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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속에서 가족 9명이 대법 수련을 시작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나는 50세 때 법을 얻었다. 우리 부부는 시골에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키웠는데, 그 시기 시골에서 자식 넷을 부양하기는 무척 힘들어 많은 고생을 했다.

1. 법을 얻다

2000년 어느 날, 외지에서 일하던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나와 남편에게 어느 파룬궁수련생 집에서 일하던 중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 한 권을 얻었다고 했다. 아들은 보물을 얻은 듯 그날 늦은 밤까지 책을 읽었다며, 이는 천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고덕대법(高德大法)이고 꿈에서 그리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둘째 아들 부부는 반본귀진(返本歸真: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는 수련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남편은 들은 후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왜냐하면 그 당시 중국에서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가장 엄혹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각종 파룬따파에 대한 유언비어와 모함, 모독과 탄압으로 전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바보 같은 아들 녀석이 총부리 앞에 서려고 하니 남편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그들의 수련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들의 결심을 막을 수 없었다.

남편과 반대로 나는 뒤에서 아들을 지지했다. 사람이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르면 얼마나 좋은가! 사람들의 관계가 좋게 변하고 이 사회는 안정되며 도덕성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각하자 사부님께서 천목(天目)을 열어주셨다. 나는 우리집 옥상 잔디 위에 앉아있었는데, 연꽃 위에 앉은 큰 부처님께서 멀리서부터 날아와 자비롭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날 보고 계셨으며, 동시에 주위에는 흰색 동그라미가 돌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리는 텅 비었으나 기쁨이 넘치고 온몸이 홀가분하며 행복했다.

나는 이 신기하고 신성한 광경을 아들한테 얘기했다. 아들은 즉시 ‘전법륜’ 책 속의 사부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나는 즉시 깨달았다. 내가 본 그 큰 부처님이 바로 파룬궁 사부님이셨고 흰색 빛의 동그라미는 파룬(法輪)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법을 얻었고 연이어 남편, 딸, 손자 등 가족 9명이 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했다.

2. 법을 배우다

나는 법을 얻은 후, 법을 배우고 연공하며 마음을 닦으면서 수련을 다그쳤다. 23년간 혹한과 혹서에도 아침 연공을 견지했으며 때로는 단체로, 때로는 혼자 하면서 멈춘 적이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겨우 한 학기를 공부했었는데 장기간 농사짓고 주방일만 하다 보니 아는 글자마저 잊어버려 문맹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단체 법공부할 때 초기에는 법을 듣기만 했고 차츰 한 글자 한 글자씩 배워 결국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 오후 내내 한 강의도 다 읽을 수 없었으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견지했다. 특히 심성을 닦는 방면에서 느슨히 하지 않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고 합격한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3. 법을 실증하다

그때 우리는 천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이 기연을 지극히 귀중히 여기고 정진했으며, 사부님과 대법과의 이 성연(聖緣)을 소중히 여겼다. 우리는 법을 수호해야 하고 사악의 무리한 탄압과 박해를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며, 정부 기관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들과 며느리, 딸과 손녀들은 거듭되는 장애를 물리치고 연속으로 베이징 정부를 찾아갔으며 나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집은 매우 가난해 여비도 없었다. ‘농촌 여성인 내가 어떻게 가야 하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돈을 빌려 베이징에 가려고 문을 나섰다. 산 하나를 넘자 하늘에 온통 파룬이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베이징으로 가는 날 격려해주셨고 또 한 번 신기하고 신성한 장면을 보여주셨다. 두 차례 신기한 경험은 내가 착실하게 수련하고 정진하게 했으며 고비를 연속 넘을 수 있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가족 7명이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도록 격려해주셨다.

4. 떠돌아다니는 수련생을 받아들이다

우리집은 비교적 외진 심산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진선인을 기준으로 심성을 닦아 선을 베푸니 마을에서 평판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과도 관계가 좋아서 낯선 사람(수련생)이 우리집에 와도 그들은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사부님의 보호로 10여 명의 수련생이 우리집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그중에는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수련생, 병업관과 기타 고비를 넘기는 수련생도 있었는데 10여 일, 몇 달, 심지어 1년 남짓 지낸 수련생도 있었다. 우리는 단체 법학습, 연공, 발정념을 했으며 서로 토론하고 서로 도우면서 공동 제고했고, 사악이 교란하면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박해를 해체했다. 수련생들에게 밥을 해주고 생활상 편의를 제공해줬다. 수련생들은 몸 상태가 좋아진 후 우리집을 떠나 정법 노정으로 다시 돌아갔다.

