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읽은 소감
글/ 조명(趙明, 아일랜드)
[명혜망] 나는 1999년 이전에 대법을 수련한 노대법제자이다.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읽으면서 나는 박해가 시작됐을 때를 회상했다. 그 당시 우리 자신이 서로 어떻게 박해를 반대할 것인가를 상의한 것은 확실히 우리가 모두 자발적으로 한 것이었고 그때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고층차의 법리나 전통문화의 가치관은 말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데, 국내의 어떤 사람은 집이 철거됐거나 연금이 중지되었다. 그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권익을 지키려고 했다. 권익수호 과정에서 탄압당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며 권익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분명한 생각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 결과와 위험을 감수했다. 모두가 싸웠으니 효과가 있든 없든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대법 수련생 중에서 (일부 사람이) 무슨 사부님께서 어떠하시다고 하거나, 마치 사부님께서 누구에게 빚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 그들은 아마도 중공 사당에게 선동되어 우리를 붕괴시키려는 악당의 속임수에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책을 출판하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책을 저술하고 이론을 세우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누구의 책이 잘 팔리고 누구의 이론이 더욱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가 하는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다. 여러분들이 저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자가 말한 대로 따르는 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진선인(真·善·忍)을 가르치셨으며 나쁜 짓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만 걸음 물러서서 가령 대법 사부님께서 사람들의 심신 건강에 가져온 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보통 학교의 선생님 같은 말씀을 하셨더라도, 당신이 교사에게 배우고 가르침에 따랐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공이 높아졌다고 교사가 당신에게 빚을 진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다. 이런 이치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천박하다. 어느 학교에 다닐 건지, 다 배운 후 정말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자신의 몫이다.
결국, 배후에서 중공 사당의 협박과 선동, 인정과 인심의 부패가 없었다면 이처럼 엉망진창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선동적인 풍랑에 직면해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가 하는 것도 결국 그 자신의 선택이다.
중공 사당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바른 이치가 없다. 이전에는 중국인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 얻은 돈으로 버티며 그것의 사악한 체계를 작동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 시들해졌다. 돈이 없는데 사악하고 악랄한 협박만으로 누가 그것을 두려워하겠는가? 그것은 이전의 그 힘마저 없다. 그것의 미시적인 버팀 요소는 이미 대법제자의 정념에 의해 소각됐다. 이때까지 그것에게 속아 앞길을 망치는 일을 했다니, 그것도 너무 가치가 없고 너무 현명하지 못했다.
선동하는 사람에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시장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사악한 당과 구세력에게 무의미하고 이용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데 참고하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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