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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을 말하다

글/ 중국 수련생

[명혜망] A 수련생은 다리가 한동안 아팠는데 줄곧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원망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하지만 원망할 이유가 충분하기에 원망하는 것은 일리가 있어요”라고 말을 바꿨다. 그녀의 말투에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이때 나는 갑자기 ‘통한(痛恨: 몹시 원망하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사전에서 찾아보니 ‘통(痛)’ 자의 세 번째 뜻에 ‘원망(恨)’이 있었다. 이렇게 보니 ‘통(痛)’과 ‘원망(恨)’은 정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내보내는 일념(一念)은 밖을 향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안으로도 향하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원망할 때, 실제로는 그 고통을 자신에게도 준다고 이해한다.

또 ‘통(痛)’ 자의 두 번째 뜻에는 슬픔과 동정이 있었다. 슬픔에 대해 말하자면, 오래전에 소설을 읽다가 슬픔에 관한 내용을 볼 때 심장에서 왼쪽 윗배까지 땡기고 욱신욱신한 통증을 느낀 기억이 난다. 슬픔으로 인한 통증은 확실히 존재한다.

나는 또 ‘동애(疼愛: 매우 사랑하다)’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사람은 사랑받거나 아름답고 원만한 사랑을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구 우주의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는 매우 절대적이며 모든 것이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리에 따라 부패한다. 사랑에 푹 빠진 마음은 종종 배신당하는데, 갈라놓을 수 없이 사랑하던 연인도 결국 사이가 틀어져 원수지간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사랑과 고통은 함께한다.

이렇게 원망도 아프고, 슬픔도 아프고, 사랑도 아프다. 다시 말해, 고통은 정(情)에서 비롯되며 정에서 벗어나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원망’이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간과했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창세주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우리는 이 행복 속에 있으면서도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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