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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수련을 배우다

글/ 해외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제자 가정에서 태어난 저는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랑 속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가족들의 권유로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읽고 연공했습니다. 저는 수련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조급했지만, 자신이 주도적으로 수련하지 않아 줄곧 대법에 정식 입문하지 못했습니다. 속인 음악과 비디오, 드라마는 모두 저에게서 대법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전문대만 졸업한 저를 가족 수련생은 의논한 끝에 미국의 본과대학에 유학 보내기로 했습니다. 당시 저는 영어가 매우 서툴렀지만, 비자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했습니다.

1. 속인으로 몰락하다

제가 다니던 대학은 편벽한 지방의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학비가 저희 집안 형편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학교에 도착했을 때 학교에 중국인 학생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과 우정을 쌓았습니다. 저는 속인처럼 생활하기 시작했고 룸메이트는 매일 공부가 끝나면 많은 사람을 초대해 집에서 마작을 하고 훠궈를 먹었습니다. 점차 저도 끌려 들어가 마작을 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저도 마작 애호가가 됐습니다.

그 당시 제 행동은 보통 사람보다 못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저는 거의 마작에서 이긴 적이 없었기에 모두가 저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갑자기 많은 돈을 따게 되어 한없이 행복했습니다. 친구네 집이 우리집 잔디밭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마작을 끝내고 잔디밭을 지나다가 저는 갑자기 진흙탕에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 몸은 온통 진흙 범벅이 되었습니다. 저는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제 행동이 대법 수련의 궤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경고하기 위해 ‘방할’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 변하다

매일 반복되는 놀이와 사교는 저를 막막하게 했고 환멸을 느끼게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갑자기 가족들이 저의 법공부를 위해 준비한 아이패드가 베개 옆에 조용히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그것을 집어 들고 ‘전법륜’과 사부님의 경문을 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끝없는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사부님께서 저를 대신해 얼마나 많이 감당하셨기에 저의 주왠선(主元神)이 깨어날 수 있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구세력이 제 수련을 가로막았기에 제가 법공부를 하기 시작하자 삶에 큰 시련이 생겼습니다.

룸메이트 및 그의 남자친구와 갈등이 심해진 저는 결국 쫓겨나 D 아주머니 집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당시 중국 유학생 단체로 인해 저는 명예를 훼손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학대를 당했으며, 제가 한 말과 행동이 무한히 확대됐습니다. 그런 것들이 마치 커다란 검은 산 같아 저는 외출할 때도 떨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D 아주머니와 미국인 H 할아버지가 저를 원래 살던 집에서 나오게 해 주셨는데, 원래 살던 집은 끝없는 욕망의 지옥 같았습니다. 룸메이트와 다른 사람들이 문 앞에 서서 저에게 욕설을 퍼붓고 이사 나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상황은 선과 악의 싸움이었고 사부님께서 저를 지옥에서 꺼내주셨습니다.

저를 받아준 D 아주머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숙소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저는 다른 C 아주머니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차가 없어 학교에 가려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웹사이트를 통해 차를 구하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차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C 아주머니가 자기 차로 저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차 내부가 제 마음에 들었으나 제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는 제게 차에 대한 예산이 얼마인지 물었고, 제가 말하자 새 차를 사고 싶으니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저에게 양도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안배하신 것임을 깨달았고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했지만, 여전히 저에게 정진하지 못하는 마음, 의존심, 안일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위기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C 아주머니 댁에서 생활하는 동안 저는 또 안일함에 빠져 다시 나태해졌습니다. 마침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때라 이모와 저는 그레이트스모키 산맥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여행 3일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지만 여행 계획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저는 이모들과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이튿날 이모들은 더는 누워 있으면 안 된다면서 저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 경치를 구경하려 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제 뇌는 서서히 작동을 멈추고 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제 눈에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같이 간 이모가 이 광경을 보고 길가에 차를 세웠습니다. 저는 잔디밭에 누웠는데 뼛속까지 한기를 느끼며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행인들이 다가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구급차를 불렀기에 구급대원과 보안 요원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들은 저를 둘러싸고 피를 채취한 후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어디에서 힘이 생겼는지 일어나 앉아 저는 가난한 학생이고 병원비를 낼 힘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수련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에게 많은 서류에 서명하게 한 다음 떠났습니다.