한 노년 수련생이 박해로 떠돌아다니다 우리집에 머물렀다. 하루는 파룬궁 탄압 기구인 ‘610 사무실’ 사람들이 찾아와 남편을 세뇌반에 데려가려 했지만 남편은 집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당신들은 살인 방화하고 훔치고 빼앗는 나쁜 사람은 왜 붙잡지 않나요?”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그들이 벽에 붙은 진선인 글자가 새겨진 현수막을 찢으려 하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시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홍음2-두려울 건 뭐냐)를 외우며 법으로 그들을 제지해 죄를 범하지 못하게 했다. 위층에 있던 수련생도 바로 입장하고 발정념을 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그들은 화를 내며 가버렸고 이렇게 한 차례 위험은 사라졌다.

5. 박해를 해체하다

1년 뒤 어느 날, 나는 집에 없었고 남편은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610’ 사람들이 또 찾아와 남편을 세뇌반으로 끌고 가려 했다. 남편은 말을 듣지 않고 그들과 맞섰다. 놀란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이 사람은 마을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열심히 사는 좋은 분입니다. 데려가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두려워서 화를 내며 가버렸다. 사부님의 보호로 또 한 차례 박해를 해체했다.

우리는 스스로 진상 자료를 만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배포했다. 오토바이 뒤에는 나와 남편이 타기도 하고 며느리와 딸이 탈 때도 있었다. 사방 수십 개 향촌을 집집마다 다니며 하룻저녁에 수백 부씩 배포했는데 사부님의 도움과 보호 아래 매번 순조로웠다. 한번은 남편이 자료를 배포하다가 사악한 공산당의 거짓말에 세뇌된 사람의 추격을 당했다. 정념이 강한 아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그 사람 앞에 가서 “우리는 대법의 복음을 전하러 왔고 여러분의 평안을 위해 왔어요. 여러분은 업을 짓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그 사람을 진정시킨 후 두 부자는 무사히 돌아왔다.

우리도 수련생들과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수련생들이 진상 자료를 지고 몇십 km 산길을 걷다 보면 파룬이 앞에서 길을 안내해주었고 어떤 때는 집에 돌아오면 날이 밝았다. 어떤 때는 진상자료와 붙인 스티커에서 반짝이는 빛을 볼 수 있었다. 농촌에는 개가 많았는데 우리를 봐도 짖지 않았다. 한번은 수련생이 2~3m 깊이 물웅덩이에 빠졌는데 우리가 그를 끌어 올렸을 때 상처가 없었고 신발과 옷도 젖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매 순간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셨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두려운 마음 없이 대면해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척, 친구와 이웃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했고, 파룬궁은 억울함을 당했다는 등을 말했다. 2004년 이후 나는 야채를 팔고, 거리에 나가고, 친척과 친구를 만나는 기회를 이용해 세인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으며 하늘이 그것을 멸망시키려 하기에 그것과 한패가 되지 말고 짐승의 낙인을 지워 평안을 보장하라고 했다!

6.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다

나는 수련하기 전에 심한 두통으로 뒹굴기도 하고 허리와 발 통증으로 길을 잘 걷지 못했으며, 밤에는 발이 빠질 듯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다. 법을 얻고 수련한 지 두 달 만에 감쪽같이 나았고 그 뒤로 전혀 아프지 않았다. 70세가 되어 채소를 키워 팔며 밥을 짓고 집안일을 돌봤지만 힘들지 않았고 집안은 매우 깔끔하다. 지난해 조카며느리가 두통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녀를 우연히 떠올렸다가 그날 밤 두통으로 침대에서 뒹굴었고, 수련하지 않는 아들이 날 병원에 데려가려 했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제 업력이라면 제가 감당하고 빚진 것은 갚겠습니다. 구세력의 박해라면 인정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걷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9자진언(九字真言)을 염하면서 안으로 찾았다. 조카며느리를 그리워한 바르지 않은 생각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귀신을 불러왔기에 바로 해체했다. 밤늦게야 나는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엔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2015년 어느 날, 나는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다. 나는 조카의 팔걸이 없는 삼륜차를 탔는데, 산길이 험해 차에서 떨어졌다. 조카는 내가 죽은 줄 알고 너무 놀라 나를 일으켜 세워보니 오른쪽 손목뼈가 부러져 손바닥에 꽂혔다. 큰아들이 날 병원으로 옮겼고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나는 날 수련인으로 여기고, 아들에게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하자 대법을 믿던 효자인 둘째 아들이 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집에 돌아온 후 둘째 아들이 집을 짓는데 일손이 모자라 밥을 짓고 자질구레한 일을 했다.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셨기에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한 달 사이에 처음처럼 회복됐고,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고통도 거의 없었다. 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23년간, 수련의 길에서 모두 대법을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대법을 수호하며 널리 전했다. 이로 인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평탄하게 걸을 수 있었다. 때론 대법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못해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보호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갈 때도 있었다.

앞으로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해, 집착과 사람마음을 없애 관념을 바꾸고,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9/28/4651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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