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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에 감사할 뿐

사부님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읽은 소감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읽으니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고, 다 읽은 후에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진정으로 수련하는 제자로서 우리는 이번 신경문에서 언급된 문제를 사부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이전 설법에서 깨닫고 인식했어야 했다.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법에 동화해 표준에 도달했어야 했다. 만약 우리가 정말 해냈다면 사부님께서는 이 경문을 쓰지 않으셔도 됐을 것이다. 구세력을 포함한 우주의 신들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는 전반 과정을 보았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신 모든 것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인식, 심성과 경지에 있어서 그처럼 큰 문제가 있고 격차가 있어 구세력이 박해를 강화하는 구실이 됐다. 사부님께서 이번 경문을 쓰신 것은 위험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보시고 다시 한번 제자들을 각성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신경문이 특정 사람이나 특정 사건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지나쳐선 안 된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법으로 자신을 대조해 이 면에서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진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인식,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공경심, 자신과 대법의 관계를 바로잡는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이 사람의 정이 들어간 감성적 인식인지, 아니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하신 모든 것을 기반으로 대법에 동화함으로써 나온 이성적 인식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대법을 수련하면서 대법이 자신을 위해 어떤 번거로움을 해결해주고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길 바란 적이 없었는가?

수련 중 난(難)에 부딪혔을 때 마음속으로 억울함을 느낀 적이 없었는가? 원망하지는 않았는가?

박해 속에서 자신에게 들이닥친 난, 가족들의 반대와 원망에도 불구하고 대법을 끝까지 수련하려는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는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대법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 건 아닌가? 불만을 품은 적은 없었는가? 자신이 한 일을 자랑거리로 삼은 적은 없는가?

아직도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신경 쓰는 것은 아닌가? 정법 노정에 대해 여전히 이런저런 개인적인 생각과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인식이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 사람마음이 존재하는 한 수련에서 드러날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것은 내 주변 수련생들의 평소 수련과 교류에서 나타난 현상인데, 잘 대조해본다면 문제를 찾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문제가 나타난 근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을 뿐 가장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은 속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은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가 당연히 더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념이다. 빨리 깨어나지 않는다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이 경문을 읽고 많은 수련생은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경문에서 말씀하신 법을 알고 법리를 알아도 왜 수련 중에서 여전히 문제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법에 동화되지 못했고 아직 의식하지 못한 자아와 이기심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대법과 충돌할 때, 주이스(主意識)가 똑똑한 상태에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거나 집착을 닦아버리지 않으면 집착과 관념에 이끌려 대법에서 벗어날 것이다. 수련의 길에서 우리는 한 걸음 뗄 때마다 선택에 직면하게 되는데, 법에 따라 선택한다면 법에서 수련하고 사부님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고, 반면 자신의 집착과 관념을 따른다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공경은 표면 행위에 있지 않고, 사람의 정과 감성에 있지 않다. 그것은 진정으로 법에서 대법을 인식하고, 착실히 수련하면서 대법에 동화되며,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의 길을 굳건히 걷는 데 있다.

수련생들은 매년 설, ‘5.13’, 추석에 명혜망을 통해 사부님께 축하 카드를 보내는데, 이는 중국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대법제자가 온 우주 생명에게 ‘사부님께는 감사의 마음만 있을 뿐이고, 대법에 대해서는 무조건 동화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내 경지에서 경사경법(敬師敬法)이라는 것은 대법에 동화하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이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9/4/4649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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