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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법회]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고 집착을 없애다

글/ 미국 텍사스 수련생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과 수련생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2021년에 텍사스로 돌아와서 원격으로 에포크타임스 고객서비스 업무를 맡았습니다. 저는 항상 관리직에 있었으므로 2015년에 매체의 일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뉴욕 영문판 발행부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저는 매체에 입사하기 1년 전인 2014년부터 파룬따파(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매체는 재정적으로 어려웠고 많은 사람이 그만둬서 인력이 부족해 장애와 고난이 많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처음 2년간 매트리스 없이 침대 위 나무판 위에서 잤습니다. 유료 신문으로 전환할 때까지 3년간 이렇게 일했습니다.

당시 매체는 많은 부분이 바뀌는 중이었습니다. 무료배송을 중단하고, 무료 배포 상자를 모두 팔고, 유통을 유료로 옮기면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NTD TV의 요청을 받아 이직했는데, 우리는 페이스북 동영상 호스팅 허가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는 절실했습니다. 부서를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이고 그런 일을 하면서 좀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직했습니다.

저는 심성 제고에 대한 시험이 없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고 신체적으로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제 수련에서 이 시간은 매우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좋은 일임을 알았고 저는 기꺼이 도왔습니다. 저는 신수련생에 지나지 않았고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을 모두 이해하고 그 둘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제 이기적인 면은 개인 수련을 하고 나머지는 노수련생들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사부님께서 가르친 내용에서 저는 그것이 틀렸음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수요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협력하는 법을 더 배워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NTD에서 SOH 희망지성으로 옮겼고, 다시 아메리카 데일리(America Daily)의 영어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책임자가 됐습니다.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도 없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미디어 회사였기에 이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왔고 광고주가 줄었기 때문이었지만 속으로는 제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제게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자기 실증과 성공에 너무 집착했고 하던 일에서 계속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해 수련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근본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일하는 것을 사람 구하는 일로 생각했고 수련을 잘한다고 여겼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이 주제에 대해 교류하는 것을 들었지만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더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내면의 자아를 더 잘 수련해야 한다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저는 더 많이 찾아봤습니다. 제 수련상태가 바뀌기 시작했고 다시 에포크타임스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저는 단지 전화를 받는 고객서비스 상담원이 되려 했으며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시 관리직으로 돌아가 상담원 교육을 맡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정법에 사용하도록 제게 이 능력을 주셨음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자랑할 것도 자만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 일은 제게 딱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매우 이기적이고 자아가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거나, 동정심과 이타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직장은 심성을 닦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곳은 수련하기 완벽한 곳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전법륜, 제4강)

저의 매 일념은 모두 수련에서 진보하는가 후퇴하는가이며, 얼마나 심성관을 통과하고 깨닫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저는 여러 번 넘어지고 계속 나아갔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집착을 제거했습니다.

관리직은 고유의 책임이 할당되는 다른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어려울 수 있고, 자아가 팽창하기 쉽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면 자신의 의견이 굳어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더 쉽습니다.

저는 매일 뿌리 깊은 이기심을 제거하고 이타심을 배워야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집착을 없애다

최근의 경험은 제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옳다’라는 것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사부님 법상을 모셔놓은 거실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왜 자비로운 마음을 더 키울 수 없는지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늘 여쭈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자비가 없을 때가 많아서 괴로웠습니다. 또한 최근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데서 효과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는 진상 활동이 피상적인 것 같아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외모마저 왠지 더 나빠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원인을 찾느라 계속 파헤쳤지만, 한 가지 제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제 마음속에 분노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이 세상에 대해 화가 난 것 같다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스스로 분노가 없다고 느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그렇게 보이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혐오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한 단어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바로 ‘분개(Indignant)’였습니다. 저는 그 단어의 표면적 의미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 의미를 구글에 검색했습니다.

제가 찾아낸 의미는 이렇습니다. 분개는 라틴어로 ‘합당하지 않다(unworthy)’라는 뜻으로, 단순히 자신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 합당하지 않거나 부당한 행동에 근거한 분노를 의미합니다. 누가 당신을 밀치면 당신은 화를 내고 분개할 수도 있지만, 그 밀치는 행동이 약하고 무력한 사람을 대상으로 해도 당신은 분개합니다. 분개는 사회적 감정과 사회적 환경에 의해 촉발되는 복잡한 별개의(은폐된) 감정입니다. 분노와 혐오는 분개를 구성하는 감정입니다.

