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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법을 얻고 20년을 하루처럼 할 일을 착실히 하다

글/ 호주 대법제자 용석(熔石)

[명혜망] 1998년 어느 날, 시드니에 있는 사원을 돌아다니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내가 이 책을 들었던 것은 두 친구가 그 출판사에 편집자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징에서 왔고 ‘6.4(천안문사태)’를 겪어서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공산당이 진정으로 불법(佛法)과 관련된 서적을 출판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관념으로 법을 얻을 기회를 놓칠 뻔했다.

집에 돌아가 ‘전법륜’을 봤는데 내려놓을 수 없었고 단숨에 읽은 후 극구 칭찬했다. 그때 나는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바로 사부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베이징에 있는 친구와 연락했는데, 베이징 곳곳에 연공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부님께서는 더 이상 법을 전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시드니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고 어디에 가야 연공 동작을 배울 수 있는지 몰랐다. 그때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았던 것이 큰 유감이었다. 어떻게 인터넷에 불법(佛法)이 있겠냐는 관념이 또 한 번 날 가로막았다.

그간 나는 수련생을 찾지 못해 우울함을 느꼈지만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을 몰랐고 가끔씩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누군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줬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렇게 몇 개월간 허송세월하다 1998년 연말에 수련생이 신문에 등록한 파룬궁 광고를 보고 수련생과 연락할 수 있었고, 현지 법공부 팀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수련에 입문할 수 있었다.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법공부에 대한 갈망이 매우 컸는데, 매일 법 속에 있고 오직 수련에만 집중했다. 나는 이번 생에 다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날’이 없으리라는 것을 명백히 알았으며, 수련하면서 난관을 다 넘을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내가 25년간 수련하면서 기적 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셨다.

수련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빠른 기간 내에 결가부좌를 30분 돌파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을 돌파할 때는 좀 불규칙적이었다. 통증이 덜하면 좀 더 할 수 있었고 통증이 심하면 가부좌 시간을 줄였는데 안정적이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간을 정하고 정한 시간이 되면 가부좌를 마치고 더 앉을 수 있어도 마치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시간을 5분 연장하기로 하면 통증이 아무리 심해도 다리를 내려놓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하자 가부좌하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한번은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일찍 다리가 아팠지만 계속 견지했는데, 땀이 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다리를 내리지 않고 견지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마지막 순간 갑자기 모든 고통이 사라졌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사부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시며 날 보살피고 계심을 느꼈다.

천목(天目)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꿈에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이 경험은 수련에 대한 신심을 북돋워줬다. 나는 이 길에서 내가 넘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넘지 못할 관이 없음을 알게 됐다. 또 수련을 시작한 후 나는 가부좌하고 법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진상을 알리고 정법 수련을 하다

수련을 시작한 지 몇 달 지났을 때 ‘4.25’가 일어났다. 그 후 시드니에서 열린 첫 법회에 참석했는데 사부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7.20’이 왔으며 정법 수련에 접어들었다. 나는 두 차례 베이징에 갔다. 한번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러 갔었고, 다른 한번은 중난하이(中南海)에 갔었다. 파출소에서 현지 젊은 수련생을 만나게 됐는데 몇 년 후 매체에서 그를 또 만나게 됐고, 그는 지금 유명인이 됐다. 수련생 사이의 인연은 기묘한데 소중히 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에 의해 시드니로 강제 송환된 후 현지에서 법을 실증했다. 우리는 진상을 알릴 때 협조하지 못하고 각자 알아서 했다. 우리 몇 명의 수련생들은 현지 시청 광장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해 연공하고 진상을 알렸다. 눈이 오나 비가 와도 나는 그 거점에 2년 넘게 있었다. 그때 현지 수련생들은 많지 않았기에 가끔 혼자 있을 때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감당해야 하는 압박감은 엄청났었는데, 돌이켜보면 지금 환경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때 사악은 나쁜 생명을 조종해 교란했고, 사부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법을 배우도록 배치해 우리를 격려하셨다. 가끔 연공하는 수련생들은 모두 신수련생이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연공 배우러 오셨던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오자마자 결가부좌했으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견지했다. 그런데 한 번만 오고 다시 오지 않아서 나는 의아했다. 나중에 사부님 설법에서 알게 됐는데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에포크타임스에 참여해 20년간 근무하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집안일이 점차 많아졌고 밖에 나가 파룬궁을 알릴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다. 이때 시드니에 에포크타임스가 설립됐다. 나는 2003년부터 집에서 에포크타임스 일을 맡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전에는 내가 ‘문자’를 다룰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적에 나는 작문 때문에 매를 적지 않게 맞았다. 처음부터 시작해 혼자 배우고 자료를 찾고 문장을 쓰고 삽화를 배치하고 조판하고 온라인에 게시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는데 그 시절에는 모두 이렇게 했으며 사실 모두들 다재다능했다. 이렇게 시작한 일이 어언 20여 년이 됐다.

