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情)을 내려놓다

글/ 안후이성 대법제자 소정(小淨)

[명혜망] 최근 심성 제고에서 세 번의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 나는 갈등이 갑자기 나타나 심성을 지키지 못해 마음을 움직였다. 원인은 내게 조급한 마음, 증오심, 쟁투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들은 사실 여러 번 닦은 적 있었는데 왜 다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깊이 원인을 찾아봤는데 결국은 정(情)에 미혹되고 인류 공간에 미혹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체 사람마음은 모두 정에서 오며 정을 내려놔야만 자비심이 나올 수 있다. 사람의 정은 정말 믿을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의 감정이 잠깐은 이랬다 잠깐은 저랬다 하면서 안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만약 정이 없다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나는 정말 정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정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1. 인간 세상은 연극이므로 정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명혜망에서 이전에 ‘두자춘(杜子春)이 도를 닦다’라는 문장을 발표한 적 있다. 두자춘의 사부는 두자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절대로 어떤 소리도 내면 안 된다. 이곳에 나타나는 큰 신, 악귀, 야차(夜叉), 맹수, 심지어 네 친척들이 묶여서 형을 받게 되는데, 이 일체는 모두 사실이 아니고 환상이다. 너는 어떤 두려운 광경과 비참한 것을 보아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거라. 그러면 절대로 어떠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사부가 말한 이 말들을 꼭 기억해두거라!” 이렇게 두자춘은 사부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수련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무엇이든 다 나타났다. 처음에 그는 사부의 말을 기억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마(魔)는 화가 나서 그를 죽여서 한 여자 몸으로 환생하게 했다. 결국 원만 전의 최후의 관(關)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가 떨어져 죽는 비참한 광경을 보고 자녀에 대한 정을 움직여 “아!”하고 소리를 냈다. 이렇게 그는 원만을 코앞에 두고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됐다.

이 문장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우리 대법제자는 속인사회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현재 이 속인 공간은 우리를 수련하라고 사부님께서 만들어주신 공간이 아닌가? 인류사회는 가상이고 인류는 안에서 최후의 연극을 연출하고 있는데, 목적은 대법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다. 아울러 대법제자도 이 연극 중에서 자신을 닦으면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

사람의 삶은 허황한 연극인데 이런 연극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연극 중에서 아내, 어머니, 딸, 언니 등등은 모두 내가 맡은 역할에 불과하다. 연극 중에서 연출하는 무수한 갈등은 사실 모두 신께서 날 시험하시는 것이며,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시는 것이다. 나와 함께 연극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배역을 연기할 뿐이며 내가 어떻게 연기하는지 볼 뿐이다. 만약 내가 맡은 역할 자체에 미혹되면 아마 정에 집착해 속인과 똑같을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만약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 대법제자라고 생각한다면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를 생각할 수 있고, 이성적이고 명석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정을 내려놓으며, 대법의 요구에 따를 수 있다.

두자춘은 처음에는 지킬 수 있었지만 왜 최후에는 지키지 못했는가? 내 생각에는 그는 수련을 느슨히 하고 수도하는 일을 잊어 허황한 가짜 인생에 미혹됐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자신으로 여기고 정에 시달렸기 때문에 관건적 시각에 그의 사부가 알려준 경고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오로지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은 그 한순간에 생각날 수 있으며, 당신은 곧 자신을 단속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이 관(關)을 넘을 수 있다.”(전법륜)

그래서 나는 평소에 늘 자신에게 ‘나는 수련인이고 느슨해지면 안 된다’라고 일깨워준다. 사부님의 법을 마음속에 기억해두고 끊임없이 기억을 강화해야만 관건적 시각에 생각날 수 있다.

2. 사심이 많으면 정도 많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私)가 있으면 쉽게 정(情)에 이끌려 수련 중에 아깝고 버리기 어려운 것이 각 방면에서 모두 나타나는데, 수련에서 집착을 내려놓기 어렵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위사위아(爲私爲我)는 우주 생명의 속성이다. 우리는 구(舊) 우주 중에서 걸어 나온 생명이고 정법 수련의 과정은 바로 우리가 위사위아를 버리고 무사위타(無私爲他)하는 신 우주의 생명으로 되는 과정이다. 나는 사심(私心)이 많으면 정(情)도 많다고 생각한다.

사심에서 가장 뚜렷한 표현은 바로 소유다. 내가 속인 중에서 아내일 때 속인 중의 남편은 마치 내 일부에 속하는 것 같았고, 내가 속인 중에서 엄마일 때, 속인 중의 자녀들은 마치 내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이처럼 추론한다면 이것은 소유하고 싶은 사심 아닌가? 나는 갑자기 모두 깨달았다. 내 사심은 바로 이렇게 표현된 것이다. 자신이 접촉하는 일체는 모두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나는 그것들에 모두 소유욕이 있었다. 얻으려 하고, 잃지 않으려고 하고, 포기하지 않으려 하며, 지배하려고 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하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등등 표현은 모두 소유욕이다.

사람들은 모두 정 중에 담겨있기에 소유하려는 사심은 정을 이끌 수 있으며 많은 사람의 마음과 집착을 일으킬 수 있다. 한 수련생의 문장에서 사부님께서 그에게 “이곳의 일초일목은 모두 당신과 관계가 없다”고 깨우침을 주셨다고 했다. 그렇다, 인간 세상의 일체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모두 날 시험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며 내가 이 가상을 투철하게 보고 정확한 선택을 하는지 본다.

두자춘은 최후 관건적인 시각에 정말 연극 중으로 끌려갔다. 그 일생에서 여자로 환생한 몸을 정말 자신으로 여기고 자신이 수도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했다. 그녀는 정말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해 자식 정이 ‘그녀’를 얽매여 놓았다. ‘그녀’는 아이를 잃은 고통으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가상을 배치한 것이고 ‘그녀’를 시험한 것이다. 원만 전의 최후의 시험이었는데 아쉽게도 두자춘은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수련 최후 시기는 또한 우리가 확고하게 지키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고, 이때의 수련 난이도와 박해 초기 그런 험악한 환경과의 어려움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록 중국의 박해 형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사악은 이미 보잘것없으며 실제로는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대법제자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의 사람의 마음[人心], 사람의 생각[人念], 사람의 정[人情]이다. 이런 사람의 것은 최후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 이전의 공로를 수포로 만들 수 있게 한다. 현재 두렵고 극악무도한 세상에서 대법제자는 속인의 사유 관념에서 이탈해 사람의 마음을 확고하게 내려놔야만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다.

이상은 현재 개인 수련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므로 전면적이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의 훌륭한 의견을 듣기 위해 먼저 자신의 미숙한 견해를 내놓았다. 대법은 더욱 깊고 더욱 높은 내포가 있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7/46844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12/7/468447.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