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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알리는 편지로 중생을 구하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 리핑(李平)

[명혜망]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어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알았기에 업무상 고생이나 남에게 원망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으며 득실도 따지지 않았다. 사부님의 도움과 자비로우신 보호 아래 업무에서 성과를 거뒀고, 직장과 사회 각계에서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이는 내가 직장에서 진상을 알리는 좋은 토대가 됐다. 20여 년 수련해 오면서 할 말은 참 많지만, 오늘은 진상 편지로 중생을 구한 방면만 말해보려 한다.

1. 직장 상사에게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쓰다

내가 수련한 후 직장 상사는 6번 바뀌었는데, 5번째 상사는 불과 몇 달간 근무했기에 진상을 알리지 못했고, 현 상사는 온 지 이제 몇 달 뿐이라 역시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나머지 4명의 책임자에게는 모두 진상을 알렸고 진상 편지를 보냈다.

먼저 첫 번째 국장부터 말하겠다. 내가 법을 얻었을 때, 직장에는 대법을 수련하는 직원이 많았는데 그들은 모두 업무상 뛰어난 사람들이었고 그중 몇 명은 중간 관리자였다. 당시 우리는 열심히 파룬궁을 전했고 국장, 부국장 모두 대법 책을 봤었다. 박해가 시작되자 나는 직장에서 날 찾는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들은 대체로 잘 이해했다.

어느 해 직장에서는 홍가(紅歌: 공산당 찬양가) 합창단을 조직했는데 거의 모든 여직원이 참여해야 했다. 국장이 직접 지휘하고 리허설하며 상급 기관이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국장이 지휘하는 연습에서 나는 앞줄에 앉게 됐는데 연습 내내 노래하지 않고 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다. 연습이 끝나고 국장이 날 불러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 물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평소 국장님 등 여러분께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홍가를 부르며 그것을 찬양한다면 모순되지 않습니까? 진실하지 않잖아요?”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은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노래하러 오지 않아도 됩니다.”

국장이 다른 도시로 전근한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그를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시켜주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편지를 썼다.(내가 직접 썼는지 다운로드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음) 당시 그의 사무실엔 동료 몇 명이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가 보고는 “제게 주는 건가요?”라고 말했고 나는 매우 좋은 거라고 말했다. 국장은 별말 없었고 나도 동료들이 몇 명 있었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나왔다. 그를 삼퇴시켜 주지 못한 것이 항상 유감스럽다.

그 당시 직장 당서기는 진상을 듣고 싶어 했다. 그는 우리 사무실에 자주 찾아왔는데 사부님의 신경문이 발표됐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이후 나는 신경문을 그에게 가져다줬고 당서기도 박해가 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퇴직한 지 여러 해 지나서도 대법제자를 찾아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작년에는 대법제자 몇 명을 식사에 초대해 얘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의 마음속에 이미 대법이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국장 재임 기간에 나는 박해당했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다. 이런 상태를 해소하고 직장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기 전에 직장 과장들과 부국장 이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냈다. 그들에게 내가 왜 떠돌아다녀야 했고, 대법은 무엇이며, 대법 사부님은 어떠하신지, 대법이 모욕당하는 일과 전 세계에서 장쩌민을 공개 심판하는 등 기본 진상을 설명했다. 최근 알게 됐는데 당시 각 과장에게 보낸 편지에 관해 직원들 사이에 암암리에 논의가 활발했고, 모든 직원이 진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아주 큰 작용을 일으켰다.

