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의 신경문을 읽고 깨달은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와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를 읽고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한 깊이 은폐된 집착을 찾았기에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며칠 전 아침, 머릿속에 우연히 ‘오늘 5세트 공법을 다 연마했으니 허리가 아프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휙 지나간 이 생각을 포착했고, 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긴 했지만 깊이 캐내지는 않았다. 저녁에 사부님께서 연속으로 발표하신 경문 두 편을 읽고서야 나는 우리의 수련에 분명 큰 문제가 생겼음을 인식했고, 마음을 써서 다시 한번 보았다. 나는 단번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고 순간적으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바르지 못한 그 일념이 연상됐고, 그 염두의 배후에는 또 현기(玄機)가 있음을 인식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찾아보면서 집착의 배후에 있는 뿌리를 파내려 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떠올랐던 그 염두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찾아냈는데, 연공을 이용해 자신의 편안함을 얻으려 했다. 나는 평소 자신의 생각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이런 은폐된 목적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목적의 배후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즉시 찾아봤다.
나는 올해 3~4월에 정해진 시간에 아침 연공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바꾸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느꼈던 일이 떠올랐다. 이것은 본래 좋은 일이고 이 방면에서 제고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얼핏 ‘연공에 참여하면 앞으로 몸이 좋아지겠지? 허리가 불편한 증상도 좋아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때로는 수련하면서 무언가를 좀 하면 마음속에 한 가닥 기쁨이 스쳤는데, 아마도 내가 치른 대가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나는 무심코 스쳐 간 많은 염두 속에는 다 ‘나는 오늘 이걸 잘했으니 이만큼 얻겠지. 저걸 잘했으니 그만큼 얻겠지’라는 생각이 있음을 알아냈다. 수년 전 한 수련생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 문제를 찾았어요. 저는 법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서 추구하고 있었어요!”
이때 나는 자신의 은폐된 그 집착의 배후를 인식했는데, 이 수련생과 마찬가지로 법에서 추구하고 있었다. 내가 한 많은 일은 모두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목적의 배후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나는 자신이 대법을 수련함으로써 사람 중에서나 수련 중에서 좋은 점을 얻으려고 했음을 보아냈다. 예를 들어 건강, 안일, 층차의 제고, 심지어는 수련 중의 명성 등등이었다.
나는 배후에 은폐된 집착을 파헤치고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런 사소한 집착 배후에 뜻밖에도 이토록 심각한 문제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고 놀라서 깨어났다. 예전에 한번은 자신이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나는 왜 자신의 수련에 이렇게 중대한 문제와 편차가 생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그 답안을 주셨는데,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정, 사람의 생각으로 수련을 이해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무슨 원인인지는 잊었는데, 갑자기 사부님께서 왜 날 상관하지 않으실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나이가 어렸고 수련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 일은 내 기억에 남아 생각날 때마다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몇 년 전 머릿속에 어쩌다 한 가지 생각이 스쳤는데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여행을 할 텐데, 대법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무슨 무슨 일을 할 텐데’라는 생각이었다. 당시에 즉시 부정하긴 했지만 지금 보면 바르지 못한 염두의 뿌리는 파헤치지 못했다.
가끔 정진하지 않을 때면 머릿속에 우발적으로 ‘사악에게 납치돼 정말로 안 되겠다 싶으면 타협하자’라는 염두가 튀어나왔다. 당시에는 자신의 두려움이 너무 심하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은 수련 기점의 문제다. 추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을 배우고 대법을 이용하려 하면서 사부님을 원망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악과 타협하려 했다. 자신의 이런 은폐된 집착심을 찾고 보니 자신이 전혀 수련인답지 않았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얼굴이 화끈한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서 땀이 났는데, 이런 은폐된 집착이 폭로되지 않고 제거하지 않아 자신이 이미 큰 위험에 처했다고 느꼈다. 나는 하루 동안 당시 자신의 수련상태에 대해 사고하면서 그런 집착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정리해봤다.
내가 진지하게 자신을 수련하려 하자 사부님께서 아래 단락의 설법을 보여주셨다.
