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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려놓고 또 내려놓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정련(淨蓮)

[명혜망] 저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하면서 점차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자 책임임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을 실증하고 사람 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부터 일상생활은 물론, 교제 등등에서 모든 일사일념을 ‘진선인(真·善·忍)’의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이후 가족과 주변의 친지, 친구들도 대법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됐고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동생은 돈이 없으면 빌려주겠다면서 제게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해외로 나가라고 했고, 언니는 “공산당은 거짓말만 해. ‘진선인’ 이 세 글자가 뭐가 나쁜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늘 9자 진언 ‘파룬따파하오(真善忍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당부했으며, 그들은 그 덕분인지 모두 건강할 뿐만 아니라 결혼, 직장, 사업 등 모든 분야에서 순조롭습니다.

아들이 결혼식 전에 제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앞으로 며느리와 사이좋게 지내실 수 있어요?” 저는 “걱정 말거라. 나는 대법 수련자이므로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정작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 몇 번 갈등을 겪게 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오직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먼저 저의 부족한 점을 찾아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습니다.

1. 밀대 걸레 3개

어느 날 며느리는 집에 있는 걸레가 낡았다며 사각형 헤드가 달린 밀대 걸레를 사왔습니다. 저는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걸레가 낡았다는 걸 알았지만 아직은 쓸 수 있어서 완전히 망가지면 새로 바꾸려 했어. 화장실에 내가 200여 위안이나 주고 사놓은 새 걸레가 있으니 네가 산 건 친정으로 가져가렴.” 그러자 며느리는 친정에도 있다고 대꾸했습니다. 저는 다시 “이 사각형 헤드 걸레는 모서리 닦기가 불편하고, 특히 침대 밑은 닦을 수 없어. 마침 새해가 다가오니 친정에 가져가서 친정집 유리창을 닦도록 해라. 유리창 닦기에는 좋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고집을 부리는 말투로 친정에도 똑같은 게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련자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이렇게 함부로 쓰면 어떻게 살림을 잘 꾸릴 수 있겠어? 이미 좀 비싼 걸레를 사서 화장실에 놓아두었다고 했는데, 왜 굳이 걸레를 또 새로 사와서 나와 맞서려 하지? 이러면 내가 오히려 돈을 낭비한 꼴이 되는데. 그리고 내 체면은 어떡하라고? 어찌 됐든 내가 산 걸레는 치울 수 없어.’ 저는 며느리에게 그럼 걸레들을 함께 쓰자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 밀대 걸레가 3개씩이나 있게 되어 화장실이 매우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그 후 저는 며느리가 사 온 걸레를 쓸 때마다 쟁투심이 올라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걸레를 쓰고 나서 며느리에게 “네가 사 온 걸레는 사용하기가 불편하구나”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종전의 헌 걸레보다 며느리가 사 온 걸레가 훨씬 깨끗이 닦였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니, 헌 걸레는 이제는 정말 쓸모가 없었습니다. 바닥을 닦고 나면 바닥에 자국이 쭉 났는데도 며느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몰랐을 겁니다. 저는 그제야 깨닫고 ‘아, 내가 잘못했구나. 체면과 쟁투심으로 깨닫지 못했구나. 이런 나쁜 마음은 빨리 내려놔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얼른 헌 걸레를 화장실에서 치워버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새로 사놓은 걸레는 치울 수 없어서 여전히 그 자리에 둔 채 며느리와 계속 힘겨루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써볼수록 며느리가 사 온 걸레가 여러 장점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물이 많이 절약됐고, 넓은 면적을 닦기에 좋으며, 구조가 간단해 사용하기 편리했으며, 무엇보다 네모난 걸레는 화장실에 딱 맞는 자리가 있어서 둥근 걸레를 놓는 것보다 보기에도 훨씬 좋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체면을 지키려는 강한 질투심과 쟁투심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냈고 수련인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며느리는 좋은 마음으로 걸레를 사 왔는데 내가 이것저것 따지며 트집을 잡았으니 며느리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며느리는 대법을 인정하고 시어머니인 날 대우했는데, 내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며느리와 대치한다면 어떻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할 수 있을까? 나는 며느리를 구해야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내 이런 나쁜 마음을 보시고 심성 제고를 위해 며느리를 배치해주신 게 아닌가? 그런데 내 심성은 어찌 이토록 부족할까? 왜 내려놓지 못할까?’ 여기까지 생각한 후 즉시 화장실에서 제가 사온 걸레도 치웠습니다. 결국 화장실에 있던 걸레는 3개에서 2개로, 마지막에 며느리가 사 온 1개만 남았습니다. 화장실 안이 정리되니 공간도 넓어지고 깨끗해졌고, 제 마음도 밝아지고 넓어졌습니다.

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걸레를 참 잘 샀어. 처음에는 쓰기 불편하다고 했는데 몇 번 사용해 보니 참 좋구나. 특히 물과 세제도 절약되고 넓은 면적을 닦을 수 있어 시간도 절약되더구나. 관리하기도 편해서 내가 산 것보다 더 좋아. 마치 우리 화장실에 맞춤 제작한 것처럼 잘 어울리기도 하고.” 아들과 며느리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2. 대법에서 답을 찾다

아들 내외는 결혼 후 가끔 말다툼을 했는데, 그때마다 며느리가 울곤 해서 몇 번 달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또 며느리가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아들이 며느리에게 툭하면 울기만 하니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면서, 자신이 정말 정신질환이 있는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며느리를 달래며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야. 자주 울면 눈 건강에도 좋지 않아”라며 상냥하게 말해줬습니다. “생각해 보렴, 누구도 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나도 네가 우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단다. 아들이 정신병이라고 한 건 의학적으로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그냥 걔 말투가 그런 거야.”

아들에게도 엄숙하게 말해줬습니다. “말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지 고려해서 해야 해. 남편은 아내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감싸줘야 한다. 너는 그냥 무심히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함부로 말하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된단다. 내가 대법 수련자이기에 하는 말인데, 우리 함께 모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아보자.” 며느리는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했고 아들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법륜’ 제4강을 공부할 때, 다음과 같은 사부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慈悲(츠뻬이)한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慈悲(츠뻬이)하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이것이 어제 아들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왔으므로 저는 아들 내외가 대법에서 답을 찾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들과 며느리를 제 침실로 불렀습니다. 우리 셋은 침대에 앉았고 저는 ‘전법륜’ 4강 구절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오늘 법공부를 했는데 이 구절이 내게 많은 깨달음을 줬어. 내가 먼저 읽을 테니 우리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읽어보자.” 제가 한 번 읽고 아들에게 책을 건네주었고 아들이 다시 읽었습니다. 아들은 다 읽은 후 책을 며느리에게 건네주었고, 며느리도 읽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나한테 문제가 있으면 내가 고칠 테니 앞으로 우리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자. 아들아, 며느리가 너를 위해 아침밥도 해주고 점심밥도 차려주는 데 너는 아내에게 고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니?” 아들은 미처 말하지 못했다면서 며느리를 향해 두 팔을 번쩍 들며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고생했어!” 저와 며느리도 웃었습니다.

‘전법륜’의 마지막 단어는 ‘착실한 수련[實修]’입니다. 저는 잘하는 수련생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학비수(比學比修)해서 끊임없이 심성을 높이고 대법에 동화해, 사명을 완수하고 하루빨리 사부님 요구에 도달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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