그 뒤 국장이 내 임금을 2년 넘게 주지 않았기에 나는 여러 차례 그와 부국장들에게 진상 편지를 썼다. 어떤 부국장은 국장에게 선물을 보내라고 내게 은밀히 권했다. 나는 그의 관심에 감사를 표하고 대법제자의 원칙을 설명하며 좋지 않은 사회 기풍을 조장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중에 그 부국장은 다른 직장 책임자로 발탁됐다. 또 어떤 부국장은 날 동정했는데, 나는 그들이 선한 마음에서 이렇게 한 것임을 알았다. 이후 그 국장은 전근했는데 나는 어떻게 그에게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을 반성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지은 죄를 감경하게 할까 고민하던 중, 그가 비리 혐의로 조사받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는 이후 경제범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실제로는 그가 대법제자를 박해해 형을 받은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새로 온 세 번째 국장에게도 진상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일깨움에 힘입어 그에게 기본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한 통 썼다. 하지만 귀신에 홀린 듯 어느 부국장에게 쓴 진상 편지를 국장에게 보내게 됐다. 그 부국장은 진상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기에 진상 내용이 비교적 높았는데, 그걸 국장이 봤으니 부작용이 생겼고 그는 암암리에 내 명예를 손상하며 박해했다. 이를 알게 된 뒤 나는 마음 깊이 자신을 찾아보고 다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동료들이 나는 병도 없고 가정도 화목한데 왜 대법을 수련하는지 궁금해하는 것부터, 파룬궁 박해는 유죄이며 정의로운 인사들이 중앙 고위층에 파룬궁 박해 중지를 요구하는 편지를 썼고, 인권 변호사들이 박해당하는 대법제자를 위해 무죄 변호를 해주는 등 내용을 담았다. 이번 편지는 고치고 또 고치고 해서 어떤 부정적 요소도 없다는 확신이 선 다음 국장과 부국장들에게 보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 난 이후 직장은 내 봉급을 보충해 지급해주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의 경제 사정은 좋지 못했는데 매 분기 식비를 한 부국장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대신 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은 내 1년분 임금을 세 차례에 걸쳐 보충해줬다. 나는 이 국장에게 ‘공산당 조직을 탈퇴해 안전을 지키는 일’에 대해 말했다. 처음엔 그가 믿지 않는 듯했으나 두 번째는 국장 이름 뒤의 두 글자로 탈퇴를 권하자 그는 알았다는 듯 웃었다.

네 번째 국장이 부임하자 나는 또 인연 있는 사람이 진상을 들으려고 왔음을 알았다. 그래서 임금 지급을 구실 삼아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선 항상 교란이 있기에 나는 그에게 또 편지를 썼다. 기억하기에 기본적인 진상과 지금의 형세, 그리고 사람마다 가져야 할 태도 등 내용을 포함해 두세 차례 정도 쓴 것 같다. 그에게 전통문화에 대해 많이 말하며 선한 마음을 일깨워줬는데, 그는 직장 내 나이가 좀 많은 두 명의 대법제자를 잘 대해줬다. 이후 직장의 한 수련생이 박해당했는데 경찰은 그의 퇴직금 지급을 중단하라고 했다. 나는 책임자를 찾아가 대법제자를 위하는 일은 자신에게 덕을 쌓는 일임을 설명하고 기회를 봐서 최대한 수련생이 혜택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 뒤 그는 이 일을 담당하는 책임자에게 전화해 정책에 따르면 꼭 퇴직금 전부를 중단하는 것은 아님을 상기시켰다. 그 결과 그 수련생은 매월 수백 위안의 생활비를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내 임금도 보충되어야 한다고 제기하자 그는 단계적으로 어떻게 할지 말했지만 나에게 사람마음이 있었는지 성사되지 못했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 그 책임자는 순조롭게 삼퇴했고 이후 좋은 직장으로 옮겨갔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면서, 특히 대법이 박해당하는 기간에 수련생과 함께 직장 책임자들에게 인터넷 차단 돌파 프로그램, 진상 USB 메모리 등을 포함해 아주 많은 진상을 알렸는데,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게 됐고 또 자료를 받고 싶어 했다. 예를 들면 어느 부국장은 해외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자 나에게 문의했고, 나는 그에게 ‘프리게이트(FreeGate, 자유문)’을 업그레이드해줬다. 그에게 진상 USB 메모리를 주고 ‘우리는 미래를 알린다’를 클릭해 보게 하자 몇 장면을 보고 그는 “음, 이건 진실하구나”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가 발표되자 직장의 이전 부국장에게 한 부 줘야 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정오 퇴근 때 갑자기 그분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몇 걸음 뒤돌아가 인사하며 신경문이 실린 ‘주보’ 한 부를 건넸다. 그에게 이는 대법 사부님께서 전 인류에게 말씀하신 법이라고 설명하고 잘 보시라고 했다. 그는 얼른 받아 들고 가면서 진심으로 말하길 “날마다 좋은 일을 하시네요?”라고 했고, 내가 가족들에게도 보여드리라고 하자 흔쾌히 동의했다.