“제자: 마성이 아주 강하고 주위의 환경 또한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모두 당신의 수련과 관계있는 것으로서, 당신을 도와 소업하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당신을 도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정확하게 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아주 곤란한 정황에 처했을 때,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당신들에 대해 아주 좋은 점이 있다. 당신들이 당신에 대해 좋은 점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당신이 아직 사람을 내려놓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여기고, 그가 이렇게 당신을 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며, 당신에게 마땅히 더욱 잘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공인의 각도에서 보면, 여러 사람이 모두 당신에 대해 그렇게 잘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폭로되어 나오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소업하겠는가? 이런 문제가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모든 이러한 마난(魔難)에 대해 저촉되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바르게 대해야 한다.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르다. 만약 누가 이렇게 나를 대하고 대법을 대한다면, 그것은 바로 정법을 가로막는 사악(邪惡)한 파괴이다.”(뉴질랜드법회 설법)
나는 자신이 줄곧 사람의 마음으로 수련을 이해하고, 대법을 이용해 각종 좋은 점을 얻으려 했음을 알게 됐다. 얻지 못하거나 자신의 심리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의심하거나 심지어 원망하기도 했다. 지금은 나도 원한심이 왜 그렇게 강한지 알게 됐는데, 일을 함에 모두 목적성이 있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자연히 원망이 생겼다. 수련은 집착을 포기하는 것인데 나는 목적을 갖고 법에서 추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수련과 완전히 상반된다! 이 추구의 배후는 곧 사(私)와 나[我]이다.
수련 중의 이치는 반대되는 것으로, 고생하고 시련을 겪는 것은 좋은 일이며 소업하고 제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관념은 줄곧 사람 속에 머무른 채 변함이 없었으며, 고생하는 것을 좋지 않은 일로 여겨 마음속으로 배척했다. 어려움이 적을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어려움이 조금이라도 커지면 견디지 못해 의심하고 원망하곤 했다. 또한 자신도 법에서 일부 일을 했고, 지금은 예전보다 정진하니 만족스럽다고 여겼는데, 안일한 마음으로 수련을 느슨히 했다. 내가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정으로 수련을 이해할 때면 내 마음은 법이 아닌 사람 중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부님께서 내가 소업하고 관을 넘도록 도와주셨던 일을 말해보려 한다. 작년 말, 전국에 ‘양성(코로나 확진)’이 판을 칠 때 나도 증상이 있었고 사흘 연속 고열에 시달려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는 관을 잘 넘고 싶었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포기한 채 누워버렸다. 나는 이 관을 잘 넘지 못했다고 여겨 마음이 편치 않았고, 수련에 조금 소극적이 됐고 좌절감을 느꼈다.
나중에 몸이 회복된 뒤에 예전에 머릿속에 늘 반영됐던 일부 더러운 사상업(思想業)이 없어지고(예전에는 아무리 배제하려 해도 깨끗이 배제되지 않고 늘 날 교란했음), 법을 외우는 것도 예전보다 많이 빨라진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법리를 깊이 체득했다. “당신이 대법을 배웠으니, 당신이 부딪힌 좋은 정황이든 나쁜 정황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사부님의 대자비에 너무 감사드렸는데 당시에 고비 넘기를 포기하고 자포자기했음에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날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셨다. 제자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소중히 여기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예전에 법 중에서 추구하면서 늘 자신은 오늘날 사회에서 나쁜 버릇이 든 아이처럼 어른들의 이타적인 관심에 고마움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사부님의 자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최근 이틀 동안, 갑자기 사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고, 주위 모든 사람과 일을 소중히 하고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하고 베풀어주신 은혜이며, 자신의 수련과 긴밀히 관련이 있으므로 최대의 선념으로 대해야 한다.
나는 자신이 도대체 왜 수련하는지, 누구를 위해 수련하고 도대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점에서 수련을 이해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마음이 사람 속에 있으면 단지 사람일 수밖에 없고, 마음이 법에 있어야 대법 수련자다.
오랫동안 은폐된 이런 사악한 사람마음, 집착을 폭로하고, 그것들이 내 공간장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이 문장을 써낸다. 동시에 자신에게 심각한 교훈을 남겨 이후의 길을 잘 걷도록 각성하고 더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겠다. 또한 수련생들이 날 보고 깨어나 자신을 잘 수련하면 좋겠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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