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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유행할 때 사부님께서 날 이끌어주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에 수련을 시작했고 올해 67세인 여성 대법제자다. 2020년에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이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납치됐고, 그녀를 모함하는 서류가 법원에 송부됐다. 수련생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에게 법원에 가서 발정념을 하라고 알렸다.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이 재판을 앞둔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을 하러 갔고, 나도 그때 그곳에 갔다. 발정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협조인이 “여기 남아서 발정념을 계속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날 포함해 네 명이 남았다. 그런데 그날 밤, 우리 지역에서 대규모 납치 사건이 발생해 수련생 7명이 납치됐다. 이번 납치는 명단에 근거한 것이었고 내 이름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발정념을 하기 위해 남아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모두 사부님의 배치였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집 아래층에 누군가 잠복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나는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며칠 후, 나는 타지에서 명혜망에 사부님의 신경문이 게시된 것을 보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련생들에게 신경문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틀 후, 마음을 진정하고 압박감을 무릅쓰고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와 신속하게 경문을 인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이 진상 포스터를 붙였다는 이유로 납치됐고, 경찰이 진상 포스터의 출처를 추적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동시에 파출소에서 모든 대법제자의 집을 수색해 대법 관련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출처를 추적할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런 부정적인 소식을 듣자 이제 막 안정을 되찾은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련생이 날 고발하거나 내가 곧 납치될 것 같았다. 몇몇 수련생은 집이 안전하지 않으니 차라리 타지로 가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진상 자료를 간절히 요구하는 수련생이 있었다. 협조인 수련생이 내 상황을 알고 지금은 자료를 제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한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까, 아니면 먼저 몸을 숨기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까?’ 나는 사부님의 법상(法像) 앞에 서서 조용히 사부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쭈었다. 수련생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사부님과 맺은 서약일 수 있고, 이것이 내 사명이자 책임이므로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요구하면 반드시 해야 한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은 온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이고 사부님께서 지켜보시므로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념이 나오자마자 두려움은 곧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자료를 준비하러 집에 갔다. 그 순간 마음은 매우 밝아졌고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며 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수련생들이 자료를 원하면 얼마든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자료를 다 만든 후에 수련생에게 보내려 했는데 전염병이 심각했던 시기여서 모든 지역에서 통제가 매우 엄했다. 수련생이 사는 동네 중 일부는 진입이 쉽지 않아 발정념을 했고, 그러면 매번 아무 문제 없이 자료를 전달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순찰차와 빨간 완장을 찬 사람을 제외하고는 길거리에 차량이나 사람이 거의 없어서 스산했다. 중생은 진상을 분명히 알고 구원받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책임감을 느꼈다.

얼마 안 되어 사부님의 ‘홍음6’이 출간됐고 우리는 수련생들이 되도록 빨리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는 전염병이 더욱 심각해졌고 모든 지역이 더욱 엄격히 통제됐다. 출입도 더 불편해져서 출입 허가증이나 코로나 검사도 필요했다. 매일 확성기가 계속 울려 퍼졌고 분위기가 극도로 긴장됐다. 자료점으로도 들어가기 쉽지 않았고 경비도 삼엄해져서, 여러 번 갔어도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바른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다는 정념을 내보내며 사부님께 도움을 간청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며칠 후 나는 정념으로 지역을 나와 무사히 자료점에 도착했다.

자료점에는 세 명이 있는데, 나는 자료를 인쇄하고, 한 명은 배송을 담당하며, 다른 한 명은 기계 유지보수를 맡았다. 우리는 거의 만나지 않고 각자 맡은 일을 하고 대법 책을 만들 때만 함께 모여서 일한다. 일반적으로 나는 책 표지를 인쇄하고, 코팅지를 잘라 책 표지에 입히며, 표지 가장자리를 잘라내는 일을 한다. 나머지 두 명은 책을 인쇄하고 제본한다.

첫날 자료점에 갔는데 다른 두 명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나는 책을 먼저 인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쇄한 책을 제본하기 전에 납작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며칠이 걸린다. 며칠 동안 책 인쇄를 마쳤지만 두 수련생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나는 책 표지를 동시에 인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본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계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인쇄가 끝나면 표지를 손으로 잡아당겨 계속 빼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인쇄가 멈췄다. 기계 옆에 서서 표지를 하나하나 잡아당기며 지켜봐야 했다.

책 표지 인쇄를 마쳤는데도 두 수련생이 오지 않자 나는 코팅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코팅지를 자른 후 책 표지에 입힌 뒤 가장자리를 잘라내야 했다. 가장자리는 깔끔하게 자르기가 어렵다. 표지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네 면을 모두 잘라내야 하며 하나씩 잘라야 한다. 책 표지가 500개 이상이니 2000번 이상 잘라야 한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제본이 시작된다. 500권 이상을 제본한 다음 책 표지를 책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배고플 때 밥솥으로 국수를 삶고 소금을 조금 넣어서 먹었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 거의 한 달간 ‘홍음6’을 500권 이상 제작해 수련생들에게 전달했다. 수련생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대법 책을 받는 모습을 보니 매우 기뻤다.

이때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누가 책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데, 우리 지역의 정법 노정이 지연되지는 않았을까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책을 만드는 압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을 드나드는 것도 압력이 크다. 혼자서 세 사람 몫을 해냈는데 어쩌면 저렇게 이해심이 없을 수 있지? 그럼 당신이 한번 해보든지.’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불평하지 못하게 하고 좋은 말만 들으려는 마음이 아닌가? 아직도 불평하며 다른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니? 나는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버릴 것이다. 이런 마음을 드러내고 제거할 수 있게 해준 수련생에게 감사해야 한다.’

명혜망에서 컴퓨터 시스템이 업데이트될 것이라고 공지한 직후, 우리 지역 기술 수련생이 납치돼 아무도 설치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기술을 배우려 했고 수련생이 인터넷에 접속할 때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설치 방법을 아는 수련생을 만나 마침내 방법을 배웠다. 나는 우리 지역 시스템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수련생들의 인터넷 접속 보안 문제를 해결했다.

설치 방법을 배우던 바로 그날 밤, 나는 선명한 꿈을 꾸었다. 온 땅에 우담바라가 피어났는데 한 송이가 아니라 가득 피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날 격려하신 것임을 알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수련의 길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고, 비바람 속에서도 시련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덕분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은 더욱 정진하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3년 11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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