의식을 잃을 뻔했을 때 저는 ‘그냥 이렇게 떠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9자진언(九字真言)’을 외우며 사부님을 불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차에 태워져 숙소로 돌아왔고 그 후 점차 조금씩 힘을 되찾았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저는 약을 먹지 않았고 이모들이 강제로 먹인 것은 무효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음날 열이 내리고 몸은 여전히 약했지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 후 혈액 검사 결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이미 있었지만 예방 접종을 한 적이 없었기에 당시 바이러스에 감염됐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수련이 부족해 구세력이 틈을 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수련의 길로 나서다

차가 생기자 저는 이모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C시에 일자리를 구해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주선으로 마침내 지역 수련자와 연락을 취해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임금이 점차 많아지고 생활도 좋아졌습니다.

대학원 졸업을 두 달 남겨두고 이웃집에서 전화로 P시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면접을 마치고 곧 취업 서류를 받아 그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사 온 지 두 달 만에 회사의 경영이 좋지 않아 저는 해고됐습니다. 상사는 회사 기숙사에서 빨리 나가라고 했지만 현지 수련자들은 저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며칠간 저와 법공부를 하고 교류한 적이 있는 I시에 사는 젊은 여성 수련생이 제 사정을 알고 바로 자기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제 운전 면허증도 만료 하루 전이었는데 사부님께서 이 수련생이 면허증 갱신을 도와주도록 주선해주셨습니다.

저는 유학생이었기에 제 신분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됐습니다. 졸업 후 저는 1년짜리 취업 허가를 받았지만 3개월 이내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출국해야 했습니다. 제 전공은 너무 광범위했고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었기에 모든 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고 매달 고정 지출이 발생해 은행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적극적으로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임시 아르바이트로 계산원 일을 구했는데, 월세를 충당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원래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에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매일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면접을 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조금 먼 곳이었지만 어쨌든 찾아갔고 면접이 끝난 후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채용 제의를 받았지만 정식 고용 계약서는 발급받지 못했습니다. 인사팀 동료에게 물어보니 나중에 보내준다고 했지만 이틀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다른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주로 제 신원에 관한 질문이었고, 제가 대답하자 동료는 “네, 변호사에게 확인해 근로계약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더는 소식이 없어 문의 전화를 했었고 제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채용될 기회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수 없이 여쭈어봤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

어느 날 밤, 집으로 운전하던 중 갑자기 청년 대법제자들의 교류를 듣고 싶어 무심코 오디오를 켰습니다. 한 청년 수련생은 편안함 때문에 청소를 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저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마침 다음 날 저는 대법 활동에 참여하러 나가야 했기에 직장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자신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아주머니나 수련생들이 도와주어 항상 순탄하게 살아왔고, 금전적인 어려움이나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었기에 안일한 마음을 길러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점차 삶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보통 사람들이 가진 것들에 대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안일함에 잠자기 좋아하고 연공이나 청소하기가 싫어졌고, 많은 일을 할 의욕이 없어져 수련생의 도움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생활 중에 넘기 어려운 난을 만나면 열심히 법공부를 하는데 마치 ‘전법륜’을 집어 들면 사부님께서 제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도와주셔야 하는 것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이러면 대법을 배우는 것이 보험에 가입한 것과 같은가? 문제가 생겨서야 법공부를 하는가? 평소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갑자기 깜짝 놀란 저는 온몸이 진동했고 제가 실제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수련을 돌이켜 보면 발정념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연공도 매일 견지하지 못했으며, 법공부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고, 인내심이 없었는데, 그런 상태에서 제가 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활에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사회 전체가 수련의 장소인데 자신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생활의 안일함과 돈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치를 깨닫게 되자 마음속 안개가 단번에 걷혔습니다. 이튿날 수련생과 함께 대법 활동에 참여하러 가는 길에 이 문제를 교류하는 중 갑자기 낯선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회사에서 저의 고용 계약서를 준비했고 인사부 동료가 여전히 이 직장을 고려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동의한다고 했고 다음날 공식 고용서류를 받았으며 직장 카드도 업데이트되어 모든 문제가 순리롭게 해결됐습니다.

순간 사부님께서 항상 제 곁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사실 마음가짐이 바뀌면 모든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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