또 박해 중에 날 보호하고 도와주신 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경찰이 직장에 와서 날 박해할 때 나중에 부국장으로 발탁된 분이 당시 국장에게 날 경찰에 보내지 말라고 하며, 파룬궁의 일은 큰 문제는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는 것으로 치라고 건의했다. 나에게 1년 치 임금을 보전받도록 주로 도와준 분은 당시 어느 부국장이었고, 당시 그녀는 물류 담당이었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나는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어떤 책임자는 파룬궁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올해 성(省) 이데올로기 순시팀이 우리 시에 와서 검사하는데 나도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부국장이 날 찾아와 “순시팀이 당신을 찾으면 그들에게 연마하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연마한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새로 온 상사가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가 한 말의 속뜻을 알아챘다. 이후 순시팀은 관례대로 공무를 처리했으며 일을 대충 마무리했다.

2. 시 책임자에게 편지를 쓰다

떠돌아다니던 기간, 수련생이 나에게 진상을 알리도록 격려했다. 내 회사가 시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해 시 지도자들에게 진상 편지를 쓰게 했는데 (주로는 기본적 진상 내용) 쓴 편지는 수련생이 다른 곳에서 부쳤다.

나중에 수련생에게 들었는데, 박해가 막 시작될 때 베이징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현지로 송환된 수련생들이 세뇌반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고 했다. 당시 시(市) 당서기가 정법위 서기에게 “적당히 하면 되지 사람을 죽이지는 마”라고 해서 세뇌반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하는 수련생은 더는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 당서기에게 편지를 써서 ‘610(파룬궁 박해기구)’의 나에 대한 경제적 박해를 타파하려고 했다. 또 우연한 기회에 시의 주요 책임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대부분 먼저 비서 손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비서가 편지를 시 당서기에게 확실히 전달되게 하는 방안을 치밀하게 생각했다. 나는 자신의 위치를 시에 관심이 많고 시의 발전·번영을 바라는 파룬궁수련자라고 정립했다. 편지를 쓴 후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글꼴을 신중히 선택하고 편지지 형식을 신경 써서 구상했다. 그 뒤 책임자 수련자가 조직한 발정념 팀이 시 당서기를 향해 한동안 발정념을 하고 난 후 편지를 부쳤다.

이후 직장의 한 부국장이 나에게 시 당서기에게 누가 편지를 썼는지 모르겠으나 편지 중에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이 언급됐다고 했다. 나는 그 당서기가 이 편지에 대한 의견을 ‘610’에 전달했음을 알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610’은 내 직장에 임금 지급 중단을 해지한다는 문서를 발송했다. 이후 4∼5년간 ‘610’은 이 시 당서기의 재임 기간 중 큰 박해를 발동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시 당서기는 시 중원(中院)으로 자리를 옮겨 원장이 됐고 나는 또 그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중에 대법제자와 관련한 안건 처리를 바르게 해야 하는 중요성을 밝혔다. 또 일부 부서와 위원회가 여러 방식으로 교묘하게 대법 수련자를 보호는 방법과, 전국 각지의 민중이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고발한 사실, 저우융캉(周永康)과 리둥성(李東生) 등 대법제자를 박해한 자들이 응보를 받은 사실을 소개했으며, 그가 위험한 담장 아래 서 있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고 썼다. 편지에는 또 명혜망에서 발췌한 ‘중공 법률을 이용해 파룬궁 모함하고 박해: 형법 제300조를 고의로 잘못 적용’과 ‘참고자료: 공무원들과 형국을 논하다’라는 두 편의 문장도 함께 보냈다. 추측건대 그는 편지를 자세히 본 것 같았다. 오래되지 않아 그는 자리를 옮겼고 결국 대법과 관련 없는 직책으로 전근했다.

