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최근 있었던 한 가지 일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항상 밖을 향해 본다는 것이었다. 늘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하면서 원망하는 말투로 지적하니, 상대방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진작 글을 써서 자신의 이런 문제점을 폭로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관념에 가로막혀 펜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체득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사부님께 보고하는 것 역시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이 글을 써낼 수 있었다.
나는 모 수련생에게 명혜주간을 배송하러 갔다가, 그가 휴대전화를 가까운 곳에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다른 곳에 두라고 일깨워 줬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찾아갈 때마다 휴대전화를 눈에 보이는 곳에 뒀다. 가끔은 휴대전화를 들고 문을 열어주기도 했고, 휴대전화가 옆에 있는데도 다음 주에 명혜주간을 몇 부 더 갖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아무리 주의하라고 말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휴대전화로 명혜주간을 주문해 나는 바로 제지하고, 그를 만났을 때 그러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말했다. “다음 주에는 오지 마세요.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렇게 심해서야 되겠어요?” 나는 그가 다른 수련생들에게 명혜주간을 전달할 때도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고, 지적해도 듣지 않기에 그와 연락을 끊었다.
그 후 어느 날 A 수련생을 찾아갔는데 그녀는 나에게 “명혜편집부의 ‘책임’이라는 글을 읽어보셨어요?”라고 물었다. 몇 주간 명혜주간이 끊기면서 그들은 편집부 글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읽었다고 대답하면서 자책감을 느꼈다. 이는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 수련생과 논의 끝에 나는 다른 한 수련생에게 명혜주간을 배송하기로 했다.
점심에 12시 발정념을 마친 후 그 수련생을 찾아가니 반갑게 맞아줬다. 내가 “매주 수련생들에게 명혜주간을 전달해 줄 수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된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어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방문을 닫고 휴대전화 감청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는 괜찮으니 겁내지 말라며 방문을 닫았다. 이후 3주 동안 내가 갈 때마다 방문을 닫으라고 하자 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런 분은 처음 봐요. 남의 집에 와서 이래라저래라하다니요.” 당시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아 말했다.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 오지 않을 거예요. 알아서 가져가세요.”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다시 A 수련생을 찾아가서 명혜주간을 받는 수련생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더 이상 배송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A 수련생은 안으로 찾아보라며 인내심을 갖고 나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나는 ‘안전에 주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잘못인데 내가 찾아야 한다고?’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괴로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그 후 최근 들어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면서 자신을 되돌아봤다. 나의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어투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정진요지-청성(清醒)’]
앞에서 언급한 두 수련생은 모두 휴대전화와 관련된 안전 문제를 중시하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강조하기만 하면 내가 너무 지나치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다. 말투가 선하지 않고 순수하지 않은 것도 있고, 자신이 우월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법리를 더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해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최근 들어 감시와 도청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온화한 태도로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수련생이 나에게 화를 냈다고 탓하면 안 되었다.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닦아버려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 법에서 제고해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당신이 모두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절대적으로 당신과 관계없으며 당신이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이 없다면 당신 몸에서 이 일은 아주 적게 생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마음이 없다면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즉 당신의 수련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당신 몸에 모순이 생기고 당신 여기에 나타났으며 당신들 사이에 나타났다면 틀림없이 당신과 관계가 있을 것이며 당신이 버려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나의 법신이 당신의 마음을 제거할 때 이 일이 그의 탓인지 아니면 당신 탓인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신이 이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는 온갖 방법을 다하여 당신에게 모순이 나타나게 하며 당신에게 부족한 이 한 마음을 인식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아직도 거기에서 찾으며 이 일은 내 탓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한다.”(‘유럽법회설법’)
나는 사부님의 이 말씀을 읽고 여태 수련이 무엇인지 몰랐던 자신이 후회돼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동안 갈등이 생기면 자신을 찾는 대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찾았기에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다.
사부님의 이 설법을 읽고 나니, 사부님께서 나의 제고를 위해 마련해주신 기회를 많이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어떤 일을 만나든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려고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 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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