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충성(忠誠)
[명혜망]
1. 법을 얻어 다시 태어나다
1988년 당시 나는 19세였는데, 싸움으로 인해 3년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노동수용소 경찰은 경찰복을 입은 깡패였고 나는 그에게 맞아 얼굴이 퍼렇게 멍들고 부었으며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아부를 했고 음험하고 교활했으며 싸움을 좋아했다. 중공의 가악투(假·惡·鬪-가짜, 악, 투쟁)는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썼으며 그런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1997년 10월, 나는 운 좋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게 되어 우주의 진리를 알고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부합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법을 얻은 초기, 나는 자신의 업은 모두 갚아야 한다는 이치를 알았다. 매번 가부좌할 때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플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남은 인생, 절대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량한 마음으로 살 것이다. 사람은 생생세세에 나쁜 일을 많이 해 업력이 아주 많은데, 일반인은 어떻게 그 많은 업을 다 갚을 수 있을까? 다행히 나는 이번 생에 우주 대법을 얻게 됐고 사람이 되는 진정한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임을 알게 됐으며, 명명백백하게 사람이 될 수 있다.’
진선인 법리를 마음속에 새겨두고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대법의 표준에 따라 처세했다. 나는 담배, 술, 도박, 색을 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싸우지 않았으며, 여러 가지 나쁜 습관을 고쳤다. 결국 직장에서 업무를 열심히 해 가족과 동료 친구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2. 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수련자들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강제노동시키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지방정부에는 말할 것도 없었는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중앙에서 내린 지시이므로 그냥 집행한다고 했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억울하게 비방과 모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파룬따파 제자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파룬따파는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치고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게 가르치는데 무슨 죄가 있는가? 대법은 나와 같은 불량소년도 바로잡아주어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량한 사람이 되게 했다. 나는 정부가 틀린 결정을 내렸음을 확실히 알았고, 정부가 파룬궁에 대해 정확한 상황을 몰라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족, 친구, 동료들은 나보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세 번이나 갔고 국무원 민원실을 찾아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나는 천안문광장에서 연공을 하고 ‘진선인(真·善·忍)’ 현수막을 펼치며 법을 실증했다. 나는 한번은 불법 감금되고, 한번은 불법 강제노동 3년을 받고 직장에서 해고됐다. 파출소, 국보(國保: 국내안전보위국), 주민센터에서 자주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위협하고 협박했으며, 결국 직장을 잃고 19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다.
3. 책임을 지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파룬궁 진상과 중국공산당의 사악함을 알리기 위해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생들과 협력하고 합심할 것이다. 대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반대하며 중생을 구해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완성해 신성한 서약을 이행할 것이다.
우리 구역에서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수련생이 많아서 사악의 심각한 박해를 받았고, 수련생 10여 명이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수십 명이 불법 강제노동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수련을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법공부만 하고 다른 수련생과 만나기 두려워했다. 나는 불법 강제노동 3년 형을 받고 집에 돌아와 현지의 이런 상황을 보고 마음속으로 강한 책임감이 나왔다. 나는 현지 수련생과 정체(整體)를 형성해야 하고 뿔뿔이 흩어지면 안 된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강제수용소에서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왔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모두 날 믿었다. 그때 박해는 아주 심했고 환경도 좋지 않아 자료점을 책임지는 수련생들의 부담은 아주 컸으며, 진상 자료 제작을 맡기 두려워했다. 자료점을 담당한 수련생은 날 찾아와 자료점을 이어서 할 수 있는 수련생이 있으면 기계를 옮겨가라고 했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 진상 자료와 ‘명혜주간’을 제작하려는 수련생은 거의 없었고, 명혜망을 이용할 수 있는 수련생도 아주 적었다. 나와 아내(수련생)는 상의 끝에 두 명의 수련생을 찾아 자료점을 책임지기로 했고, 우리 시와 멀리 떨어진 지역 수련생들에게 사부님의 신경문, ‘명혜주간’, 진상자료를 운반하는 것을 담당했다. 이렇게 나는 더 많은 수련생을 알게 됐다.
사부님의 배치로 성도(省都)에 있는 기술 담당 수련생과 다른 도시 수련생이 우리 지역에 와서 도움을 주어 2년 만에 20여 개 자료점을 세우고 몇몇 젊은 기술 수련생을 키웠다.
한번은 자료점 수련생이 사악에 납치돼 고문을 받아 나와 아내 수련생의 이름을 누설했다. 경찰들은 우리집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3개월가량 감시했다. 우리 부부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친척 집에 가서 우리를 찾았다. 친척들은 크게 걱정하고 두려워했으며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밖에서 19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다.