장쩌민 고소 이후 우리 시 수련생 두 명이 성(省)의 지시로 박해당했고, 이후 또 4명이 전시판을 걸다 납치됐는데, 듣건대 온 성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들을 구출하려고 나는 당시 시 당서기에게 편지를 썼다. 당시 우리 시는 한창 ‘문명 도시 창건’ 활동을 펼쳤기에 나는 ‘문명 도시 창건’과 법치는 별개일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우리 지역법원과 판사가 대법제자를 재판하는 중에 저지른 심각한 위법 행위와 악행은 이미 전국 변호사들에게 알려졌으며, 일부 유명한 변호사는 우리 시에 오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우리 시의 발전을 저해하고 성의 번영도 어렵게 하는 것이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이어 시진핑 정부의 강제노동 제도 철폐와 인민일보가 연재한 종교정책에 관한 세 편의 연설문 해석에 대한 기사를 열거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내용을 인용했는데 즉, “신앙의 차이가 정치적 대립으로 확대되는 것을 주의하라”는 내용과,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 가담 책임을 물어 한무리 장쩌민파 관리들이 관직에서 물러났고, 또 일부 지역에서는 파룬궁수련자 사건에 대한 고소를 철회하고 수련자들에게 무죄 석방을 하는 등등의 일련의 조치가 취해진 사실도 언급했다. 아울러 우리 시의 몇몇 전임 당서기가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해 좋은 보답을 받은 사실을 열거해 그의 선념과 양심을 일깨웠다. 이 편지도 역시 수련생에게 건네 우편으로 보내게 했는데, 해당 당서기가 편지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전시판을 걸다 붙잡힌 대법제자는 최후 선고에서 형기가 비교적 낮춰졌다. (물론 이곳 수련생들이 정체를 이룬 점, 수련생 가족이 적극 구출한 점, 박해를 반대하는 수련생들의 정념 등도 관계가 있을 것임) 그 해 우리 시의 ‘도시 번영’ 활동도 생각 밖으로 좋은 성과를 얻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지역 발전과 전염병 상황을 결부시켜 차례로 5대 시 당서기와 시장 등에게 진상 편지를 써서 이들이 바른 입장에 서도록 했으며 이들은 나중에 모두 승진했다.

3. 정법위 서기, ‘610’ 직원, 경찰 등에게 진상 편지를 쓰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때 ‘610’ 주임에게 진상 편지를 쓰면서 나는 명혜망에서 그가 이전에 대법제자를 박해한 사례를 다운로드해 그에게, “사람이 하는 일은 신께서 다 보고 계시며 장부에 기록해 둡니다. 저지른 이런 죄악은 선행을 하고 대법제자를 보호해야만 없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줬다. 그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아들인 그가 대법제자를 박해한 내용을 발췌해 적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수련생들이 돌아가며 보게 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발췌 내용이 반작용을 일으킬까 걱정된다며 그 부분은 삭제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수련생은 그대로 두자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전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으며, 그것도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고 많은 심각한 일은 발췌하지도 않았다. 나는 분명한 것만 발췌해 그에게 알려주고, 그가 한 일이 명혜망에 기록돼 있어야만 그와 그의 가족을 깨닫게 할 수 있으며, 그가 성심껏 과오를 반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편지는 부작용이 없음이 증명됐는데, 그는 그 후 몇 년간 큰 박해를 일으키지 않았고 게다가 진심으로 일부 대법제자를 보호했다.(많은 대법제자가 그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어떤 이는 대법서적과 사부님 경문을 보여줬음) 이로써 깨달은 점은 진상 편지를 쓰는 관건은 그 생명을 위하는 마음이 정말로 진심인지 아닌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 뒤 법 학습을 통해 나는 ‘대법제자들 마난(魔難)을 겪지만 훼멸되는 것은 중생이라네’(홍음3-세세생생 금생을 위해)라고 말씀하신 법리를 깨닫고 정법위, ‘610’ 및 경찰들이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구세력이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간다고 생각했기에 이들에게 진상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을 위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여러 각도에서 선(善)을 권하며 그들의 선념을 일깨웠고 진상 알리는 문장을 많이 다운로드해 수련생들에게 우편으로 그들에게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동시에 이들의 개인 정보와 가족 정보를 자세히 수집해 그들이 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숨기지 않았는데, 이 역시 그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을 적게 하게 하려는 격려였다. 또 그들 배우자에게도 선을 권하는 편지를 썼고, 어떤 땐 박해당하는 수련생의 상황을 반영해 쓰기도 했는데 좋은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떠돌아다닐 때 ‘610’ 주임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고, 또 어떤 ‘610’ 주임의 아내에게도 썼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 두 명의 ‘610’ 주임은 재임 기간 박해를 발동하지 않았다. 그 뒤 나는 공안국 국보대대 분국 부국장, 국보대대 대대장, 중대장 등에도 진상 편지를 썼는데, 이후 이 부국장과 대대장은 전출하게 됐고 더는 박해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편지는 수련생들이 정념으로 가지(加持)한 후 부쳤으며 정체적 협력의 결과였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 일부 수련생이 박해당했는데, 나는 그들 가족과 협력해 많은 양의 진상 편지와 불기소 청원서, 변호문, 고발장, 항소장 등을 써서 수련생을 구출하고 박해에 참여한 경찰, 검찰, 법원 사람들도 구했다. 편지 중 일부에는 수련생이 법을 얻은 경험과 수련 이야기도 함께 썼는데, 중생을 구하는 데 상당히 큰 작용을 일으켰다.

