잘 쓰지 못하게 됐다. 나는 다급하게 오른손으로 왼팔을 잡고 “제 위치로 돌아간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계속해 염했다. 아이들은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은 날 못 당하자 둘째 사위가 의사 친구 한 명을 데려왔다. 보니 뼈가 어긋나고 골절됐다면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팔을 앞으로 잘 쓸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내가 절대 안 간다고 하자 사위의 친구는 하는 수 없이 붕대를 감아 고정시켰지만 팔이 며칠 밤낮 계속 아파서 나는 조금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팔을 만질 수도 없자 나는 계속 이러면 안 되고 사람을 구하러 나가야 하기에 사부님께 청을 드렸다. “사부님, 제가 연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왼쪽이 불편해 오른손으로 보조해가며, 아무리 아파도 작은 의자, 작은 매트까지 사용하면서 표준대로 했다. 나는 앞으로 나가야만 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되며 하루하루 변화해야 한다고 나에게 규정을 내렸다. 동시에 나는 시간을 다그쳐 법을 많이 배우고, 배울 때 천천히 읽어서 모든 글자를 머릿속에 넣으며 예전처럼 글자를 보태거나 빠뜨리지 않았고, 각 지역 설법도 보았다. 한 달 후 나는 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렇게 큰 시련이 온 생긴 것은 분명 수련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안으로 잘 찾아봤다.

1. 첫째 딸은 둘째 딸에게 우리 부부를 돌보게 하려고 특별히 둘째 딸 집 근처에 아주 좋고 밝은 아파트를 세 맡았는데, 나는 첫날 이 아파트를 보고 집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빈민굴 같은 곳에서 줄곧 살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사람마음이 올라 온 것으로 그때는 미처 몰랐다.

2. 나는 큰 외손자를 매우 예뻐했고, 사위는 내가 말한 진상을 듣고 많은 복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듣고 마음이 흐뭇해져서 외손자가 더 좋아졌다. 사위가 남편에게 큰 외손자의 성장 영상을 자주 보내줬는데 나도 옆에서 보고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어떤 때는 오랜 시간 보다 보니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줬다.

3. 어떤 때 나는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그와 함께 TV를 보는데,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고치지 못한다.

4. 나는 성격이 매우 강해 집에서 무슨 일이든 모두 내 마음대로 했고, 결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수련했는데도 이렇게 이기심이 많아 괴롭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 그것을 폭로해 버리겠다.

이 몇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내 수련의 부족함을 보았고, 앞으로 법을 더 많이 배우며 이기심을 버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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