사악의 박해를 피해 우리는 12번이나 이사했고 수입은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평소에 우리는 새벽시장에 가서 가장 저렴한 남은 야채를 샀다. 그때 셋방도 제일 허름한 집이었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집안에서도 물이 얼었고, 잘 때도 솜 모자를 쓰고 잤다. 생활은 아주 빈곤했지만 우리는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알고 있었다.
경찰은 우리를 중점 박해 대상으로 삼고 공을 세워 승진하기 위해 우리를 수소문했다. 우리 친척들의 전화도 모두 도청당했고 가끔 경찰 대대장은 그들을 찾아가 협박하기도 했다.
사부님의 보호로 우리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우리의 책임을 이행했고, 수련생과 합심해 박해를 반대하고 중생을 구했으며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나는 자발적으로 협력했다.
6년간 협조인 수련생 교류는 대부분 우리집에서 했다. 박해가 심할 때도 타지 수련생들이 우리 지역에 와 교류하면 우리집에서 했다. 매년 한 번 열리는 우리 시 각 지역 교류회도 내가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교류에 참여했다. 매번 교류는 대부분 내가 집집마다 찾아가 각 지역 협조인에게 연락했다. 가끔 며칠이 걸려야 공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매번 교류회로 우리 지역 수련생의 수련 실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법공부를 잘하고, 심성 수련을 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착실히 수련하는 체험을 교류하고 서로 도우며 비학비수(比學比修)했다.
두 명의 타지 수련생이 사악의 박해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은 우리집에 3년 반 동안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반년간 있었다. 우리는 함께 생활하면서 심성 수련을 중히 여기고 상대방을 고려하며 화목하게 지냈고 얼굴을 붉힌 적이 거의 없었다. 한 수련생은 불법 지명수배를 당했다. 수련생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3천km를 왕복해 먼 곳에 있는 수련생의 친척 집에 보냈다.
우리는 또 예전에 수련했던 수련생과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을 찾아가 다시 수련에 정진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병업을 겪는 수련생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정의로운 변호사를 섭외해 수련생을 위해 변호하게 했다. 또 감옥, 노동수용소와 세뇌반에서 박해받는 수련생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는 등, 여러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4. 조사정법(助師正法)
주변 지역에 큰 박해가 발생해 우리는 현지 수련생들과 협조해 발정념을 하고 박해에 참여한 공안, 검찰, 법원 공무원들에게 진상 편지도 보냈으며, 전화로도 진상을 알렸다. 수련생이 불법 재판을 당할 때 우리는 근거리에서 발정념을 해서 사악의 박해를 해체하고 중생이 죄를 짓지 않게 했다.
정의로운 변호사를 섭외할 때 수련생들은 모두 금전적으로 도와줬다. 우리는 몇십 번을 걸쳐 타지를 다니면서 감옥, 세뇌반에 불법 감금된 수련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번은 감옥에서 석방된 확고하게 수련하는 수련생을 마중 갔는데, 우리 지역과 타지에서 300여 명이 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폭죽을 터뜨리고 꽃을 주는 모습을 보고 감옥경찰들은 오히려 부러워했다.
한 수련생은 감옥에서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했다. 4년간 수련생은 옷 뒤에 ‘천멸중공(天滅中共-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함)’을 쓰고 침대 벽에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적었다. 감옥경찰들은 각종 고문으로 미친 듯이 이 수련생을 박해했다. 수련생은 감옥에서 나온 후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여러분이 밖에서 제가 받은 박해를 여러 차례 명혜망에 폭로했고, 여러 번 여러 기관에 고발했으며, 해외와 국내 수련생들의 전화로 감옥장과 감옥경찰들은 두려워 저에 대한 박해를 멈췄는데, 여러분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박해받아 죽었을 겁니다.” 설날과 추석에 우리는 풍성한 선물을 준비해 불법 감금된 수련생들의 가족을 찾아갔다. 추석에 우리 100여 명 대법제자들은 힘든 수련생 가족을 위해 추수를 도왔고, 이 일은 즉시 현지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대법제자들의 고상한 품성과 덕행은 세인들의 칭찬과 탄복을 받았고 가족들의 이해와 감사를 받았다. 한 박해받은 수련생 자녀는 이렇게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어야 해요!”
