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어릴 때부터 쟁투심이 강했는데 수련 후 심성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의 집착심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나에게 ‘사람과 싸우는’ 사고방식이 있음을 발견했다.
최근 사례
나는 한 수련생이 항목의 어떤 부분에서 잘 협조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나의 작은 실수로 인해 태도가 좋지 않고 나에게 불평한다고 생각했다. 이 수련생이 처음 항목에 왔을 때 툭하면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곳곳에서 잘 협조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위선이었고 진짜 모습은 귀찮아하고 짜증 내며 협조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내 이런 생각이 바로 ‘사람과 싸우는’ 사고방식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념으로 보면 사람 사이는 대립 관계가 되고, 우호적이더라도 단지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시늉을 할 뿐이다. 이런 관념은 악당(惡黨: 공산당)의 계급투쟁 이론과 매우 유사하다. 이리하여 나는 매사에 남을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싸움’으로 이치를 따지고 다투는 데 익숙해졌다.
한번은 내가 그녀에게 일정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답장을 미루다가 나중에야 변경해줬다. 나는 수련생이 사실 바빠서 답장을 안 했으나 결국 해야 할 일을 했으니, 내가 생각한 것처럼 협조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수련생이 내 실수에 불평하면서 태도가 좋지 않은 것은 너무 바쁘고 힘들었거나,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누구나 심성을 지키지 못했을 때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굳이 사람을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사람과 싸우는’ 사고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떠벌리려 했을까?
내가 수련생을 이해하자 단번에 납득됐고 의문이 풀렸으며, 수련생에 대한 불만이 완전히 해소됐고, 수련생이 게으르고 비협조적이라고 느꼈던 관념도 사라졌다.
수련생들과의 격차
예전에 한 수련생이 시어머니가 뒤에서 여러모로 그녀를 험담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말투가 온화하고 유쾌하며, 또 가볍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의아했었다. 왜냐하면 나라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어 분명 마음속에 원한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와 수련생의 심성 격차를 알 수 있었다.
또 한 수련생은 기독교 신자인 시부모님이 대법을 반대하고, 심지어 아이들이 다니는 예능학교(수련생이 운영함)에 찾아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보러 갔다고 했다. 이 수련생은 시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없이 온화한 어조로 시부모님은 착하나 진상을 모른다고 했다. 이것도 내 마음에는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시부모님을 만난다면, 손자를 간섭하고 횡포를 부리고 강압적이라면 정말 원수지간이 됐을 것으로, 어떻게 평화롭게 대할 수 있는가? 게다가 그런 시부모님이 착하다고 하다니? 나는 이 수련생과의 엄청난 심성 격차를 알 수 있었다.
수련생들의 이런 사고방식은 모두 내 마음에 충격을 줬다. 그들이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사고방식은 ‘사람과 싸우는’ 나의 사고방식과는 매우 다른 것을 깨달았다.
관념을 바꾸면서 제고되다
예전에는 가족, 수련생이나 동료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다투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때 나는 쟁투심이 특히 강해 늘 화를 잘 낸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랫동안 고칠 수 없어 스스로도 매우 고민했다. 일에 부딪힐 때마다 화를 참지 못해서 참음을 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다.
최근 몇 년 사이에야 이 문제를 바로잡았고 거의 사람들과 다투지 않게 됐다.
집에서 나는 예전에 남편과 늘 말다툼을 했고 때로는 격렬했는데, 많은 일들에서 서로 의견이 대립되고 서로 날카롭게 맞서며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너무 고집 세고 인내심이 없으며 성격이 나쁘기에 내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싸움의 근본 원인은 남편의 성격이 아니라 내 관념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불만과 원한이 많았기에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에게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 근면함, 선량함, 고생을 감당하는 등 많은 장점을 보게 되자 그에 대한 불만이 감사로 바뀌었고 당연히 다투지 않게 됐다. 비록 여전히 남편의 성격이 조급하고 말하는 태도가 좋지 않을 때도 있으며 날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것으로 나는 더 이상 불만스럽지 않았다. 단지 사람의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 이건 그의 문제이고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여겼기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방식을 바꾸다
다투고 화를 내는 것은 고쳤지만 ‘사람과 싸우는’ 생각이 뿌리 뽑힌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많은 사소한 일에서 아직 이런 요소가 있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익숙해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내가 어떤 일로 불만을 토로하자 남편이 내 핵심 문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소에 늘 남을 좋게 생각하고 잘 대해주면서 항상 다른 사람도 좋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사람이 안 좋은 면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책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100% 호의를 가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항상 불평하지만, 사실은 사람의 동기를 나쁘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서 모두가 나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마다 문제가 있기에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게 되는 것은 정상이라는 것이다.
나도 나중에 이해하게 됐다. 원수처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포용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요구가 너무 높고 까다로워 항상 반 아이들이 위선적이고 착하지 않다고 느꼈고, 그들 몸에 있는 어떤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여겨서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각자 문제가 있기에 다른 사람을 포용해야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모두 마땅히 긍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나는 또 전통적인 이념에 따라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선의로 대하면 갈등이 해소되고 큰 갈등이 생겨도 과거의 앙금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면의 전통 이야기는 매우 많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면이 있기에 설사 정말 잘못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정말로 과거의 감정을 따지지 않고 이해한다면 사람은 감동받게 되고, 따라서 진심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하는데 이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악당의 계급투쟁 사고방식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고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면 서로의 악한 면을 자극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전자는 우주의 특성에 부합하고, 후자는 우주의 특성에 어긋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善)과 인(忍)에 맞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되도록 다른 사람의 동기를 좋게 생각하고 선의를 믿는다.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할 때면 어려움이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동기가 나쁘더라도 포용하고 잘 대해야 한다.
선과 인에 맞지 않는 생각은 이렇다.
다른 사람의 동기를 나쁘게 생각하고 고의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불편함에 대해 불만하고 대립하며, 심지어 증오한다.
최근에 나는 ‘사람과 싸우는’ 생각의 전제는 사람에 대한 경각심, 경계심, 불신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 뒤에는 불안감, 도피, 자기 보호,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바라는 마음이 강했다. 모두 어릴 때부터 형성된 잘못된 마음인데, 반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느슨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근에 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는데 효과가 뚜렷했다. 다른 사람은 마음을 더 열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내가 긴장을 풀고 다른 사람을 방비하지 않게 되는 동시에 어떤 바라는 마음을 놓았으며,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설득하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달라진 것을 느꼈고 마음을 열고 나와 진심으로 소통했다.
상호 작용하는 이 새로운 형식은 날 매우 기쁘게 했고 스스로도 감격하게 했다. 좋은 방법이 이렇게 간단할 줄은 몰랐다. 그냥 느긋하면 된다. 사실 느긋한 이면에는 선의와 포용이 있다. 경계를 푼 후의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이다. 반면 ‘사람과 싸우는’ 방식은 정말 힘들고, 어리석으며, 우주의 특성에 어긋나기에 원하는 목적과 정반대가 된다.
맺음말
나는 수련생들이 항상 화내는 문제를 고치려 하지만 성격을 통제하지 못해 고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성격은 표면적인 원인이고 관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잠시 멈추고 신중하게 생각한 후, 법에 맞지 않는 것을 되돌리는 것이 가장 좋다.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해질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큰 일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큰 일이나 작은 일을 막론하고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동일하다. 엄밀히 말하면 작은 일도 결코 작지 않다. 나는 내 아주 작은 생각이 바뀌자 때때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발견했다.
사소한 깨달음이니 부적절한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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