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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제자인가

글/ 해외로 이주한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수련생들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킨 두 가지 사건을 접하게 됐다. 성급하게 어느 한쪽 편을 들어 논쟁을 벌이고 불만을 표출할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을 보았기에 몇 마디 하려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때 배우러 다니는 사람은 모두 가부좌를 중시했으며, 앉는 데는 자세를 중시했고, 붓을 잡는 데는 기를 운행하여 호흡함을 중시했으며, 각 업종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淨心) 하고, 호흡 조절(調息)을 중시했는데 전반 사회는 모두 이런 상태에 처해 있었다.”(전법륜)

과거 학생에게는 스승을 대하는 규칙이 있었고, 하늘의 신들도 모두 무릎 꿇고 사부님의 법을 듣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부님께 대해 가져야 할 태도다. 사부님께서 이 더러운 속세에 떨어진 우리를 자비롭게 구원해주셨다고 해서 반드시 자비를 베풀어 우리를 구원해주셔야 한다고 요구할 순 없다. 사부님께서 항상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함부로 말해서 깊은 업을 쌓아선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자들에게 대법을 가르치시고, 우리의 수련을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시고, 수많은 업을 제거해주셨다. 속인이라도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만났을 때 감사하고 은혜를 기억할 텐데, 하물며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치르셨는데 어떻게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사부님께 뭐라고 할 수 있는가?

예로부터 군왕은 군왕이고 신하는 신하다. 사부는 사부이고 제자는 제자다.

군왕은 아무리 백성과 가까워도 왕의 권위를 갖고 있다. 당신이 그 한계를 넘어 왕을 속이거나 왕에게 대항한다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법이 없어지고 나라가 망할 것이다. 스승이 아무리 친절해도 제자 역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절을 지켜야 하고, 선을 넘어서는 안 되며, 스승을 속여선 안 된다. 죄를 범했다면 아무리 작은 죄라도 스승 문하에서 추방돼 영원히 들어가지 못한다.

고의로 규정을 교묘하게 피하며, 세상을 오도하고, 시야를 혼동시키고, 사부님을 모욕할 기회를 잡아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하는 자의 마음은 어둡고, 더럽고, 간사하고, 교활하다. 우리가 그런 자와의 만남을 끊고 시장을 주지 않으면 며칠간 날뛰다가 자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세력이 찾으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구치소에서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 즉 진상을 알리고, 악에 저항하며,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았다. 또 대법을 반대하던 한 속인 여성을 대법제자가 되도록 도운 적이 있다. 그 과정은 때때로 긴장감 넘치기도 했지만 날 성취하게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는 감옥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나’라고 생각했고, 속인이 대법제자가 되도록 도운 것도 ‘나’라고 생각했으며, 수련생과 교류할 때면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었다.

수년이 지난 후에야 문득 사부님께서 내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시고, 게다가 그 당시 내가 법을 많이 외웠기에 성취의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위험이 닥칠 때마다 내가 어떻게 실수 없이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겠는가? 사부님께서 그 속인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악령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내가 감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매일 꿈에서 악령에게 쫓기고 있었고, 내가 들어간 첫날에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고 악령을 모두 물리치는 꿈을 꿨다고 말했음) 사부님께서 꿈을 통해 신수련생에게 일깨워 주시고, 또 나에게 그녀와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구치소의 심한 압박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 그녀에게 ‘전법륜’ 내용을 전달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그녀를 구해주시고, 지켜봐 주시고, 그녀의 업을 정화해주신 것은 바로 사부님이시다.

대법 수련을 해온 20년을 돌아보니 대법을 얻은 나이, 수련 과정, 겪은 일들이 모두 가장 자비로운 배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시험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집착심을 내려놓고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수련생들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시련은 슬프더라도 수련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또한 외부로 전파하지 않아 파문을 확대시키지 않았다. 물론 어려움 속에서 천천히 억울함을 삼켜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핑계 삼아 분노나 울분을 털어놔선 안 된다.

사부님 말씀은 곧 법이고, 사부님께서 하시는 일은 곧 우주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뿐이다. 사부님께서 설명하시든 설명하시지 않든, 제자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따라야 하며,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사부님께 품어야 할 태도다.

고대인들도 충절에 관해 이야기했다. 악비는 황룡부(黃龍府: 금나라의 도읍)까지 진격해 단숨에 강산을 되찾으려 했지만 황제에게 소환을 당했고, 간신이 권력을 잡고 있어 소환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들 악운과 함께 돌아갔다. 악비가 어리석어서 그랬을까? 그는 능력이 있고, 백성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군을 손에 쥐고 있어 반역을 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충성이다. 제자에게도 사부님께 충성해야 하는 본분과 의무가 있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하시는 것은 자비이고, 당신을 구하지 않아도 사부님은 여전히 자비로우신 것이다.

양심이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고층차에서 보면,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우주의 真(쩐)·善(싼)·忍(런) 특성에 동화한 것이며, 본성은 본래 선(善)하고 선량한 것이다.” 사부님마저 음해하는 것은 양심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법을 스승으로 삼는 것을 알고 있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만 고비를 넘어 심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법공부할 때는 수련인처럼 보이지만, 책을 내려놓으면 속인의 관념과 이론을 스승으로 삼는다. 이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오랫동안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는 사람, 오랫동안 사람의 이치와 관념을 표준으로 삼는 사람은 바로 속인이 아닌가? 정법시기에 대법에 대해 업을 짓는다면 그 깊은 업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겠는가? 사람의 인내심이 그 정도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13/469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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