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 신경문을 읽고 깨달은 것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서는 지난 8월 31일과 9월 1일, 명혜망에 경문 두 편을 연속 발표하셨는데, 읽은 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수련생들은 각종 집착으로 ‘원한’과 ‘불만’이 생겼는데 이미 뚜렷이 표면화됐다. 명혜편집부는 8월 17일 올린 ‘통고’를 통해 이런 일이 발생했음을 알렸다. 내 생각에 그 원인은 구세력이 일찌감치 이런 사람마음과 시장이 있는 것을 똑똑히 보고 이런 사건을 배치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영합하는데, 이는 각종 사람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비록 그들 자신은 여전히 수련하고 싶어 한다 해도 장기간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고 수련할 줄 몰라, 결국 구세력에게 허점을 잡혀 도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사존의 두 편의 경문 제목은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와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이다. 나는 일부 수련생들이 이미 무척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는데, 그들이 관을 넘길 수 있는지, 법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지는 모두 지금 이 순간에 달렸다.
20여 년은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대법 수련생으로서 어찌 초심을 잊었는가? 어찌 수련의 목적을 잊고 집착에 이끌려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부님과 대법까지 원망하게 됐는가? 그들은 스스로 벼랑 끝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는 우주 체계의 무수한 천체, 무수한 중생까지 모두 지극히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했다.
개인적인 깨달음인데,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이 인간세상의 것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희생으로 인간세상의 눈에 보이는 이득을 얻었는지, 긍정과 인정을 받았는지, 자신의 고생으로 인간세상의 행복을 바꿔왔는지 등에 집착한 것이다.
수련인은 몸은 인간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그 밖에 있다. 수련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사람마음을 제거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이득은 수련인이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비록 평생 어렵게 살고, 좋은 일을 해도 남에게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이 가장 희망 있는 생명이고 창세주의 보호를 받는 가장 특별한 생명임을 알고 있다. 설사 일반인이 겪지 못하는 고생을 하더라도 자신의 업과 빚 때문이고 이번 생에 모두 갚아야 함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에 나오는 시 ‘파룬따파(法輪大法)’에서 이렇게 쓰셨다. “공(功)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 대법은 끝없나니 고생을 배(舟)로 삼을지니라”. 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깨달음은, 대법 수련은 고생을 배로 삼는 것이기에 고생하지 않으면 전혀 수련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역경’은 수련의 계단이다. 그런데 역경과 고난의 형식은 늘 예상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느낌으로 수련에서 마땅히 겪어야 할 고생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대법제자는 각종 역경과 고난 속에서 집착을 닦고 법에 동화되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생명이 구원받게 된다.
우리는 구우주에서 신우주로 넘어가는 생명으로서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이끌 능력이 전혀 없다. 오직 사존께서 우리와 전 우주 생명을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신다. 한 생명은 반드시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서약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제자를 소중히 여기시는 사존의 은혜와 제자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 깨달아야 하는데, 이는 오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법과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원하러 오셨고 자신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만 알아도 자신의 언행과 생각을 엄숙하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하며, 더 이상 인간세상의 득실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한다. 인간세상의 명성, 지위, 번화함은 모두 가져가지 못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며, 자신의 세계를 원만시켜 우리에게 희망을 기탁한 중생을 구하기 위함이다.
우리 각자 우주 체계의 중생은 대법제자를 그들의 대표로 선택했다. 다시 말해 전반 체계의 생사를 우리에게 맡긴 것인데,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가! 우리는 당초 신의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서약을 맺은 후 삼계로 내려왔고, 생생세세 고생을 겪으며 자신과 자신의 천국 중생이 구원받는 그날을 기다렸다. 따라서 최후의 일세, 최후의 일각에 인간세상의 일, 사람의 집착에 본성이 미혹되어 신성한 서약을 져버려선 안 된다.
사존께서 연속 두 편의 경문을 발표하셨는데, 이는 이미 무척 긴급하고 관건적인 시각에 도달했음을 설명한다. 비록 우리는 미래를 예견할 수 없지만 빨리 깨어나야 함은 틀림없다. 우리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전진하지 않으면 바로 후퇴한다. 모두 함께 노력해 정진하자!
원문발표: 2023년 9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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