모두가 진심으로 서로 돕고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세인들이 중공 매체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오해를 풀었다. 그들은 무시하는 태도에서 탄복하는 마음으로 변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에서 파룬궁이 하루빨리 누명을 벗기를 바랐다.
우리는 중생을 구하는 여러 항목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대면 진상 팀, 전화 진상 팀, 우편 진상 팀, 문자 진상 팀, 박해받은 수련생을 구조하는 반(反)박해 팀, 산간 지역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팀 등이 있다. 각 협조인 수련생들은 매달 법공부를 같이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비학비수(比學比修)한다.
장쩌민 고소 시에도 우리는 정법 노정을 따랐다. 우리 도시 수련생들은 팀별로 법에서 교류하고, 지난 사건에서 교훈을 얻고, 일하는 것이 아닌 수련을 목적으로 일을 하며, 서로가 휩쓸려 덩달아 일하는 게 아닌 수련에 근본을 두었다. 수련생마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각종 집착심을 찾았다. 법에서 교류하고 공동으로 제고해 수련생들은 인식이 일치됐다. 4명의 협조인 수련생은 지역별로 고소장을 정리하고 우편 발송을 담당했다. 원활한 소통과 상호협력으로 수련생들은 질서 있게 분업했다. 수련생들은 강한 정념의 장을 이루어 매일 발정념을 하고 사악의 교란을 제거했다. 우리 도시 800여 명 수련생들은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했지만 사부님의 보호로 모두 무사했다.
진상 알리기용 지폐는 우리 지역에 많이 쓰이고 있고 진상을 아는 상인들과 슈퍼마켓에서는 진상 지폐로 환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부분 사람은 복을 받아 장사가 잘됐다. 우리 현지 시장에서 유통되는 지폐 중 7%는 진상 지폐다.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이 출판된 후 우리는 1만여 권에 달하는 이 책을 세인들에게 전달했다. 한 관리는 이 책을 보고 수련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쓰신 분은 참 대단합니다. 그분께 탄복합니다. 파룬궁에서 활동할 때 차량이 필요하면 저에게 말하세요. 차를 제공해드릴 수 있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모두 도와드릴게요. 저는 직원들에게 이 책을 보라고 할 겁니다. 만약 다른 책이 나오면 저에게 또 주세요.”
내가 참여한 진상 배포 팀은 수백 만 권에 달하는 대법의 복음을 널리 알렸고 차량은 25만km를 달렸다. 기사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다. “지구를 6바퀴 돌 수 있는 거리네요.”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노인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현지 중생들을 대할 때 떳떳하다고 생각해요. 이 지역의 큰 거리, 작은 골목, 각 아파트 단지, 시골 농장, 시장과 아울렛 등을 우리가 얼마나 다녔는지 몰라요.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할 사람은 다 얘기했고,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이젠 나쁜 말을 하지 않아요.”
한 수련생은 아침 시장에서 세 명의 중년 남성이 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 파룬궁을 하는 사람이 진짜 많아졌어. 얼굴만 보면 삼퇴를 권하는데, 하루에 몇 명씩 봐.”
한번은 내가 거리에서 동창을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만 해도 파룬궁을 하는 사람 3명을 만났어. 너까지 합치면 4명이야. 그들은 소선대를 탈퇴하라고 해서 거절했는데, 동창이 그렇게 말한다면 날 위한 것일 테니 탈퇴할게.”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퍼지던 3년간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중생을 구하느라 바빴다. 2022년, 우리 지역에 박해가 발행해 성(省) 정법위(政法委), ‘610(파룬궁 박해기구)’, 공안청, 국내안전보위국 등이 참여했는데 우리는 아주 큰 손해를 봤다.
우리는 수련 중에서 누락이 있었고 불법 징역 판결을 받은 수련생은 대부분 최근 몇 년 사이에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했으며, 수련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수련생도 있었다. 개인 수련 중에서도 아직 많은 집착심을 수련해 버리지 못했고, 법의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아가 아주 강하고, 수련생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대법 일을 하는 목적이 순수하지 못해 사악에게 틈을 줬다. 이것을 교훈으로 삶고 법공부를 잘해 진정한 수련[眞修]과 착실한 수련[實修]을 중히 여기려고 노력했다.
세인들은 각종 자해와 역병 속에서, 생사의 변두리에서 대법 진상을 알고 삼퇴해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명석한 사고를 유지하고 최후일수록 정념이 더 강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성하고 자신의 신성한 서약을 이행해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고 중생을 구해야 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들과 명백히 진상을 알고 제도받은 중생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17/4691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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