‘정의로운 분개’는 경멸에서 비롯된 분노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혐오하기에 화를 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에 도덕이 더해지면 그것이 ‘용납할 수 있는’ 형태의 분노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살펴본 후 저는 수련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 결과 ‘분개’와 관련해 숨어 있는 마음을 훨씬 더 많이 찾았습니다.

수련인의 관점에서 본 분개

이상은 집착에 대한 사람 수준의 인식이지만 수련인에게는 훨씬 더 깊은 이해가 있습니다. 분개는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의 교란이나 악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고, 주먹으로 맞거나 모욕당해도 반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더 높은 차원에서 볼 때 역시 당신은 자비심이 나오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대법에 동화하려면 우리는 자비심을 키워야 하며 인간사에 관여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고생을 낙으로 삼고, 모든 중생에 대한 큰 자비심을 키워야 하며,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해야 합니다.

분개의 또 다른 표현은 자신의 도덕적 이해가 옳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타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악행을 하는 사람들은 축복받지 말아야 하며 선량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므로 질투심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질투가 나쁜 사람을 향한 것이기에 당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그 마음은 제거해야 할 업입니다. 그것은 또 그 사람이 신의 계획을 신뢰하지 않고 모두 결함이 있고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저는 파룬따파가 받는 박해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박해 중에서 어떻게 수련의 길을 가야 하는지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제게 직접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제게는 늘 개인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수련생들에게 자행한 일을 보면서 저는 그것이 사람에게도 불공정하고 수련생에게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 법을 얻어야 하며, 수련생과 중생을 구하시는 사부님의 길을 가로막아선 안 됩니다.

여기서 근본 집착을 찾지 못해서 제 반응을 바꾸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계속 제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바꾸고 나쁜 일을 멈추려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제 생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악을 대하려면 그것을 폭로하고 배척해야 하며 마음과 뜻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분개하는 감정이 자랐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정의로운 분개는 독선과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좋아보일 수도 나빠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결국은 다른 사람에 대한 자비가 부족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호불호에 따라 상황, 장소, 사람을 분류하고 당신의 도덕규범으로 판단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대법의 표준이 아닙니다.

이 근본 집착 때문에 저는 그 일을 적정선에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지금 보니 마치 수련의 세계가 제게 새로 열린 것 같습니다. 저는 개선하고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역주: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의 서양 속담)’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면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 근본 집착을 관찰하는 것은 제게 좋지 않은 것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예전에 저는 심지어 사부님과 법을 따르는 방식에 대해 집착하면서 수련생들을 판단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스스로 잘못을 볼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제 수련을 가로막는 큰 장애였습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방식도 사람의 논리를 따랐을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의 논리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많이 없애고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명혜편집부의 글 세 편을 읽고 제 수련의 길을 많이 돌아보니, 수련 초기에 여러 해 동안 유지했던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 환경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4년간, 코로나 이후로 환경이 많이 바뀌면서 제 제고가 좀 더뎠던 것 같습니다.

텍사스로 이주하는 건 쉬웠지만 이곳의 편안한 생활 방식은 편안함과 게으름에 대한 집착을 부추긴다는 걸 알았습니다. 연공을 하기도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우리집에서는 매일 대면 법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런 배치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집착과 깨달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법공부 팀 교류에서 노수련생들은 제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점, 돌파해야 할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저를 도와 문제를 끄집어내 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과시심, 경쟁심, 자심생마에 관한 명혜편집부의 글을 읽고 저는 최근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제가 주목해야 할 건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잘하는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꾸는 일입니다. 길은 좁으니 제 생각이 그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제가 남을 멸시하기 시작하거나 스스로 수련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저는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편입니다.

저는 심성에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제 자아는 타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제 방식대로 고집을 부립니다. 또 의심과 관련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면에서 저는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명혜편집부의 글 세 편에 감동했습니다. 제 수련에 격차가 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무엇이 절 가로막고 있는지 더 명확히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사람의 마음과 편안함, 색욕, 욕망에 대한 숨겨진 집착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제 진정한 수련을 방해하는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올해 더 잘해서 이 깊은 집착을 더 잘 제거하고, 진정으로 더 순수한 수련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연공 시간을 늘리고 일하는 데 있어 사람의 방식을 너무 많이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은 제 현재 수련상태와 수준입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3년 미국 남부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3년 9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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