나는 자녀 네 명이 있지만 도와주는 부모님이 없었고 가족들도 수련하지 않았다. 일상은 전쟁과 같았고 생활은 돈을 떠날 수 없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속인들의 생각은 달랐고 그들도 주변 환경에서 오는 압력에 직면했는데, 결국 이 모든 압력은 나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수련환경에 불과했다.

인간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는 자유직업인 택시 운전을 택했다. 신문을 제작하는 시간과 다른 시간대에 운전했는데, 하루에 12시간씩 운전했다. 그 시간은 사실 나의 휴식 시간이었고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로지 운전만 하고 진상을 알리며 돈만 벌면 됐다.

택시 운전은 속인 중에서 행각하는 것과 같았는데 각종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빚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은혜를 갚으러 오는 사람이 있었기에 ‘순리에 따르다’는 이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간 많은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게 됐는데 반년간 산에서 수련하다 반년은 사회로 돌아와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가 하면, 또 많은 천목이 열린 사람들이 진상을 물었고, 새벽 2시에 진상에 대해 물으면서 택시에서 30분 지나도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으며, 진상을 듣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한동안 나는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수련생을 만나면 매우 친밀감을 느꼈다. 많은 수련생은 내가 떨어질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은 내 생명의 의의이기에 꼭 끝까지 가겠다고 생각했다. 애들이 점차 크면서 내 수련환경도 여유로워졌고 나는 또 수련생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는 얻기 힘든 기회다.

나에게 에포크타임스에서 어떻게 20여 년을 견지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으며 나는 내가 무엇을 노력하고 견지했다고 느끼지 못했으며, 그것은 내 책임이고 생명의 과정이며 내가 살아있는 의미였다. 마음속에는 포기라는 생각이 없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나는 에포크타임스 이 항목에 매우 감사했다. 이 항목은 지정된 시간에 신문이 발간되어야 했기에 느슨해지지 않도록 날 독촉했다. 수련의 관점에서 보면 에포크타임스는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소셜미디어에서 진상을 알린 체험

코로나가 창궐하자 학회에서는 수련생들에게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라고 격려했다. 처음에 나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 후 한 수련생과 교류하게 됐는데 그는 매일 5분만 투자하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나도 소셜미디어에 가입했다. 막상 가입해보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효과를 보려면 5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동안 ‘공유’만 하다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방향을 바꿔 수련생과 함께 ‘광고 홍보’를 배웠다. 당시에는 수십 명 수련생이 함께 참여했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악이 교란했는데 홈페이지와 계정이 모두 차단됐다. 이 단체 항목은 결국 마비됐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홍보가 매우 효과적이라 생각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홀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동영상을 올리며 진행했다. 처음에는 정말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툭하면 이유 없이 차단됐다. ‘고수’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고개를 저을 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장시간 발정념을 시작했다. 매번 발정념을 하면 전쟁을 치른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었다. 몇 번의 겨룸 끝에 모든 것이 점차 안정됐다. 그 후 매일 5분만 투자하면 되는 정도에 이르렀다. 매일 많은 생명이 대법을 알게 되는 것을 보니 참 기뻤고 그 모든 것이 보람 있었다.