사당(邪黨: 공산당)이 우편 발송은 통제하지 않았기에 나는 수련생과 대규모로 진상 편지 보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나는 매년 설날 전후 연하장을 이용해 지역 정부 부서와 각 기관 책임자에게 진상 자료를 보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에서 뉴스 선전 부서, 교육계, 정법(政法)계, 심지어 일부 농촌 지부 서기 등의 정보를 수집해 그들에게 진상 자료를 보냈다. 우편 자료가 상당히 많았기에 우리 지역에서만 부치지 않고 다른 지역에 가서도 부쳤다. 그 뒤 우체국에서 진상 편지를 통제한다고 들어서 나는 더는 보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념이 부족했고 사람의 마음으로 박해를 대한 것이었다.

4. 진상 편지 우편 발송

최근 몇 년간 나는 기본적으로 진상 편지를 쓰는 것만 맡았고 다른 일은 모두 다른 수련생이 맡아서 했는데 이 때문에 나는 수련생들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올해 우연히 일부 파출소장의 정보를 얻게 돼 나는 또 신경 써서 그들에게 진상 편지를 썼고 수련생에게 부쳐달라고 했다. 의외로 수련생은 이미 사부님의 신경문 우편 발송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서 나에게 진상 편지를 부치라고 했다. 이때 나는 의존심을 버려야 함을 의식했다. 사실 내 의존심의 가장 핵심은 두려움과 안일심이었다. 여기서 두려운 마음을 없앤 과정을 말하려는데 정말 어렵고 매 한걸음이 시험이었다.

나는 수련생을 찾아가 편지를 인쇄했는데, 인쇄기 옆에 투명한 장갑이 있는 것을 봤다. 이전에 그 수련생이 내게 사악이 지문 검사를 통해 자료 만드는 수련생을 박해했다는 인터넷 보도를 봤다고 했고, 이후 그 수련생은 자료를 인쇄하는데 매우 신중했다. 이번에 그는 장갑을 끼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 스스로 인쇄해 가져가라고 했다.

다행히도 나는 이전에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자신은 대법제자이며 공능으로 일하지, 속인의 사지를 이용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시길, 대법제자가 만졌던 것은 모두 금빛이 반짝반짝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이후 봉투를 써야 했는데 먼저 수련생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수련생은 이전에 파출소에서 서명한 적이 있어서 써줄 수 없다고 했다.(역주: 글씨체로 누군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임)

나는 강요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일하기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박해당할 때 서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걱정도 좀 됐지만 즉시 이것은 두려운 마음이고 부정적 사유임을 깨달았다. 발정념으로 사악의 요소를 제거하자 잠시 후 평온해졌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집에 돌아가서 역시 두어 글자를 쓰면 글씨가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전법륜)라는 법이 생각났다.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가 중생을 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깨달았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봉투를 썼다.

저녁에 봉투를 꺼내놓자 한 수련생이 왔는데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돼 그녀에게 봉투 쓰는 걸 도와 줄 수 있는지 물었다.(지금 생각하니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음) 그녀는 흔쾌히 도와줬다. 그래서 나는 또 어떻게 부칠 것인지 생각했다. 감시가 그렇게 심하고 일부 수련생은 우편 진상 편지 때문에 박해당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또 두려움이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사악이 내가 중생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즉시 인식하고 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했다. 그날 밤 꿈을 꿨는데 나는 암벽을 오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정념 구결만을 외우며 기어 올라갔고 마지막엔 정상에 도달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다음날 가는 도중 내내 발정념하며 우체통에 진상 편지를 넣었다. 그 후 며칠간 편지를 받아볼 파출소장을 향해 발정념을 하며 그가 잘 볼 수 있게 했다.

진상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속인에게 편지를 쓸 때 상대방이 우리가 무슨 차갑고 단단한 쇳덩이가 아니며, 우리도 살과 피를 가진 정상인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상대방 위주로 그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독선적이거나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선 안 된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으며 그들에게 분명하게 밝은 길을 알려줘야 한다. 그밖에 진상 편지는 4호 글자체가 가장 좋으며 행간을 적당하게 해서 사람들이 읽기 편해야 한다. 물론 이는 나의 소견일 뿐이다. 법에서 빗나간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9/46906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12/9/4690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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