나중에 나는 이 항목을 우리 현지 법공부 팀에 소개했고 또 몇몇 수련생이 참여했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홈페이지에는 파룬궁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있었는데 2년간 2400만 회 이상 조회됐고 홈페이지 방문 횟수는 수억 회에 이르렀다.

스스로 인정한 길이면 나는 끝까지 견지했는데 이는 아마도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많은 수련생이 소셜미디어 항목이 참여하는데 첫 단계에는 교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사실 진상을 알리는 항목은 다 이러하다.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보려면 층층의 교란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러한 교란을 제거하고 나면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을 느낄 것이다.

법공부를 견지해야 법에 동화할 수 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할 말이 너무 많아 책 한 권을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사실 우리는 수련하면서 모두 책 한 권을 쓸 수 있으며 그것은 한 사람이 신으로 향하는 스릴 넘치는 과정을 기록한 걸작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대법 덕분이다. 사부님께서는 매번 설법에서 우리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에 공을 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법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말하려 한다. 여러분은 우주 천체가 얼마나 큰지 아는가? 법에서 알게 됐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그것은 매우 커서 인류의 숫자 단위인 억이나 조로도 설명할 수 없다. 정법시기에 인간의 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일반 층차에서 온 것이 아닌데 더욱이 대법제자가 된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층차를 지나야 우리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똑딱’ 하면 1초인데 25년에 이런 1초가 얼마나 될까, 아마 8억 초가 좀 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8억 이 숫자가 우주 천체에서 크다고 느껴지는가? 그것은 너무 적은데 적어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만약 ‘똑딱’하는 1초에 우리가 한 층차를 돌파한다면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하는가? 이것은 비유를 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한 층차만 돌파했겠는가? 더욱 많이 돌파했을 것이다. 우리가 층차를 돌파하면 법에 동화된 부분은 분리되고 남은 것은 동화되지 않은 부분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해서 동화되지 않은 부분을 동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매일 법공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진정으로 수련한 이후 나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법공부를 했다.

‘안으로 찾는 것’을 습관화하다

법공부하는 것은 법에 동화하기 위함이고 우리 수련을 지도하기 위함이다. 그럼 수련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다. 개인 인식이지만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사람마음과 집착을 수련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만약 스스로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른다면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을 책임지신다. 신께서는 우리에게 문제가 무엇인지 직접 말씀해 주실 수 없고 ‘암시’만 주실 뿐이다. 나는 이 ‘암시’를 신의 ‘언어’와 소통방식이라 생각한다. 주변 환경을 통해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가 자신의 사람마음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늘 말하는 안으로 찾는 것이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만 안으로 찾으면 안 된다. 만약 갈등이 표면화되면 이 문제가 너무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성실하고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대부분 작은 일을 보는데 큰일들은 작은 일에서 누적되기 때문이다.

천천히 나는 조건 반사처럼 안으로 찾는 것을 습관화했다. 표정, 움직임, 어조의 변화에 나는 모두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잘못했는지 생각한다. 매번 자신의 문제를 본다. 이때 겉으로 보이는 옳고 그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나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문제를 찾게 됐는데 너무나 감사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사람들은 보통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것은 위에서 내려올 때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알고 내려온 것일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는 대법 수련인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역할을 흔쾌히 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만약 내가 수련 성취한다면 그들은 날 한번 도운 것이 되고, 만약 우리가 떨어진다면 그들은 교란과 파괴를 한 게 되는데, 장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수련을 잘하고 못하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좌우지하게 되는 것이다.

수년간 우리는 심각한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 우리는 그것들은 모두 ‘구세력’의 배치임을 알고 있다. 그럼 ‘구세력’은 누구일까? 낡은 생명이 아닌가? 법을 얻기 전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 우리도 낡은 생명이었고 우리가 그 당시 생각했던 것은 ‘구세력’이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점이 있었을까? 만약 생명이 높은 곳에서 왔다면 그들은 자신이 내려올 때의 길을 배치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시련을 겪을 때 원한을 품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통제 하에 있기에 대법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하면 꼭 넘을 수 있을 것이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이 교류문장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부탁드린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0/10/4668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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